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라를 구하여라(2010.10.3)
본문) 누가복음 12:22-34
“예수께서 〔자기의〕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가’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은 음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다.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제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걱정하느냐?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의 온갖 영화로 차려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푸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 (표준새번역 개정판)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 최대의 관심은 뭐니뭐니해도 배추값입니다. 얼마 전부터 식당에 가면 김치를 잘 안 준다고 하더니 마침내 김치가 금치가 되고, 배추 한 포기에 만 오천 원이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웬만해서는 집에서 김치를 담가먹는다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곧 다가올 김장철에 어떻게 김장을 담글 것인지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그래도 역시 대통령께서 기가 막힌 해결책을 내놓으셨습니다. 위대하신 가카께서는 담당자들한테 앞으로는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로 담근 김치를 내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친절하게도 백성들도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김치를 먹으라는 교시를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양배추도 한 통에 만 원이 넘는답니다. 제가 배추김치보다 양배추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자주 사다먹는 편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웬만큼 큰 것을 5,000원이면 샀었습니다. 집 앞에 오는 트럭 채소가게 아주머니가 단골이라고 해서 천 원씩 깎아주시고는 했기에 주로 거기서 사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너무 비싸서 사다놓을 수가 없어요.”
배추김치가 비싸니 양배추 김치를 먹으라는 가카의 말씀을 듣고 두 가지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파리 시민들이 빵을 달라고 요구하자 왕비였던 마리 앙뜨와네뜨가 했던 말,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였지요. 또 하나는 요즘 뉴라이트들이 끔찍이 존경하는 이승만 대통령이 했던 말입니다. 국민들이 쌀을 달라고 아우성친다는 말을 들은 이승만 대통령 왈, “쌀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된다.” 참으로 위대하신 분들입니다.
요즘 품귀현상을 빚는 것이 그나마 김치라서 이 정도지 만약 우리의 주식인 살이 이렇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쌀값이 지금보다 열 배 정도 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군가 그러겠지요? 라면 먹으면 된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옛날보다 먹을 것이 많아진 것인가요? 그래도 굶어죽는 사람은 없어진 것이어서 다행인가요? 시인 도종환은 먹고 살기가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 굶기를 밥 먹듯이 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을 다음과 같은 시와 글로 남겨 놓았습니다.
“둔내장으로 멸치를 팔러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미루나무 잎들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얇은 냄비에선 곤두박질치며
물이 끓었다.
동생들은 들마루 끝 까무룩 잠들고
1군사령부 수송대 트럭들이
저녁 냇물 건져 차를 닦고 기름을 빼고
줄불 길게 밝히며
어머니 돌아오실
북쪽길 거슬러 달려가고 있었다.
경기도 어딘가로 떠난 아버지는 소식 끊기고
이름 지을 수 없는 까마득함들을
뚝뚝 떼어 넣으며 수제비를 끓였다.
어둠이 하늘 끝자락 길게 끌어
허기처럼 몸을 덮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국물이 말갛게 우러나던 우리들의 기다림
함지박 가득 반짝이는 어둠을 이고
쓰러질 듯 문 들어설 어머니 마른 멸치 냄새가
부엌 바닥 눅눅히 고이곤 하였다.“ (도종환, ‘꽃밭’ 전문)
도종환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매일 저녁 팔다 남은 멸치 부스러기를 넣어 끓인 국물에 수제비 정도는 끓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마저 떠난 뒤에는 먹을 양식이 있다 없다 했습니다. 아르바이트 해서 연탄을 사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연명을 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저녁을 굶고 학교에 남아 밤공부를 하다 허기를 못 참아 있는 돈을 다 털어 내가 마련할 수 있는 것이 건빵 한 봉지뿐이던 날도 있었습니다. 쌀이 떨어진 걸 보고 친구들이 자루를 들고 여러 친구 집을 다니며 한두 됫박씩 걷어다 마루에 던져두고 간 날도 있었습니다.
수업료를 안 낸 사람이 나 혼자라서 교무실에 불려갔는데, 언제까지 낼 수 있느냐고 묻는 담임선생님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까지 줄 수 있는지 물어볼 어머니 아버지가 옆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강둑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쪼그려 앉아 울었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노래했는데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가난함과 외로움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불과 3, 40년 전의 일입니다. 도종환을 비롯한 대부분의 백성들이 그렇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아마 이 방송을 들으시거나 제 설교를 들으시는 분들 중에 나이가 어느 정도 되신 분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들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하물며 2,000년 전 예수 시대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여러분!
예수께서 이 말씀을 누구한테 하신 것입니까? 창고에 곡식을 그득하게 쌓아놓고, 철마다 갈아입을 옷을 옷장에 빼곡하게 쌓아놓은 사람들한테 하신 말씀입니까? 먹을 것, 입을 것 전혀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한테 하신 말씀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저는 지난 두 주일의 설교를 통해 잔치에 대한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기억하시지요? 하나는 5병 2어의 사건에 참여했던 무리들이요, 또 하나는 38년 동안 중풍을 앓았던 병자였습니다.
우선 5병 2어의 사건에 참여했던 무리들, 적게는 5천 명이요 많게는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엄청난 수의 무리들이 모였는데 그들 중 그 누구도 한 끼를 때울 음식조차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누가복음 9:13)
요한복음에 의하면 이것마저도 제자들이 원래 갖고 있던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 하나가 갖고 온 것이니 제자들은 그것마저도 없었던 것입니다. 혹 마태복음을 따른다면 제자들이 갖고 있는 것을 통틀어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4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 (마태복음 14:17)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과 열두 제자만 해도 열세 명입니다. 모두 다 장정들이지요. 사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면 장정 한 사람이 먹기에도 부족한 양입니다. 그런데 열 세 명의 장정들이 무리지어 다니는데 먹을 것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거기다 따라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병자들과 그 보호자들이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예수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으로 앓는 모든 환자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과 간질병 환자들과 중풍병 환자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마태복음 4:24)
이렇게도 아프고 치료받을 데 없는 사람들이 몰려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돈을 갖고 왔겠습니까? 먹을 것을 갖고 왔겠습니까? 또 예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 돈 내놓으라고, 먹을 것을 갖고 오라고 그러셨겠습니까? 그냥 돈 한 푼 없이, 빵 한 조각 없이 오면 고쳐주고 먹여주고 하신 것이지요.
38년 된 중풍병자는 더 말 할 것 없겠지요? 그야말로 모든 것 다 잃고, 모든 사람 다 떠나가고 빈털터리, 외톨이가 되어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주님,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 여러분!
이런 사람들한테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수께서는 대체 무엇을 믿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예수는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와 제자들 그리고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하늘을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을 보면서 위로와 희망을 얻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늘과 땅 외에 달리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까마귀를 보리고, 백합화를 보라고, 그것들을 보고 위로와 희망을 갖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 많은 사람들, 권력자들 의지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저 까마귀를 보고 백합화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먹이시고 키우시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이 많기에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등장하는데 오늘의 본문 바로 앞부분입니다. 누가복음 12:16-21절에 아주 유명한 부자가 한 사람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밭에서 아주 많은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싸놓을 곳이 없을 만큼 많은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부자는 말했습니다. “이제 창고를 허고 더 크게 짓자. 그래서 모든 곡식을 거기다 쌓아놓자.” 그리고 부자는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자, 이제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는 남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움켜쥐고 내 배만 불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나만 즐기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부자는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둘 만큼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조금도 나누어줄 줄 몰랐습니다. 주위에 배고픈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움켜쥐고, 제 배만 부르게 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부자들에게 의지할 수 없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입니까? 까마귀와 백합화를 통해 위로와 희망을 보는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그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옵니다. 제가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란 대체 어떤 나라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대체 어떤 나라이기에 그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도 주시고 마실 것도 주신다는 말입니까? 저는 그 대답이 32-34절이라고 분명히 믿습니다.
32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33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푸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 재물을 쌓아두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나도 형편이 어렵지만, 나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해야 하는 형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두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재물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곳, 그렇게 서로 가진 것이 넉넉하지 않아서 시시때때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게 되고 기껏 위로받을 것이라고는 하늘에 나는 새, 들에 핀 백합화들을 하나님께서 먹이시니까 나도 먹이실 것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까마귀나 백합화를 통해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고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습니다. 저는 요즘 몇 달째 어느 집사님이 보내주시는 쌀로 밥을 해 먹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자기 식구들 먹을 쌀을 살 때 목사님 댁 것까지 같이 주문한다고 하면서 보내주십니다. 쌀만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잡곡도 함께 보내주시기 때문에 아주 맛있는 밥을 먹습니다. 밥 먹을 때마다 그 집사님을 생각하며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제가 전해 듣기로는 그 집사님네도 결코 넉넉한 가정이 아닙니다. 아들만 셋이 있는데 다 큰 아들 셋이 먹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는 분들은 아시지요. 남편이 직장생활을 하는데 벌이가 좀 그런 것 같고, 이 집사님이 조그만 개인사업을 하시는데 악착같이 버는 것이 아니기에 남는지 안 남는지 모를 정도랍니다. 더구나 큰아들이 소아당뇨라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고, 그 뒷바라지만 해도 벅찬 일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당신네 사는 형편도 너무나 힘든 상황인 것을 제가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가정에 쌀을 공급해 주시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에게 시시때때로 도움을 주시는 많은 분들의 손길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손길을 통해 저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하나님 나라의 도구들임을 기억합니다. 물론 저도 가능한 한 저보다 어려운 분들을 도우려 애쓰고 있고 또 우리 아이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도구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많은 분들의 삶이 너무나 팍팍한 시절입니다.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시절입니다. 바로 이러한 시절, 당신도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팍팍하고 힘든 삶을 사셨지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실 만큼 힘든 삶을 사셨지만 그래도 당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주시고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5병2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모든 환자들을 다 고치실 수 있었지만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번도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셨던 그 예수를 여러분 모두 만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이 꿈꾸셨던 하나님의 나라, 그분이 이 땅에 이루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만들어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언제나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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