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의 바벨탑(2011. 7. 3)
본문) 창세기 11:1-9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내자.’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다.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주님께서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주님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 두었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제가 사는 과천이라는 도시는 사실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보통 인구 5만이 넘으면 시로 인정을 받는데 전국적으로 보아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인구가 불과 7만 명밖에 되지 않고, 시내라고 해보아야 달랑 한 군데밖에 없어서 시내에 나가면 웬만큼 아는 사람들 다 만난다고 할 만큼 작은 도시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 작은 도시가 아주 시끄럽습니다. 처음에는 과천에 있는 정부종합청사가 세종 시로 내려가면 과천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로 시끄럽다가 또 한동안 소위 재건축이 되느니 안되느니 하는 것으로 시끄러웠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갑자기 과천에 보금자리 주택이 들어온다고 발표가 나면서 엄청 시끄러워졌습니다. 한 마디로 보금자리 주택이 들어오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고, 재건축 사업이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 보금자리 반대 서명을 받고 집회하고 난리입니다. 어쨌든 이것이 다 도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여집니다. 괴천 시 구호가 “언제까지나 살고 도시 과천”이라는 것인데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살고싶은 도시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요즘 과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본질은 과천의 정체성이 무어냐, 앞으로 과천이 어떤 도시가 되어야 하느냐 등의 문제에 서로 보는 시야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보아서 결국 도시가 무어냐, 도시가 왜 생겼고,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어냐 등등의 물음을 새삼스럽게 던져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물론 제가 도시전문가도 아니고, 또 재건축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기에 뭐라고 드릴 말씀이 별로 없습니다마는 적어도 성경에는 도시에 대해서 뭐라고 나오는지는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창세기에 나오는 도시의 문제를 찾아보고, 이를 통해 오늘 우리의 문제, 한국사회의 문제를 짚어보고 싶습니다. 우선 창세기에 도시의 이야기가 나타나기는 하는가?
뜻밖에도 창세기에 도시 이야기가 나옵니다. 도무지 도시 이야기는 나올 것 같지 않은, 오로지 농사짓고, 사냥하는 이야기나 나올 것 같은 창세기에 도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맨 처음 나오는 것은 바로 창세기 4장 17절입니다.
“가인이 자기 아내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았다. 그 때에 가인은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를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성경에 나타난 첫 번째 도시의 이름은 에녹 시입니다. 물론 성경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본 분들이라면 당장 많은 의문들을 품게 될 것입니다. 아니, 뜬금없이 웬 도시가 나타나냐? 어떻게 여기 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나? 창세기에 의하면 분명히 지구상에 사람이라고는 아담과 하와밖에 없었다. 그들이 가인과 아벨을 낳았으니 모두 합해서 네 사람이다.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으니 세 사람 남았다. 그런데 가인이 아내와 결혼했다니 그 여자는 누구인가? 그 여자는 어디서 왔고, 누구의 딸이란 말인가? 어쨌든 그들이 아들을 낳았고, 그의 이름이 에녹이다. 그 때에 도시를 세웠다는데 누구랑 도시를 세운 것인가? 도시를 혼자서 세운 것도 아니고...
창세기 공부할 때 숱하게 들은 질문들입니다. 혹 궁금하신 분들 계시면 개인적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첫 번째 도시를 세운 사람은 가인이었습니다.
두 번째 기록은 창세기 10:11-12에 나옵니다.
“그는 그 지방을 떠나 앗시리아로 가서,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를 세우고,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는 레센을 세웠는데, 그것은 아주 큰 성이다.”
자, 인간이 두 번째로 세운 성은 레센이라는 이름의 성인데 성이 있다는 말은 곧 도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그 설립자는 8절에 의하면 니므롯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니므롯은 바로 함의 손자이고, 따라서 노아의 증손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성 즉 도시 이야기가 바로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이 말합니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창세기 11:4)
자, 지금까지 말씀드린 세 도시 즉 가인이 지은 에녹 시, 니므롯이 지은 레센 시,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바벨 시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도시의 속성은 죄라고 말씀드리면 논리의 비약일까요?
먼저 가인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새삼 말씀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큰아들로 태어나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살인자였습니다. 그래놓고는 누군가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움에 떨던 사람, 가인. 바로 그가 지은 도시가 에녹 시였습니다. 그러니까 에녹 시는 가인이 바닥에 흘린 피를 깔고 세워진 도시입니다.
두 번째 도시 레센을 지은 사람은 니므롯인데 그의 아버지는 구스이고, 할아버지는 함이었습니다. 함이 누구입니까? 창세기 9장에 의하면 그는 노아의 둘째 아들로서 다른 형제와 달리 아버지를 부끄럽게 함으로써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다. 창세기 9장 2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나안(=함)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가장 천한 종이 되어서,
저의 형제들을 섬길 것이다.“
창세기 10장을 보면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생겨난 종족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2-5절에 나오는 야벳의 후손들과 21-30절에 나오는 셈의 후손들은 이름만 나오는데 비해 6-20절에 나오는 함의 후손들을 말하다가는 아까 소개한 바로 그 구절이 나옵니다.
“그가 다스린 나라의 처음 중심지는, 시날 지방 안에 있는 바빌론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이다. 그는 그 지방을 떠나 앗시리아로 가서,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를 세우고,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는 레센을 세웠는데, 그것은 아주 큰 성이다.” (창세기 10:10-12)
바로 이 구절들에 나오는 표현, 즉 “나라의 처음 중심지”라는 표현과 “아주 큰 성”이라는 표현이 함의 후손들에게만 나타납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창세기 18-19장에 그 유명한 소돔 성과 고모라 성의 멸망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로 그 소돔 성과 고모라 성의 주인공인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함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나안(=함)의 경계는 시돈에서 그랄을 지나서, 멀리 가사에까지 이르렀고, 거기에서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서, 라사에까지 이르렀다. 이 사람들이 종족과 언어와 지역과 부족을 따라서 갈라져 나간 함의 자손이다,” (창세기 10:19-20)
바로 이러한 함의 후손들이 세운 도시 이야기에 이어서 나오는 것이 바로 바벨 시와 거기 있는 탑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그 도시를 세운 사람들이 죄인의 후손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모든 도시의 이야기 밑바탕에는 그 도시를 세운 사람들이 죄인이었다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오늘의 본문에 나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하늘 꼭대기에 우리가 올라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전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실 수 없게 힘을 모아 도시를 세우고, 탑을 쌓자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낸 후, 그것으로 도시를 세우고, 건물을 짓고, 탑도 쌓으면 하나님이 필요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을 쌓아서 안전을 지키고, 탑을 쌓아서 하늘에 닿으면 우리가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벽돌, 그것으로 지은 도시와 탑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죄의 본성이요, 속성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한 파멸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교만해진 인간과 그로 인한 처절한 파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창세기 11:6)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그렇습니다.
인간의 손으로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 그것이 바로 죄이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뒤집어 엎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바벨이라고 했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리고 관주에 의하면 바벨은 ‘바벨론’을 가리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지금 서울 잠실에 130층이 넘는 건물을 짓겠다고 터를 파고 있다고 합니다. 130층이면 얼마나 높을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마는 그것 때문에 성남 비행장의 방향까지 바꾼다고 할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다 국방의 문제 때문에 130층 건물공사를 허락하지 않았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나서 대뜸 허락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현대판 바벨탑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바로 4대강 사업입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을 흐르고 있는 청계천을 콘크리트로 쳐발라 놓고는 한경친화라고 강변하는 사람이 이제 소위 4대강 살리기라고 해서 수십 개의 보를 만들고, 물을 모아놓고는 강둑에 콘크리트 벽을 만들어서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위락시설을 설치한다는 것입니다.
제 동지인 최병성 목사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2년 전 ‘4대강의 저주’ 예언, 소름이 끼친다.”
여러분 모두 아시지만 낙동강 상주댐이 제방이 붕괴되었습니다. 지난 5월 봄비에 무너졌었는데 제방공사가 완료되어 제방에 나무를 심고 조경공사까지 마친 곳인데, 보수공사를 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또 다시 붕괴된 것입니다. 그런데 2년 전에 최 목사님이 글을 썼는데 그 글 속에서 낙동강에 있는 다리들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고 최 목사가 예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4대강 공사를 한답시고 강바닥에 있는 모래들을 준설하는데 그것 때문에 다리 기둥이 드러나고, 그렇게 되면 빨라진 물살을 견디지 못해 결국은 다리들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대책 없이 모래만 파냈다가 지난 6월 25일 새벽에 왜관에 있는 ‘호국의 다리’가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어진 지 100년이 넘도록 멀쩡했던 다리였는데 이번에 불과 150mm밖에 오지 않은 비에 무너진 것입니다. 그런데 뻔뻔스럽게도 부산지방 국토관리청 하천국장이라는 자가 준설 때문에 무너진 것은 아니라고 강변했습니다.
최병성 목사님은 2년 전에 이렇게 경고했었습니다.
“4대강 사업의 핵심은 물그릇을 준비한다며 수심 6m, 폭 600m로 파게 됩니다. 결국 강을 지나는 다리의 안전성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낙동강의 경우 준설로 인해 보강공사가 필요한 다리가 안동대교, 안동철교 등을 비롯하여 62개, 교량상판까지 들어 올리는 공사가 필요한 다리가 삼강교, 삼랑진교 등 4개입니다. 4대강 준설로 인해 영향받는 다리 보수공사비는 얼마나 들어갈지? 그리고 이 공사비는 30조 원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러면서 최 목사님은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호국의 다리 붕괴와 상주댐 제방의 붕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건설업자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해 난장판으로 만든 4대강의 저주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자연의 역습이 시작된 것입니다. 파괴된 자연은 그대로 당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무모함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2년 전 호국의 다리 붕괴 기사를 읽은 많은 분들이 다음에 일어날 재앙이 무엇이냐고 물어옵니다. 이 역시 예언이 아니라 상식만 있어도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곧 4대강에 세운 16개의 거대한 댐이 준공되고 물을 가두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물은 썩기 시작할 것입니다.
구미 해평 취수장의 단수 사고는 아주 작은 예에 불과합니다. 4대강 물이 썩기 시작하면 국민의 안전을 위해 취수원을 옮겨야 하는 대재앙이 발생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의 모델로 제시한 여의도 앞의 한강엔 물이 가득하지만, 물이 썩어 취수장이 단 하나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22조 원을 퍼부은 4대강 사업의 재앙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4대강 사업으로 지천의 역행침식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붕괴되는 지천을 막기 위해 지천 살리기란 이름으로 또 얼마의 국민 혈세를 퍼부을지 모릅니다. 결국 4대강 사업은 나라 살림을 거덜내는 망국적 사업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4대강에서 어떤 재앙이 계속 발생할지 두려울 뿐입니다.“
그리고 이어 사진이 한 장 나오고 거기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KTX가 지나는 낙동강 다리 밑을 열심히 파고 있습니다. 이곳 역시 무너진 호국의 다리 바로 근처입니다. 빨간 화살표의 교량은 강물 밖이라고 교량보호공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종운하로 수심이 깊어진 강의 변화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과연 안전할까요? 4대강을 지나는 100여 개의 다리.... 언젠가 당신이 지나는 어느 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전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4대강 사업은 재앙을 부르는 바벨탑입니다. 건설업자 주머니만 채우고 나라살림 거덜내는 재앙의 바벨탑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엄청난 재앙의 바벨탑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강에다가 시멘트를 쳐바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2조 원이 들었지만 해매다 관리하는데 수천 억 원이 들고, 이제 곧 그것을 폭파하는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천을 시멘트로 바르기 위해 그만큼의 돈을 쓰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의 재앙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공사를 처음 시작한 정치인들, 학자들, 관리들 찾아내서 심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심판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는 엄청난 죄악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재앙의 바벨탑을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막아야 하고, 회복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재앙의 바벨탑이 하루속히 무너지고 그래서 이 땅에 처참한 도시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사는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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