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년도

2011. 7. 31 / 하나님의 보복 / 창세기 9:1-7

람보 2 2015. 4. 6. 17:13

하나님의 보복(2011. 7. 31)

 

본문) 창세기 9:1-7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에 사는 모든 짐승과, 공중에 나는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것과, 바다에 사는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할 것이다. 내가 이것들을 다 너희 손에 맡긴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채소를 너희에게 먹거리로 준 것 같이, 내가 이것들도 다 너희에게 준다. 그러나 고기를 먹을 때에, 피가 있는 채로 먹지는 말아라. 피에는 생명이 있다. 생명이 있는 피를 흘리게 하는 자는, 내가 반드시 보복하겠다. 그것이 짐승이면, 어떤 짐승이든지, 그것에게도 보복하겠다. 사람이 같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면, 그에게도 보복하겠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거기에서 번성하여라.‘ “ (표준새번역 개정판)

 

 

지난 금요일 오후에 오래간만에 서울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서울에 가려면 남태령이라는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그곳은 늘 차가 막히는 것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래서 전철을 타고 갈까 하다가 그냥 버스를 탔습니다. 남태령을 넘어가다 보면 전원마을이라는 동네가 나오는데 그곳이 요즘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곳이라고 뉴스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상황이 어떤가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이지요. 버스가 남태령 꼭대기에 올라갈 때까지는 막히지 않고 잘 달렸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고개 꼭대기를 넘어서는 순간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앞쪽을 보니까 한쪽 차선에 대형 119 구조대 차를 비롯해서 경찰버스와 경찰승용차, 대형 덤프트럭, 방송차, 기타 자가용 등등 해서 아주 많은 차들이 사당역에 거의 다 도착할 때까지 쭉 늘어서 있었습니다. 도로 건너편에도 여러 대의 경찰버스들이 늘어서 있는 것으로 보아 수해 복구를 돕기 위해 경찰관들을 태워온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보며 전원마을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고, 멀리서나마 피해를 입은 분들이 하루속히 복구를 마칠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하는 이 시간에 다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참으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이 설교 원고를 쓰고 있는 토요일은 또 너무나 더워서 잠깐 나갔다 오고서도 샤워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땀을 흘렸습니다마는 비가 한창 올 때에는 제발 그만 왔으면 좋겠다는 말이 저도 모르게 나오곤 했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데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묻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아무래도 홍수 이야기를 갖고 설교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6-8장에 나오는 노아 시대의 홍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특히 지구상에 사는 생물들이 땅을 뒤덮은 홍수로 멸망했었다는 이야기는 창세기뿐만 아니라 소위 고대 설화를 가지고 있는 민족들의 이야기에는 거의 빠짐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역을 불문하고 고대 민족들은 거의 대부분 홍수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홍수 이야기는 인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기억이고, 따라서 실제로 일어났었던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중국의 한자에 노아 홍수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주장입니다.

 

배 선(船) = 배 주(舟) + 여덟 팔(八) + 입 구(口)

 

그러니까 한자인 배 선(船) 자는 작은 배(舟) 안에 여덟 명이 타고 있는 형상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여덟 명인가요? 아홉도 아니고, 일곱도 아니고 하필 여덟이라니요?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 의하면 노아가 방주를 만든 후에 하나님께서 그곳에 여덟 사람이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노아와 그 부인, 세 아들(셈, 함, 야벳)과 그들의 부인 합해서 모두 여덟 명이지요. 그러니까 한자에 나오는 배 선(船)이라는 글자는 바로 노아의 홍수를 보고 만들어진 글자라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풀이입니다.

 

어쨌든 노아 시대 때 대홍수는 왜 일어났는가요? 창세기 저자는 대홍수를 기록하면서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요? 한 마디로 인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에 그 이유가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 주님께서는 탄식하셨다.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렇게 하겠다.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되는구나.’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창세기 6:5-8)

 

그러니까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사람들의 생각이 악한 것뿐이어서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11절 이하에도 같은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니,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땅은 사람들 때문에 무법천지가 되었고, 그 끝날이 이르렀으니, 내가 반드시 사람과 땅을 함께 멸하겠다.’ ” (창세기 6:11-13)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죄란 무엇인가요? 9절을 보고 유추해낼 수 있으니 9절은 이렇습니다.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란 곧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과 모든 것을 의논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노아는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노아 이외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살았으니 이것이 곧 죄라는 것입니다. 결국 노아 시대 때 일어난 홍수는 인간이 제멋대로, 제 욕심만 채우려고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았기에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번에 중부지방에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진 이유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합니다.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우리나라를 지나 북쪽으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곳을 가로막고 있는 고기압이 있어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바람에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 부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비가 많이 왔다 하더라도 제대로 대비했다면 이렇게 엄청난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나라에 비를 뿌린 구름대가 남쪽으로 이동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답니다. 그곳에서도 엄청난 양의 비를 뿌렸다는데 일본은 아주 적은 피해만 입었다고 합니다. 얼마만큼 대비를 했느냐의 차이이겠지요. 그런데 이번에 결과적으로 나타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 욕심만 차리느라고 제멋대로 산을 깎고, 나무를 베고, 집을 짓고, 터널을 파고 해서 갈 길을 잃은 빗물이 흙과 함께 사람 사는 곳을 덮쳤다는 것입니다.

 

특히 문제는 이번에 겪은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홍수 피해나 산사태는 4대강이 아니라 산이나 계곡, 또는 지천 등에서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4대강 본류에서 홍수가 난 예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소위 홍수피해를 예방한답시고 수십 조 원의 돈을 4대강에 보를 쌓고, 모래를 퍼올리는 일에 쏟아부었습니다. 그 바람에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고, 자연은 엄청나게 파괴되었습니다. 결국 손대서는 안 되는 4대강 본류에는 엄청난 돈을 들여 모래 준설을 했다가 비 한번 오는 바람에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돈을 들여야 할 곳에는 돈을 들이지 않다가 작년과 똑같은 피해를 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 “천재지변은 어쩔 수 없다.“

 

여러분!

인간 욕심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돈을 벌기 위해 생명의 가치를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얼마든지 희생시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 하나하나의 가치를 우습게 알고, 백성들의 삶이 힘들어지는 것도 눈 감은 채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만물을 파괴하고, 생명을 죽이는 자들은 죄악으로 가득 찬 악의 무리들이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의 본문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오늘의 본문은 노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노아를 향하신 복의 선언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그러면서 홍수 이후 나타난 변화 한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곧 인간이 육식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땅에 사는 모든 짐승과, 공중에 나는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것과, 바다에 사는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할 것이다. 내가 이것들을 다 너희 손에 맡긴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채소를 너희에게 먹거리로 준 것 같이, 내가 이것들도 다 너희에게 준다. (창세기 9:2-3)

 

이는 물론 인간이 어떻게 해서 육식을 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원인론적 해석입니다마는 어쨌든 육식은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기를 먹더라도 하나님께서 제한을 두셨으니 곧 피는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고기를 먹도록 인간에게 허락하기는 하셨지만 분명히 생명의 귀함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있는 피를 흘리게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복하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특히 사람이 같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면, 그에게도 보복하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생명입니다. 피부의 색깔에 관계없이, 남녀노소 구분없이, 건강과 장애 관계없이, 그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들이며,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 중의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일이요, 하나님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보복하시겠다고 친히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일들 중에 사람들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사람들의 죽음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복하실 것입니다.

 

며칠 전에 노르웨이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백인이며 극우 근본주의 기독교인이라는 한 사람이 폭탄을 터뜨리고 기관총을 난사하여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범인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놓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표정으로 체포되고, 끌려가면서 오히려 야릇한 미소를 지음으로 많은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악한 범인이요,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범인만 나쁜 사람입니까? 멀쩡한 4대강 살린다고 급하게 공사를 몰아치다가 노동자들을 죽게 만든 것의 책임은 누가 질 것입니까? 춘천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매몰되어 죽은 대학생들이 있는데 그것도 역시 인간의 욕심 때문에 함부로 산을 허물고, 건물을 짓다가 그만 산사태가 일어난 것 아닙니까? 분명히 함부로 허락해 준 공무원들이 있을텐데 그들은 죄가 없는 것입니까? 요즘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우리나라를 망신을 시키고 있는 한진중공업 사태는 어떻습니까? 회사의 자본가들은 수백 억 원씩 나누어 먹으면서 노동자들은 함부로 정리해고 시키니까 정리해고 하지 말라고 주장하면서 한 여자노동자가 수십 미터 크레인 위로 올라가서 200일이 넘도록 농성을 하고 있지요? 그동안 이미 많은 노동자들이 죽었는데 그래도 내버려 두는 자본가나 정치인들은 과연 죄가 없는 것입니까? 그들은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핵심적인 문제의 본질은 바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무시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 인간의 존엄성이 돈에 의해 훼손되고, 무시되는 세상이니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물로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고 계신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경고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경고하시는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워지는 역사기 일어나기를 간절히 빕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이 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