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년도

2010. 11. 28 /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 / 누가복음 19:41-44

람보 2 2015. 4. 5. 22:01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2010.11.28)

 

본문) 누가복음 19:41-44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치리니, 너의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너를 사면에서 죄어들어서,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짓밟고, 네 안에 돌 한 개도 다른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시간 먼저 북한의 포격으로 인해 불의를 사고를 당하신 우리의 젊은 아들들인 국군장병 두 분과 연평도 주민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그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며칠 전(11월 23일) 북한군의 포탄이 연평도에 떨어져서 여러 사람이 죽고 다치던 날, 청주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작은 딸아이가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 지금 집으로 가야 되는거 아냐?”

 

무슨 말인지 짐작하시겠지요. 기숙사에 있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전쟁이 날지도 모르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부모가 있는 과천으로 와야 되는 것 아닌가 해서 전화를 한 것이지요.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니까 포탄이 터지고, 불길이 치솟고,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피난을 간다고 하니까 딸아이도 마음이 불안해 진 것이고, 본능적으로 가족들 곁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물론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을 시켰습니다마는 그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너무나 컸습니다.

 

이후 전해지는 보도에 의하면 군인 두 사람과 민간인 두 사람이 죽고, 여러 사람이 다쳤으며 많은 건물이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연평도에 살던 사람들이 인천으로 피난을 갔는데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기가 겁이 난다고 전해집니다.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북쪽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북한군대는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지만 어쨌든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은 엄청난 죄이고, 거기에 대해서는 그 누구라도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이 학술강연이 아니니까 소위 NLL이라고 하는 서해안 경계선 문제라든지 남북 평화 문제 등을 여기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마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화해협력하고 서해안을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당장 북한을 폭격하라고 난리를 치고 있으니 그들은 진짜 전쟁을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떠드는 사람들은 막상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도망갈 사람들이 아니든가요? 그렇게 떠드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도 군대 안가고 자식들도 군대 안보낸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다시금 평화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을지,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이루는 길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평화를 이루는 길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오늘의 본문을 제게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공생애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사건은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가셨다는 것, 사람들이 옷을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다는 것 등은 네 복음서에 비슷비슷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이 다 예수께서 평화를 추구하셨음을 나타내는 것들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으로 삼은 말씀은 오로지 누가복음에만 나와 있기에 저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본문에 의하면 분명히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인가?

 

41절에 의하면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성을 보시고 우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우셨을까요? 그 이유는 43-44절에 나옵니다. 거기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치리니, 너의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너를 사면에서 죄어들어서,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짓밟고, 네 안에 돌 한 개도 다른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43절에 나오는 “그 날들”은 예루살렘 성이 멸망당하는 날입니다. 그날 원수들이 쳐들어와서 토성을 쌓고, 에워싸고, 포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멸망시킬 터인데 그것이 얼마나 처절한지 자녀들이 다 죽고 돌 한 개도 다른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은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기원후 66-70년에 유대 민족이 로마에 반역을 일으켰고, 그 결과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습니다. 이때 유대인 최후의 요새인 마사다 성을 로마군이 공격했습니다. 이때 로마군은 마사다 성과 똑같은 높이의 토성을 쌓아 결국 함락시켰습니다. 수많은 유대인이 죽었고, 예루살렘 성의 성벽도 다 무너지고 그야말로 극히 일부만 남아서 지금 통곡의 벽이라고 하는 흔적으로 당시의 처절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역사가들은 예수의 이 예언을 사후예언이라고 말합니다마는 어쨌든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생각하며 눈물 흘려 우시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인가요? 전쟁과 그로 인한 멸망을 피할 길은 없었던 것인가요?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

 

그렇습니다.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행해야 하는데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고, 처참한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44절 끝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찾아오셨다고요? 그런데 예루살렘이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요?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에게 참된 평화의 길을 보여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을 맞이하는 것이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이요, 예수의 삶을 사는 것이 곧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이시고, 그분을 맞아들이는 것, 그분의 삶을 따라 사는 것이 곧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만이 평화를 주시는 분이시고, 그분을 믿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곧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떤 분이시기에 예수 자체가 평화이시고, 또 그분의 삶을 따라 사는 것이 평화에 이르는 일이던가요? 그분의 삶은 대체 어떤 삶이었던가요?

 

물론 이 물음의 답을 찾으려면 복음서 전체를 다 보아야 하지만 오늘 저는 그 답을 예언자 미가에게서 발견합니다. 미가는 그의 책 4장에서 주님이 오시면 이루실 평화를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 날이 오면,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주님의 산이

산들 가운데서 가장 높이 솟아서,

모든 언덕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우뚝 설 것이다.

민족들이 구름처럼 그리로 몰려올 것이다.

민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그렇습니다.

미가가 예언한 주님, 바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이 평화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분이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시고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치지 않을 것이고, 다시는 군사훈련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평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평화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때가 되면 그냥, 저절로 이루어질 것인가? 아닙니다.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평화에 이르게 되려면 먼저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행해야 합니다. 미가 3:8에 보면 평화의 왕으로 오실 주님께서 미가에게 영으로 임하셔서 그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주님께서 주님의 영과 능력을 채워 주시고,

정의감과 함께,

야곱에게 그의 죄를 꾸짖고

이스라엘에게 그의 범죄를 꾸짖을 용기를 주셨다.“ (미가서 3:8)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미가에게 주님의 영과 능력을 채워 주시고, 정의감과 함께 야곱에게 그의 죄를 꾸짖고 이스라엘에게 그의 범죄를 꾸짖을 용기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는 용기를 내어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인지 꾸짖고 회개하라고 촉구하였으니 9-12절이 그것입니다.

 

“야곱 집의 지도자들아,

이스라엘 집의 지도자들아,

곧 정의를 미워하고,

올바른 것을 모두 그릇되게 하는 자들아,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는 백성을 죽이고서,

그 위에 시온을 세우고,

죄악으로 터를 닦고서,

그 위에 예루살렘을 세웠다.

이 도성의 지도자들은 뇌물을 받고서야 다스리며,

제사장들은 삯을 받고서야 율법을 가르치며,

예언자들은 돈을 받고서야 계시를 밝힌다.

그러면서도, 이런 자들은 하나같이

주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신다고 큰소리를 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에게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 고 말한다.

그러므로 바로 너희 때문에

시온이 밭 갈 듯 뒤엎어질 것이며,

예루살렘이 폐허더미가 되고,

성전이 서 있는 이 산은

수풀만이 무성한 언덕이 되고 말 것이다.” (미가서 3:9-12)

 

그렇습니다.

한 마디로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은 바로 정의를 이루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불의를 심판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돈만 밝히는 것은 죄이니 그런 자들은 심판하고 그 대신 가난하고, 힘없고, 배운 것 없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12절에 나오는 것처럼

“시온이 밭 갈 듯 뒤엎어질 것이며,

예루살렘이 폐허더미가 되고,

성전이 서 있는 이 산은

수풀만이 무성한 언덕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은 바로 정의를 세우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인정받고,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당당하게,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현하는 일만이 참된 평화의 길인 것입니다. 예수는 바로 이 길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85편에서 이렇게 평화의 길을 도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내가 듣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약속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 주님의 성도들이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구원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있으니,

주님의 영광이 우리 땅에 깃들 것입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

주님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시니,

우리의 땅은 열매를 맺는다.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가며,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 (시편 85:8-13)

 

여러분!

예수께서 오늘 한국 땅에 오시면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오늘의 본문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며 눈물 흘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행해야 합니다. 헛된 군사력이나 복수심에 사로잡히지 말고 이 땅에 정의와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것이 아기 예수 탄생을 준비하는 대림절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자들은 다 사라지고 참된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꿈꾸고, 최선을 다해 살겠다고 애쓰는 사람들이 가득 찬 세상이 되기를 진심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