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9 년도

2009. 5. 24 /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 마태복음 21:33-46

람보 2 2015. 4. 4. 21:07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2009. 5. 24)


본문) 마태복음 21:33-46

“ ”다른 비유 하나를 들어 보아라. 어떤 집주인이 있었다. 그는 포도원을 일구고,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멀리 떠났다. 열매를 거두어들일 때가 가까이 왔을 때에, 그는 그 소출을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서,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또 하나는 돌로 쳤다. 주인은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더 많이 보냈다. 그랬더니, 농부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아들을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하였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 아들을 보고 그들끼리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이고, 그의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다.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그 악한 자들을 가차없이 죽이고, 제 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집 짓는 사람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부스러질 것이요, 이 돌이 어떤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의 비유를 듣고서, 자기들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임을 알아채고, 그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무리들이 무서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무리가 예수를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제가 시내 어느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던 때의 마지막 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일날 아침 예배를 드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느 집사님 부부의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했는데 기가 막히게도 자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사님 부부는 교회 가까운 곳에 살면서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분들이 처음에 교회에 나왔을 때 제가 인도했던 속회에서 함께 지냈기 때문에 저하고는 제법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있었는데 아들은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딸은 고등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네 식구 중 부모와 딸만 우리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에서는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라고, 한 교회를 섬기자는 운동을 했었기 때문에 제가 그 아들을 한 번 만났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아주 작아서 그 학생이 빠지면 안 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우리 교회로 불러내지 못하고 거기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아들이 갑자기 자살을 한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왜 자살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었지만 그때 그 가정이 속한 교구를 맡은 목사님은 다른 분이었기에 그 교구 목사님이 먼저 가서 임종예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저녁에 시간을 내어 전도사님과 교우들과 함께 문상을 갔습니다. 장례식장 안에 들어서서 그 엄마 되는 집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저를 보자마자 제 손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울도록 붙잡아준 후 진정을 시키고 나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한탄을 하듯이 저한테 물었습니다. 

“아니, 목사님. 아들이 죽은 것만도 억울한데 목사님이 임종예배라고 와서 자살은 죄라고,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자살할 수 있느냐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요?”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도 부모지만 막상 자살을 택한 그 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며,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되는 집사님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곁에서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부모님을 위로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제가 그때 무슨 말로 그들을 위로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1등인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여성들이 아이 낳는 수가 제일 적은 부분에서 1등이고, 또한 자살률이 1등이랍니다. 그만큼 제일 적게 낳고, 제일 많이 자살한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그만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팍팍하고, 답답하고,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가 10년 넘게 봉사하고 있는 상담기관인 “생명의 전화”는 원래 ‘Life Line"이라고 해서 자살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담기관입니다.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견디다 못해 죽음을 택하려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전화해서 그들의 아픈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지요. 상담자들은 전화를 받으면 최대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이라도 살려는 희망을 찾는다면 그것이 바로 봉사를 하는 보람이지요.


한번은 어떤 젊은 여자와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미 그녀는 인터넷에 있는 자살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 함께 자살할 계획을 세운 상태였습니다. 밤 11시쯤 전화를 받기 시작해서 적어도 서너 시간은 전화를 한 것 같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끝에 마침내 그녀는 다시 살아보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다 털어놓고 나니까,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이제는 좀 숨도 쉴 것 같고, 마음도 편해져서 이제 다시 살아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녀는 마지막에 저한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그 자살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해 주세요. 그래서 거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주세요. 그들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몰라요. 그런데 누구도 자기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니까, 자기들은 누구하고도 대화가 통하지 않고, 희망이 없으니까 죽으려 하는 거예요. 누군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그들은 자살을 하지 않을 거예요.”


대단히 미안하게도 저는 아직까지 그 사이트에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일어난 집단 자살사건들을 보면서 그 일의 책임이 저한테도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살을 죄악이요,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말합니다. 물론 자살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쉽게 정죄하는 사람들은 막상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아픔과 슬픔, 소외감과 절망감 등을 헤아리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만이 완전히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이 세상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고독감과 절망감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을 향해 함부로 손가락질해서는 안 되며, 함부로 정죄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절망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위로해 주지 못하고, 함께 아파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인 악, 불의의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진실되게 살기를 원하고, 자기의 실수와 잘못을 남들보다 더 크게 아파하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넘기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유혹하는 악의 세력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성서적으로 사탄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악의 세력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고 있으며, 세상에는 그런 악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예수는 물론 자살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일찍이 거대한 죽음의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그가 광야에서 맞부닥쳤던 사탄은 바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악의 세력, 죽음의 세력이었습니다. 복음서에 예수께서 그렇게도 자주 귀신을 쫓아내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역시 예수의 사역이 바로 악의 세력, 죽음의 세력과의 싸움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세력의 본거지가 바로 예루살렘,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이었음을 아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당신이 사탄의 세력에 의해 죽으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사탄이 당신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게 죽음이 당신을 기다리는 것을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성안으로 들어가셨으니 그것은 이미 그분이 죽을 것을 각오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는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자기를 죽이려 하는 것을 알고도 결코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우셨습니다.


예수는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은 한없이 사랑하시고, 품으시고, 위로하시고, 함께 하셨지만 악의 세력, 불의의 세력을 향해서는 그야말로 목숨을 내걸고 싸우셨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로 나타난 악의 세력들을 향해서는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인지 과감하게 경고하셨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21장 28절부터 22장 14절까지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는 바로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경고였던 것입니다.


자, 오늘의 본문을 보십시오. 어떤 집주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 소출을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농부들은 세를 바치기는커녕 주인의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쳤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더 많이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농부들은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주인은 마침내 자기 아들을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그러나 농부들은 너무나 못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이고, 그의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그러면서 그들은 주인의 아들을 잡아서,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자, 이제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은, 즉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종교지도자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당연히 대답했습니다.

”그 악한 자들을 가차없이 죽이고, 제 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마는 이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내용은 결국 이것입니다.

“너희들이 바로 그 악한 농부들이다. 이 사탄의 자식들아.“


여러분!

오늘의 본문으로 우리가 읽고 있는 이 비유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나올 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와 있는 네 복음서보다 먼저 쓰여졌다고 알려진 도마복음서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만큼 유명한 비유입니다. 그런데 그 네 곳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조금씩 다른 점들이 있기는 합니다마는 큰 줄거리는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네 개의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유일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43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구절이 마태복음 기자가 오늘의 비유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의 핵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마태복음 기자를 통해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너희들의 행위는 이처럼 악랄하다. 너희들이 바로 그 악한 농부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문제가 남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신다면 그 민족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스라엘 민족 대신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민족은 누구입니까?


전통적으로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민족은 새 이스라엘 곧 교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기에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새 언약을 주셨고, 예수께서는 그 새 언약에 따라서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 민족은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받은 새 이스라엘, 새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과연 우리의 눈에 보이는 교회가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새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말할 수 있으려면 교회가 그 나라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여기서 말씀하시는 그 나라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저는 성경 구절 두 군데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발견합니다, 하나는 산상수훈의 한 구절이고,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의 책 로마서의 한 구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마태복음 6:33)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로마서 14:17)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는 온갖 좋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마는 결국은 그것을 나타내는 핵심적인 단어들은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성령 안에서 정의가 실현되고, 평화가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맺는 민족에게,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민족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난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가, 특히 한국교회가 이러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한국교회 안에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 있습니까? 특히 가난하고, 소외되고, 절망에 사로잡혀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정의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렇기는커녕 가난하고, 소외되고,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도 오히려 더 멸시받고, 천대당하고,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무시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교회 안에 어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 있습니까? 불의가 횡행하고, 교회가 더 치열한 경쟁에 사로잡혀서 내 교회만의 성장을 추구하고, 목사들이 설교를 통해 죽어서 가는 천국과 지옥을 강조하면서 교인들로 하여금 불안에 사로잡히게 만들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는커녕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오히려 주님께서는 한국교회를 향해 43절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참으로 두렵습니다. 지금 교회건물이 크고,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돈이 풍성하다고 해서 여기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큰소리치는 한국교회를 향해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두렵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결코 그 옛날 유대의 종교지도자들만을 향해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 우리를 향해, 이 시대 한국교회를 향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과연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고 있느냐? 만일 맺고 있지 못하다면 너희에게서 빼앗아서, 다른 민족에게 주실 것이라고 한국교회를 향해 경고하시는 음성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어제 자살을 했습니다. 왜 자살을 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마는 그러나 그와 그의 가족과 그와 가까운 사람들 모두를 향해서 압박해 들어갔던 검찰의 말할 수 없는 치졸한 짓거리가, 그래서 자기 때문에 아내와 아들딸, 사위 그리고 자기를 도와준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거대한 권력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기에 거기에 맞부닥쳐 싸운 최후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히 겉으로 드러난 것은 자살이지만 사실은 악의 세력에 의한 타살입니다. 사실은 자기는 그것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썩었으면서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거대한 악의 세력, 그리고 그 앞잡이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봅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악의 세력들이 한결같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지 참으로 두렵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을 빌어 거대한 악의 세력에 의한 희생자이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한국교회가 만약 이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열매를 맺는 무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을 듣고 열매 맺는 한국교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삶과 실천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