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를 만났다.
요한복음 20장 11~18절/2006년 7월 30일
여러분!
기독교는 복음을 믿는 종교입니다. 복된 소식, Good news를 믿는 종교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네 권의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이 복음입니다. 복음서라는 말 자체가 “복음이 기록된 책” 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사실 복음서는 네 권이나 되고, 그 내용도 많고 복잡하니까 한 마디로 복음을 설명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교인들은 잘 대답하지 못하고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복음을 한 마디로 가르쳐 드릴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예수는 사람 이름이지요. 즉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는 고백이 바로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메시아라는 말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인데 이는 곧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에 해당됩니다. 결국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예수는 우리의 왕이시오, 제사장이시오, 선지자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다시 한 번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예수가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라고 묻게 되는데 그 대답을 우리는 복음서에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네 복음서에 나오는 그 많은 내용을 사도 바울이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 놓은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복음이 무엇인지를 아주 명쾌하게 밝혀놓은 말씀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5장 앞부분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을 일깨워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 복음을 전해 받았으며, 또한 그 안에 서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 드린 말씀을 헛되이 믿지 않고, 그것을 굳게 잡고 있으면, 그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다음은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8절)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복음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 그리고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사도 바울의 기록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를 맨 처음 목격한 사람은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 다음에 열 두 제자에게 주님이 나타나셨고, 그 후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격자들 중 대다수는 지금, 즉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당시에도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야고보, 즉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다시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시고, 맨 나중에 사도 바울 자신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기록한 목격자 명단 그 어디에도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는 한계, 즉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던 바리새파 출신 바울이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이라고 보여 집니다.
유대 율법에 의하면 여자는 증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이름을 적어 보았자 증인으로서의 효력이 없으니까 아예 빼놓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사도 바울의 편지 곳곳에 드러나고 있는 여러 구절들과 함께 가부장적 사고를 갖고 있는 바울의 한계를 드러내 주는 표현이라고 보여 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음서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복음서 기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부활 하신 예수를 맨 처음 만난 사람은 남자 사도들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복음서 가운데 첫 번째로 기록된 책으로 알려진 마가복음은 아예 대놓고 부활하신 예수는 맨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고 증거합니다.
“예수께서 이레의 첫날 새벽에 살아나신 뒤에, 맨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신 여자이다.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가 살아 계시다는 것과, 마리아가 예수를 목격했다는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았다.”
(마가복음 16장 9~11절)
마태복음 28장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 장면이 훨씬 더 생생하고 극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 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주님의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에 다가와서, 그 돌을 굴려 내고, 그 돌 위에 앉았다. 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그의 옷은 눈과 같이 희었다. 지키던 사람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서 떨었고,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찾는 줄 안다.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는 살아나셨다. 와서, 그가 누워 계시던 곳을 보아라. 그리고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기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들은 거기서 그를 뵙게 될 것이라고 하여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다.’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이 엇갈려서, 급히 무덤을 떠나, 이 소식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달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께서 여자들과 마주쳐서,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은 다가가서, 그의 발을 붙잡고, 그에게 절을 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 여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가서, 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1~10절)
그렇습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가 살아나셨다고 증거 합니다. 그러니 갈릴리로 가면 부활하신 예수를 뵙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급히 제자들에게 달려가는데 갑자기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먼저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들은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발을 붙잡고, 절을 하였고,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가서 만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제 요한복음 오늘의 본문을 보십시오. 요한복음에 오면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에 두 번 씩이나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1절에 의하면 “주간의 첫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누군가가 주님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 두 사람은 놀라서 뛰어 왔고, 그래서 예수의 시신은 없어지고, 삼베와 수건이 따로 따로 놓여 있는 것만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는데 오늘의 본문 11절에 의하면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고 증거합니다. 결국 마리아는 제자 두 사람이 돌아가 버린 후에도 혼자서 무덤에 남아 있었다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울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사랑하는 예수의 시신을 가져갔는지 알지 못해서 답답하여 울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울다가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천사 둘이 앉아 있었고, 그들이 왜 우느냐고 묻자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마리아가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가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가 서 계셨는데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앞에 서 계신 분이 예수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그저 동산지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고 물으시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가겠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고, 그제서야 마리아는 예수를 알아보고 “라부니!”하고 불렀으니 이 말은 “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첫 번째 목격자는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다른 그 누구보다 예수를 사랑했고, 그 분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열 두 제자들보다 그녀가 더 예수를 향한 사랑이 깊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첫 번째 목격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의 본문 17절에 참으로 이상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리아가 너무나 반갑고 감격스러워서 예수님을 만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무슨 말입니까?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는 말은 아직 승천하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곧 승천하실 터인데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호칭과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 바뀌어 있습니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즉 예수의 제자들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주님의 형제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신데 그분은 곧 너희의 아버지이시고,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단순히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것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형제가 되고, 따라서 예수의 아버지가 곧 제자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의 하나님이 곧 제자들의 하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부활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바로 부활하신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언약이요, 이것이야말로 복음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첫 번째 목격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전했습니다.
“나는 예수를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을 맺었습니다.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는 것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것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나는 예수를 만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나는 예수를 만났다” 라고 전할 수 있는 제자들이 되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요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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