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년도

2010. 11. 21 / 다함께 즐거워하라 / 신명기 16:9-17

람보 2 2015. 4. 5. 20:56

함께 즐거워하라(2010. 11. 21)

 

본문) 신명기 16:9-17

“그로부터 일곱 이레를 세는데, 밭에 있는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시작하여 일곱 이레를 세십시오. 그리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신 복을 따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물을 가지고 와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칠칠절을 지키십시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그곳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당신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것을 기억하고, 이 모든 규례를 어김없이 잘 지키십시오.

당신들은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에서 소출을 거두어들일 때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켜야 합니다. 당신들은 이 절기에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켜야 합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의 모든 소출과 당신들이 손을 댄 모든 일에 복을 주셨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모든 남자는 한 해에 세 번,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서 주님을 뵈어야 합니다. 그러나 빈 손으로 주님을 뵈러 가서는 안 됩니다. 저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에 따라서 그 힘대로 예물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G20이 끝나고 나자 아시안게임이 TV 화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여러 종목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영웅들이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박수갈채를 받고 있습니다. 모두들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몇 개나 딸지, 과연 일본을 제치고 또다시 아시아 2위를 차지할지 궁금해 합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신문에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나오고 그들에 관한 기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합니다. 그들은 엄청난 포상금을 받을 것이고, 남자 선수들 중에는 군대 면제라고 하는 크나큰 특혜도 받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명예와 돈방석을 동시에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있다면 그들과 그의 가족들은 지금 너무나 즐거운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감사가 넘치겠습니까?

 

그런데 똑같이 수고하고 땀을 흘리고도 일단 메달 색깔이 은으로 바뀌면 졸지에 모든 것이 차이가 납니다. 그 동안의 수고와 땀은 다 잊혀지고 뉴스에 거의 보도도 되지 않습니다. 포상금도 물론 적을 것이고, 군대 면제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동메달을 땄거나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이 어떤 대접을 받을지는 너무나 뻔합니다. 그들은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이나 동메달이라고 하는 크나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인데, 또 메달은 따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열심히 훈련하고 시합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인데 단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끄러워하고, 눈물 흘리고, 실패자라는 자책감에 빠지고, 감사의 마음을 품지 못한 채 실망에 빠져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게임이 끝나고 귀국할 때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서겠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일이 또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금메달을 땄으니까 감사하고, 금메달이 아니면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 비율이 얼마나 적은지 아십니까?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45개국 선수들이 참가해서 42개 종목에서 총 476개의 금메달을 놓고 경기를 합니다. 우리나라 선수만 795명이고, 다 합하면 무려 12,000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는데 그 중 금메달을 따는 선수는 단체전 숫자까지 합한다 해도 10분의 1이 안 될 것입니다. 45개 나라 가운데 금메달을 하나라도 딴 나라는 토요일 현재 불과 10여 개 나라이고, 동메달까지 다 합쳐 단 한 개라도 딴 나라가 27개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나머지 20개 나라는 그야말로 참가에 의의를 두는 셈입니다. 그런데 금메달을 따야 성공한 것이고, 은메달은 실패한 것이 되어 버린다면, 금메달을 땄으니 하나님께 감사하고 은메달을 따면 분하고 억울하다면 은메달은커녕 시합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떨어져서 쓸쓸하게 귀국해야 하는 수많은 선수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묻게 됩니다. 과연 금메달을 딴 것만 대단하고 나머지는 다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면 과연 이 세상은 어찌될 것인가? 어떤 광고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인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추수감사절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오늘은 추수감사절, 우리는 과연 무엇을 감사하며 이 날을 맞이하는가요? 이 계절에 아시안게임은 우리가 철저하게 조건부 감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면서 무엇을 설교할 것인가 오랫동안 고민하며 말씀을 보아왔는데, 그리고 온통 올림픽 중계만 나오는 것을 보면서 금메달을 땄으니까,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 수능점수가 잘 나왔으니까, 좋은 학교 들어갔으니까, 교회가 성장했으니까 추수감사절을 기쁘게 맞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과연 그것이 추수감사절의 참된 의미인가? 교회에는 그런 사람들만 모여있는 것인가? 를 묻게 되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금메달을 딴 선수보다는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사람이 더 많고, 그마저도 따지 못해 쓸쓸하게 돌아서야 했던 선수들이 훨씬 더 많음을 기억한다면 이제 우리는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 근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하신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신명기 16장에 유대인의 3대 명절의 기원이 밝혀져 있습니다.

1- 8절 유월절 --> 해방절, 이집트에서의 해방을 감사하는 날

9-12절 칠칠절 --> 맥추감사절, 첫 열매를 거둔 것을 감사하는 날

13-17절 초막절 --> 추수감사절, 추수의 마무리를 하고 감사하는 날

 

3대 명절 중 두 가지가 추수와 관계된다는 것은 농경사회였기에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가지의 추수감사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칠칠절과 초막절에 주신 말씀이 조금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우선 칠칠절에는 무엇을, 왜 감사해야 하는가? 1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것을 기억하고, 이 모든 규례를 어김없이 잘 지키십시오.”

 

그렇습니다.

이 날은 물론 처음 타작을 하고 포도주를 거두어들이는 것을 감사하지만 동시에 그 뿌리는 민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 하던 데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개인적인 감사가 아니라 민족공동체를, 우리 모두를 기억하고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나타내는 날인 것입니다.

 

초막절은 조금 다릅니다. 1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의 모든 소출과 당신들이 손을 댄 모든 일에 복을 주셨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날은 농사짓고, 가축 키우며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단순히 농사가 잘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농사라는 것이 어찌 해마다 다 잘 될 것입니까? 요즘 같이 농기구가 발전하고 비료가 발전한 시대에도 흉년이 드는 해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 모두 아시지요? 그런데 그 옛날 유대 땅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곳은 원래 비옥한 땅이 아닙니다. 아주 거칠고 광야같은 땅입니다. 토지는 척박하고, 비는 잘 오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니 가나안 땅은 농사가 잘 되는 것이 쉽지 않은 땅입니다. 수확이 풍성하기가 쉽지 않은 땅입니다. 어쩌다 풍년이 들면 고마운 일이고, 그렇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곳이 유대땅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먹고 산다는 것이 녹록치 않은 곳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15절은 결코 농사가 잘 되고, 가축이 잘 자라고, 사는 것이 풍성하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에 관계없이 삶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기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근본적인 정신인 것입니다. 만일에 모든 것이 다 잘 되었기에 감사하라면 농사가 잘 되지 않은 해에는 추수감사절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농사가 잘 된 해에만, 돈을 많이 번 해에만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과연 그렇습니다. 해마다 칠칠절,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조건에 관계없이, 농사가 잘 되든 못되든 관계없이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칠칠절과 초막절 모두에 다 나오는 구절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1절과 14절의 말씀입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그곳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11절)

“당신들은 이 절기에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14절)

 

그렇습니다.

칠칠절이든 초막절이든, 맥추감사절이든 추수감사절이든 나와 내 가족만 먹고 마시며 감사할 것이 아니라 불쌍한 이웃들과 더불어 함께 감사절을 즐기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절의 핵심은, 하나님의 명령의 핵심은 이웃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혼자서, 가적들끼리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지 말고 이웃들과 더불어, 그것도 가진 것이 없는 불쌍한 이웃들과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사절의 참된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 아시지요?

그 옛날 18세기 후반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 처음 건너가서 처음 추수감사절을 지낸 계기를 다 아시지요? 농사를 지었지만 잘 되지 않아서 다 굶어죽게 되었을 때 그 땅에 먼저 살던 인디언들이 먹을 것을 청교도들에게 나누어 주었지요. 그래서 그 추운 겨울을 나게 되었고 그들이 그 다음해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하게 되었을 때 자기들끼리 먹고 마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도와준 인디언들을 청해서 그들과 함께 잔치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던 것이 감사절의 모습이었지요. 그리고 그것이 한국으로까지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추수감사절도 그렇고, 미국에서 처음 추수감사절을 지켰던 청교도들도 그렇고 그들은 결국 자기들만 잘 먹고 살게 된 것을 감사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렸던 것입니다. 과연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 정신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 모두 어떤 마음을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있습니까? 한국교회가 어떤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추수감사절의 처음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날이 기독교인들만 어울려 먹고 마시는 날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제목을 “함께 즐거워하라”고 잡은 것입니다.

 

이 절기를 보내며 우리가, 한국교회가, 한국사회가 이 정신을 회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축복이 있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