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년도

2011. 10. 2 / 자비는 심판을 이긴다 / 야고보서 2:1-13

람보 2 2015. 4. 6. 17:35

자비는 심판을 이긴다(2011. 10. 2)

 

본문) 야고보서 2:1-13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이를테면, 여러분의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금반지를 끼고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거기 서 있든지, 내 발치에 앉든지 하시오’ 하고 말하면, 바로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제하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또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한 조목에서 실수하면, 전체를 범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이 또한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인을 하면, 결국 그 사람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제가 MBTI 일반강사 즉 성격유형검사를 행할 수 있는 전문강사 자격증을 딴 것이 2000년 2월이니까 햇수로 벌써 11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주로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학교나 회사 등에 가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MBTI 강의를 하였습니다. 특히 신학교에 가서 ‘MBTI와 목회상담’이라는 과목을 강의할 때가 잇는데 그때 반응이 굉장히 좋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로서는 굉장히 재미있고 또 듣는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서 보람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MBTI를 하면서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토요일과 주일 이틀 동안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MBTI를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안양시에서 주관하는 시민축제가 평촌중앙공원에서 있었는데 안양시 산하 인재육성재단에서도 부스를 하나 차려놓고 시민들을 상대로 앙케이트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시민들에게 보너스로 MBTI를 통해 적성검사와 인성검사를 해주면 좋겠다는 제안이 저에게 들어왔습니다. 재단의 담당자 말에 의하면 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올테니까 쉽고 간단하게 검사하고, 결과가 즉석에서 나오게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문제를 새로 만들어서 검사지를 준비했습니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는데 막상 해 보니까 참으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이 검사를 해 보고는 그 결과가 정확히 맞는 것에 놀라고, 또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재단 측에서는 앞으로 계속해서 함께 하자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둘째날 오후에 이상하게도 젊은 부부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첫째날 아이들과 함께 왔던 엄마들이 남편을 데리고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들의 손에 이끌려 온 남편들이 한결같이 긴장되어 있고, 얼굴이 굳어있는 표정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여러 사람이 안 한다고, 자기는 성격검사 필요없다고 말하고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 마음 속에 이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까, 뭘 말해줘야 하지, 표정으로 봐서 대화가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들이 요구하니까 결국은 그들이 거의 다 참여했는데 간단한 검사와 저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 표정이 풀리고, 속에 있는 말을 하고, 뭔가 깨달은 것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후에는 사람들이 밀려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저는 설명을 하기 위해 목이 잠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나중에는 어떤 부부가 설명을 들은 후에 고맙다고 하면서 박수를 치는 바람에 모두들 깜짝 놀란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16가지 성격유형을 대부분 다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저도 아내들 손에 이끌려 온 남편들을 보면서 그들 얼굴 표정이 굳어있거나 입을 다물고 있거나 하는 것만 보고 미리 검사가 잘 안 될 것이라느니, 대화가 잘 안 통할 것이라느니 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분들도 마음속에 무언가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고, 풀고 싶은 문제들이 있었는데 그 어디에서도 말하지 못하고, 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짧은 검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것을 드러내고, 말을 하면서 저와의 대화를 통해 얼굴이 풀리고 아주 밝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저의 선입견을 다시 한 번 벗어버리게 되었고, 그 일을 통해 보람을 크게 느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지지 말아야 하는 것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선입견입니다. 상대방을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일 말입니다. 특히 선입견 가운데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외모를 보고 갖는 선입견입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큰 차를 타고 돈을 펑펑 쓰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앞에서 고개숙이며 대접 잘 하고, 반대로 남루한 옷을 입고 주머니가 텅 비어있든 듯이 보이면 깔보고, 하대하고, 무시하는 행위가 가장 큰 문제이자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야고보서 저자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야고보 장로가 활동하던 그 시대, 그 교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제 막 교회가 성장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왔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잘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회당에 아주 잘 사는 사람이 화령한 옷을 입고 금반지를 끼고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때는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들어왔을 때 교인들이 그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온다면 그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거기 서 있든지, 내 발치에 앉든지 하시오.’ 그것을 본 야고보 장로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저의 관심은 5-6절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사람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고요? 도대체 언제 그러셨단 말입니까? 그런 증거가 성경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갖고 저는 누가복음을 읽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적어도 예수께서 누군가를 향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면 그 사람은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예수께서 그 사람을 향해 그렇게 말씀하셨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누가복음에 이렇게 말씀하신 경우가 딱 세 번 나옵니다.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누가복음 7장입니다.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청하여,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들어가셔서, 상에 앉으셨다. 그런데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었는데,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숫고 계신 것을 알고서,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등 뒤에 발 곁에 서더니, 울면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랐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새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저 여자가 누구이며, 어떠한 여자인지 알았을 터인데! 그 여자는 죄인인데!’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네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말했다. ‘선생님, 말씀하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진 사람 둘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이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돈놀이꾼은 둘에게 빚을 없애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가운데서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였다. ‘더 많이 빚을 없애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판단이 옳다.’ 그런 다음에, 그 여자에게로 돌아서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여자를 보고 있는 거지?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에,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았다. 너는 내게 입을 맞추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들어와서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랐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것은 그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용서받는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죄가 용서받았다.’ 그러자 상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이 속으로 수군거리기를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도 용서하여 준다는 말인가?’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 (누가복음 7장 36-50절)

 

여러분,

죄의 용서를 받은 여자가 어떤 여자입니까? 당시 모든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고 손가락질받던 여인입니다. 그 누구도 구원받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던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마음속에 예수를 향한 사랑이 풍성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 사랑으로 나타난 믿음을 보시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두 번째는 누가복음 8장에 나옵니다.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아오시니, 무리가 그를 환영하였다. 그들은 모두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에 야이로라는 사람이 왔다. 이 사람은 회당장이었다. 그가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서, 자기 집으로 가시자고 간청하였다. 그에게 열두 살쯤 된 외동딸이 있는데, 그 딸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데, 무리가 예수를 밀어댔다. 무리가운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있었는데 [의사에게 재산을 모두 다 탕진했지만] 아무도 이 여자를 고쳐주지 못하였다. 이 여자가 뒤에서 다가와서는 예수의 옷술에 손을 대니, 곧 출혈이 그쳤다. 예수께서 물으셨다. ‘내게 손을 댄 사람이 누구냐?’ 사람들이 모두 부인하는데, 베드로가 말하였다. ‘선생님, 무리가 선생님을 에워싸서 밀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누군가가 내게 손을 댔다. 나는 내게서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알고 있다.’ 그 여자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음을 알고서, 떨면서 나아와 예수께 엎드려서, 그에게 손을 댄 이유와 또 낫게 된 경위를 모든 백성 앞에 알렸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

(누가복음 8장 40-48절)

 

보십시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입니다. 그런데 43절에 보면 병을 고치기 위해 모든 가산을 탕진해서 거지가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병에 걸려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쫓겨난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세 번째는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소경거지입니다.

“예수께서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일어난 일이다. 어떤 눈먼 사람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다가.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어보았다.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고, 그에게 일러주었다. 그러자 그는 소리를 질렀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앞에 서서 가던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크게 외쳤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오니,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주님,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는 곧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를 따라갔다.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보고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누가복음 18장 35-43절)

 

그렇습니다.

여기 나오는 사람은 눈 먼 거지입니다. 구걸하면서 빌어먹는 사람입니다. 거지니 재산이며 소유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하루하루 벌면 먹는 것이고, 벌지 못하면 굶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향해 소리쳤고, 단지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소리쳤더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여러분, 보십시오.

예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놀라운 선포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무시당하고, 멸시받던 죄인, 병자, 가난뱅이였습니다. 그들은 돈도 없고, 몸도 병이 들거나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그들을 무시하고,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했고, 그들이 가까이 오는 것만으로도 부정탄다고 하며 손가락질하고, 상종못할 인간으로 멸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예수님만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것인지 우리가 읽어드린 본문을 갖고는 알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외모만을 보고, 그들이 입은 옷이 남루하고, 더럽기에 멀리했던 데 비해서 예수만은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가까이 하시고 품어주셨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그러한 예수님의 행적과 마음을 아는 야고보 장로는 오늘의 본문에서 아주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교인들이 그렇게도 우대하고, 떠받들던 부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야고보 장로는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여러분을 압제하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또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부자들을 단순히 부자라고 해서 떠받들고, 높일 수 있냐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부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부자들 중에는 구원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다행히 부자들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부자로서 구원받은 사람이 분명히 나옵니다. 19장입니다.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묵어야 하겠다.'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누가복음 19:1-10)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 장로를 통해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고, 특히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가진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부자가 나누어주지 않으면 무서운, 무자비한 심판이 있을 것인데 그 심판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에서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이 설교를 들으시는 여러분!

여러분이 가난하다면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더 여러분을 따뜻하게 영접해 주시고, 맞아주십니다. 그리고 만약에 여러분이 부자라면 끊임없이 가진 것을 나누어주고 베푸십시오. 그래서 여러분 앞에 놓인 하나님의 심판을 이겨내십시오. 왜냐하면 오직 자비만이 심판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비를 베풀면 베풀수록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더 큰 자비를 베푸시고 결국 마지막에 심판을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선입견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또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심판을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