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눈물/2010년 1월 10일
본문) 마태복음 26:69~75
"베드로가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한 하녀가 그에게 다가와서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닌 사람이네요." 베드로는 여러 사람 앞에서 부인하였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서 베드로가 대문 있는 데로 나갔을 때에,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하고 다시 부인하였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조금 뒤에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틀림없이 그들과 한패요. 당신의 말씨를 보니, 당신이 누군지 분명히 드러나오." 그 때에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말하였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바깥으로 나가서 몹시 울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자, 이제 우리는 오늘과 다음주, 두 주에 걸쳐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대표하는 두 인물, 베드로와 가룟 유다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은 나름대로 열두 제자들 중에서 두드러진, 대표할 만한 인물들입니다. 베드로는 그야말로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이후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중심이 된 인물입니다. 다른 하나, 유다는 배반자로 낙인찍혀 2,000년 동안 온갖 비난과 모욕을 다 당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유다복음서라는 책을 통해 무언가 신비의 인물이라고 관심을 갖게 만든 인물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두 사람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수제자요, 교회의 반석이 된 인물, 특히 마태복음 저자인 마태가 대단한 존경심을 갖고 높였던 인물, 베드로. 그가 오늘의 본문에서 일생일대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가 얼마나 깊은 수렁에 빠졌는지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울러 그가 어떻게 거기에서 빠져나왔는지도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우선 베드로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가? 마태복음에 의하면 베드로는 예수께서 부르신 열두 제자 중 맨 처음에 부르신 제자였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형제간인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복음 4:18~20)
그러니까 베드로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맨 먼저 부르신 제자였고, 베드로는 예수의 부르심을 받자 곧 따라나섰습니다. 그것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물을 버리고 즉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라나섰던 결단의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 열 두 제자 명단이 나오는데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첫 번째 제자가 바로 "베드로라고 부르는 시몬"입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이 있고나서 제자들이 먼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되었을 때, 그만 풍랑이 불어 배가 흔들리고 고생할 때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가셨습니다. 모두들 유령인 줄 알고 놀랐고, 예수께서 제자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 그때 바다 위로 뛰어 들어 물 위를 걸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주님께서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 (마태복음 14:18~19)
바다 위로 뛰어들었다는 것, 아무리 베드로가 고기잡는 어부라 하더라도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찌 보면 용감하지만 또 어찌 보면 무모한 일입니다. 어쨌든 이 사건은 베드로가 얼마나 용감한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역시 16장에 나오는 신앙고백입니다.
"예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 (마태복음 16:13~19)
베드로는 이렇게 용감하기도 하고, 또 훌륭한 신앙고백으로 칭찬을 듣기도 했습니다마는 예수께서 당신의 고난을 예고하셨을 때 유일하게 그것을 막아섰고, 그 바람에 주님께 심한 꾸중도 들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 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께 대들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 (마태복음 16: 21~23)
그러나 어쨌든 이 모든 기록들은 베드로가 명실상부하게 열두 제자를 대표하는 수제자요, 주님의 죽음을 막아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자인 것을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그럴 용기도 있는 사람이고, 또 의리의 사나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죽기를 각오하고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오늘 밤에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마태복음 26:31~35)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오.
그 용감한 베드로가, 의리의 사나이 베드로가 죽기를 각오하고 맹세하고 나서 불과 몇 시간 만에 참으로 비참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배반했던 것입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예수께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서 재판을 받으실 때,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그래도 베드로만은 도망가지 않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를 뒤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마당에까지 갔다. 그는 결말을 보려고 안으로 들어가서, 하인들 틈에 끼여 앉았다.“ (마태복음 26:58)
베드로는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두려워서 몰래 숨어 있는 것입니다. 하인들 중의 한 사람처럼 행세하며 끼어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베드로가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한 하녀가 그에게 다가와서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닌 사람이네요.' "
보십시오.
우선 베드로의 위치에 미묘한 변화가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집 안마당" 에까지 갔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안뜰 바깥쪽" 에 앉아 있습니다. 예수께서 재판받는 과정을 지켜보니까 일은 다 틀린 것 같고, 아무래도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 같고, 그리고 나면 적대자들은 예수의 제자들을 잡아 죽이겠다고 나설 것 같고, 그러니 여차하면 도망가기 위해서 바깥쪽으로 빠져 나와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만 마지막 순간에 정체가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당신도 저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닌 사람이네요.' 베드로는 놀라서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여러분!
70절에 보면 "베드로는 여러 사람 앞에서 부인하였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사실 정확히 표현하면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였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한두 사람 앞에서 예수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배반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는 잽싸게 도망을 갑니다. 71절입니다.
"그리고서 베드로가 대문 있는 데로 나갔을 때"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겁이 나서 부리나케 대문 있는 데로 도망을 친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만 다른 하녀 하나에게 다시 들키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분명히 예수의 제자라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를 따라 다니던 것을 그 하녀가 직접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하고 다시 부인하였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아마도 베드로는 이때 받은 충격이 너무나 커서 빠져 나갈 생각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주님을 배반하고는 그 자리에 붙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뒤에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베드로를 향해 말했습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그들과 한 패요. 당신의 말씨를 보니, 당신이 누군지 분명히 드러나오."
그렇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갈릴리 지방 사람들이 쓰는 사투리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나 그 지역 사람들만이 쓰는 독특한 말투가 있습니다. 그것은 급할 때,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와서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고 맙니다. 예루살렘에서 살던 사람들이 듣기에 갈릴리 어부 출신인 베드로의 말투는 분명히 차이가 있고, 그것으로 보아 베드로가 예수 일행인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제 결정적인 표현이 나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며 말하였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
여러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예수의 적대자들은 베드로를 향해 두 번은 "예수와 함께 다닌 사람" 이라고 표현하고, 한 번은 "예수와 한 패"라고 표현함으로써 예수의 제자란 어떤 사람들인지를 밝혀 줍니다. 즉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와 함께 다니는" 사람들이요, "예수와 한 패"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예수와 함께 다니는 삶을 살아야 하고, 예수와 한 패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서 ‘저 사람은 예수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예수와 한 패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베드로의 배반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예수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우선 그는 예수를 "그 사람" 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가룟 유다보다도 못한 위치로 떨어지고 맙니다. 가룟 유다는 적어도 예수를 "랍비" 라고는 불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두 번씩이나 예수를 "그 사람"이라고 부름으로써 자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첫 번째는 모호한 대답을 하더니 두 번째는 맹세를 하면서 부인했고, 마지막에는 저주하면서까지 주님과 자기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대답합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내가 저 사람을 알면 내 성을 간다’는 것이고, “내가 저 사람을 알면 하나님이 나를 벌하실거다‘라는 표현일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연약한 인간,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자기 하나 살기 위해 저주하면서까지 맹세하는 나약한 인간, 이것이 바로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나약한 모습을 보여 주고 베드로는 거기서 빠져 나옵니다.
누가복음 22장에는 참으로 기가 막힌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보시오. 나는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 베드로가 아직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곧 닭이 울었다. 주님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똑바로 보셨다." (누가복음 22:60~61)
그러니까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을 예수께서 들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듣지 못하시는 곳에서 ‘나는 저 사람을 모른다’고 대답한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옆에서 뻔히 들으시는데 바로 거기서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배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똑바로 쳐다보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 때 눈이 마주쳤겠지요. 그때 주님의 심정이 어떠셨을까요? 그렇게도 자기를 따라다니고 배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하는 소리를 들이시는 주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아마도 그 순간에도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겠지요.
어쨌든 베드로는 그 마지막 순간에 주님의 가르침을 잊어버렸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할 것이다." (마태복음 10:32~33)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했으니, 그것도 주님께서 직접 들으시는 현장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했으니 이제 주님께서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베드로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베드로의 인생은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 자기에게 했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가서 몹시 울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차이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끝내 회개하지 않았지만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구원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언제든지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도 아십니다. 그런데 똑같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 중에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구원받지 못하는가? 구원으로 이르는 유일한 길, 그것은 바로 회개의 눈물입니다. 베드로는 바로 그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그래서 그는 다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안다고 증거하며 사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바라보고 계신 주님의 눈길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안다고 하면서 살아가는지, 모른다고 하면서 살아가는지 보고 계시는 주님의 눈길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연약하여 주님을 모른다고 했을 때 필요한 것, 회개의 눈물입니다. 우리 모두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주님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태복음강해(06.9.17-10.4.18) > 2010 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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