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시련(2011. 8. 21)
본문) 야고보서 1:1-4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가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을 드립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표준새번역 개정판)
앞으로 야고보서를 함께 읽어나가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야고보서의 저자와 독자는 누구인가요? 야고보서의 저자는 1절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가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을 드립니다.”
그러니까 저자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이고, 독자는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저자인 야고보는 누구인가?
야고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유명한 인물을 꼽으라면 신약에 두 명이 있습니다. 우선 하나는 세베대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이며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열두 제자의 명단이 네 번 나오는데 그 명단의 앞부분에 늘 야고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나오는 명단을 찾아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그들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치게 하셨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첫째로 베드로라고 부르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도마와 세리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와 열혈당원 시몬과 예수를 넘겨준 가룟 사람 유다이다.” (마태복음 10:1-4)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열두 제자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는 것은 복음서에 종종 나옵니다. 예수께서 특별한 일이 있어서 제자들을 뽑아서 데리고 가실 때 어김없이 끼어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 중 세 명만 데리고 올라가셨는데 그중 하나가 야고보였습니다.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따로 데리고서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또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역시 세 사람의 제자만 데리고 가셨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야고보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그리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근심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마태복음 26:36-37)
뿐만 아니라 야고보의 어머니까지 등장해서 아들 둘의 출세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는 장면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다가와서 절하며, 무엇인가를 청하였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물으셨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여자가 대답하였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 (마태복음 20:20-21)
그러니까 그 옛날, 이천 년 전에 치맛바람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바로 이 야고보가 야고보서의 저자일 수 있지요.
또 한 사람의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마가복음 6장에 의하면 예수님에게는 네 명의 이름이 알려진 남동생들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러 명의 여동생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거기에 나오는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에 가시니, 제자들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어서,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마가복음 6:1-3)
그러니까 예수님의 동생들 중에서 첫째 동생의 이름이 야고보입니다. 이렇게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중에 제법 알려진 사람은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와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입니다. 그런데 그중 세베대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인 사도 야고보는 초대교회 때 순교자로 이름이 알려진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무렵에 헤롯 왕이 손을 뻗쳐서,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하였다. 그는 먼저 요한과 형제간인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 (사도행전 12:1-2)
분명히 첫 번째 야고보는 사도행전 12장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5장에 가면 또 한 사람의 야고보가 등장합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15장에는 ‘예루살렘 회의’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이는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 전도를 하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방인 전도 문제로 논쟁을 벌이던 장면입니다. 먼저 베드로가 이방인들도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강조한 후 야고보라는 사람이 마무리 발언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온 회중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신 온갖 표징과 놀라운 일을 보고하는 것을 들었다. 바나바와 바울이 말을 마친 뒤에, 야고보가 대답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을 돌아보셔서, 그들 가운데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처음으로 한 백성을 택하신 경위를 시므온이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언자의 말도 이것과 일치합니다.. . . ”
(사도행전 15:12-15 이하)
그렇습니다.
여기 나오는 야고보는 아주 권위있는 지도자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문제를 정리할 만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야고보가 누구인지를 다른 사람이 아닌 바울 자신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을 보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밝혀드립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받은 것입니다.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적에 한 행위가 어떠하였는가를, 여러분이 이미 들은 줄 압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고, 또 아주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나와 나이가 같은 또래의 많은 사람보다 유대교 신앙에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방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를 나에게 기꺼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되돌아갔습니다. 삼 년 뒤에 나는 게바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 밖에는, 사도들 가운데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말은, 하나님 앞에 맹세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1:11-20)
그렇습니다.
사실상 바울의 사도됨을 인정해 준 사람은 바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라디아서 2장 1절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14년이 지나서, 다시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데 이때도 역시 야고보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는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신 분이, 나에게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8-9)
보십시오.
9절에 의하면 바나바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인정해 준 사람들이 셋 나오는데 그중 첫 번째가 야고보이고 그는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라고 해서 베드로와 요한보다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즉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중 중의 기중으로 인정받았는데 이는 바로 주님의 동생 야고보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요? 두 사람 중 하나일 터인데 세베대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인 야고보는 그 누구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비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오래 살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보다 더 권위있는 지도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라고 전제하고 설교를 해 나가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의 독자는 누구인가?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자 그대로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보낸 편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나 또는 이 편지가 쓰여질 때에는 이미 열두 지파가 그야말로 뿔뿔이 흩어져서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열두 지파란 곧 열두 사도로 대표되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인들이라고 볼 수 있고,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모든 민족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 야고보는 말합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습니다. 신앙생활하다가 시련을 당할 때가 많을 터인데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충분히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시련은 인간의 실수로 오는 시련이 아닙니다. 내가 잘못해서 당하는 시련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려다가, 올바르게 살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다가 당하는 시련을 말합니다. 그때 견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내력을 발휘하여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거의 다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또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욕심부리는 사람만큼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사는 것이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참고 견디어야 하는가? 일, 이년이면 되는가? 아니면 한 십 년? 그것만 견디고 나면 떵떵거리고 잘 살게 해 주시는 것인가? 물론 우리가 견디어야 할 기간을 알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견디고 이겨낼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의 시련이라도 한없이 견딜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저는 구약에 나오는 요셉을 예로 들겠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꿈쟁이 요셉입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나서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지요. 그가 꿈을 꾸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화가 난 형들이 그를 팔아먹었습니다.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려다 보디발의 아내한테 모함을 당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나중에 꿈을 해몽해 주고 끝내 총리대신이 되어 잘 살게 되었지만 그는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믿음으로 인한 시련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참고 견딘 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성경에 그 기간이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엉뚱한 계산을 한 번 해 보았습니다.
요셉의 할아버지 이삭 40세에 리브가와 결혼(창세기 25:20)
이삭 60세에 쌍둥이 에서와 야곱 낳음(창세기 25:26)
이삭 100세에 에서가 결혼(창세기 26:34)
이때 에서와 에서와 야곱의 나이는 40세
이후 야곱은 에서를 피해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갔다가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아들임. 라헬이 요셉을 낳음(창세기 30:25)
요셉의 나이 17세 때 꿈꾸는 사건이 일어나고(창세기 37:2) 이를 계기로 이집트로 팔려감.
요셉이 믿음의 시련을 당하다가 아버지 야곱을 다시 만났을 때 야곱의 나이 130세(창세기 47:7-9)
그러니까 간단히 정리하자면 야곱이 도망을 쳐서 외삼촌에게로 갔다가 가족을 이루고 나중에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가서 아들 요셉을 만나게 되기까지의 세월이 최대로 잡아 90년입니다. 그러니까 대충 절반만 잡아도 요셉이 어려움을 겪은 세월이 4, 50년은 된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긴가요? 50년이라면 견디기 어려운 세월이지요? 그렇다면 짧게 잡아서 한 20년 정도라고 할까요?
여러분,
햇수가 문제가 아니지만 만약 우리 가운데 믿음의 시련을 겪는 분들이 계시다면 요셉을 생각하며 참고 기다리십시다.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시련에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가능한 한 빨리 구해 주시겠지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어 살아가십시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복음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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