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28-30 / 2006. 7. 2
오늘은 다시 한 번 영지주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영지주의는 주로 창조론과 구원론에 있어서 우리 기독교와 구별되는데 영지주의는 본질적으로 상층세계와 하층세계를 구별하는 이원론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 아주 뚜렷한 특징입니다.
상층세계는 순수한 영인 최고신이 머무는 빛의 세계이고, 어둠의 세계인 하층세계는 악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은 최고신보다 더 아래에 있는 영(aeons)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데, 이 세상은 즉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최고신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세계창조자(demiurge)라는 영에 의해 만들어졌고, 따라서 그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은 선한 것이고 육은 악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고, 따라서 세상을 창조한 영은 순수한 영인 최고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에 가장 수준 낮은 신이고, 따라서 구약에 나오는 창조주 하나님은 가장 저급한 신이 되어 버립니다.
어쨌든 천상의 빛을 지닌 인간의 순수한 영혼은 이 물질계에 갇혀 있는 셈인데 영혼은 몇 단계를 거쳐서 악한 물질 즉 육체의 짐과 이 세상의 짐을 벗어남으로써 하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지주의에서의 구원은 철저하게 영혼불멸인 셈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하늘의 고향으로의 복귀를 가능하게 하고 인도하는 구원자가 바로 영지 즉 ‘신적인 인식’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물질로 이루어진 이 세상은 악한 것이고, 인간의 몸 역시 악한 것이며, 영이 그 악한 몸과 물질세계를 떠나 하늘로 가는 것이 구원이니까 인간의 몸은 결코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버려야 할 짐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의 생활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으니 하나는 버려야 할 몸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방종주의요, 다른 하나는 악한 몸을 괴롭히고, 학대하고, 고통을 가함으로 육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금욕주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영지주의자들의 잘못을 그대로 범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위 ‘구원파’에서는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그의 모든 죄를 용서받은 것이기에 지금 짓는 죄 때문에 가책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왕 구원받았으니까 이후의 행동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또한 어떤 목사님들은 금식기도를 유난히 강조하면서 금식과 같은 행위로 육체를 괴롭히고 고난을 받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 복음에서 멀어진 것 들입니다.
그렇다면 영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누구인가? 영지주의자들에 의하면 예수는 ‘영지’의 전달자로서 창조신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거짓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왔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용어로 ‘가현설’(假現說)이라고 하는 바,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역사적 예수가 받았던 고난과 죽음을 실제로 일어났던 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단순히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라는 인간이 세례를 받을 때 영이 들어왔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직전에 떠나갔다고 말하기도 하고, 예수 대신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기독교회는 나사렛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함으로써 영지주의를 배척했고, 역사적으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예수께서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함으로써 예수는 인간이시오 동시에 하나님이심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지주의와의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책이 바로 요한복음이며,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의 인성과 신성이 동시에 선포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요한복음의 서론에 해당되는 1장에서 요한복음 기자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로써 그리스도 가현설을 부인하였고(1:14), 물질과 영혼을 구별하는 이원론 및 가장 낮은 영인 창조자에 의해 이 세상에 만들어졌다는 창조관에 맞서 “모든 것이 말씀을 통하여 창조되었고, 이 말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선포하였던 것입니다(1:3).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께서 분명히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분은 식사 때가 되면 배가 고프셨고, 오래 걸으면 피곤하셨으며, 마음이 비통하고 괴로우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피로하셔서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오정쯤이었다.”(요 4:6)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우는 것과, 함께 따라오는 유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비통하여 괴로워하셨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님, 와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요 11:33-35)
동시에 예수께서는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곳곳에는 예수께서 지니셨던 신비스러운 인격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두고 말씀하셨다.
‘보아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
나다나엘이 예수께 물었다.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나다나엘이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 (요 1:47-49)
“예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에, 많은 사람이 그가 행하시는 표징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알고 계시므로, 그들에게 몸을 맡기지 않으셨다. 그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의 증언도 필요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까지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요 2:23-25)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 (요 11:25-26)
자, 이제 예수께서는 당신이 세상에 와서 해야 할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이루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사람들이 주는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서,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신 뒤에, 머리를 떨어뜨리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던가요? 그것은 한 마디로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된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서 밭을 보아라. 이미 곡식이 익어서, 거둘 때가 되었다. 추수하는 사람은 품삯을 받으며,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두어들인다.“ (요 4:34-36)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되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요 17:1-4)
그렇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영생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요한복음 기자는 여기에서 공관복음서와 달리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받으신 모욕도 언급하지 않고, 십자가 위에서 고함지르신 것도 일체 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거기서 신 포도주를 마신 일은 성경 말씀의 완전한 실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신 포도주라니요? 하필이면 왜 신 포도주인가요? 좋은 포도주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그 고통의 시간에 신 포도주라니요?
예수께서는 당신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 말고의 귀를 베드로가 잘라버렸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요 18:11)
그렇습니다.
예수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잔’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목마르다’ 라고 말한 예수는 당신이 겪으시는 육체적인 갈증과 고통을 나타냄과 동시에 당신 자신이 마셔야할 수난과 죽음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다 마시겠다는 깊은 뜻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곁에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해면을 그 신 포도주에 듬뿍 적셔서, 우슬초 대에다가 꿰어 예수의 입에 갖다 대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 포도주는 가난한 서민층이 마시는 것으로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마저도 물과 섞어 마시기도 했으니 예수는 마지막까지 가난한 민중으로 살다가 떠나셨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서,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신 뒤에, 머리를 떨어뜨리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이 땅에서 해야만 하는 일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부터 부여받은 임무, 즉 세상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그들에게 영생을 주는 임무를 끝까지 완수했고, 그렇게 임무를 완수한 사람으로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자신의 임무를 지상에서 다 완성한 예수는 평화로이 의식적으로 하나님께로 가신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사랑을 베푸시고 영생을 주심으로써 단번에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구원 역사가 불완전한 것이며, 제 2의 예수 즉 문선명 같은 자들이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통일교는 바로 이런 점에서 이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는 구원의 시작이시오, 동시에 구원의 완성자이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동시에 영원한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는 구원을 ‘다 이루었다’ 라고 선포하신 분이시고 동시에 구원 그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바로 이 예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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