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년도

1983. 8. 14 / 내 백성을 위로하라 / 이사야서 40:1-11

람보 2 2015. 3. 5. 16:43

내 백성을 위로하라 (1983. 8. 14 )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0:1-11 / 1983. 8. 14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1973년 여름, 세계의 통신사들은 위대한 한 음악가의 죽음을 사람들에게 알렸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잃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위대한 첼리스트로서 음악가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기에 사람들로부터 “음악의 철인(哲人)”이라고 불리었던 그의 이름은 파블로 카잘스입니다. 이 때 그의 나이 96세였습니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파블로, “미술의 철인”이라고 불리었던 피카소.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카잘스는 현대 스페인이 자랑하는 위대한 예술가였습니다. 두 사람의 파블로, 피카소와 카잘스. 그 두 사람은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이 같고, 조국이 같고, 똑같이 오래 살았고, 똑같이 유명해 졌고,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있어서 똑같은 것 한 가지, 그것은 바로 피카소와 카잘스 두 사람 다 조국 스페인이 독재자 프랑코의 손아래 놓이게 되자 저항운동에 가담했으며 끝내 조국을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똑같이 민주공화제가 실현되기 전에는 조국인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결의에서도 일치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조국의 평화를 보지 못한 채, 따라서 조국 땅을 두 번 다시 밟아 보지 못한 채 이국땅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조국 스페인의 평화를 원했으며, 그러기 위해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조국에서 꽃피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카잘스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우리들에게 보여 준 평화를 향한 기원을 기억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72년, 그의 나이 95세 때의 일입니다. 소위 “평화의 전당”이라고 하는 유엔은 개회식에 그를 초청했습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의 대표들이 줄지어 앉은 가운데 바하의 첼로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모든 사람이 일어나 뜨거운 박수로 노음악가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는 앙콜을 청했습니다.
박수가 그치고 앙콜곡을 연주하고자 다시 앞으로 나온 카잘스. 그는 연주 대신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공개 연주를 그만둔 지 오랩니다. 나이가 든 탓이지요. 그러나 오늘 나는 여러분 앞에서 나의 조국 스페인의 카타로니아 지방에 전래되는 민요 한 곡을 더 연주하고자 합니다. ‘새의 노래’라는 제목입니다. 여러분, 내 고향의 새들은 무어라고 노래하는지 아십니까?”

거의 울먹이며 이어가는 거인의 연설에 세계의 대표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마침내 거인은 주먹을 불끈 쥐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새들은 피스, 피스, 피스 라고 노래합니다. 피맺힌 목소리로 운답니다. 피스, 피스, 피스···”
저는 지금 그렇게도 평화를 갈구하던, 그래서 새소리마저도 '평화, 평화, 평화'로 듣던 카잘스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내일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우리는 이 날을 맞을 때마다 얼마나 열심히 일본 사람들을 저주하고 욕해왔던가요? 지금 우리들이 당하는 이 모든 어려움은 다 일본놈들 때문이라고, 일봄놈들은 다 망해야 된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본한테는 이겨야 한다고, 그러면서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일본을 욕하고 저주한다하더라도, 일본이 우리들에게 아무리 욕하고 저주받는다 하더라도 일본이, 아니 일본 사람이 우리들에게, 우리 조상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이 손에 책을 한 권 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는대로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라는 책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오구다 사다꼬 라고 하는 일본인 여자입니다. 얼마 전 제 친구가 저에게 읽어보라고 주어서 바로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도저히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꾸다 사다꼬 라는 이 여자는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세계 역사상 최초로 원자탄이 떨어졌을 때 그곳에서 60km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도 빛이 번쩍했고, 그녀는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히로시마에 살고 있는 오빠와 조카들 걱정 때문에 곧 히로시마로 가게 되었고 그곳의 참상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때 쓴 일기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이 슬픈 회상기는 나의 일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슬픈 회상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것을 이 눈으로 보고, 이 손으로 만진 사람의 의무로서 나는 평화를 힘주어 외쳐대고 싶다.”

이 책의 내용은 너무나도 비참합니다. 원자탄 한 방으로 히로시마 시내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당시 42만 명의 시민 중 16만 명이 즉사했으며 그 보다 많은 수가 비참한 모습으로 고생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의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조카들을 찾기 위하여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어느 다리 옆을 지날 때 문득 뒤에서 오빠, 오빠 하는애들 목소리가 났습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매우 심한 화상을 입은 오누이가 웅크린 채로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곁으로 다가가니까 “죄송합니다. 동생에게 물을 좀 주실 수 없을까요?” 하며 매우 공손한 말씨로 사내아이가 머리를 깊이 조아려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물이 있다고, 염려 말고 들라고 물통을 내밀자 오빠는 동생에게 조금씩 물을 먹이면서 ‘자, 미도리야, 물먹어라. 물이야. 물. 참 다행이지?' 하고 말했습니다. 오빠는 “미도리는 어제 밤부터 물, 물, 물이 먹고 싶어. 머리 아파. 몸에 불이 붙었어. 더워. 메스꺼워. 토할 것 같아. 그러면서 밤새도록 신음하다, 울다가 엄마! 엄마! 아빠! 오빠! 하면서 통 자질 못했어요. 그래서 나는 어떡하면 좋을지 몰라 정말 막막했어요.” 하면서 누이동생의 손을 천천히 천천히 쓰다듬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두 아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이야기를 걸었습니다. 오빠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 누이동생은 다섯 살이라는 사실, 최근 일가족이 동경에서 이사를 왔다는 것, 아버지는 군인이고 히로시마에 그다지 아는 사람이 없고 친척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엄마 이야기를 물으니, 엄마는 어제 아빠한테서 전화가 와서 무엇인가 가지고 간 채로 돌아오시지 않고, 그들은 언제든지 만일의 경우에는 여기에 와서 기다리도록 일러주셨기 때문에 어제도 여기서 기다렸지만 아빠도, 엄마도 와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가방 속에서 말린 고구마와 주먹밥을 꺼내서 “먹겠니?” 하자 “네, 먹겠어요” 하면서 기쁜 듯 미소 짓는 얼굴을 하였습니다. 누이 동생이 말린 고구마 조각을 몇 개 먹고 오빠가 주먹밥을 몇 입 먹고 나자 “오빠, 오빠, 다 먹지말어. 엄마도 드려야지.”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괜찮아. 또 있으니까 미도리 너도 먹어.” 그러나 미도리는 도무지 먹으려들지 않았습니다. 엄마 오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어쨌든 그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먹게 해서 기운을 되찾아 주고 실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두 아이를 데려다가 치료해 주고 잘 쉬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씩이나 그걸 말했지만 그 두 아이는 엄마가 오실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일 다시 꼭 찾아올 것이라는 것과 만일 오늘 밤에 엄마가 오시면 자기 있는 곳으로 찾아오도록 약도를 그려 주었습니다.

“내일 또 올게. 꼭, 응? 내가 올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한다.” 몇 번씩 다짐을 하고 그때마다 그들은 “네, 네”라고 대답했지만 그녀는 어쩐지 말할 수 없는 쓸쓸함, 슬픔, 어두움이 마음을 스치고 지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럴 리가 없다고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약속하자고 새기손가락을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두 아이가 우물쭈물하다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는데 그것은 이미 손가락이 아니었습니다. 그 날 저녁 그녀는 두 아이 생각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이를 데려 오려고 리어카를 끌고 달려갔습니다.

다리 옆에 이르자 두 오누이는 누이동생이 오빠에게 안긴 모습으로 꼼짝 않고 자고 있었습니다. 두 아이의 자는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살며시 만져보고, 흔들어 깨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
오빠의 손에는 반쪽의 주먹밥과 약도가 꼭 쥐어져 있었습니다. 이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그만 두 아이 곁에 털썩 주저앉은 채 목놓아 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깊은 슬픔에 겨워 입술을 으스러지도록 깨물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녀는 이렇게 절규합니다.
“누가 이렇게 참혹한 짓을 했을까? 무조건 미운 감정이 북받쳐 가슴이 터질 것만 같구나. 이렇듯 죄 없는 아이에게 왜 이런 가혹한 짓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대체 누가 전쟁을 시작했는가? 아무리 애들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생명보다 값진, 귀중한 것이 또 달리 있을까?”

우리는 지난주일 오후에 이것은 연습이 아니고 실제라고 하는 민방위담당자의 놀란 목소리에, 적기가 인천 상공에 나타나 공습을 하고 있다는 사이렌 소리에 놀라 두려워 떨던 순간을 겪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시 전쟁이 난 줄로 생각하고 그 때문에 혼란이 있기도 했습니다. 단 몇 분간의 그 경험은 우리에게 전쟁의 위험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에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스스로 묻습니다.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우리에게 과연 평화의 날은 언제인가?
한쪽에서는 잃어버린 부모형제를 찾기 위해서 헤매고 있는데, 이제 또 다시 전쟁이 터진다면?

아무도 여기에 대답해 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저의 물음은 계속됩니다. 아흔 살이 넘은 나이에 조국의 평화를 찾아 평화의 노래를 연주하는 카잘스에게 무어라고 말해 줄 수 있는가? 티없이 맑게 자라야 할 나이에, 아무 죄없이 죽어간 미도리와 그의 오빠에게 무어라고 말할 수 있는가?
30년이 넘도록 부모형제를 찾지 못해 한 맺힌 생애를 살아온 우리의 동족들에게 무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성서는 여기에 무어라고 대답하는가?

바로 이 물음을 갖고 저는 성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을 발견합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답게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 말씀은 기원전 586년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고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바로 그 포로민들을 향하여 외쳤던 제2 이사야의 말씀입니다.
조국은 망했고, 하나님의 성읍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했던 약속을 잊어버리신 것 같고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 같은 깊은 절망의 시대, 바로 그 때 외쳐졌습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버림받고 슬퍼하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골짜기가 돋우어지고 높은 것이 낮아지는 것.
부정과 불의가 없어지고, 정의와 공평이 지배하는 세계, 그것이 바로 조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회개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원자탄이 떨어졌던 히로시마의 평화공원.
그곳에는 죽은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비석이 있고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평안히 잠들어 주세요. 잘못을 또 다시 되풀이 하진 않을께요.”

그리고 사다꼬 여사는 고백합니다. 그 비문을 읽을 때마다 이 기원을 다져넣은 한 자 한 자에 얼마나 깊은 슬픔이 깃들어 있는가를 생각한다고.
그리고 38년전의 저 가공할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죄 많은 우리들 일본인의 가련한 모습이라고.
그리고 새삼스럽게 지난 일을 들추어내는 것은 8월 6일을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마음의 날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한 우리들 일본인들의 회개의 날로 삼고 싶은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그리고 선생님 여러분,
저는 지금 평화를 간구하는 카잘스의 첼로소리에서, 8월 6일을 회개의 날로 삼고자 하는 일본인의 마음속에서 언젠가 부모 형제를 만날 날을 묵묵히 기다리면서 흘리고 있는 우리 동족들의 눈물 속에서 “너희를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은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릴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꿈은 바로 하나님을 보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꿈은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릴 것을 보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고, 십자가 사건을 통해 진정 강한 자로 우리에게 임하시고 사랑의 두 팔로 다스리는 분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일을 위해 우리를 불렀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특별히 고등부 학생 여러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뜻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뜻을 찾고 준비하는 과정이 바로 지금이라고,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소홀히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아무렇게나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주어진 학교 공부를 안 해도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특별히 여러분에게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그럴 수 있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는 바로 30년 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3년 동안 최선을 다해 활동한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