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9장 31~37절/2006년 7월 9일
경상북도 대구에 무슨 신학연구소가 있는데 그 연구소를 운영하는 정 목사님이라는 분이 관리자인 사이트에 들어가면 설교비평이 나옵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기독교를 대표하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아주 자세하게 비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야말로 듣기 좋은 비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아주 신랄한 비평을 합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저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제 설교는 과연 어떤지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도 혹 설교를 보내서 비평을 받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그 비평에 의하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님들의 설교가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설교가 전반적으로 가볍다고 하는 것이지요. 설교 본문으로 택한 성경구절에 대해서 많은 목사님들이 깊이 있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피상적으로 설명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서 본문이 말하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구미에 맞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본문을 이용하고 대부분 겉만 훑으면서 하나, 둘, 셋 하는 식으로 설교를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구약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해석한 것이 신약이니까 구약과 신약을 아울러서 설교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설교가 그렇지 못하다고 합니다. 저도 가능하면 구약과 신약을 최대한 깊이 연관지어서 설교를 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어서 저도 고생을 합니다. 어쨌든 설교가 그저 쉬운 이야기나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조금 어렵더라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출애굽기 12장 40~42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사백 삼십 년이었다. 마침내 사백 삼십 년이 끝나는 바로 그 날, 주님의 모든 군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 그날 밤에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세우면서 지켜 주셨으므로, 그 밤은 ‘주님의 밤’ 이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되었다.”
지금 읽어드린 이 본문은 그 유명한 출애굽 사건이 일어난 날 밤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사백 삼십 년 동안이나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주께서 마침내 해방시키시는 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이 있기까지 주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우리는 성경에서 자세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땅으로 도망가서 양치기 노릇을 하고 있던 모세를 이집트로 돌려보내셨습니다. 겁도 나고, 말도 잘 못한다고 해서 거듭거듭 말을 듣지 않는 모세를 어르고 달래서, 마침내 형인 아론과 함께 이집트로 가게 만드셨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동족인 이스라엘자손들을 해방시켜 달라고 요구하지만 바로는 당연히 요구를 거절하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아홉 가지 재앙을 쏟아 부었습니다.
첫째, 물이 피가 되는 재앙.
둘째, 개구리가 온 땅에 가득 차는 재앙.
셋째, 온 땅에 이가 가득 차는 재앙,
넷째, 온 땅이 파리 때문에 폐허가 되는 재앙,
다섯째, 이집트 사람의 집짐승이 모두 죽는 재앙,
여섯째, 모든 사람과 짐승에게 악성 종기가 생기는 재앙,
일곱째, 우박이 들에 있는 모든 것을 치는 재앙,
여덟째, 메뚜기 재앙,
아홉째, 사흘 동안 어둠이 온 땅을 뒤덮는 재앙,
이렇게 무시무시한 재앙 아홉 가지를 당했으면서도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방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내리신 재앙이 바로 장자들을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한밤중에 이집트 사람 가운데로 지나갈 것이니,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이 모두 죽을 것이다. 임금 자리에 앉은 바로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맷돌질 하는 몸종의 맏아들과 모든 짐승의 맏배가 다 죽을 것이다. 이집트 온 땅에서, 이제가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큰 곡성이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의 개마저 이스라엘 자손을 보고서는 짖지 않을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을 보고서도 짖지 않을 것이다.’”
(출애굽기 11장 4~7절)
자, 그렇다면 이집트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짐승들의 장자가 죽을 때 이스라엘 자손의 장자들은 어떻게 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대신 해서 죽음을 당한 짐승들의 죄 덕분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달을 한 해의 첫째 달로 삼아서,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알리어라. 이 달 열흘날 각 가문에 어린 양 한 마리씩 곧 한 가족에 한 마리씩 어린 양을 마련하도록 하여라. 한 가족의 식구 수가 너무 적어서, 양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없으면,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을 계산하여, 가까운 이웃에서 그만큼 사람을 더 불러다가 함께 먹도록 하여라. 너희가 마련할 짐승은 흠이 없는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 골라라. 너희는 그것을 이 달 열 나흗날까지 두었다가, 해 질 무렵에 모든 이스라엘 회중이 모여서 잡도록 하여라. 그 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기는 불에 구워서,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함께 먹어야 한다.’” (출애굽기 12장 1~8절)
“어느 집이든 고기는 한 집에서 먹어야 하며, 그 고기를 조금이라도 집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서는 안 된다. 뼈는 하나라도 꺾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모든 회중이 다 함께 이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출애굽기 12장 46~47절)
그렇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유월절을 가장 큰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기자는 이미 처음부터 예수를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음 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
“다음날 요한이 다시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서 말하였다.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그 둘은 요한이 하는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 갔다.” (요한복음 1장 35~37절)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데리고 나와서, 리토스트론이라고 부르는 재판석에 앉았다. 그 날은 유월절 준비일이고, 때는 낮 열 두 시 쯤 이었다. . . . . . . . 이리하여 이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요한복음 19장 13~14,16절)
그렇습니다.
예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유월절의 어린양을 잡는 그 날, 그 시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그 날이 유월절 준비일이므로,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으려고, 그 시체를 다리를 꺾어서 치워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31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유월절은 거룩한 날이니까 유대인들은 시체를 나무에 매단 채 밤을 보내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를 씁니다.
“죽을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의 주검은 나무에 매달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 주검을 나무에 매달아 둔 채로 밤을 지내지 말고, 그 날로 묻으십시오. 나무에 달린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1장 22~23절)
그렇습니다.
자기들은 이제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데 하필 그 준비일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만들었고, 따라서 그 시체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대로 놔두면 자기들이 부정을 타는 것이고 그것을 막기 위해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상으로 보아 아직 죽지는 않았을 테니 예수의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죽게 만들고, 그 시체를 유월절 전에 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아직 안 죽었을 테니 다리를 꺾어서 죽게 하여 나무에서 치우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합니다. 그러면 몸무게 때문에 쳐져서 숨이 막혀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아서 다른 두 사람의 다리를 꺾어서 죽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군인들이 예수께 왔을 때는 예수께서는 이미 숨을 거두신 후였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예수의 다리를 꺾지 않았으니 이를 통해 유월절에 잡는 어린 양의 뼈는 하나라도 꺾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본문을 보십시오.
“병사들이 가서, 먼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사람의 다리와 또 다른 한 사람의 다리를 꺾고 나서, 예수께 와서는, 그가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서, 다리를 꺾지 않았다. 그러나 병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찌르니, 곧 죄와 물이 흘러나왔다.” (19장 32~34절)
아니, 여러분!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잔인한 일을 저지를 수 있습니까? 죽으신 것이 분명한데, 그러면 이제 가져다 장례를 치루라고 내주면 될텐데 왜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찌른 것입니까? 이 장면은 단순히 로마 군인들이 얼마나 잔인한 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일차적으로 로마 군인들에게, 나아가 독자들에게 예수께서 확실하게 숨지셨음을 보여줍니다. 소위 영지주의에서 가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바, 예수는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했을 뿐이라고 하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옆구리에서 나온 물과 피의 이야기는 예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던 바, 그분의 죽음이 지닌 의미를 깨닫고 믿음 안에서 살아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요한복음 6장 53~56절)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는 살아있는 물과 생명을 상징합니다. 예수님 솔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생수의 강을 말하는데 이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하시는 최고의 계시입니다.
“명절의 가장 중요한 달인 마지막 달에, 예수께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이것은, 예수를 믿은 사람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다.”(요한복음 7장 37~38절)
그렇습니다.
옆구리를 창에 찔려 피와 물을 쏟으시는 십자가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하게 계시하신 분으로, 구원과 생명의 샘이신 구세주이십니다.
결국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성서 저자는 예수님의 죽음이 유대인들의 계략의 의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뜻 안에서 실현된 것이며, 그 죽음은 곧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임을 증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와 물을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믿음 가지고 어린양이신 주님만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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