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위선자들아(2011. 7. 17)
본문) 누가복음 13:10-17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그런데 거기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허리가 굽어 있어서, 몸을 조금도 펼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이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불러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야,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곧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에 분개하여 무리에게 말하였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니, 그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워하였고, 무리는 모두 예수께서 하신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구약성경에 의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곧 목숨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안식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맛사다에서 로마군에 저항했던 유대인들이 격렬하게 맞서 싸우다가도 안식일이 되면 창과 칼을 내려놓고 싸우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안식일을 지키는데 철저했던가요? 율법서에 그 근거가 되는 구절들이 곳곳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삶의 원칙, 지켜야 할 모든 원칙인 율법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를 지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안식일은 하나님의 천지창조 때 만들어진 하나님의 규례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엿샛날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창세기 2:2-3)
또한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십계명이 율법서에 두 번 나오는데 두 군데 다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에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출애굽기 20:8-11)
신명기 5장에도 십계명이 나오는데 앞부분은 같은데 마지막에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가 조금 다르게 나오고 있습니다.
“너희는 기억하여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으므로,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다.” (신명기 5:15)
또한 레위기에 의하면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거룩하게 지켜야 할 여러 절기들 중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날입니다.
“너희가 거룩한 모임을 열어야 할 주의 절기들 곧 내가 정한 절기들은 다음과 같다. 엿새 동안은 일을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반드시 쉬어야 하는 안식일이다. 거룩한 모임을 열어야 하고,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이 날은 너희가 살고 있는 모든 곳에서 지킬 주의 안식일이다.” (레위기 23:2-3)
그러니까 너희들이 어디에서 살든지, 유대 땅에서 살든지 외국에 나가 살든지 어디서나 지켜야 할 안식일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율법의 가르침 중에서 결정판은 출애굽기 24-31장에 나오는 시내산 언약에 들어있는데 그 언약의 제일 끝부분에 해당되는 31:12-17절에 안식일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라. 이것이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세워진 표징이 되어, 너희를 거룩하게 구별한 이가 나 주임을 알게 할 것이다. 안식일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므로,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그 날을 더럽히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 날에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겨레로부터 제거될 것이다. 엿새 동안은 일을 하고, 이렛날은 나 주에게 바친 거룩한 날이므로, 완전히 쉬어야 한다.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 안식일을 영원한 언약으로 삼아, 그들 대대로 지켜야 한다. 이것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징이니, 이는, 나 주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 ” (출애굽기 31:12-17)
여러분!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여기 들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1장에 의하면 안식일에 일하는 것은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두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런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겨레로부터 제거될 것이고, 이 규례는 대대로 지켜져야 할 영원한 언약이요 표징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 도대체 왜 이렇게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킬 것이 강조되었는가요? 역사적으로 보면 남왕국 유다의 멸망 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바빌론의 발달된 이교문명과 여러 이방인들과의 교류 속에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안식일 준수와 할례를 강조했던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후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언제, 어디에서 살든지 반드시 실행해야 할 절대적인 규범이 되었고, 그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역시 유대인이었기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께서도 안식일에 회당에 가셔서 예배에 참석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보면 예수나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어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어쩌다가 한두 번 어기시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일부러 그러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만한 일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께서 안식일 문제로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부딪히고 논쟁을 벌였던 사건이 무려 여섯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네 번 나오는데 그중 두 번의 기록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나오고 나머지 두 번의 기록은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 두 번 나오니까 합해서 모두 여섯 번 나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6:1-5 제자들이 안식일에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먹고 논쟁이 붙었다.
(마태복음 12:1-8, 마가복음 2:23-28)
누가복음 6:6-11 예수께서 안식일에 오른손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셨다.
(마태복음 12:9-14, 마가복음 3:1-6)
누가복음 13:10-17 예수께서 안식일에 등 굽은 여자를 고치셨다.
누가복음 14:1-6 예수께서 안식일에 수종병 환자를 고치셨다.
요한복음 5:1-18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다.
요한복음 9:1-12 예수께서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을 고치셨다.
14절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었다.“
요한목음에 기록된 기적은 크게 다섯 가지인데 그중 두 가지가 안식일에 행해진 것입니다. 어쨌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 율법에 전해져 내려오는 거의 절대적인 명령이라는 것을 예수께서 모르실 리가 없는데 예수는 왜 마치 일부러 어기는 것처럼 어기셨을까요? 주위에 시비를 걸기 위해 눈 크게 부릅뜨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그러면 당신이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는데 예수는 왜 굳이 안식일에 그런 일들을 행하셨는가요?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대로 그 다음날 고쳐줘도 당징 죽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안식일에 고쳐주려 하셨단 말입니까? 심지어는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하신 것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결과까지 나와 있지 않은가요?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마가복음 3:6)
“그 일로 인해 유대 사람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신다고 해서, 그를 박해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 유대 사람들은 이 말씀 때문에 더욱더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불러서,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셨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16-18)
자, 예수께서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신 일을 행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물론 여섯 번에 걸친 사건의 배경을 각각 살펴보아야 전체적으로 파악이 되겠지만 저는 오늘은 그중 오늘의 본문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바로 그 자리에 열여덟 해나 허리가 굽어진 채 펼 수 없었던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여자를 보시자마자 가까이 불러서 ‘여자야, 너는 네 병에서 풀려났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곧 허리를 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회당장이 분개하여 말했다는 것입니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왜 하필 안식일에 와서 고쳐달라는 것이냐? 안식일이 아닌 날 와서 고쳐달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무슨 말입니까? 분명히 율법 조항에 의하면 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들도 안식일에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네 짐승을 먹이기 위해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도 먹이고, 풀도 먹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유대 땅의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유대 땅에는 우기에만 물이 찼다가 건기 때는 말라있는 우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사람이고 짐승들이 거기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라도 짐승이 빠져있으면 건져도 되지만 사람이 빠져있으면 건지면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노릇이지요. 그러니까 안식일에 짐승은 먹이면서도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한 여인을 안식일에 고쳐서는 안 된다고? 이 못된 놈들아! 하고 예수께서 꾸짖으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행하고,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아주 나쁜 놈들이라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왜 위선자라고 꾸짖으셨는가요? 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문구에 얽매여 형식적으로는 지키지만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즉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하면서도 사람의 목숨이 걸린, 그것도 불쌍한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 뻔뻔함, 그야말로 위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분개하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란 문자를 문자로 지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데 있다는 것이고, 안식일도 사람을 위해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마가복음 2:27-28)
여러분, 오늘 제가 왜 이 설교를 하는가요? 요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을 소위 ‘고소영’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이 한결같이 위선자들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나는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저에게 한결같이 하는 말, “자기들이 교회에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교인들이 말과 행동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입니다. 특히 4대강 사업이나 핵발전소를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그들이 대부분 열심히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이지만 그들 때문에 너무나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4대강 공사로 인해 벌써 스무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죽었고, 엄청난 넓이의 논과 밭, 주변의 땅들이 물에 잠겼고, 수많은 생명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공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일날에는 교회에 나가서 신실한 신자인 척 하지만 그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하고 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으니 주님 보시기에 그들은 위선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4대강 사업에 대해 침묵한 것을 회개하고, 이제 그만하라고, 원상회복하라고 주장하고 나서야 합니다. 예수께서 분개하고 계시고,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 준비되고 있다는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서 진정 새로워지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회당장을 향해 “너희 위선자들아”라고 소리치셨던 예수께서 오늘 한국교회를 향해서 뭐라고 말씀하실지 두려운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합당한 한국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 두려운 마음으로 새로워지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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