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황제인가?
요한복음 19:1-16/2006. 6. 11
여러분!
그 옛날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서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가실 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셔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살려 주셨습니다.
끝끝내 말을 듣지 않는 바로를 향해 열 가지 재앙을 행하셨을 뿐만 아니라,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너 미디안 광야 길로 들어서게 하셨고, 그곳에서 40년을 지나는 동안에도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루는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그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불평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가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그 물이 단물로 변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바위에서 물이 솟기도 하고, 산에 올라갔던 모세가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만나를 먹게 하신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떠나온 지 둘째 달 보름이 되는 날, 이제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곡식은 다 떨어졌습니다. 이제 먹을 곡식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광야 어딘가에 먹을 곡식이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농사를 지어 곡식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꼼짝없이 광야에 갇혀서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또다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죽게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6:3)
아니 여러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주제에 언제 어디서 배불리 먹었단 말입니까? 누가 자기들에게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를 실컷 먹게 해 주었단 말입니까? 그야말로 죽도록 일하고 늘 허기져 사는 것이 노예로서의 삶이었지요. 그런데 해방시켜 주었더니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 때가 나았다고요?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들어주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보내주셔서 모든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게 되었다는 것은 아주 유명한 사건입니다. 저녁에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사람들이 그것을 잡아 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안개가 자욱하였는데, 안개가 걷히고 나니,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었습니다. 이때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명하시기를, 당신들은 각자 먹을 만큼씩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들 각 사람은, 자기 장막 안에 있는 식구 수대로, 식구 한 명에 한 오멜 씩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6:15-16)
그런데 여러분!
여기 보십시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하니,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두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많이 거둔 사람도 먹고 나니 남지 않고, 적게 거둔 듯해서 모자랄 것 같았던 사람들도 막상 먹고 나니 모자라지 않게 배부르게 먹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새로운 세상의 윤곽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가 다스리는 이집트라고 하는 억압과 착취, 불평등의 체제를 거부하고 뛰쳐나온 히브리인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어 나갈 새로운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바로 ‘자유와 평등’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억압과 착취, 그리고 불평등한 체제의 꼭대기에는 황제 또는 왕이 있고, 그 아래 모든 백성들은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세상을 벗어나서 모든 백성들이 인간답게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사는 세상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세우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그곳도 인간이 사는 세상인지라 꼭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어기는 사람들이 있지요. 혹시 내일 아침에는 만나를 거두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모세가 그들에게 아무도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고 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남겨 둔 것에서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풍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침마다 자기들이 먹을 만큼씩만 거두었다고 성서는 증거합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입으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는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사사로 알려진 사무엘이 나이 많아지자, 그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가 사사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올바르게 살지 않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뇌물을 받고서, 치우치게 재판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사무엘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 (사무엘상 8:5)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오.
사무엘은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해 달라는 장로들의 말에 마음이 상하여, 주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사무엘상 8:7)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유일한 왕은 하나님뿐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전권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방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게 된다면, 하나님 대신 인간이 왕이 된다면 ‘자유와 평등’ 대신 억압과 착취, 그리고 불평등한 세상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이 너무나 강력하게 요구했기에 결국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울 것을 허락하셨고, 이후 이스라엘 역사는 이방 나라들과 똑같은 경로를 밟아 망해갔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자, 이제 오늘의 본문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분명히 예수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문 도중에 세 번씩이나 예수의 무죄를 선언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소.” (요한복음 18:38)
“보시오, 내가 그 사람을 당신들 앞에 데려 오겠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 소.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알아주기 바라오.” (요한복음 19:4)
“당신들이 이 사람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요한복음 19:6)
또한 총독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을 느꼈고, 그래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가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고 고발했는데, 그것이 빌라도에게 더 큰 두려움을 갖게 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자의 아들을 자기가 죽인다면 엄청난 벌을 받을까 두려웠을 것이고, 혹 잘못 재판해서 자기의 출세 길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께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소?”
“당신은 어디에서 왔소?” 라는 이 물음은 곧 “당신은 도대체 누구냐?”는 물음이요, 동시에 “당신이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왔는가?”라는 물음입니다. 물론 대답해 보았자 알아듣지 못할 것이 너무나 뻔했기에 예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자기가 예수를 놓아줄 권한도 있고, 처형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권한 역시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어쨌든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유대사람들이 황제를 들먹거리기 시작하자 빌라도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을 놓아주면, 총독님은 황제 폐하의 충신이 아닙니다.”
마침내 빌라도가 예수님을 데리고 나가, 유대인들 앞에 세우고 말했습니다.
“보시오, 당신들의 왕이오.”
그러자 유대인들이 외쳤습니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이오?”
바로 이때 유대의 대제사장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이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그들에게 넘겨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 대제사장들은 소리쳤습니다.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이 대제사장들의 마지막 선언, 로마 제국의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다는 이 마지막 선언은 종교지도자들의 불신앙이 얼마나 깊은가를 드러냅니다. 그들은 이 말 한 마디로 예수님의 왕권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왕권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까지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왕이신데 그들은 자기들 입으로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왕은 이방인 황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으로 유대인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과의 관계는 끝났습니다.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끝났습니다. 유대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새로운 세상도 끝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이 세상의 왕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날 한국교회와 그 지도자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교인들에게 있어서 왕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아닙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왕은 교회 지도자 자신이요, 이 땅의 독재자들이었으며, 세계의 지배자인 미국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이름으로 억압과 착취, 불평등을 합리화시키고 있으며, 교인들은 맹목적으로 그들의 지도자들을 따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대형교회 목사들은 교회 내에서 그야말로 절대군주처럼 무한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이 칠십도 모자라 칠십 오세까지 목회를 하겠다고 하고, 더 나아가서 죽을 때까지 교회를 주무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오직 하나, 미국교회가 그렇게 하니까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목사들이 아직도 수구냉전 논리에 젖어 걸핏하면 시청 앞에 모여 대형집회를 열면서 정권타도, 북한타도를 외치고 미국만이 우리를 살려준다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은 그야말로 맹목적으로 그런 목사들을 하나님처럼 떠받들면서 목사들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꾸준히, 열심히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왕은 미국 대통령이십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일수록 자기 교회만의 성장을 추구하고, 그런 목사들일수록 더 탐욕스럽고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뻔뻔하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이루고자 하셨던 세상, 그리고 예수께서 온 땅 위에 이루고자 하셨던 세상, 그것은 바로 자유와 평등의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왕이신 나라였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왕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믿음 가지고 자유와 평등의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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