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년도

2011. 10. 16 / 선한 말, 따뜻한 말 / 야고보서 3:1-12

람보 2 2015. 4. 6. 17:44

선한 말, 따뜻한 말(2011.10.16)

 

본문) 야고보서 3:1-12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말을 부리려면, 그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말의 온 몸을 끌고 다닙니다. 보십시오. 배도 그렇습니다. 배가 아무리 커도, 또 거센 바람에 밀려도, 매우 작은 키로 조종하여, 사공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이와 같이, 혀도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보십시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태웁니다. 그런데 혀는 불이요, 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지체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며,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혀도 게헨나의 불에 타 버립니다. 들짐승과 새와 기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을 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사람이 길들이고 있으며 길들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겉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샘이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낼 수 있겠습니까?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짠 샘은 단 물을 낼 수 없습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자, 야고보 장로는 이제 당신이 속해 있는 교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오늘의 본문을 기록합니다. 소위 공동체를 이룰 때 그 구성원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무엇인가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한테서 말로 입는 상처입니다. 말 한 마디로 상처를 준다는 것이 공동체 생활에서 제일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제가 MBTI 강의를 하러 다닐 때 받는 질문 가운데 가장 많이 받는 것 중의 하나가 가장 가까운 가족들한테서 말로 상처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제가 대답하는 말, ‘그것은 예수께서도 잘 해결하지 못한 것인데요.“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네 가족 가운데 원수가 있다’고 말씀하셨고, 또 예수님을 향해서도 가족들이 제일 심한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대답하지요.

 

야고보 장로는 오늘의 본문에서 공동체 안에서 서로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선 공동체 안에서 사로 선생이 되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사람들이 더 큰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 말로 인해 실수를 많이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여기 나오는 ‘말’은 길게 발음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우선 ‘말’을 부리려면, 그 입에 재갈을 물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말’은 짧게 발음하는 ‘말’이고 짐승으로서의 ‘말’입니다. 말이 아주 덩치가 크지만 그것이 어려서 재갈을 물려놓으면 아주 어린아이라도 그 말을 끌고 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을 부리려면 재갈을 물려놓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또 배가 아무리 커도, 또 거센 바람에 밀려도, 매우 작은 키로 조종하면 사공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혀도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예를 듭니다. 처음에 불을 켤 때 그 불씨는 아주 작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누군가 담배를 피우고 그 꽁초를 끄지 않은 채 숲에 버린다면 그 불이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혀를 마음대로 놀리게 되면 그것이 엄청난 피해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지체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며,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혀도 게헨나의 불에 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혀가 왜 그렇게 엄청난 결과를 일으키는가? 사람들이 호랑이도 길들이고, 돌고래도 길들이고, 코끼리도 길들입니다. 그래서 그 짐승들이 사람의 말을 듣게 만듭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사람이 길들일 수 없는 유일한 것, 바로 사람의 혀라는 것입니다.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혀가 무언가 말하고 싶어할 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혀는 겉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샘이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낼 수 없는 것처럼 한 가지만 내야 하는데 우리의 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또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입으로 한 가지 열매만 맺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짠 샘에서는 짠 물만 나오고, 단 샘에서는 단 물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만물들은 한 가지만 내놓는데 오직 사람만 한 입으로 이것저것 다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죄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가족을 이루든지, 교회공동체를 이루든지 또는 직장에서 함께 살아가든지 하는데 이때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어서 제가 인터넷으로 저녁에 시간이 날 때 EBS를 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거기에서 참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다큐멘터리를 주로 하지요. 세계여행, 우리나라 기행, 세계의 아이들, 역사나 과학, 교육 등 볼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중간중간에 소위 공익광고를 하는데 거기에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광고가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광고에는 회사부장님, 꽃집사장님, 학생 등이 나오는데 그들이 회사에서는 부하직원들에게 아주 친절한 부장님이고, 손님들에게 친절한 사장님입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는 아내에게 지극히 독선적이고 불친절한 남편이 되고, 부모에게 막말하는 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나옵니다. ‘회사에 다니는 부장님과 집에서의 남편은 같은 분인가요, 다른 분인가요? 또 화원에 있는 사장님과 집에 온 딸은 같은 사람인가요, 다른 사람인가요?“ 그러면서 가족들에게 잘 해 주자고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저는 그 광고를 보면서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를 많이 생각해 보곤 합니다.

 

제가 상담을 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내용이 바로 가장 가까운 가족들한테서 받는 상처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 간의 갈들을 풀지 못해서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렇게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신앙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로 조심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만약에 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라믈에게 말로 상처를 주고 함부로 저주를 하고 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말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에 대해서 조심하라는 말씀을 잠언서에서 찾아서 읽고 그 뜻을 새기며 마치겠습니다. 잠언에 나오는 말에 대한 가르침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말을 조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비수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아픈 것을 낫게 하는 약이다.“ (잠언 12:18)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말을 내뱉는 사람의 말은 날카로운 칼과 같아서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칼로 찔린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말로 준 상처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낫지 않고 두고두고 아픔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을 낫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말을 조심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지만,

입을 함부로 여는 사람은

자신을 파멸시킨다.“ (잠언 13:3)

결국 말을 막 하는 사람은 그것 때문에 자신이 파멸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신중하게 하고,

하는 말에 설득력이 있다.“ (잠언 16;23)

 

“불량한 사람은 악을 꾀한다.

그들이 말은 맹렬한 불과 같다.

비뚤어진 말을 하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고,

중상하는 사람은 친한 벗들을 이간시킨다.“ (잠언 16:27-28)

불량힌 시림의 말은 악을 꾀하고, 맹렬한 불과 같이 공동체를 파괴시킨다는 것입니다. 또 비뚤어진 말이나 중상모략하는 말은 다툼을 일으키고 관계를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화를 내지 말라’고 묶을 수 있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쉽게 화를 내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모욕을 참는다.“ (잠언 12;16)

 

“좀처럼 성을 내지 않는 사람은

매우 명철한 사람이지만,

성미가 급한 사람은

어리석음만을 드러낸다.“ (잠언 14:29)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지만,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 (잠언 15:1)

 

“화를 쉽게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성을 더디 내는 사람은 싸움을 그치게 한다.“ (잠언 15:18)

 

“북풍이 비를 일으키듯,

헐뜯는 혀는

얼굴에 분노를 일으킨다.“ (잠언 25;23)

 

이 말씀들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우선 진실한 말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정직한 증거를 보이지만,

거짓 증인은 속임수만 쓴다.“ (잠언 12:17)

 

“진실한 말을 영원히 남지만,

거짓말은 한순간만 통할 뿐이다.

악을 꾀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속임수가 들어 있지만,

평화를 꾀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다.

주님은 거짓말을 하는 입술은 미워하시지만,

진실하게 사는 사람은 기뻐하신다.“ (잠언 12:19-20, 22)

 

그렇습니다.

진실은 영원히 남고 평화를 이루지만, 거짓말은 한순간만 통할 뿐이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말은 선한 말이요, 따뜻한 말입니다.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지만,

가시 돋힌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잠언 15: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고,

쑤시는 뼈를 낫게 하여 준다.“ (잠언 16:24)

 

그러므로 진실한 말, 선한 말, 따뜻한 말을 함으로써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 늘 실수를 하면서 살아가는데 가능한 한 말로 인한 실수를 줄여야 할 것이고, 또 말을 할 때 교만한 말, 가시 돋힌 말, 상처를 주는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또 거짓말을 할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말, 선한 말, 따뜻한 말을 함으로써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으로 만들게 되면 좋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말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거짓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입니다마는 적어도 기독교인들이 선한 말, 따뜻한 말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게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