2011 년도

2011. 11. 20 / 땅과 같은 사람 / 누가복음 12:32-34

람보 2 2015. 4. 6. 17:54

땅과 같은 사람(2011.11.20)

 

본문) 누가복음 12:32-34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오늘은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강단 앞에 과일이나 채소를 잔뜩 쌓아놓고, 특별한 꽃꽂이로 제단장식을 하고 예배를 드리겠지요. 떡도 하고 음식도 장만해서 함께 나누는 시간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해서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찾기도 어렵고, 또 요즘 많는 분들이 사는 것도 힘드니 추수감사절을 지킨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강해설교를 하고 있는 야고보서에서 마땅한 본문을 찾기도 어렵고 해서 시를 읽다가 마침 한 편의 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작자도 알려지지 않은 시인데 그 내용이 너무 좋아서 오늘 그것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시를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긴 한데 차마 그럴 수 없어서 구절에 맞는 예수님의 행적을 찾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삶도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땅과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 작자 미상 -

“심는 대로 열매를 맺는 땅과 같이

심지 않은 것을 거두려 하지 않는

욕심 없고 깨끗한 마음을

내게 허락하소서.

수고하고 땀 흘린 만큼

돌려주는 땅과 같이

얻은 것만큼

누군가에게 환원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호미질 쟁기질 하면 할수록

부드러워지는 땅과 같이

핍박받고 고난당할수록

온유한 성품 갖게 하소서.

모진 풍파 극복하며

새 생명 키워내는 땅과 같이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강인한 사람 되게 하소서.

이름 모를 들풀과 잡초에게조차도

자기를 내어주는 땅과 같이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슴 넉넉한 사람 되게 하소서.

소리 없이 자기 몸을 가르며

씨앗의 성장을 돕는 땅과 같이

주변 사람의 변화를 돕는

온전한 사랑을 베풀도록

나를 도와주소서.“

 

먼저 시인은 맨 먼저 이런 사람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심는 대로 열매를 맺는 땅과 같이

심지 않은 것을 거두려 하지 않는

욕심 없고 깨끗한 마음을

내게 허락하소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허황된 것, 노력하지 않은 것은 갖지 않는 욕심 없고 깨끗한 마음을 갖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생애를 마쳐 가실 무렵,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그를 따라갔다. 그 곳에 이르러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하신 뒤에, 그들과 헤어져서, 돌을 던져서 닿을만한 거리에 가셔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 (누가복음 22:39-42)

 

아버지의 뜻대로, 내 뜻대로가 아니라 온전히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를 원했던 예수, 그야말로 깨끗하고 욕심없는 마음,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기를 원했던 예수의 마음을 우리는 시인의 마음에서 보게 됩니다.

 

시인은 이제 두 번째 구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수고하고 땀 흘린 만큼

돌려주는 땅과 같이

얻은 것만큼

누군가에게 환원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땅은 사실은 자기가 받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사람들에게 돌려줍니다. 농사를 조금이라도 지어보신 분은 아시지만 씨앗을 심으면 그 땅에서는 그 씨앗이 잘 자리기만 하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게 해 줍니다. 감자를 심을 때 감자를 여러 개로 잘라서 땅속에 묻으면 기가 막히게도 그 작은 씨눈이 자라서 수십 개의 감자가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수고하고 땀 흘린 만큼 돌려주는 땅이라고 말했지만, 그래서 얻은 것만큼 돌려주는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사실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 땅입니다. 그러므로 땅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돌려주는 사람이 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가 나옵니다. 그는 엄청나게 많은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쌓아둘 곳이 없어서 곳간을 헐어서 새로 지어야 할 만큼 많은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으니 그것을 나누는 것인데 그는 나누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 (누가복음 12:18-19)

 

그야말로 나눌 줄 모르고 혼자만 누리려는 부자, 그래서 그에게는 어리석은 부자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 부자 이야기를 하시고 나서 이제 오늘의 본문으로 삼은 곳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 12:32-34)

 

자, 이제 시인은 세 번째 구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호미질 쟁기질 하면 할수록

부드러워지는 땅과 같이

핍박받고 고난당할수록

온유한 성품 갖게 하소서.“

 

시인은 참으로 아주 섬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호미질이나 쟁기질을 하면 할수록, 그래서 땅이 아픔을 많이 겪으면 겪을수록 부드러워진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원래 땅은 딱딱한 것인데 그것을 호미나 쟁기로 파면 팔수록 흙은 부드러워집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우리 마음이 핍박받고 고난당할수록 온유한 성품을 갖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네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쪽 뺨도 돌려대고, 네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아라. 너에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서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준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누가복음 6:27-36)

 

바로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이 시인의 기도와 같은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시인은 이제 네 번째 단락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모진 풍파 극복하며

새 생명 키워내는 땅과 같이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강인한 사람 되게 하소서.“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어찌 풍파를 겪지 않겠습니까? 땅 위에도 온갖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그러나 그 땅은 아무리 거센 풍랑이 몰아친다 하더라도, 때로는 눈보라가 휘날리고 때로는 비바람이 몰아쳐서 아무 것도 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더라도 결국 땅은 모든 생명을 품고 있다가 그것을 피워냅니다. 그런 것처럼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강인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13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때에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여기에서 떠나가십시오. 헤롯 왕이 당신을 죽이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기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하여라.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 (누가복음 13:31-34)

 

그렇습니다.

예수는 당신이 끊임없이 박해를 받으시고 결국은 죽임을 당할 것을 아셨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빨리 도망가라고 요구했지만 예수께서는 아니라고, 오늘도 내일도 당신의 길을 가겠다고 말씀하시며 꿋꿋하게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으시고 걸어가시는 강인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어떤 상항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말라고, 강인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시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름 모를 들풀과 잡초에게조차도

자기를 내어주는 땅과 같이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슴 넉넉한 사람 되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땅에는 아주 아름다운 꽃이나 아주 멋있는 나무만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보다는 이름 모를 들풀이나 꽃들이 훨씬 더 많고, 또 그것들이 훨씬 더 잘 자랍니다. 땅은 결코 들풀들이 이름이 없다고 해서, 또 잡초들이 보잘 것 없다고 해서 자라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조차도 그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라고, 내게서 양분을 뽑아가서 먹고 살라고 내어줍니다. 그것처럼 우리들도 우리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가슴 넉넉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시인은 기도합니다.

 

여러분, 예수야말로 당신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을 다 내어주신 가슴 넉넉한 분이셨습니다. 아주 유명한 사람들, 믿음이 좋은 사람들만 받아주신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았던 사람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어린아이들, 죄인이라고 조롱받았던 병자들, 거지들, 여인들을 모두 다 품어주셨던 분이셨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더 가까이 안아주셨던 가슴 넉넉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기자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사람들이 아기들까지 예수께로 데려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제자들이 보고서,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아기들을 가까이에 부르시고,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누가복음 18:15-17)

 

시인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소리 없이 자기 몸을 가르며

씨앗의 성장을 돕는 땅과 같이

주변 사람의 변화를 돕는

온전한 사랑을 베풀도록

나를 도와주소서.“

 

여러분!

씨앗이 땅에 묻히지 않고 그냥 바닥에 있으면 그것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그 씨앗이 땅을 갈라서 그 속에 묻히기만 하면, 땅은 어김없이 그 씨앗이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땅은 자기가 키운 그 씨앗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자기 몸을 뚫고 가기에 아픔을 겪습니다. 그 씨앗이 자라서 땅 위에 올라오면 싹이 되고, 신비하게도 그 싹이 자라서 곡식도 되고, 풀도 되고, 나무도 되는데 그에 필요한 영양분은 모두 땅에서 옵니다. 그것이 기가 막히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시인은 자기도 땅과 같이 주변 사람을 온전히 도와서 변화를 돕고 열매를 맺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바로 그렇게 주변 사람의 변화를 돕는 온전한 사랑을 베푸는 분이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세리 삭개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본문은 읽지 않아도 다 아실 것입니다. 부자였던 삭개오, 자기 자신만을 알던 삭개오가 예수의 소문을 들었고, 예수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예수께서 그의 집에 가셨고,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난 삭개오가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구원에 이르렀다고 성서는 증거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를 만남으로 온전한 사랑을 베푸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원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런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분이 예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추수감사절을 맞아 우리가 땅과 같이, 또 예수와 같이 변화된 삶을 사는 ,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