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의 피, 짐승의 피(2011.1.23)
본문) 창세기 4:1-16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 하와가 말하였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남자 아이를 얻었다.’ 하와는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세월이 지난 뒤에,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가인이 아우 아벨에게 밀하였다. ‘우리, 들로 나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 주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이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너의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이제는 너에게 효력을 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가인이 주님께 말씀드렸다. ‘이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 무겁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쫓아내시니, 하나님을 뵙지도 못하고,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로 벌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가인은 주님 앞을 떠나서,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살았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설교자인 저도 좀 재미있고 여러분이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설교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감리교를 시작하신 웨슬리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설교 준비를 하기에 현실의 문제를 갖고 설교를 하다 보니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드디어, 참으로 기가 막히게도 살처분된 짐승의 수가 무려 580만 마리를 넘어섰습니다. 지난해 11월 말 경상북도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뒤 지금까지 23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되었고, 뒤따라 생겨난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해 살처분된 닭과 오리는 350만 마리를 넘었습니다. 합해서 580만 마리니까 지금 이 설교를 하고 있는 시간에는 이미 600만 마리가 넘었을 것이고, 문제는 이것이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만 구제역에 걸린 짐승을 살처분하기 위해서는 엄격하게 지켜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우선 소나 돼지가 침을 흘린다던지 사료를 먹지 않는다던지 해서 이상증세를 보이면 신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고를 받으면 일단 그 혈청을 수거해서 검사를 의뢰하는 것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답니다. 그래서 만약 양성으로 나오면 그 농장과 주변의 짐승들을 땅에 묻게 됩니다. 그때 반드시 땅을 깊게 파고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아주 큰 비닐을 깔아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짐승들에게 약을 투여해서 죽은 것을 확인한 후 그것을 묻고 그 위에 흙을 덮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동에 사는 농민이 구제역 의심신고를 했는데도 관리들이 그것을 며칠 동안 숨겼고,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대응할 기회를 놓쳤고, 그 사이에 거기에 들어왔던 분뇨차나 사료차들이 멀리 경기도까지 갔고, 그 결과 바이러스는 급격히 퍼져갔습니다. 뒤늦게 무지막지하게 땅에 파묻게 되었는데 땅도 깊게 파지 않고, 콘크리트도 타설하지 않았습니다. 비닐을 깐다고는 했지만 짐승들을 산 채로 집어넣고 흙을 덮었으니 그 짐승들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울부짖고 발버둥치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다 그만 비닐이 찢어지고 그 짐승들의 피가 땅 속으로 흐르다가 지하수를 타고 땅 위로 올라와서 그만 사람이 먹는 물에 피가 섞여 나오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어디선가는 심지어 도로에까지도 피가 흘러나와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몸서리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며 짐승을 키우던 농민들은 물론이요, 그 짐승들을 묻기 위해 동원된 공무원들은 그 짐승들의 아픔과 울부짖음을 듣고는 그 아픔을 함께 겪고 있고, 엄청난 스트레스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쉬지도 못하고 격무에 시달리다가 그만 죽음에 이르는 공무원들도 여럿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엄청난 수의 짐승들이 산 채로 묻힌 채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멀쩡한 강을 살린다고 수십 조 원을 들여 4대강의 모레를 파내고 강둑을 파헤치는 바람에 이루 셀 수 없는 많은 물고기들과 곤충들, 식물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또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생겨난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해 근 600만 마리라고 하는,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수의 생명체가 땅에 묻혀 그 피를 흘리며 아픔과 고통을 하늘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쫓겨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아들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큰아들의 이름이 가인이었고, 작은아들의 이름이 아벨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고, 작은아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어 그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게 되었는데, 당연히 가인은 곡식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짐승 중에서 맏배의 기름기를 하나님께 바쳤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런데 4절 뒷부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는지 창세기에는 그 이유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단지 그 뒷부분에 하나님께서 가인을 향해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가인이 무언가 잘못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창세기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후 많은 유대인 랍비들이나 성서저자들이 그것을 알기 위해 애를 썼고, 그 대표적인 것이 히브리서 11장의 그 유명한 구절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11:4)
어쨌든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니까 가인이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지고, 울그락불그락하고 무언가 심상치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마음속에 나쁜 마음을 품고 죄를 저지르려고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에게 죄의 지배를 받지 말고, 네가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죄를 저지르게 되는데 그것이 8절부터 나오는 말씀, 즉 가인이 아우 아벨을 쳐 죽이는 사건인 것입니다.
“가인이 아우 아벨에게 밀하였다. ‘우리, 들로 나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였다.”
그렇습니다.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아무 일도 없는 척, 그 누구도 보지 못했으니 자기는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은 척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가인은 물론 시치미 떼고 대답합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우 아벨을 쳐 죽이고도 안 죽인 척 시치미 떼고 있는 가인을 향해 준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이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너의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
그렇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피가, 땅을 적시고, 땅 속에 스며든 아벨의 피가 땅에서 하나님께 울부짖는다는 것입니다.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울부짖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아벨의 피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는 가인이 지었는데 가인만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피해가 땅에까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이제는 너에게 효력을 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12절)
그렇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여서 그 피를 흘린 대가로 가인도 저주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땅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밭을 갈고 씨를 뿌려도 곡식이 자라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은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아벨과 같이 억울하게 죽어가며 피를 흘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1956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500만 표를 얻어 당선된 이승만은 216만 표를 얻은 조봉암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신문에 의하면 이승만은 ‘투표에서는 지고 개표에서는 이겼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심한 부정선거 끝에 당선되었다는 것입니다. 조봉암을 살려두었다가는 다음 번 선거에서 질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찰을 시켜 조봉암이 간첩을 만났다고 해서 체포했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간첩혐의에 무죄를 선고했고, 이에 격노한 이승만은 법관들을 협박해서 끝내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선고를 내리게 하고, 대법원에서 재심청구를 기각한 지 불과 17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무려 52년이 지난 2011년 1월 대법원은 조봉암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날 법정에서 재판결과를 지켜보던 조봉암의 막내딸은 나이 82살인데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비석에 아버지가 무죄라는 것을 적어 넣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제 와서 무죄선고를 받았다고 해도 그의 피의 값은 어찌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조봉암의 피의 울부짖음을 이제야 하나님이 들으신 것입니까? 그 억울함은 이제 풀어진 것입니까?
여러분!
저는 이 시간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 속에 묻혀있는 저 수백만 마리의 짐승들의 피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날 것들을 두려운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걸핏하면 백성들을 체포하고, 협박하고, 감옥에 가두는 권력자들, 4대강을 파헤쳐 수많은 생명체들의 삶의 보금자리를 무참히 파괴하는 권력자들, 그리고 끝내 수백 만 마리의 짐승을 파묻게 하고도 그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자 없는 파렴치하고 뻔뻔스러운 권력자들의 죄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두려운 마음으로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광우병 전문가인 서울대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산업사회 이후 인구 급증 등으로 ‘인수(인간과 짐승)공통전염병’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지난 30년 간 신종전염병이 50여 종 등장하는데 75%가 인수공통전염병이죠. 에이즈와 광우병 등. 질병이 일정하게 임계상태에 다다를 때까지는 그다지 심각하게 못 느끼는 법이죠. 이걸 막으려면 산업과 소비문화가 바뀌어야 하는데 자본논리 속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죠.”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끊임없는 부의 축적을 포기하고, 지나친 육식을 절제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과 짐승이,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새 건물 짓고, 더 넓은 차 사고, 살찌우면서 병들어가는 삶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탐욕과 광기에 사로잡힌 악의 세력을 몰아내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들과 모든 생명체의 존엄성을 이해하고 떠받드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이 구제역이나 조류 인플루엔자 같은 질병들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은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의 삶의 문제, 즉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묻는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삶이 창세기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죄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너를 죽여도 된다고 하는 가인과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수많은 짐승들을 죽였기에 그 울부짖음이 하늘에 닿고 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가인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이제 우리의 삶의 목적과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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