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 년도

1995. 9. 17 / 교회로 교회되게 하라 / 마태복음 16:13-28

람보 2 2015. 3. 20. 16:27

교회로 교회되게 하라! (1995. 9. 17 )

교회로 교회되게 하라!

마태복음 16:13-28/ 1995. 9. 17.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이땅에 세우신지 86주년이 되는 날을 기념하며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원래 창립기념일은 9월 9일이고 해마다 그날에 가장 가까운 주일을 기념주일로 지켰으니까 올해는 지난 주일인 9월 10일을 창립 86주년 주일로 지켜야 했는데 추석 연휴라는 이유로 한 주일 연기되었습니다.
추석이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이고 흩어졌던 온 가족이 만나는 날이라는 깊은 의미가 있기에 1주일을 미루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러나 한 교회의 창립이 단순히 사람들이 몇 명 모여서 교회를 시작 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체인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역사하신 일이라고 우리가 믿는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에 동참하겠다고 다짐하는 일이 중요한지, 아니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다른 일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수표교교회 부목사로 오게 될 때 담임목사님으로부터 해야 할 일로 명령을 받은 것 중 하나가 교회 역사를 편찬하는 일이었습니다. 고 윤주봉 목사님께서는 담임목사로 취임하신 직후인 1980년 당회에서 이미 교회 역사편찬의 당위성을 말씀하시고 역사편찬 위원회를 구성토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몇 몇 분이 자료 모으는 일을 하시다가 마침내 저한테까지 그 일이 맡겨 졌습니다.
역사편찬 작업을 하겠다고 대답을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우선 이미 나와 있는 다른 교회역사 책들을 구해 읽으면서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말은 했지만 시간도 없고, 실력도 모자라고 또 만의 하나 역사책을 쓴다고 해도 나중에 그 후손들에게 자칫 말이나 듣지 않을까 염려도 되고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침내 우리 감리교본부 역사자료실에 근무하는 김진형 목사님을 소개하여 그분을 필자로 해서 책을 쓰게 되었고 무려 15년 만에, 교회 역사책을 펴내야 되겠다고 처음 의논이 되기 시작한 때로부터 15년 만에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도와 주셨고 자료를 보내 주셨으며 또 자문위원으로 수고하신 장로님들과 실무를 맡아 수고하신 권사님들, 그리고 도와주시고 기도해 주신 성도 여러분 모두의 힘이 합해져서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역사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료가 부족하다든가 증언을 해 주실만한 분들이 옛날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든가 하는 일들도 물론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마는 가장 힘들었던 일은 바로 우리 교회의 미래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추구해왔던 교회상은 어떤 것이었으며 이제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물음의 답을 찾기가 참으로 힘들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역사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고 더 나아가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찾는 학문이라고 할진대 우리가 교회의 역사책을 편찬하고 또 교회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면서 창립기념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단지 과거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모습을 직시하고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윤 목사님께서는 역사책을 펴내면서 간행사를 쓰실 때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제 격동의 20세기를 보내고 또 하나의 100년을 맞이할 즈음에 지난날을 정리하며 하나의 책으로 남기게 되었으니 오직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물론 이 책은 지난날의 자랑이나 자기선전을 위한 꾸밈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 나라와 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깨달아 전진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작업일 뿐입니다. 또 어찌 보면 이 책은 앞으로 수표교 100년사, 200년사를 쓰기 위한 하나의 작은 시작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탐구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미래를 향해 바르게, 그리고 힘있게 나아가기 위한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시간 결국 교회가 21세기 에도 살아남으려면 한 마디로 교회가 교회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오늘날의 교회가 세상 기관들과 너무 닮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염려가 많기 때문이며, 그것은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의 삶과 별로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삶의 목적도, 의미도, 가치관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기에 교회가 교회다움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는 바로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성인 남성들을 말할 때 40대남자 사망률 세게1위 라는 불명예스러운 통계
요즘 한참 유행하는 말 “간 큰 남자”
20대: 부인한테 눈 똑바로 쳐다보면서 “밥 차려 줘” 하는 남자
30대: 부인한테 눈 똑바로 쳐다보면서 “용돈 줘” 하는 남자
40대: 부인이 외출하는데 “어디가”하고 묻는 남자
50대: 부인이 외출하는데 “몇 시까지 올거야” 하고 묻는 남자
60대: 부인이 외출하는데 “나도 같이가” 하는 남자
70대: 밤에 잠자고 다음날 아침까지 살아있는 남자

일반 성인 남성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즘 많은 교회 목사님들이 쓰러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당뇨 아니면 간 질환으로 많이 쓰러지신다는데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랍니다.
옛날 목사님들은 사는 건 어려워도 그런 병으로 쓰러지지는 않았다는데 요즘 목사님들은 대접을 좀 받지만 그렇게 쓰러지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면 요즘 목사님들은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말이 되지요. 물론 대접 잘 받는 목사님들도 대도시 큰 교회 담임 목사님들 정도지만 말입니다.

요즘 간 큰 목사들은 다음과 같이 행동한답니다.
장로님들 말씀하시는데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목사
권사님들이 식사 준비 하는데 반찬 투정하는 목사
교사들 늦었다고 꾸중하는 목사

여러분
이것도 교회가 교회다움을 상실하고 세상 기관들과 똑 같이 변해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요?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고 말함으로 예루살렘 온 도성을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또 마태복음 5, 6, 7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산상 수훈은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 당신의 왕국에서 살아갈 백성들의 삶의 지침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8-10장까지는 예수께서 왕으로서의 권능을 행하시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얼마나 당당하신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구절도 여기 들어 있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그런데 여러분!
제가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예수께는 지지자도 많았지만 적대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11장부터는 예수께 도전해 오는 무리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의심으로부터 시작해서 안식일에 밀 이삭 잘라 먹었다고 시비 거는 바리새인들,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쳤다고 죽일 방법을 찾는 바리새인들, 예수를 귀신 들렸다 하고 진짜 메시야면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시비를 거는 서기관들과 유대의 장로들과 가족들과 고향 사람들, 이들 모두가 예수의 왕으로 오심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과 7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셔서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를 찾아와서
“당신이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라면 표적을 보이라 ”
고 요구하기까지 합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노릇이었습니다. 이제 시간은 흘러 공생애를 마칠 때는 다가오는데 도대체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바로 이 무렵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당신의 진짜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는 곧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시작해야 할 때니까 예수께는 참으로 긴박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생각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예수를 따라다닌 제자들이 과연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무엇이라고 묻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넌지시 물음을 던졌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곧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물음입니다.

제자들은 제각기 들은 것들을 대답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을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을 엘리야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선생님을 예레미야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선생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어느 것 하나 정확한 답, 예수께서 원하셨던 답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제 대놓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물음은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너희에게 있어서 나는 누구냐?”
“너희는 나를 무엇이라고 믿는거냐?”
“너희의 삶에 있어서 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이냐?”

순간 제자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서로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이때 용감한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역시 베드로입니다. 그는 정확하게 모범답안을 내보였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던 바로 그 대답, 참으로 흡족해 하시는 대답을 베드로는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셨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놀라운 축복의 선언을 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렇습니다.
교회는 바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세워졌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이 구절을 놓고 교회가 인간 베드로 위에 세워졌다고 말하지만 아닙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곧 이 신앙고백이 제대로 되지 않은 교회는 아무리 규모가 크고 사람이 많이 모여도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분명히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있어서 예수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예수는 무슨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바로 지금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묻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를 주님이라고 분명히 고백하실 수 있습니까?
예수 당신은 주인이라고 분명히 고백할 수 있습니까?
예수 당신은 주인이시고 나는 종이니 내 인생은 당신의 것이라고, 그러니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달라고 분명히 고백할 수 있습니까?
내 인생의 목적은 오직 주인이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있다고 분명히 고백할 수 있습니까?
예수 당신만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감히 고백할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히브리어로 그리스도, 희랍어로 메시야라는 이 단어는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전통적으로 구약에서는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라는 말은 곧 주님은 나의 왕, 나의 제사장, 나의 선지자라는 고백입니다. 주님만이 나의“왕 ”이시고, 주님만이 나를 위해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시는 제사장이시고, 주님만이 나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선지자라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맞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왕입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제사장입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선지자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신하로서 주님께 복종하고 있습니까?
제사장이신 주님께 여러분은 제물로 바치고 있습니까?
선지자이신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하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계셨음을 내가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믿습니까?
분명히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지금도 역사하신다고 믿습니까?
분명히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바라신다고 믿습니까?
분명히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까?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아무리 교회 역사가 오래 되고 아무리 교회 건물이 크고, 아무리 교인 숫자가 많고, 아무리 교회 예산이 풍족하다 하더라도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오늘 우리에게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입술로만의 신앙고백이 아니라 참으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과 만나는 만남이 없다면, 그분과 만나는 체험이 없다면 그래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신앙고백이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으로 예수를 만나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와의 만남을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또 구세주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가 구체적으로 하신 일은 무엇인가요?
예수께서는 이 물음에 스스로 대답하십니다.
“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셨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한 자기희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만나는 것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죽으신 분으로서의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바로 나를 위해 죽으셨고, 너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입술로 고백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주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음을 믿는다는 것은 곧 나도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가 주님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고 감당해 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때 베드로는 다시 한 번 시험에 빠졌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고 말씀하시자 그럴 수 없다고 말렸습니다. 그리고는 졸지에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주님의 꾸중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입으로는 예수 믿는다고 큰소리쳐도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지 않으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희생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곧 사탄에게 넘어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참으로 무서운 주님의 경고를 듣게 됩니다. 아무리 입으로는 그럴 듯하게 신앙고백을 한다 하더라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그것도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바로 사탄의 무리에 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교회가 희생과 봉사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교회가 끊임없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고 인간의 영광만 드러내려 한다면, 거기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생각대로만 움직여 간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끊임없이 베푸는 삶을 보여줄 때 비로소 교회가 교회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결코 사람이 아닙니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그 누구도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 움직여야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바로 십자가 사건을 통한, 희생을 통한 구원 역사를 이루는 것이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나 자신을 바치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와 교육을 통해, 선교와 봉사를 통해 나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것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묵묵히 감당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될 때 바로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로서 살아남을 것이고 그런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눈을 들어 저 2층에 앉아 있는 학생들과 청년들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은 저들에게 어떤 교회를 물려주실 것입니까? 아니 그렇게 멀리 볼 것 없이 바로 지금 저들의 눈에 교회의 어른들인 여러분의 신앙이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교회다운 교회를 물려줄 것인지, 신앙인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여러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제 세월이 좀 더 흐르고 나면 여기 이 앞자리에 앉아 계신 원로장로님, 권사님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새로운 원로장로님, 권사님들이 앞자리에 앉게 되실 터인데 그때에 지금 2층에 앉아 있는 학생들과 청년들 중에 얼마나 되는 수가 1층으로 내려와 앉게 될 것인가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땅에 교회는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교회보다 역사가 오래된 교회도 많고 건물이 큰 교회도 많고 교인수가 많은 교회도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있어서 그런 것들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 교회가 자랑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라고 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교회다운 교회를 남겨 주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 교회를 향해 많은 교회 중의 하나가 아니라 참으로 교회다운 교회가 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 땅의 교회들로 하여금 교회로 교회되게 하라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는 참으로 살아 역사하는 신앙고백 위에 터를 두고 예수믿는 사람다운 사람들이 모여 교회로 교회되게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와 교우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