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오시리라(2011.6.5)
본문) 사도행전 1:6-11
“사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그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예수께서 떠나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오늘은 교회절기 상, 그러니까 교회력으로 보면 부활절 제7주이면서 승천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지상에 머물러 계시다가 승천 즉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인 것입니다. 보통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던 기간이 40일이라고 말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것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말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같은 사람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지만 어쨌든 성경에는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났고, 또 살아서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되어 있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것을 통해 성서 저자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예수의 승천 이야기가 과연 어디에, 어떤 형태로 나오는가 부터 살펴봅시다. 네 복음서에 다 나오는지, 나온다면 어떤 형태로 나오는지 먼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면 아시지만 우선 마태와 요한복음에는 승천 기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요? 이렇게 중요한 기사가 복음서 네 권 중 두 군데에 나오지 않는다고요? 한 번 살펴봅시다.
우선 마태복음은 28장까지로 되어 있고, 16-20절이 제일 마지막 부분이니까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
(마태복음 28:16-20)
그렇습니다. 여기 어디에도 예수께서 승천하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분위기는 그런데 막상 승천하셨다는 이야기 자체는 마태복음에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는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제자들과 함께 있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요한복음은 더 말할 것 없습니다. 21장이 마지막 장인데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1-14절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생선도 같이 잡수셨다.
15-19절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씩이나 물으셨다.
20-23절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어떻게 될까 베드로가 물어보았다.
24-25절 복음서 저자와 에필로그
분명히 요한복음에는 ‘승천의 승’ 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서 중 첫 번째로 기록되었다고 알려진 마가복음은 어떻습니까? 다행히 마가복음에는 마지막 구절에 승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들려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 그들은 나가서, 곳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고, 여러 가지 표징이 따르게 하셔서, 말씀을 확증하여 주셨다.”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승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6장 9-20절까지는 후대의 첨가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9절과 20절 앞뒤에는 커다란 꺾쇠가 표시되어 있고, 그 앞인 8절 끝에 관주가 붙어 있습니다. 관주란 본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덧붙여놓은 설명글인데 그 관주를 찾아 읽어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권위를 인정받는 대다수의 고대 사본들은, 8절에서 마가복음서가 끝남.”
비록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에는 9-20절이 기록되어 있지만 권위가 있는 대다수의 사본들에는 그 부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이 기록된 사본들은 대개 후대에 기록된 것들이고, 따라서 이 부분은 후대에 첨가된 내용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마가복음에도 예수의 승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인가요?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이제 남은 것은 누가복음뿐입니다. 우리 모두 아는 대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한 사람의 저자가 쓴 책이고, 따라서 전편과 후편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예수의 승천 이야기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만 나옵니다. 먼저 누가복음 24:50-53절을 읽겠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밖으로〕베다니까지 데리고 가서,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시는 가운데, 그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날마다 성전에서 지냈다.”
비교적 간단한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베다니로 데리고 가서 축복하시고,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찬양하면서 성전에서 지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끝입니다.
여러분, 무언가 부족한 것 같지 않습니까? 이 본문만 보면 어쨌든 예수는 떠나가셨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제자들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제자들이 기뻐하면서, 찬양하면서 성전에서 지냈다 해도 어딘가 마음이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었고, 무언가 불안한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위대하신 주님께서 살아계셔서 곁에 함께 계시는 것하고, 어디 가셔서 다시는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하고는 대단한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제자들의 곁을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는 앞으로 제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라는 물음에 답을 할 필요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기자는 후편을 쓰면서 승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쓰게 되었고, 내용도 보충하게 되었으니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사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이미 승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승천 사건의 의미를 좀 더 확실하게 밝힐 필요가 있었기에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질 때가 언제냐고 제자들이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이루어질지 묻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니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그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 올라가셨는데 그 장면이 누가복음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구름은 바로 하나님의 신비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마치 그 옛날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갔을 때, 십계명을 받아올 때 구름이 둘러싸여서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떠나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했습니다.
“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에게 주어진 세상에 가서 살아라. 그러면 때가 되었을 때 주님께서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즉 재림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승천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재림의 이야기로 넘어가고 맙니다. 그렇게 해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이후 제자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국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바 승천 이야기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놓고 보았을 때 예수의 승천 사건은 승천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되고 맙니다. 예수가 하늘에 올라갔다 아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핵심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예수는 때가 되면 다시 오시마고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서 저자들은 승천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니 아니니, 눈으로 볼 수 있느니 없느니 하는데에는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증인이란 자기가 듣고 본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도 역시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되려면 우리도 예수를 만나고 보아야 하는데 어떻게 가능한가요? 한 마디로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성경에 깊이 들어가 예수를 만나야 하고, 예수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증거해야 하는데 증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곧 믿을 수 있는 증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인이 많다고 해도 거짓말을 일삼는 증인들이라면 사람들이 그 증언을 믿어주겠습니까? 그리고 증인이 믿을 만 하기 위해서는 말과 행실이 일치해야 합니다. 이것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증인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손가락질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은 잘 하는데”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곧 행실이 따르지 못한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므로 예수 승천의 첫 번째 의미는 바로 우리가 신실한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올바른 증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의 표현입니다. 육신으로 살아계실 때는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육신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유대 땅 일대에만 사셨고, 시간의 제한도 받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지역, 그 시간을 벗어난 사람들은 예수와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어느 누구하고나 함께 하신다는 것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2천 년 전 사람들 사고방식으로 예수께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자로서의 표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을 통해서 진정 말하고 싶었던 내용, “예수는 우리와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에 계신 예수께서 지상에 있는 제자들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방법, 그것은 바로 성령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증인들과 함께 하시고,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인가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입니다. 우리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승천 이야기는 다시 오신다는 약속으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승천주일은 바로 예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증인의 삶을 살아간다면 예수께서 우리와 오늘도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우리가 기억하는 날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용기를 잃지 않고, 희망을 품고, 증인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날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셨고, 바로 승천주일의 다음주일이 성령강림절이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우신 분들,
희망이 없는 것 같고 바르게 사는 것이 바보 같아 보이는 분들,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어 다시 일어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11절 말씀을 다시 읽고 마치겠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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