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2011.6.26)
본문) 스바냐서 3:11-13
“그 날이 오면,
너는 나를 거역한 온갖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거만을 떨며 자랑을 일삼던 자를
이 도성에서 없애버리겠다.
네가 다시는 나의 거룩한 산에서
거만을 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도성 안에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남길 것이다.
이스라엘에 살아남은 자는
나쁜 일을 하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
간사한 혀로
입을 놀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잘 먹고 편히 쉴 것이니,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어제가 6.25기념일이었습니다. 요즘 하도 세상이 어수선하고, 전쟁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전쟁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나중에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스바냐서를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를 꼽는다면 역시 모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아브라함도 있고, 다윗 왕도 있지만 그래도 역시 모세를 첫손에 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선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던 히브리인들, 오늘날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시킨 사실상의 유대 건국의 아버지 모세.
40년 동안 사막을 떠돌아다니며 그 말많고 탈많던 히브리인들을 온갖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목적지 가나안 땅이 건너다보이는 곳까지 무사히 인도했던 위대한 지도자 모세.
바로 그 모세에 관한 이야기가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그렇게 많은 분량을 차지한 유일한 인물이 바로 모세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참으로 독특한 이야기가 민수기 12장에 나와 있습니다. 1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데리고 왔는데,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가 그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고 해서 모세를 비방하였다.”
그러니까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았고, 그것 때문에 형 이론과 누이동생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비방합니다.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모세와만 대화를 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하고도 대화를 나누셨는데 모세가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라고 따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 셋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서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 가운데 예언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으로 그에게 알리고,
그에게 꿈으로 말해 줄 것이다.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
그와는 내가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말한다.
명백하게 말하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나 주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 (민수기 12:6-8) .
보십시오.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했다고 해서 그들을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너희들과 모세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내 모습까지 볼 수 있는데 너희가 왜 그를 비방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결과 미리암은 벌을 받아서 악성 피부병에 걸렸고, 모세가 그녀를 위해 기도해 줌으로써 나았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모세가 이론이나 미리암과 무엇이 다른지,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를 택하셔서 그러한 특권을 주셨는가요? 그 힌트가 될 만한 구절이 있으니 바로 3절입니다.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고요? 무슨 뜻인가요? 그저 자존심없고, 자기 주장할 줄 모르고, 남들 앞에서 굽실대기만 하는 사람을 말하는가요? 아닙니다.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는 말은 그가 철저하게 하나님께만 희망을 두고,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모세라는 사람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일생을 한 번 되돌아보십시오. 나이 80에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자기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부르셔서 나서기는 했지만 그가 행했던 일 중에 그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었고, 그것을 모세만큼 철저하게 깨달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모든 일을 할 때 철저하게 하나님만이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말씀이 있으니 출애굽기 14:13-14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당신들이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구하여 주시려고 싸우실 것이니, 당신들은 진정하십시오.’ ” (출애굽기 14:13-14)
여러분!
이 구절이 어떤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 아시지요? 이제 이집트 땅에서 도망쳐 간신히 홍해를 건너온 히브리인들. 한숨 돌리는가 했는데 그만 갈라진 홍해바다 사이로 이집트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그 군대가 홍해를 빠져나와서 히브리인들을 덮칠 기세였습니다. 그들은 완전무장한 군구대요, 히브리인들은 아무런 무기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큰일났습니다. 그들이 히브리인들을 다 죽여버릴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들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모세가 했던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당신들이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구하여 주시려고 싸우실 것이니, 당신들은 진정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참된 겸손함이란 아무런 희망도 없고, 스스로를 구원하거나 자신들의 힘에 의지할 아무런 희망도 수단도 없어 보일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히브리인들이 그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때가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러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는데 바로 그때 우리가 가만히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 참다운 겸손함이라는 말입니다. 모세는 바로 그러한 경험을 일생동안 했던 사람이고, 바로 그래서 민수기 저자는 모세를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모세의 겸손을 재발견하고 새롭게 선포한 예언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스바냐입니다.
예언자 스바냐, 그는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것과 같은 시대 즉 유다 왕국의 마지막이 내다보이던 요시야 왕 때에 활동하던 예언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활동하던 예언자들이 또 있었으니 하박국과 나훔, 에스겔 등이 그들입니다. 우선 스바냐 1장 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 때에, 주님께서 스바냐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의 아버지는 구시이고, 할아버지는 그달리야이고, 그 윗대는 아마랴이고, 그 윗대는 히스기야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한 시대에 활동했다는 것 말고도 커다란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재난이 임박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재난이란 바로 남왕국 유다가 멸망당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스바냐도 분명히 재난이 임박했음을 선포했습니다. 1장 2-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말끔히 쓸어 없애겠다.
나 주의 말이다.
사람도 짐승도 쓸어 없애고,
공중의 새도 바다의 고기도 쓸어 없애겠다.
남을 넘어뜨리는 자들과
악한 자들을 거꾸러뜨리며,
땅에서 사람의 씨를 말리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손을 들어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을 치겠다.
이곳에 남아 있는 바알 신상을 없애고,
이방 제사장을 부르는
그마림이란 이름도 뿌리 뽑겠다.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을 섬기는 자들,
주에게 맹세하고 주를 섬기면서도
밀곰을 두고 맹세하는 자들,
주를 등지고 돌아선 자들,
주를 찾지도 않고
아무것도 여쭙지 않는 자들을 내가 없애 버리겠다.“ (스바냐서 1:2-6)
특히 부자들, 권력자들은 파멸할 운명이라서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스바냐는 이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 주가 제물을 잡는 날이 온다.
내가 대신들과 왕자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하겠다.
그 날이 오면,
문지방을 건너뛰는 자들을 벌하겠다.
폭력과 속임수를 서서,
주인의 집을 가득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겠다.“ (스바냐서 1:8-9)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것인가? 모두 다 멸망하고 끝나버리고 마는 것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바냐를 통해 희망이 있다고 선포하십니다. 2장에 이렇게 나옵니다.
“함께 모여라.
함께 모여라.
창피한 줄도 모른 백성아!
정해진 때가 이르기 전에
세월이 겨처럼 날아가기 전에,
주님의 격렬한 분노가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주님께서 진노하시는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함께 모여라.
주님의 명령을 따르면서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사람들아,
너희는 주님을 찾아라.
올바로 살도록 힘쓰고,
겸손하게 살도록 애써라.
주님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행여 화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바냐서 2:1-3)
그렇습니다.
희망은 소박하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난하기 때문에 하찮고 영향력도 없고 무력한 삶을 살다가 바로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더 잘 응답할 수 있게 된 사람들, 즉 겸손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3절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다가 고생하는
이 땅 모든 백성들아,
너희는 야훼를 찾아라.
바로 살도록 힘써라.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애써라.
그리하면 야훼께서 크게 노하시는 날
너희만은 화를 면하리라.“
그렇습니다.
겸손한 자들만이 야훼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을 것이며, 진정으로 하나님 백성의 ‘남은 자’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려고 애쓰기에 고생하는 백성들만이, 그래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백성들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야훼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율법에서도 가난한 이들이 거듭거듭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이용해 먹는 모든 사람을 엄격하게 단죄합니다. 곤궁한 자, 나그네, 과부와 고아는 언제나 백성이 하나님의 길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가늠하는 시금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자들이 그들을 잘 대접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인정받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심판을 받았습니다. 모든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억눌린 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편에 섰습니다. 이러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 모든 관심에 비추어볼 때 출애굽의 진리 중 제대로 평가받아 오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가난한 자들로 당신의 백성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입니다. 넝마같은 노예들, 그야말로 400년 동안이나 노예생활을 했기에 거지 중에 상거지처럼 살았던 히브리인들, 그래서 문자 그대로 히브리인이라는 말 자체가 땅에 붙어서 땅강아지처럼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말인 것처럼 그렇게 가난했던 무리가 단순히 하나님의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희망의 대상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미래를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그들이 위대하고, 힘있고, 영향력있고, 영리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런 희망도 없고 스스로를 구원하거나 자신들의 힘에 의지할 아무런 희망도 수단도 없었기 때문에 야훼를 바라보고 그분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야훼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겸손했던 사람들이고 모세는 바로 그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발견한 사람이 바로 스바냐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언자 스바냐는 바로 이러한 진리를 깨달았기에 오늘의 본문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날이 오면,
너는 나를 거역한 온갖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거만을 떨며 자랑을 일삼던 자를
이 도성에서 없애버리겠다.
네가 다시는 나의 거룩한 산에서
거만을 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도성 안에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남길 것이다.
이스라엘에 살아남은 자는
나쁜 일을 하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
간사한 혀로 입을 놀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잘 먹고 편히 쉴 것이니,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이 구절을 직역해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그 날이 오면,
나를 거역하여 저지른 온갖 일들을
너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때에 내가
거만을 떨며 흥청거리는 자를 네 안에서 쓸어버리면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거만한 모습이 자취를 감출 텐데
무엇을 다시 부끄러워하랴.
내가 기를 못 펴는 가난한 사람만을 네 안에 남기리니
이렇게 살아남은 이스라엘은
야훼의 이름만 믿고 안심하리라.
그들은 남을 억울하게 속일 줄도 모르고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르며
간사한 혀로 사기칠 줄도 모른다.
그러나 배불리 먹고 편히 쉬리니,
아무도 들볶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예언자 스바냐는 참으로 놀라운 미래를 보았습니다. 거만을 떨며 흥청거리는 자들은 심판받고,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이 구원받고 살아남는 놀라운 세상, 그 날이 올 것을 그는 보았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모세는 지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으로 증거된 바 있습니다. 예언자 스바냐는 이 겸손의 덕을 높이 찬양하여 그것 없이는 하나님 백성에게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없게 되리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졌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바로 그래서 예수께서는 첫 번째 주요 설교를 하실 때 스바냐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가난한 이들로 시작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렇다면 부자들과 권세있는 자들이 이 희망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는가? 그 유일한 길은 그들이 참으로 가난한 이들의 무력함과 무가치함을 체험하는 것뿐입니다.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그래도 기적은 일어날 수 있는 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살아갑시다. 우리의 사는 형편이 어떠하든지 오직 우리의 희망은 하나님께만 있음을 기억하고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를 지켜보기만 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히브리 백성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스바냐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그리고 예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끝으로 레바논의 현인 칼릴 지브란의 시 한 편을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나그네 예수
“사람들은 예수가 상스럽고 천한 사람이라고
경멸했다.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비가 와야만 옷과 몸이 깨끗해지는 사람이라며
비웃었다.
그는 미쳤고,
그의 말은 악마를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보라!
모든 사람에게서 멸시받던 그가
떨쳐 일어나자,
그 메아리가 그치지 않는구나.
그의 노래는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그가 부른 노래는 영원히
세상 어느 곳에서나 살아있어,
생명을 불어넣던 그 입술을
모두가 기억하게 되리라.
그는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성지로 가는 나그네였고,
우리들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었으며,
먼 나라에서 찾아온 아주 귀한 방문객이었다.
참으로 다정한 주인을 만나지 못했기에
그의 나라로 되돌아가 버린
손님인 것이다.“ < ‘사람의 아들 예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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