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년도

2011. 6. 19 /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 누가복음 12:22-34

람보 2 2015. 4. 6. 16:53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2011.6.19)

 

본문) 누가복음 12:22-34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은 음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다.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제 수명을 한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걱정하느냐?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의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부익부 빈익빈’인 것 같습니다. 문자 그대로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현상 말입니다.

 

지난주 중에 충북대 다니는 딸아이가 1학기 과정이 끝나서 데리고 왔습니다. 오는 도중 딸아이가 자기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친구 말에 의하면 자기의 친구가 공부도 아주 잘 하는데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학교 다니면서 밤에 공장에 가서 야간근무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쉬는 날 없이 일을 하는데도 그 친구는 밥 사먹을 돈이 없어서 늘 쩔쩔 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딸아이한테 네가 자주 밥을 사 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우리도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도 하숙하는 딸아이한테 넉넉하게 용돈을 보내 주는 것이 아니라 늘 쩔쩔 매며 돈이 생기면 만 원이나 이만 원씩 내려 보내는 형편이니 도무지 그 돈으로 밥을 사 주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사는 것이 어려운 학생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저녁에 참으로 기가 찬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자살하게 만든 장본인의 한 사람이었던 검사가 노 대통령 죽음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검사직 사표를 내고 변호사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가 변호사가 된 후 1년 동안 번 돈이 무려 120억 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가 변호를 맡은 사람이 노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해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박 씨,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그 검사가 노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죄로 범인으로 박 씨를 붙잡아 구속하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유일한 증언으로 삼아 노 대통령을 구속하려 했던 그 검사가 바로 그 박 씨의 변호사가 되어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것입니다. 120억 원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돈인지 저같은 사람은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마는 세상에 어찌 이리 불공평한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한참 공부해야 할 젊은이는 밥 한 끼 사 먹을 돈 몇 천 원이 없어서 굶어야 하고, 누구는 한 달에 10억 원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번다면 이 세상이 과연 제대로 된 세상이며 온전히 굴러갈 세상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속히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빈부격차의 문제는 오늘 우리 사회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의 본문 바로 앞에 유명한 부자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부자도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일부 부자들의 모습과 아주 흡사해 보입니다.

 

무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우리 형이 유산을 나누게 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형이 유산을 독차지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좀 나누어받게 말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느냐?’ 하시며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너무나 잘 아시는 내용이지요.

 

부자가 한 사람 있었는데 농사가 너무나 잘 되어 엄청난 곡식을 거두어들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부자가 말했습니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자, 여러분, 보십시오.

엄청난 재물을 쌓아놓은 그 부자는 자기가 먹고 마실 것만 생각했지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은 조금도 생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신 끝에 이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늘의 본문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자, 이 말씀을 듣는 제자들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그들은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무엇을 먹을까’ 걱정해야 할 상황이고, 입을 옷이 없어서 ‘무엇을 입을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사실 예수께서 위대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먹고 사는 문제쯤이야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예수님이 사셨던 그 시대는 로마의 식민지이고 헤롯 왕의 지배를 받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목수였던 예수와 그를 따르던 제자들 대부분도 역시 가난한 백성들일 뿐이었습니다. 부자라고 꼽을만한 사람은 아마도 한 사람 정도였을 것입니다. 세리 마태지요. 나머지는 당시 대부분의 백성들처럼 엄청난 세금에 억눌리고, 가난과 기근에 시달려야 했었습니다. 복음서에는 그분이 얼마나 가난하고 힘들게 사셨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기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사가 9장 37-38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 (누가복음 9:37-38)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손으로 잘라 먹었다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들키는 바람에 혼이 났던 사건은 그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굶주렸는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사건입니다. 마태 12장 1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무렵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먹기 시작하였다.”

 

보십시오. 제자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그 밀을 잘라서 먹었겠습니까?

 

자, 오늘의 본문은 결코 부자들, 먹을 것이 넉넉한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진짜 먹을 것이 없고, 입을 옷이 없어서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늘 굶주리니까 어디 먹을 것이 없나 하며 찾아다니는 사람들, 입을 옷이 하나밖에 없어서 식구들이 돌려가며 입어야 할 만큼 헐벗은 사람들, 그야말로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고, 추위를 견디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숨은 음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예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까마귀를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 주신다. 그렇다면 까마귀를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먹이시지 않겠느냐?”

예수께서는 이어서 백합화를 예로 드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30절까지의 결론은 결국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채워주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배고프고 헐벗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먹여주시고 입혀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구해야 할 것이 있으니 31-3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것을 구하면 이런 것들, 즉 먹을 것과 입을 것들을 하나님께서 더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를 제자들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솔직히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더하여 주신다는 말입니까? 지금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는데, 그래서 늘 쩔쩔매며 살아가는데 어찌 염려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런 상태에서 어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달라고 기도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그런 어려운 상태에서 구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라는 말입니까? 입으로 기도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선가 뚝딱 생겨서 나타나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기도가 무슨 도깨비 요술방망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진짜 많은데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만 하면 그 사람들이 다 배부르게 먹게 되고, 좋은 옷을 입게 되고, 그래서 아무 걱정없이 살게 된단 말입니까? 하늘에서 모세 시대 때 내려왔던 만나라도 내려오고, 또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었던 까마귀가 그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준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본문 앞뒤 그 어디를 찾아보아도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께서는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또 그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인가? 저도 참으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그분이 생각했던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이고, 그 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제가 여러분에게 늘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 답은 본문 앞뒤에 분명히 있다는 것을 생각했고, 그래서 본문과 앞뒤를 되풀이 되풀이 읽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답을 찾았습니다.

 

우선 12장 20-21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그렇습니다.

이 부자는 모든 재물을 자기만을 위해 쌓아두는 사람입니다. 이 삶은 하나님을 위해서는 전혀 쓰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해서는 쓰지 않았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12장 16-19절에 의하면 그 부자는 모든 것을 다 내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다른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이웃들을 위해서는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와 비교해서 예수께서는 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자, 여기 앞에 나왔던 부자와 결정적으로 대비되는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자선을 베풀어라.’ 가난하고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전부 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헐벗었지만 그들끼리라도 자기 있는 것으로 더 가난하고, 배고프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두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운전하고 오면서 딸아이의 말을 듣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해야 하는 친구의 친구를 도울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제 코가 석 자인 주제에 하면서 비웃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통하든 혹은 그 누구를 통하든 그 학생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저도 지금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저라고 언제까지나 어렵겠습니까? 제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저를 도울까 애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제가 '저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 이웃들에게 베풀 수 있는 날이 오게 하시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 도우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고, 여러분의 손길이 하나님의 손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또 그렇게 살려고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는 것입니다. 끝으로 시인 윤수천의 시 ‘바람 부는 날의 풀’을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주보에 그 시가 실려 있습니다.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곁의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주고 일으켜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도.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가를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