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년도

1983. 9. 18 / 감사함으로 찬양하라 / 골로새서 9:12-17

람보 2 2015. 3. 5. 16:45

감사함으로 찬양하라 (1983. 9.18 )

감사함으로 찬양하라

골 9:12-17 / 1983. 9.18

우리 교회의 1년 계획표를 보면 매주 설교의 주제가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도 보시면 아실 수 있듯이 오늘의 주제는 “찬양”입니다. 우리 성가대도 거기에 맞춰 부를 것 같습니다. 주제가 다 나와 있으니까 아마 설교 준비가 쉬울 거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리 1년치를 준비해 놓을 수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괜히 바쁘게 지내다가 월요일이 되면 주제를 보게 되고 다급해집니다.

이번에도 “찬양”이라는 주제로 무엇을 말씀드릴까 이것저것 생각하고 기도했지만 좀처럼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괜히 이책 저책 뒤적였지만 무언가 딱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무언가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어수선할 때 짧은 글들이 실린 명상집이나 기도집들을 읽습니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성 바오르 여자 수도회에서 엮은 “당신이 계시기에”라는 책이었습니다.
한 쪽에는 짧은 성구가 두 구절 정도 나오고 다른 한 쪽에는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찍은 사진과 짤막한 글이 실린 책입니다. 그 책을 펴들었을 때 바로 제 눈에 다음의 글이 들어왔습니다.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바로 오늘의 본문인 골로새서 3:16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책을 내려놓고 당장 성경을 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골로새서 3장을 쭉 읽어 내려갔고 15절로 17절을 본문으로 삼았고 제목도 본문에서 뽑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이미 본문 자체와 제목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할 것을 믿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 된지도 벌써 한참 지났습니다. 지난 여름방학은 유난히도 무덥고 땀을 많이 흘린 계절이었습니다. 특별히 여름방학은 교회학교 각 부의 여름 수련회가 계속되는 때이기 때문에 몹시 긴장되고 피곤한 날들입니다. 유치부 여름성경학교부터 시작해서 청년부 여름수련회까지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지냅니다. 그건 저만이 아니고 목사님이나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어른들과 선생님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각 부 수련회 중에서 제일 피곤한 것은 분명히 미안하게도 중고등부 수련회입니다. 유치부는 물론이고 어린이부는 그래도 말을 잘 듣습니다. 1학년 꼬마들이 신통하게 울지도 않고 잘 지냅니다. 6학년들은 너희들이 잘 해야 된다고 한마디 하면 동생들을 아주 잘 보살펴줍니다. 대학부나 청년부 쯤 되면 자기들이 알아서 다 합니다. 문제는 중고등부입니다.

이제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나흘 지내는 동안 어떤 친구는 청소를 열심히 했고, 어떤 친구는 설거지를 열심히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막힌 하수도를 뚫기 위해서 구정물을 뒤집어썼던 친구를 기억하며, 촌극에서의 진지한 모습들을 기억합니다. 졸리면서도 자기 먹을 것 찾아 먹느라고 애쓰던 친구를 기억하고 어린이부가 쌀을 남기고 갔는데 여러분이 너무 쌀을 적게 갖고 오고 먹기는 많이 먹어서 쌀을 3万원어치나 더 사야했는데도 불구하고 벽신문에다가 “도착하는 날 빵을 주다니, 쌀 한끼분은 어디로 갔나”라고 외치던 그 입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갈릴리 예배와 세족식에서의 여러분의 그 진지했던 모습과 Camp Fire에서의 여러분의 정열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여름 수련회 때 열심히 지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새삼스럽게 다 지나간 수련회 이야기를 다시 꺼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시한번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생각해 봄으로써 우리의 보다 나은 내일을 계획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여름 수련회 기간 동안 선생님들은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그 날 진행되었던 프로그램을 반성하고 다음 날의 순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셋째 날 순서가 다 끝나고 그날도 역시 본부에 모여서 말씀들을 나누시다가 Camp Fire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선생님들이 정말 진지하게 오랜 시간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때 가장 큰 문제는 소위 Go Go Time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후에 결국은 계획했던 대로 시간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모든 선생님들의 의견이 모아졌고 마지막 날 프로그램은 진행되었습니다. 특별히 진행을 맡은 선생님들이 피곤한 가운데도 잘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 제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하나의 물음이 있습니다.
“수련회에 와서 Go Go, 또는 Disco를 추는 것이 과연 어떤 신학적인, 신앙적인 의미가 있는가?”
사실 이 물음은 제 스스로 생각해 낸 물음은 아닙니다. 그 때 Go Go Time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어느 선생님이 던진 물음입니다. 그런데 그 물음이 저에게 와서 부딪쳤고 그 후 계속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여름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저는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고, 의례 하는 것이려니 라고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련회를 다녀와서 두 학생의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데서 다하는데 뭐 어떠냐? 라고 하는 사람과 ”세족식 때의 감격이 다 깨져버렸다. 고고 타임은 빼버리는 게 좋겠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저는 춤출 때 그 학생들의 그 열정적인 모습과 음악이 끝나고 난 후의 그 허전해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찬양”을 생각합니다.

제가 이제 오늘의 본문을 12절부터 공동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성도들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한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십시오. 그리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든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 분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그리고 선생님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성도들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우리들에게 바로 이런 사실에 대한,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라고 하는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도들이라는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이라는 사실.
바로 이런 사실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있습니까? 한 마디로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에게서 물려받아야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예수 믿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교회에서 가는 수련회가 다른 그 어떤 집단에서 가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다고 하면, 남들 다 하는데 우리는 기분 좀 내면 어떠냐 하는 정도뿐이라고 하면 수련회의 의미는 없어집니다. 예배 시간에는 졸고, Camp Fire에만 신난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비록 Go Go Time이나 Disco Time이 없어도, 화끈하게 춤추고 친구들에게 평소 실력을 마음 놓고 자랑할 수 있는 기회가 비록 없을지라도 존경하는 선생님과 사랑하는 친구들이 옆에 있고, 어머니들이 땀 흘려 해 주신 밥을 서로 둘러앉아서 함께 감사의 기도할 수 있고, 쌀을 조금 냈어도 밥 더 달라고 소리칠 수 있고, 개울가에서 물 먹이고 신나하고, 물먹고 자랑스러워하고 나란히 누워서 평소에 못 다한 이야기를 소근거릴 수 있고 그리고 거기에다 힘차게 찬송하고, 열심히 기도할 수 있다면 그리고 열심히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의 성경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이 자랑스럽고, 수련회 잘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어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서로 도와주고, 서로 용서하고,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문장은 명령형입니다. 그렇게 하기가 몹시 어렵지만 적어도 열심히 노력은 해야 합니다. 제 자신을 생각해보면 몹시 차고, 날카롭고, 잘 쏘아붙이고, 야단도 많이 칩니다. 그리고는 금방 후회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도와주려고 애쓰고, 용서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다. 그리고 적어도 마음으로부터 미워하고 멀어지는 일이 없도록 애쓰십니다.

그 다음 15절에는 바울의 희망이 나옵니다.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해 우리는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한 몸”은 바로 교회이며, 교회는 바로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한 몸이 되는 때가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의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학생과 선생님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주일 아침에 드리는 이 예배는 바로 지난 1주일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는 시간이며 동시에 앞으로의 1주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구하는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이 예배는 결코 바쁘다고 빠지고, 무슨 일이 있다고 안 나오고, 꿈지럭꿈지럭하다가 늦고,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이 예배시간에 걸핏하면 빠지고, 매일 늦는다면 좀 문제가 아닌가요?

이제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은 16절에서 세 가지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우리 안에 살아 있기를 기원하는 것.
둘째는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는 것.
셋째는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고등부 토요집회 때 김 광옥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적어도 고등부쯤 되면 모였을 때 성경말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신앙문제도 이야기되고 그랬으면 좋겠다고요. 옳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알려고 애쓰고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풍부한 생명력으로 우리에게 함께 하실 것입니다.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충고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배워야 합니다. 단순히 지식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성서와 찬송가와 신령한 노래, 결국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찬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에 넘치는 마음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진정한 마음으로 라는 구절을 진지한 태도로 라는 말로 바꾸고 싶습니다. 진지한 태도로 찬양하라.

학생 여러분, 아마 중고등학생 때는 팝송을 제일 좋아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head phone 을 끼고 팝송을 들을 때 얼마나 진지하게 듣습니까?
사람들 앞에서나 친구들과 어울려 유행가를 부를 때 얼마나 신나게 부릅니까?
눈을 지그시 감고, 감정을 풍부하게 넣어서 잘 부르려고 애쓰지 않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찬송가를 부를 때는 어떻습니까? 아니 복음송을 부를 때는 어떻습니까?
예배시간에 오면서 찬송가도 안 가지고 오는 경우는 없습니까?
심지어 성가대석에 앉으면서도 찬송가가 없다거나 아니면 제일 작은 찬송가 하나 뒷주머니에 차고 왔다가 찬양하러 일어나서는 그나마 안으로 접어서 손 안에 집어넣고 찬양하지는 않습니까?
찬송가를 부를 때와 유행가를 부를 때 어떤 때에 더 진지하고 마음을 다한 노래를 부르십니까?

제가 집에서 저녁 때 책 보노라면 밤 10시 이후에 꼭 방망이 휘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내다보면 어김없이 고등학생 하나가 야구 배트를 휘두릅니다. 한참 휘두르다가 그것을 놓고 달리기를 합니다. 이쪽저쪽으로 막 뛰고, 공 잡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또 휘두릅니다. 거의 매일 2시간 이상합니다. 어느 학교 선수인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연습합니다. 그 때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습니다. 실지로 공이 날아오는 것처럼 수비자세를 취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찬양을 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찬송가 부를 때도 진지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살 수 있습니까? 그리고 찬송이 진지하지 못하고 우리의 삶이 진지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바로 매일 매일의 삶을 감사함으로 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바로 찬양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입으로 찬양하고, 우리의 삶 전체로 찬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감사함으로 찬양하라”는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그리고 그 결과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찬양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골로새서 3:10에서 말하는 새사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