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 년도

1995. 8. 27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요한복음 21:15-19

람보 2 2015. 3. 19. 22:52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1995. 8. 27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21:15-19/ 1995. 8. 27.


제가 수표교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단독목회를 하러 나간 때가 정확히 10년 전인 1985년 12월 마지막 주일이었습니다. 경기도 김포군 대곶면에 있는 쇄암교회라는 곳이었는데 교회가 세워진지 한 10년 쯤 된 교회로서 어른과 아이들 합해서 20여명 남짓 되는 자그마한 교회였습니다. 소위 부로크 벽돌이란 것으로 지어졌는데 건물은 낡아서 마루 장이 빠지고 천장은 떨어지고 흔들거렸지만 그래도 정성스럽게 성탄장식을 해놓은 전형적인 시골 교회였습니다.

사실은 그곳에 가기로 결정하기 전에 미리 한 번 가서 소위 선을 보는 셈치고 설교를 하였는데 저는 그날 “나는 베드로입니다.”라는 구절로 시작해서 사도 베드로가 편지를 써 보내는 형식의 설교를 하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 이야기를 이것저것 소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기 잡으러 다닐 때의 이야기, 예수님 따라 다니며 겪었던 어려움 등등을 죽 이야기하였습니다. 처음 온 전도사의 설교니까 대부분의 교인들이 다 귀기울여 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다 끝나고 난 후 교인들과 차례차례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여러 분의 할머니들과 아줌마들, 젊은 새댁 몇 명과 남자 어른 몇 명, 그리고 중, 고등학생 몇 명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인사가 다 끝나고 나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새삼스럽게 다시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그 할머니의 손을 마주 잡았는데 그분이 내 손을 자꾸 만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있다가 그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님, 아직 나이도 얼마 안들어 보이시는데 그동안에 그렇게도 고생을 많이 하셨군요. 고기 잡으러 다니기도 하시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기도 많이 하시고.”
그러니까 그 할머니는 제 설교를 들으시면서 제가 “나는 베드로입니다.” 라고 설교를 시작 했으니까 제 설교 내용이 몽땅 제가 직접 겪은 이야기로 들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고생한 이야기를 할 때는 눈물을 글썽이며 들으시다가 끝나고 나니까 저를 위로하느라고 그렇게 제 손을 꼭 잡고 쥐어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그때 그 할머니의 따스했던 손길을 잊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눈물이 글썽했던 그분의 눈과 그렇게도 정겨웠던 그분의 시선을 잊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목회를 하다가 힘들고 어려우면 바로 그런 분들의 손길과 눈을 기억하며 새로운 힘을 얻고는 합니다.

여러분!
제가 설교를 시작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서, 소위 신앙생활 한다는 우리들에게서 몇 가지 없어진 것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잡아주는 따스한 손길,
설교를 들으며 함께 마음으로 아파하고 두 눈에 글썽이던 눈물
그리고 참으로 어리고 살아온 날도 짧은, 아들과도 같은 전도사를 따뜻하게 품어주던 정겨운 눈빛
바로 이런 것들이 교회는 커지고 사는 것은 넉넉해진 오늘 우리들에게서 사라져 버렸다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이 험악하고 각박해지고 덩달아 신앙생활마저도 메말라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가졌던 그 사랑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저는 제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던지셨던 그 물음,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라는 물음을 오늘 우리는 듣지 못하고 있고, 또 듣지 못하기에 대답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보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베드로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위대한 인물도 아니었고 요셉과 같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마치 성인군자와 같은 사람도 아니었고, 솔로몬과 같이 지혜로운 사람도 아니었지만 또 사도바울과 같이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러나 참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에 부담 없이 다가설 수 있고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으로 보여지기에 저는 베드로를 좋아합니다. 약점 투성이의 인간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위선적이지 않고 자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빈들에 가셨는데 그 소문을 들은 많은 무리가 모여 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여러 가지 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기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니 환자들, 그들의 보호자들, 또 구경꾼들 해서 온통 시장바닥처럼 시끄럽게 떠들고 병고치는 일에 놀라면서 지내다가 어느덧 저녁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빈들이라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들이 굶게 되자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사람들을 다 먹이셨다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오병이어 사건이지요.

이제 날도 어두워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지났기에 예수께서 직접 사람들을 돌려 보내시고 그 틈을 타 제자들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혼자 남아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밤 4경쯤, 우리 시간으로 새벽 3-6시 사이쯤 되었을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닥치더니 배가 곧 뒤집힐것처럼 요동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배에는 어부 출신의 제자들이 몇 명씩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는 깜깜한 바다 저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분명히 사람이 걸어올 수 없는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 위를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머리끝이 쭈뼛 올라서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리고는 일제히 소리쳤습니다. “유령이다”
그러나 이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것은 바로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반신반의하며 어찌해야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베드로가 소리 질렀습니다.
“주여, 진짜 주님이시면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십시오.”

베드로, 그는 참으로 엉뚱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어부 출신이고 바다에 익숙하고 또 수영을 잘 할 것이라 보여지지만 자기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요. 그는 그만큼 단순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오라”고 말씀하시니까 냉큼 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진짜 물 위로 걸었습니다.
그는 아마 신났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혼자서 바다 위를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 한 일입니까? 다른 제자들은 다 놀라서 자기를 쳐다볼 것을 생각하니 공연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순간 제자들의 얼굴 표정이 보고 싶어 졌고 그래서 고개를 뒤로 돌렸습니다. 여보란 듯이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줄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웬일입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다른 곳,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는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휘몰아치는 파도요, 바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베드로는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수영은 물론 잘 했고, 또 물 위로 걷기까지 했던 바로 그 베드로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전에 물 위를 걷는다고 의기양양했던 그 베드로와 물에 빠져 살려 달라고 소리지르는 그 베드로, 남보다 조금 낫다고 우쭐거리다가 또 금방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바로 인간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용감하지만 충동적이고 성급한 인간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은 베드로의 모습에서 여러분의 모습을 보지는 않습니까? 내가 남들보다 신앙생활 조금 더 했다고 해서 우쭐하고, 교회에서 무슨 직분 맡았다고 의기양양해 하지만 사실은 눈을 한 순간만 돌리면 풍랑에 빠져 허우적대며 살려달라고 매달려야 하는 바로 나의 모습을,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여러분은 보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와는 정반대로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교회 직분이 높다고 해서 거룩한 모습만, 그럴듯한 모습만 보여 주려고 애쓰다가 결국은 그것이 지나쳐서 주님 앞에서 마저도 내가 거룩한 양 아무 허물이 없는 척 폼을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에 빠져 들어가는 순간, 베드로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님, 나를 살려 주십시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다른 곳을 향했던 눈을 돌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주님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하고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거룩한 양, 허물이 없는 척 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바로 주님을 바라보고 손을 내밀어 우리를 향해 내미시는 주님의 손을 잡아 구원을 얻는데 있습니다. 물에 빠진 모습 그대로 주님의 손을 잡아 구원을 얻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주님은 우리가 손을 내밀기만 하면 언제나 당신의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시는 분이심을 체험하는 역사를 갖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제자들과 소위 최후의 만찬을 하실 때였습니다. 예수께서 가룟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시고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만찬을 행하신 후에 참으로 비통한 심정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제자들인 너희들 모두가 다 나를 버릴 것 이라는 충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3년 동안 동고동락해 왔던 스승을 마지막 순간에 다 모른다 하고 도망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열 한 제자가 그때까지 아무도 그런 생각은 했을 리가 없는데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제자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눈치만 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또다시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비록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 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참으로 당당한 선언입니다. 여기 함께 있는 열 한 명의 제자들이 다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하고 떠나갈지라도 나만은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 그는 제자들을 둘러보았을 것입니다. 그 제자들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을 것입니다.
“여기 있는 바로 이 사람들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 아시지 않습니까?
바로 이 장면은 누가복음 기자는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감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기자는 이 장면을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라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아주 대단한 각오입니다. 물론 베드로는 거짓으로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두 번째 경고를 하시지요.
“새벽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의하면 베드로는 이 때도 큰소리칩니다.
“주님, 주님과 함께 죽는 일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이렇게도 큰소리치던 베드로가, 혼자서만 잘난척 제자들을 손가락질하며 나는 결코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던 그 베드로가 어떻게 변했는지 여러분, 아시지요?
너도 저 사람 편이 아니냐고 묻는, 하잘 것 없는 계집종의 물음 앞에서 벌벌 떨며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대답하고 맙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소.”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심지어 마가복음 14:71에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예수란 자를 알지도 못하오“ 하고 잡아 떼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인간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우쭐대기 좋아 하고, 의리있는 것 같지만 비겁하고, 큰소리 뻥뻥치다가도 한없이 움츠러드는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 그것이 바로 성경이 보여 주는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것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요? 남들 앞에서는 한없이 큰소리치고 당당한 것 같지만 사실은 비겁하고 소심하고 그리고 움츠러드는 우리들의 모습, 그것이 바로 베드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던가요?

여러분!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실망하고 좌절에 빠진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은 제각기 살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몇 사람은 자기들 본업인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갔습니다. 갈릴리 바다로 돌아가 고기를 잡는데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나타나셨는데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은 배 오른 편에 던져라. 그러면 얻으리라.”
그래서 그물은 던졌더니 그물은 들 수 없을 만큼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주님이신 것을 깨닫고 베드로는 주님께서 달려갔습니다. 또 한번 바닷물에 뛰어든 것이었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이 함께 육지로 올라 와서 떡과 생선을 나누어 먹은 후에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해서 모든 제자들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간 것이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물음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물음입니까? 베드로의 지금까지의 삶을 모두 다 아시는 주님께서 그렇게 쉽게 아무 생각없이 물음을 던지셨겠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이 물음 속에는 "네가 네 인생 전체를 걸고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뜻이 들어있지 아니합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물음 속에는 "네가 앞으로는 나만을 위해 살 수 있느냐?" 라는 뜻이 들어 있지 아니합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물음 속에는 "네가 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느냐?" 라는 뜻이 들어있지 아니합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까지 신앙생활 해 오시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바로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음성 앞에서 베드로와 같이 허물 많고 흠이 많은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무엇인가 된 것처럼 폼을 잡고 으스대면서 내 힘으로 무엇이 듣지 다 할 것처럼 큰소리치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고 있습니까?
내가 주님을 위해 신앙 생활한다고 큰소리치지만 사실은 지금까지 철저하게 나를 위해 살아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누구 보란 듯이 물에 뛰어들어 의기양양했지만 그러나 곧 풍랑에 휩쓸려 가라앉아 버리는, 지극히 보잘것없는 신앙 밖에 없다고,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라는 주님의 책망을 바로 내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큰소리치지만 그러나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겨도 곧 주님은 뒷전으로 몰아버리는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사실은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분명히 말씀드리기 어려운 신앙생활을 해 온 것은 아니던가요?
그래서 주님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아니던가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와서 주님 앞에 무릎 끓고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한 마디
“주님, 아시지요. 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요.” 그것뿐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베드로가 말한 것을 그대로 옮긴다면 이렇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모든 허물과 죄를 아시는 주님, 끝내는 주님을 배반하기까지 했던 베드로를 향해 다른 것은 일체 묻지 않으시고 오직 한 가지만 물으셨던 주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주님께서 바로 오늘 우리에게도, 베드로보다 더 많은 허물과 죄를 짊어지고 나온 우리를 향해 다른 것은 일체 묻지 않으시고 오직 한 가지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본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물음을 들었을 때 베드로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는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러지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
무어라고 대답하실 수 있습니까?
내가 이러 저러한 일 했다고 큰소리칠 분 계십니까?
내가 이렇게 오래 믿었노라고 자랑할 분 계십니까?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그 말 한 마디 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우리의 사랑을 아십니다.
진실로 교우 여러분 모두의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 차서 우리 교회가 그 사랑의 힘으로 새로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