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성도의 삶(2011. 1. 30)
본문) 시편 15:1-5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않으며,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먼저 열왕기상 16:29-33절의 말씀을 읽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유다의 아사왕 제 삼십팔 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스물두 해 동안 다스렸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그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렀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으며, 더 나아가서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였다. 또 그는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의 신전에다가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세우고, 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였다.”
여기 나오는 아합 왕은 오므리 왕의 아들이자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으로부터 치면 일곱 번째 왕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있었던 여섯 명의 왕들 중 그 누구도 하나님께로부터 칭찬받은 왕이 없었지만, 아합은 그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심판받은 왕이었습니다. 30-31절에 이렇게까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그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렀다.”
그렇다면 아합 왕이 그 어느 왕보다 악한 왕이라고 평가받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 읽어드린 말씀에 의하면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아서, 바알 신 숭배를 그 누구보다 열렬히 받아들여 섬기고 예배하였습니다. 또 그는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의 신전에다가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세우고, 바알의 짝이라고 알려진 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바알 신 숭배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렇게도 미워하시고 엄하게 심판하시고 진노하셨던가요? 바알 신 숭배는 한 마디로 맘몬 숭배, 권력의 앞잡이가 되는 것, 성적인 타락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싫어하시는 우상들의 형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에 절하고 경배하면 그 신들이 물질적인 축복을 준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종교와 정치가 결탁하여, 정확히 말하면 종교가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백성들을 탄압하고, 약탈하고, 무자비하게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더구나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의 신전에 있는 제사장들이 남창의 역할을 감당하고, 그들이 성적인 쾌락을 얻을수록 신이 만족해서 더 큰 축복을 내려준다고 가르침으로써 그들의 신전은 매음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알 신 숭배를 엄격히 금하셨고, 거기에 빠져드는 자들을 엄히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혹 구약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잔인하게 이방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셨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라는 하나님을 어떻게 자비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실 때 그런 구절이 나올 때 그 배경을 잘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나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고 그러한 우상들을 섬기는 백성들을 심판하라고 하셨는데 그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한결같이 바알 신 숭배입니다. 그런데 그 바알신 숭배라는 것은 하나님 경배와 정반대 편에 서서 인간을 말할 수 없이 타락하게 만드는 종교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 빠져들까 걱정하셨고, 그래서 그것들을 철저히 십판하도록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이방신을 버리고 돌아오면 언제든지 받아주셨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알신과 아세라 신 숭배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것이 아합 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상숭배에 빠져들었던 아합의 집안을 경고하셨고, 철저히 심판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던 것입니다. 열왕기하 9:1-10절에 이런 기사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예언자 엘리사가 예언자 수련생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너는 허리를 단단히 묶고, 손에 이 기름병을 들고, 길르앗의 라못으로 가거라. 거기에 가면, 그 곳에서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안에 들어가,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그를 불러내어 밀실로 데리고 들어가거라. 그리고 기름병을 기울여 그의 머리에 부으며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하고 말하였다. 그렇게 말한 다음에 너는 문을 열고 속히 도망하여라. 지체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가 길르앗의 라못으로 갔다. 그가 도착하였을 때에, 그 곳에는 군대의 장군들이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장군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자 예후가 말하였다. “우리들 가운데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까?” 그 시종이 말하였다. “바로 장군님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예후가 일어나서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는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말하였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너는 네가 섬기는 상전 아합의 가문을 쳐라. 나는 내 종들인 예언자들의 피와 또 주님의 다른 종들의 모든 피를 이세벨에게 갚으려고 한다. 나는 아합의 가문을 모두 다 멸망시킬 것이다. 그렇다. 아합에게 속한 사람은 매인 사람이건 놓인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남자는 누구나 이스라엘 안에서 끊어버릴 것이다. 나는 아합의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과 같이 만들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과 같이 만들 것이다. 그리고 개들이 이스르엘 땅 안에서 이세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 그를 매장할 사람조차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뒤에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는 문을 열고 도망하였다.“ (열왕기하 9:1-10)
여러분!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앞둔 주일아침에 왜 이렇게 끔찍한 사건을 말하는가요? 듣기 좋은 이야기, 신나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힘든 사건을 말하게 되는 것인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주 설교시간에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된 소와 돼지가 230만 마리요, 닭과 오리가 350만 마리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일주일이 지난 어제까지 통계에 의하면 소와 돼지만 합해도 300만 마리가 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장관들이 기껏 한다는 소리가 지난 정부에서 대응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둥, 농민들이 구제역에 대비하지 않고 골프나 치러 갔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둥 헛소리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격무에 시달린 공무원들만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일부 대형교회들이 맘몬, 권력, 섹스 스캔들에 휘말려 정신없이 싸움질을 하는 바람에 한국교회 전체가 무더기로 욕을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당의 어느 교회 목사님은 연봉 6억 원에 자녀유학비 3억 원을 받았다고 해서 유명해지더니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 목사님은 30억 원이 넘는 교회 돈을 횡령했다고 해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출석한다는 교회에서는 원로목사님파 교인들과 담임목사님파 교인들이 싸우다가 끝내 부목사들이 담임목사를 폭행함으로써 인터넷에 대문짝만하게 났고, 하나님의 영광에 먹칠을 했습니다. 성적인 타락 문제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소위 성직자들은 여기서 차마 옮길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가? 한 마디로 한국교회에 하나님 대신 바알 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물으실 것입니다. 도대체 한국교회가 바알 신을 숭배한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특히 대형교회들이 하나님 대신 바알 신을 숭배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가?
여러분!
아합 왕이 바알 신을 숭배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나봇의 포도원 사건입니다. 열왕기상 21장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열왕기상 21장을 자세하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아합 왕은 궁궐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정원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궁궐 옆에 붙어있던 포도원의 주인인 나봇에게 포도원을 달라고 하면서 그 대신 더 좋은 포도원을 주겠다고, 아니면 돈으로 계산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이 싫다고 하자 왕이 화를 내고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본 왕비 이세벨이 계략을 써서 나봇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았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러자 아합은 못 이기는 척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땅을 나누어주시고, 비록 왕이라고 해도 그것을 빼앗지 못하게 명령하셨는데 바알 신을 섬기는 왕비 이세벨이 계교를 꾸며 나봇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아 앙이 차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정의를 무자비하게 깨뜨리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순전히 권력의 힘으로, 바알 신의 이름으로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엘리야를 통해 아합에게 심판의 말씀을 내리셨으니 열왕기상 21:17-24절에 나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왕 아합을 만나러 내려가거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너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네가 살인을 하고, 또 재산을 빼앗기까지 하였느냐? 나 주가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바로 그곳에서, 그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 이렇게 말하였다. ”내 원수야, 네가 또 나를 찾아왔느냐?“ 그러자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목숨을 팔아 가면서까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만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재앙을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너 아합 가문에 속한 남자는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씨도 남기지 않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없애 버리겠다. 네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죄를 짓게 해서 나를 분노하게 하였으니, 내가 네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처럼 되게 하겠다.’ 주님께서는 또 이세벨을 두고서도 ‘개들이 이스르엘 성 밖에서 이세벨의 주검을 찢어 먹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은, 성 안에서 죽으면 개들이 찢어 먹을 것이고, 성 밖에서 죽으면 하늘의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그렇습니다.
아합이 저지른 죄, 이세벨이 저지른 죄가 너무나 끔찍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여러분, 아합이 섬겼던 바알 신, 그들은 끊임없이 백성들을 착취해서 부를 쌓고,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움켜쥐었으며, 또 그 힘으로 끊임없이 쾌락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바알신을 따르던 무리들이 저질렀던 죄를 오늘날 일부 대형교회들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자 돈이 모였고, 그 돈으로 한 일이 바로 끊임없이 땅 사고, 건물 짓고, 그 돈으로 권력의 앞잡이 노릇하고, 성적인 타락에 빠져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알 숭배 아니고 무엇입니까? 사실 제가 이 설교를 하게 된 것은 사도 베드로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참으로 놀라운 성경구절을 하나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전서 4:15-17절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아무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악을 행하는 자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서 고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우리에게서 먼저 시작되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하겠습니까?” (베드로전서 4:15-17)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도 베드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 누구도 살인이나 도둑이나 악을 행하는 자로 고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런 죄는 저지르면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이뮤만으로 어려움을 당하면 그것은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집을 먼저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를 먼저 심판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면 진정 한국교회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이제 한국교회는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저는 오늘의 본문에서 그 나아갈 길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아름다운 교회들이 이 땅에 많습니다. 그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주님의 장막에 살 수 있고,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입니까?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않으며,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중에서 특히 4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렇게 욕심도 많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교회가 조금 크고, 돈 조금 있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분명히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장막에 거할 수 있다고 증거합니다.
여러분!
참된 성도의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참된 성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올 한 해 바로 그런 성도들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올 한 해가 그런 참된 성도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런 성도들이 되는 축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빕니다.
'2011 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 2. 13 /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 마태복음 24:45-47, 25:31-40 (0) | 2015.04.05 |
---|---|
2011. 2. 6 / 축복선언문 / 마태복음 5:1-12 (0) | 2015.04.05 |
2011. 1. 23 / 아우의 피, 짐승의 피 / 창세기 4:1-16 (0) | 2015.04.05 |
2011. 1. 16 /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 신명기 10:12-22 (1) | 2015.04.05 |
2011. 1. 9 / 침묵의 봄 / 출애굽기 12:29-36 (0) | 2015.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