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이루어지다(2011. 8. 28)
본문) 사도행전 2:43-47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지난주에 야고보서 강해 설교를 시작해서 첫 번째 설교를 했기에 오늘도 야고보서를 읽어야 하는 날인데 일주일을 보내면서 오늘은 아무래도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인 1963년 8월 28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 C에서 노예해방 100주년을 기념하는 평화행진이 열린 날입니다. 그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100년 전에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했던 것을 기념하는 행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위대한 흑인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연설을 했는데 그중 일부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겠습니다. 연설 제목은 "나는 꿈이 있습니다" 입니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는 꿈입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조지아에서 미시시피와 앨라배마에 이르기까지 옛날 노예 주인의 아들들과 함께 형제처럼 살게 되는 꿈입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백인 어린이가 흑인 어린이와 형제자매처럼 손을 잡게 되는 꿈입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단순히 자유를 얻기 위해 집이나 교회에 불을 지르는 일이 없게 되는 꿈입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마티오가 당해야 했던, 매그루더가 당해야 했던 가혹한 행위가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나의 네 명의 자녀가 내가 겪어야 했던 젊은 시절과 같은 것을 겪지 않고, 또 그들이 피부색 대신 인격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평가를 받게 되는 꿈입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이곳 워싱턴 흑인들이 돈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지 집을 사거나 세를 들고 집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꿈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이 땅에서 아모스의 예언이 실현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내리며, 진리가 거대한 분류처럼 흐르게 되는 꿈입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로부터 생명, 자유, 행복추구 등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받았다는 제퍼슨의 말을 인정하게 되는 꿈입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모든 산골짜기가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이 주저앉으며, 거친 곳이 평탄해지고, 굽어진 곳이 곧게 펴지며, 주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인간이 함께 그것을 볼 수 있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모두 형제가 되는 꿈입니다. 나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나서서 절망의 산에다 희망의 터널을 뚫겠습니다.
나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새로운 날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아이들이 흑인이건 백인이건, 유태인이든 비유태인이든, 개신교도이든 가톨릭 교도이든, 손을 잡고 "자유가 왔다! 자유가 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흑인 영가를 부를 수 있는 날을 만들 수 있습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에서 노예해방 100주년을 맞아 열린 평화행진에 참가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문 중 일부)
여러분!
오늘은 참으로 오랫동안 백인들의 노예가 되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던 흑인들이 남북전쟁의 결과로 노예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노예해방의 상징으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링컨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안타깝게도 바로 그 두 사람은 암살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이 가졌던 꿈은 노예해방으로 나타났고, 이 연설문을 통해 우리에게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 킹 목사님이 가졌던 놀라운 꿈을 여러분에게 소개한 것입니다.
킹 목사님의 꿈. 그것은 한마디로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유색인이든 유태인이든, 비유태인이든, 개신교도이든, 가톨릭교도이든, 힌두교도이든 이슬람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장애인이든 건강하든, 남자든 여자든 그 어떤 인간적인 조건에 관계없이 사람이면 누구나 다 자유롭게,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존중받으며 사는 세상이 와야 한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위해 일생을 바치다 암살당했지만 끝내 그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꾸었던 꿈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다 이루어진 것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온갖 차별이 존재합니다. 아니 사실은 차별이 더 심해지고 있는 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구상에 있는 그 많은 나라 가운데서 가장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노르웨이에서 얼마 전에 한 청년이 수십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을 죽인 이유 중의 하나,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다른 민족은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슬람교도들은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많은 나라에서 얼마나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인종의 문제, 종교의 문제 등 차별할 조건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받는 차별은 극에 달한 것 같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나타나는 그 많은 차별들 가운데 가장 큰 차별은 사실 부자인가 가난한 사람인가에 따르는 차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소위 20 대 80의 세상이라고 말했었습니다. 20%의 사람들이 80%의 부를 누리고, 나머지 80%의 사람들이 20%의 부를 나누어 사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10 대 90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는 3 대 97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도 재벌들이 갖고 있는 부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는 일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며칠 전 서울에서 치러진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 투표였습니다. 서울시 교육감과 의회에서는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하는 것으로 의결했습니다. 그러자 서울 시장이 나서서 왜 부자들한테도 무상급식을 하느냐고 따지고 나왔습니다. 절반씩 나눠서 하위 50%는 무상급식하고 상위 50%는 돈을 내서 먹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아끼는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장의 말은 그럴듯하지요? 가난한 아이들을 끔찍이 생각해 주는 것 같지요? 그러나 그것은 가난한 아이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일입니다. 시장 자신은 한강에 운하 만들고, 새빛둥둥 섬 만들고, 디자인 서울 한다면서 수 조원의 돈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그 둥둥섬 이번 비로 엉망진창 되었다지요? 그러나 불과 몇 백억 원만 있으면 모든 아이들이 함께 무상급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누구도 눈치보면서 밥 먹는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돈 때문에 누구는 큰소리치며 먹고, 누구는 눈치보며 먹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얼마 전 돈을 내고 먹을 때 무상급식 받는 아이들이 한 말이 있습니다.
"반찬을 더 먹고 싶은데 돈도 안 내는 아이가 뭘 더 먹느냐고 할까봐 더 달라고 하지 못하고 그만 먹었어요."
참으로 기가 막힌 말이 아닙니까? 돈이 없어서 급식비 몇 만 원을 내지 못하는데, 그러니까 집에서도 제대로 먹을 리가 없는데, 학교에 와서 먹는 점심시간이 그래도 제대로 한 끼 챙겨먹는 시간인데 거기에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얼마 더 먹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눈치보여서, 누가 뭐라고 할까봐 더 먹지 못하고 그만 먹는다고요. 이게 말이 됩니까?
무상급식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부자들은 돈 내고 밥 먹어라.' 그럴듯하지요. 그런데 부자들이 밥값 몇 만원 내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왜 소위 부자 감세라고 해서 현 정부가 수십 조 원씩 세금 덜 내게 해 준 것은 시비를 걸지 않습니까? 사실은 부자들이 마땅히 내야 할 세금 수십 조 원 제대로 내게 하고 그 돈으로 아이들이 똑같이 밥 먹게 하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이고 올바른 일이 아니겠습니까? 멀쩡한 강 파헤치는 데 수십 조 원 쓰고, 도시를 콘크리트로 뒤덮는 데 수천 억 원씩 쓰면서 아이들 밥 먹이는 것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짓거리입니까? 참으로 한심한 노릇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위 대형교회 목사들이 앞장서서 무상 급식을 반대한다는 사실입니다. 교인들 앞에서 대놓고 무상급식투표 찬성하라고 설교하고 광고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고 선관위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교회 목사들은 대놓고 찬성하라고 떠들었습니다. 심지어는 대량 문자까지 보내 "하나님을 대적하는 곽노현 서울 교육감을 물리쳐야 한다" 고 독려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야말로 교회가 나서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구별하고, 차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기야 이미 대형교회들은 가진 자들만의 "당신들의 천국" 이 되어 버렸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있는 김민웅 목사님이 인터넷 신문에 글을 썼는데 제목이 "미친 교회, 하나님과 대적하다" 더군요. 조금만 소개하겠습니다.
"일부 대형교회는 점차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이미 미친 지 오래일 거다. 권력과 돈과 신도 수와 교회건물의 크기에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 이 땅에서 고통받고 아파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무상이다. 하나님의 축복도 무상이다. 예수가 처형당한 십자가의 희생도 무상이다. 내가 기여한 바가 없다. 바로 그 무상의 원리 위에 세워진 예수 공동체가 이들 대형 교회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진짜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이 정도면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거대한 성채가 되어버린 교회를 보고 제자들이 그 규모와 화려함에 경탄을 하자 예수가 한 발언이 있다.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예수의 몸으로 다시 세워지는 교회가 아니고서는 이 나라의 교회도 맛을 잃은 소금처럼 길에 버려질 운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은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남들보고는 애들 밥 한 끼 먹이려는 걸 가지고 돈 내라고 하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여러분!
성경은 꿈꾸는 자들의 책입니다. 새로운 세상, 사람다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꿈꾸었던 사람들의 꿈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꿈꾸었던 사람들의 꿈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아까 인용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연설에도 성경에 나오는 꿈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그밖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꾸었던 꿈이 나옵니다. 제가 그 중에서 두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신명기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당신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당신들이 참으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명한 이 모든 명령을 다 지키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당신들이 많은 민족에게 돈을 꾸어주기는 하겠지만 꾸지는 않겠고, 또 당신들이 많은 민족을 다스리기는 하겠지만 다스림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시는 땅의 어느 한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동족이 살고 있거든, 당신들은 그를 인색한 마음으로 대하지 마십시오. 그 가난한 동족에게 베풀지 않으려고 당신들의 손을 움켜쥐지 마십시오. 반드시 당신들의 손을 그에게 펴서,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십시오. 당신들은 삼가서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마십시오. 빚을 면제하여 주는 해인 일곱째 해가 가까이 왔다고 해서, 인색한 마음으로 가난한 동족을 냉대하며, 아무것도 꾸어 주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가 당신들을 걸어 주님께 호소하면, 당신들이 죄인이 될 것입니다. 당신들은 반드시 그에게 꾸어 주고, 줄 때에는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이 하는 모든 일과 당신들이 손을 대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당신들은 반드시 손을 뻗어, 당신들의 땅에서 사는 가난하고 궁핍한 동족을 도와주십시오. 그렇다고 하여, 당신들이 사는 땅에서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내가 당신들에게 내리는 명령입니다."
(신명기 15장 4-11절)
또한 예언자 이사야가 꾸었던 꿈의 한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희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
네 의를 드러내실 분이
네 앞에 가실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할 것이다.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 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네가 너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 버린다면,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
너의 백성이 해묵은 폐허에서 성읍을 재건하며,
대대로 버려두었던 기초를 다시 쌓을 것이다." (이사야서 58:6-12)
그렇습니다.
성경은, 특히 구약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 꿈은 이루어졌습니까? 아니면 언제까지나 꿈으로 남아 있을 뿐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보십시오.
초대교회 때 성령에 교회에 임했을 때 그들의 삶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했기에 더 이상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별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8월 초에 연천에 있는 어느 공동체에 가서 MBTI 강의를 하고 왔습니다. 다섯 가정, 이십 여 명이 모여 사는 공동체였습니다. 가서 들어보니까 다섯 가정이 수입이 들어오면 하나의 통장에 넣는답니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공동체와 같은 형태였던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마는 적어도 그런 정신으로 살려고 노력하기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와 더불어 사는 이웃들과 나누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노력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예수가 꾸었던 꿈이고, 이루고자 하셨던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고, 그렇게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꿈은 이루어졌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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