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삯이 소리지른다(2011.11.13)
본문) 야고보서 5:1-6
“부자들은 들으십시오. 여러분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부르짖으십시오. 여러분의 재물은 썩고, 여러분의 옷들은 좀먹었습니다. 여러분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그 녹은 장차 여러분을 고발할 증거가 될 것이요, 불과 같이 여러분의 살을 먹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마지막 날에도 재물을 쌓았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꾼들의 아우성소리가 전능하신 주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 위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렸으며, 살육의 날에 마음을 살찌게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지만, 그는 여러분에게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네 복음서를 읽어보신 분들에게 질문을 한 가지 하겠습니다. 복음서를 많이 읽으신 분들, 자신있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는데 그 예수께서 부자들을 칭찬하신 적이 있으셨던가요, 없으셨던가요? 복음서에 나와 있는 예수의 행적을 기억하시는 분들,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없습니다. 부자들은 예수께로부터 칭찬을 받기는커녕 아주 심하게 꾸짖음을 당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부자들을 아주 호되게 꾸짖고는 하셨으니 예를 들어서 당시 기득권층, 지식인층을 대표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을 향해 예수께서 얼마나 심하게 욕하셨는지는 여러분 모두 다 잘 아실 것입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누가복음 6장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인자 때문에 너희를 배척하고 욕하고,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고 내칠 때에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아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다. 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할 때에, 너희는 화가 있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 (누가복음 6:2-26)
도대체 왜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인가요?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슬피 우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요? 그게 어떻게 복이 있는 일입니까? 또 부요한 사람, 배부른 사람,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고요? 그 사람들이 화를 당한다고요? 현실에서 보면 그런 사람들은 화를 당하지 않는 것 같은데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미안하지만 이유는 없습니다. 이유가 따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그것은 나중 이야기이고, 또 가난한 사람이나 배고픈 사람이 앞으로 잘 된다고 하는 것도 다 나중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 그것을 이유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유는 없습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께서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드시는 분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만 그러신 것인가? 예수만 독특하게 그런 것이고, 구약이나 다른 책에는 다르게 나온 것은 아닌가?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은 어떠신가요? 물론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부자가 된 사람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같은 사람들은 다 부자였고, 더구나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로 크게 출세했던 사람입니다. 욥도 큰 부자였고, 다윗이나 솔로몬은 왕이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부자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시는 장면들이 훨씬 더 많이 나옵니다. 특히 구약의 두 가지 전승 가운데 예언전승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부자들을 엄하게 꾸짖고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그중에서 두 군데를 볼 텐데 먼저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의 백성 가운데는 흉악한 사람들이 있어서,
마치 새 잡는 사냥꾼처럼,
허리를 굽히고 숨어 엎드리고,
수많은 곳에 덫을 놓아,
사람을 잡는다.
조롱에 새를 가득히 잡아넣듯이,
그들은 남을 속여서 빼앗은 재물로
자기들의 집을 가득 채워 놓았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세도를 부리고,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살에서 윤기가 돈다.
악한 짓은 어느 것 하나 못하는 것이 없고,
자기들의 잇속만 채운다.
고아의 억울한 사정을 올바르게 재판하지도 않고,
가난한 사람들이 권리를 지켜주는 공정한 판결도 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을 내가 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이러한 백성에게 내가 보복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예레미야서 5:26-29)
예레미야 시대, 백성들은 서로 속여서 빼앗은 재물로 자기 집을 채웠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어 살이 찌고, 악한 일을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고아나 가난한 사람들을 못살게 구니 어찌 벌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예언자 이사야는 부자들의 호사스러움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목을 길게 빼고 다니며,
호리는 눈짓을 하고 다니며,
꼬리를 치고 걸으며,
발목에서 잘랑잘랑 소리를 내는구나.
그러므로 주님께서 시온의 딸들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주님께서 그들의 하체를 드러내실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는 여인들에게서, 발목 장식, 머리 망사, 반달 장식, 귀고리, 팔찌, 머리쓰개, 머리 장식, 발찌, 허리띠, 향수병, 부적, 가락지, 코걸이, 고운 옷, 겉옷, 외투, 손지갑, 손거울, 모시 옷, 머릿수건, 너울 들을 다 벗기실 것이다.‘ “ (이사야서 3:16-23)
이들이 얼마나 호사스럽게, 사치스럽게 살았는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장식구가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렇다면 그 부자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그 호사스러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던가요? 이사야는 앞에서 그것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판하시려고 법정에 앉으신다.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려고 들어오신다.
주님께서 백성의 장로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을 세워 놓고,
재판을 시작하신다.
‘나의 포도원을 망쳐 놓은 자들이 바로 너희다.
가난한 사람들을 약탈해서,
너희 집을 가득 채웠다.
어찌하여 너희는 나의 백성을 짓밟으며,
어찌하여 너희는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치 맷돌질하듯 짓뭉갰느냐?‘
만군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말씀이다.“ (이사야서 3:13-15)
부자들이 정당하게 돈을 번 것이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을 약탈하고, 짓뭉개면서 재산을 빼앗아 부자가 되었고, 그것으로 온갖 호사를 누리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내버려둘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말씀을 기억하는 야고보 장로는 부자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은 들으십시오. 여러분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부르짖으십시오. 여러분의 재물은 썩고, 여러분의 옷들은 좀먹었습니다. 여러분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그 녹은 장차 여러분을 고발할 증거가 될 것이요, 불과 같이 여러분의 살을 먹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재산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쌓아두면 녹이 슨다는 것입니다. 나누고 베풀어주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만 제 욕심 차리느라고 쌓아두다가 녹이 슬어버리니까 그 녹이 장차 심판의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부자들은 세상 마지막 날에도 재물을 쌓았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돈을 움켜쥐고, 나누어주지 않고 베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산은 어떻게 모은 것입니까?
“보십시오, 여러분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꾼들의 아우성소리가 전능하신 주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땅을 고루고루 나누어 주셨기 때문에 대지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차츰 토지소유가 집중되다가 마침내 누구는 대지주가 되고, 누구는 소작농이나 날품을 파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밭에 가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만 부자들이, 대지주들이 품삯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일꾼들이 배고파 죽겠다고 소리치게 되었고, 마침내 그 아우성소리가 전능하신 주님의 귀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셨기에 이제 부자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부자들에게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 위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렸으며, 살육의 날에 마음을 살찌게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지만, 그는 여러분에게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들으십시오.
부자들이 품삯을 떼먹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기에 그 품삯이 소리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을 “품삯이 소리지른다”라고 정했던 것입니다. 그 소리를 하나님께서 듣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의 본문에서 “품삯이 소리지른다”고 되어 있는 것은 그 당시 사회가 농경사회이기 때문인 것을 다 아시겠지요. 일자리라고는 남의 밭에 가서 일하는 것밖에는 없기에 오늘의 본문에서 “품삯이 소리지른다”고 되어 있지만 이것을 오늘날로 말하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품삯을 받지 못해서 소리지르는 그 소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 신문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이 하루치입니다. 우선 하나는 “경찰 ‘김진숙 구속영장 오늘 신청’ *** 노조 ‘또 무리수’ 반발”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아시겠지요? 한진중공업에서 노동자들을 무단으로 해고하는 바람에 직장을 잃게 된 사람들이 항의를 하게 되고, 김진숙이라는 여자가 무려 309일 동안 35미터 상공의 크레인에 올라가서 정리해고 무효를 외치며 싸우다가 마침내 협의가 되어서 내려왔는데 경찰이 309일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고, 쉬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했던 김진숙 씨를 당장 구속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며, 도무지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김진숙 씨가 내려오던 날,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무려 삼년 째 복직시켜 달라고 투쟁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기사에 의하면 희망퇴직자 2,026명, 무급휴직자 461명, 정리해고자 159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해고된 사람들과 가족들 중에서 자살했거나 죽은 사람들이 모두 19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들을 돌보지 않고, 회사 주인들은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기사. “ ‘용역계약’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이 분노‘ ”입니다. 이들은 하루에 보통 열 시간씩 일애서 받는 기본급이 90만 원입니다. 한 달에 60~70시간 연장근로를 해야 16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조를 만들자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고, 심지어 병원에 근무하면서도 예방접종도 시켜주지 않았다지요. 이런 것들이 바로 현대판 일꾼들의 품삯을 떼어먹는 짓거리 아닙니까? 이 노동자들의 외침이, 먹고 살게 해달라고, 일자리 돌려달라고 소리치는 이 외침이 바로 ’품삯이 소리지른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지주는 오늘날로 말하면 자본가요, 권력자들이겠지요. 제가 주보에다가 글을 쓰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물론 이렇게까지 상황을 악화시키고 끌어온 자본가들에게 실컷 손가락질을 하고 싶습니다. 혹 그중에 기독교인이 있다면 앞으로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나님 욕 먹이지 말라고요.”
혹 여러분들 중에 그런 부자들을 부러워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런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시편 49편 말씀을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만민들아, 이 말을 들어라.
이 세상에 사는 만백성아 모두 귀를 기울여라.
낮은 자도 높은 자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모두 귀를 기울여라.
내 입은 지혜를 말하고,
내 마음은 명철을 생각한다.
내가 비유에 귀를 기울이고,
수금을 타면서 내 수수께끼를 풀 것이다.
나를 비방하는 자들이 나를 에워싸는 그 재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리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들과
돈이 많음을 자랑하는 자들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리오.
아무리 대단한 부자라 하여도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속량하지 못하는 법,
하나님께 속전을 지불하고
생명을 속량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명을 속량하는 값은 값으로 매길 수 없이 비싼 것이어서,
아무리 벌어도 마련할 수 없다.
죽음을 피하고 영원히 살 생각도 하지 말아라.
누구나 볼 수 있다.
지혜 있는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자나 우둔한 자도 모두 다 죽는 것을!
평생 모은 재산마저 남에게 모두 주고 떠나가지 않는가!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여 제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었어도
그들이 영원한 집,
그들이 영원히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
사람이 제아무리 영화를 누린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
미련한 짐승과 같다.
이것이 자신을 믿는 어리석은 자들과
그들의 말을 기뻐하며 따르는 자들의 운명이다.
그들은 양처럼 스올로 끌려가고,
‘죽음’이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아침이 오면 정직한 사람은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그들이 아름다운 모습은 시들고,
스올이 그들이 거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내 목숨을 건져 주시며,
스올의 세력에서 나를 건져 주실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더라도,
그 집의 재산이 늘어나더라도,
너는 스스로 초라해지지 말아라.
그도 죽을 때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며,
그의 재산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
비록 사람이 이 세상에서 흡족하게 살고
성공하여 칭송을 받는다 하여도,
그도 마침내 자기 조상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영원히 빛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고 만다.
사람이 제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
미련한 짐승과 같다.“ (시편 4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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