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뽑았다
렘 1:1-10, 막 15:16-23 / 1983. 8. 5
기원전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망하고 난 후 남왕국 유다의 운명도 이제 풍전등화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 열 지파로 구성된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이제 두 지파만으로 구성된 남왕국 유다도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북쪽에서는 앗시리아가 쳐들어오고 남쪽에서는 이집트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임금이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히스기야 왕입니다.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다가 망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는 일대 종교 개혁을 단행했고 모든 이방신들과 우상들을 없애버렸습니다. 이 때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이 쳐들어 왔으나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산헤립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된 후 사태는 급변했습니다. 므낫세는 아버지가 헐어버린 이방신들의 산당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바알을 위한 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태양과 달과 별을 섬기고 점쟁이와 무당들을 불러들여 온갖 악행을 저지르게 했습니다. 이러한 므낫세는 기원전 695년에서 642년까지 무려 53년간이나 왕위에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21:11-12에 보면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케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악한 므낫세 왕이 죽기 몇 년 전인 647년,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에게 아들이 하나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는 20세 되던 때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흔히 40년 이상을 예언자로 활약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처음 몇 년은 그래도 형편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던 요시야 왕의 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과 예레미야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교제를 가졌으며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은 5년이 되던 때 요시야왕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을 읽고 통회하면서 모든 우상 숭배를 없애버리는 종교개혁을 이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원전 609년 요시야 왕이 죽고 여호와하스, 여호와김 등이 즉위하면서 사태는 또 다시 급변했습니다. 새로운 왕들은 또다시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같은 우상숭배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죄악에 가득 찬 유대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체포되었다가 벌거벗은 채로 도망치기도 했고,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잡혀가서 수없이 얻어터지기도 했으며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흔히 “눈물의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예레미야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그의 예언을 글로 써서 바룩으로 하여금 임금 앞에 가서 읽게 했습니다. 거기에는 임금과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에 여호와김이 심히 노하여 그 책을 칼로 찢어 불사르고 예레미야와 바룩을 붙잡도록 명령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숨기셨다고 렘 36:2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침내 기원전 586년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유다의 마지막 왕 여호와긴이 두 눈이 뽑힌 채 사로잡혀 가게 되었을 때 예레미야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빌론으로 가든지 예루살렘에 남아 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얻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남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곧 느부갓네살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도망치려던 유대인들에게 납치되어 이집트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이집트에서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40년 이상을 갖은 반대와 매맞음, 옥에 갇히는 일들을 무릅쓰고 충실하게 변절해 버린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던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 그는 그의 일생이 너무나 괴로웠기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손에 잡힌 몸으로
이렇게 울화가 치밀어 올라 홀로 앉아 있습니다.
이 괴로움은 왜 끝이 없습니까?
마음의 상처는 나을 것 같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물이 마르다가도 흐르고,
흐르다가도 마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도랑같이 되셨습니다.“(렘 15:17-18)
그는 계속 투덜댑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속였다고 원망합니다.
“야훼여,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의 억지에 말려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웃음거리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저는 입을 열어 고함을 쳤습니다.
서로 때려잡는 세상이 되었다고 외치며
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덕에 날마다 욕을 먹고
조롱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자고 하여도,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 두자고 하여도,
뼛속에 갇혀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렘 20:7-9)
드디어 그의 감정은 폭발됩니다. 이제는 투덜거리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삶 전체를 들어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저주받은 날,
내가 세상에 떨어지던 날,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
복과는 거리가 먼 날.
사내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한 그 자도 천 벌을 받아라.
야훼께 사정없이 뒤덮힌 성읍들처럼 되어라.
아침에 경보를 듣고
내 낮에 적이 쳐들어오는 소리를 들어라.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나를 죽이셨던들,
어머니 몸이 나의 무덤이 되어
언제까지나 태속에 있었을 것을!
어찌하여 모태에서 나와
고생길에 들어서
이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었는가!
이렇게 수모를 받으며
생애를 끝마쳐야 하는가!“ (렘20:14-18)
하나님을 믿는다고 교회에 출입하는 학생 여러분,
하나님 믿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믿으면 우리의 장래가 보장되고 남들보다 행복하고, 출세해서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까지 이르는 길. “비아 돌도로자” 십자가의 길. 그 중간쯤 되는 곳에 키레네 사람 시몬을 기억하는 작은 기도처가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키레네라고 하는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서울 구경을 왔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바로 처형받으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로 가시는 날이었습니다.
그 시골뜨기 시몬도 군중들 틈에 끼여서 현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로마군인의 손이 건장하게 생긴 촌뜨기 시몬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그러더니 예수의 십자가 형틀을 대신 짊어지고 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슨 날벼락입니까? 평생 안면도 없던 예수란 사형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죄인이 끌려가는 그 골고다 길을 걸어가야 했으니, 그는 분명히 봉변당한 사람입니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던 지동식 교수는 일찍이 신과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바로 이 키레네 시몬 이야기를 하시면서
“여러분이나 저나 다 같이 인생항로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예수 때문에 지금 봉변당한 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예수님 때문에 봉변당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일생을 충실하게 신앙생활하신 어른들은 마음속에 바로 그렇다는 생각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일생동안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노라고 다짐하는 신앙의 후배들도 앞으로 언젠가는 예수님 때문에 봉변당했다는 생각이 들 날이 올 것입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원하지 않는 어려움이 닥쳐오고 힘들어지면 내가 왜 예수님 때문에 봉변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했던 예레미야, 그는 끝내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러면 원망과 불평, 저주를 넘어설 수 있는 힘, 그것이 무엇이던가요? 저는 그것을 바로 오늘의 본문에서 발견합니다.
“내가 받은 야훼의 말씀은 이러하였다.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아! 야훼,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야훼께서는 나에게 이르셨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그러시고 야훼께서는 손을 내밀어 나의 입에 대시며 이르셨다.
‘나는 이렇게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담아준다.
보아라! 나는 오늘 세계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
뽑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고, 헐어버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고, 심기도 하여라.‘“
그렇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었던 예레미야의 힘,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뽑았다’라고 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학생여러분! 젊은이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뽑았다.”
자녀들을 키우시는 부모님 여러분!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 여러분!
우리의 자라나는 자녀들, 학생들에게 ‘하나님께서 너를 뽑으셨다’ 라는 믿음을 심어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의 신앙생활이 키레네 시몬처럼 엉겁결에 붙들려서 시작되고, 예레미야와 같은 어려운 길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뽑으셔서 된 것으로 믿고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서울 구경 왔다가 우연히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시는 길을 지나가게 되었고, 그래서 억지로 십자가를 예수님 대신 지고 가야 했던 봉변을 당했던 키레네 시몬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알렉산더와 루포이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 16:13에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키레네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간 후 그의 전 가족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다 봉변을 당한 것처럼 예수 믿게 되고 그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결국은 나를 구원하고 내 가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임을 기억하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봉변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봉변은 하나님께 당한 봉변이기에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실 일이 있으셔서 우리에게 봉변을 씌우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뽑았다.”
“내가 늘 네 옆에 있으리라.”
“나는 오늘 세계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
자녀를 키우시는 부모님 여러분.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 여러분.
우리의 자라나는 자녀, 학생들에게 “하나님이 너를 뽑았다.”는 믿음을 심어주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를 향하여 “내가 너를 뽑았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내가 늘 네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주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내가 늘 네 옆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보아라! 나는 오늘 세계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세계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학생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이 큰 꿈을 기억하십시다.
이제 마지막으로 사무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세 번씩이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속에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선택해야 할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처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지 못했으나 제사장인 엘리 문하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 ‘점차적으로’ 그 부르심의 신비한 뜻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사무엘이 성전에서 봉사하며 성장했듯이 우리도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섬기면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을 점차로 깨달아 바른 응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뽑았다.”
기도하겠습니다.
렘 1:1-10, 막 15:16-23 / 1983. 8. 5
기원전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망하고 난 후 남왕국 유다의 운명도 이제 풍전등화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 열 지파로 구성된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이제 두 지파만으로 구성된 남왕국 유다도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북쪽에서는 앗시리아가 쳐들어오고 남쪽에서는 이집트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임금이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히스기야 왕입니다.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다가 망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는 일대 종교 개혁을 단행했고 모든 이방신들과 우상들을 없애버렸습니다. 이 때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이 쳐들어 왔으나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산헤립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된 후 사태는 급변했습니다. 므낫세는 아버지가 헐어버린 이방신들의 산당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바알을 위한 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태양과 달과 별을 섬기고 점쟁이와 무당들을 불러들여 온갖 악행을 저지르게 했습니다. 이러한 므낫세는 기원전 695년에서 642년까지 무려 53년간이나 왕위에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21:11-12에 보면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케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악한 므낫세 왕이 죽기 몇 년 전인 647년,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에게 아들이 하나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는 20세 되던 때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흔히 40년 이상을 예언자로 활약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처음 몇 년은 그래도 형편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던 요시야 왕의 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과 예레미야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교제를 가졌으며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은 5년이 되던 때 요시야왕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을 읽고 통회하면서 모든 우상 숭배를 없애버리는 종교개혁을 이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원전 609년 요시야 왕이 죽고 여호와하스, 여호와김 등이 즉위하면서 사태는 또 다시 급변했습니다. 새로운 왕들은 또다시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같은 우상숭배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죄악에 가득 찬 유대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체포되었다가 벌거벗은 채로 도망치기도 했고,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잡혀가서 수없이 얻어터지기도 했으며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흔히 “눈물의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예레미야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그의 예언을 글로 써서 바룩으로 하여금 임금 앞에 가서 읽게 했습니다. 거기에는 임금과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에 여호와김이 심히 노하여 그 책을 칼로 찢어 불사르고 예레미야와 바룩을 붙잡도록 명령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숨기셨다고 렘 36:2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침내 기원전 586년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유다의 마지막 왕 여호와긴이 두 눈이 뽑힌 채 사로잡혀 가게 되었을 때 예레미야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빌론으로 가든지 예루살렘에 남아 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얻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남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곧 느부갓네살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도망치려던 유대인들에게 납치되어 이집트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이집트에서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40년 이상을 갖은 반대와 매맞음, 옥에 갇히는 일들을 무릅쓰고 충실하게 변절해 버린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던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 그는 그의 일생이 너무나 괴로웠기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손에 잡힌 몸으로
이렇게 울화가 치밀어 올라 홀로 앉아 있습니다.
이 괴로움은 왜 끝이 없습니까?
마음의 상처는 나을 것 같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물이 마르다가도 흐르고,
흐르다가도 마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도랑같이 되셨습니다.“(렘 15:17-18)
그는 계속 투덜댑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속였다고 원망합니다.
“야훼여,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의 억지에 말려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웃음거리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저는 입을 열어 고함을 쳤습니다.
서로 때려잡는 세상이 되었다고 외치며
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덕에 날마다 욕을 먹고
조롱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자고 하여도,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 두자고 하여도,
뼛속에 갇혀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렘 20:7-9)
드디어 그의 감정은 폭발됩니다. 이제는 투덜거리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삶 전체를 들어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저주받은 날,
내가 세상에 떨어지던 날,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
복과는 거리가 먼 날.
사내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한 그 자도 천 벌을 받아라.
야훼께 사정없이 뒤덮힌 성읍들처럼 되어라.
아침에 경보를 듣고
내 낮에 적이 쳐들어오는 소리를 들어라.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나를 죽이셨던들,
어머니 몸이 나의 무덤이 되어
언제까지나 태속에 있었을 것을!
어찌하여 모태에서 나와
고생길에 들어서
이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었는가!
이렇게 수모를 받으며
생애를 끝마쳐야 하는가!“ (렘20:14-18)
하나님을 믿는다고 교회에 출입하는 학생 여러분,
하나님 믿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믿으면 우리의 장래가 보장되고 남들보다 행복하고, 출세해서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까지 이르는 길. “비아 돌도로자” 십자가의 길. 그 중간쯤 되는 곳에 키레네 사람 시몬을 기억하는 작은 기도처가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키레네라고 하는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서울 구경을 왔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바로 처형받으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로 가시는 날이었습니다.
그 시골뜨기 시몬도 군중들 틈에 끼여서 현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로마군인의 손이 건장하게 생긴 촌뜨기 시몬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그러더니 예수의 십자가 형틀을 대신 짊어지고 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슨 날벼락입니까? 평생 안면도 없던 예수란 사형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죄인이 끌려가는 그 골고다 길을 걸어가야 했으니, 그는 분명히 봉변당한 사람입니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던 지동식 교수는 일찍이 신과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바로 이 키레네 시몬 이야기를 하시면서
“여러분이나 저나 다 같이 인생항로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예수 때문에 지금 봉변당한 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예수님 때문에 봉변당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일생을 충실하게 신앙생활하신 어른들은 마음속에 바로 그렇다는 생각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일생동안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노라고 다짐하는 신앙의 후배들도 앞으로 언젠가는 예수님 때문에 봉변당했다는 생각이 들 날이 올 것입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원하지 않는 어려움이 닥쳐오고 힘들어지면 내가 왜 예수님 때문에 봉변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했던 예레미야, 그는 끝내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러면 원망과 불평, 저주를 넘어설 수 있는 힘, 그것이 무엇이던가요? 저는 그것을 바로 오늘의 본문에서 발견합니다.
“내가 받은 야훼의 말씀은 이러하였다.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아! 야훼,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야훼께서는 나에게 이르셨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그러시고 야훼께서는 손을 내밀어 나의 입에 대시며 이르셨다.
‘나는 이렇게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담아준다.
보아라! 나는 오늘 세계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
뽑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고, 헐어버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고, 심기도 하여라.‘“
그렇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었던 예레미야의 힘,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뽑았다’라고 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학생여러분! 젊은이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뽑았다.”
자녀들을 키우시는 부모님 여러분!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 여러분!
우리의 자라나는 자녀들, 학생들에게 ‘하나님께서 너를 뽑으셨다’ 라는 믿음을 심어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의 신앙생활이 키레네 시몬처럼 엉겁결에 붙들려서 시작되고, 예레미야와 같은 어려운 길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뽑으셔서 된 것으로 믿고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서울 구경 왔다가 우연히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시는 길을 지나가게 되었고, 그래서 억지로 십자가를 예수님 대신 지고 가야 했던 봉변을 당했던 키레네 시몬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알렉산더와 루포이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 16:13에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키레네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간 후 그의 전 가족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다 봉변을 당한 것처럼 예수 믿게 되고 그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결국은 나를 구원하고 내 가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임을 기억하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봉변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봉변은 하나님께 당한 봉변이기에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실 일이 있으셔서 우리에게 봉변을 씌우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뽑았다.”
“내가 늘 네 옆에 있으리라.”
“나는 오늘 세계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
자녀를 키우시는 부모님 여러분.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 여러분.
우리의 자라나는 자녀, 학생들에게 “하나님이 너를 뽑았다.”는 믿음을 심어주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를 향하여 “내가 너를 뽑았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내가 늘 네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주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내가 늘 네 옆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보아라! 나는 오늘 세계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세계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학생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이 큰 꿈을 기억하십시다.
이제 마지막으로 사무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세 번씩이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속에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선택해야 할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처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지 못했으나 제사장인 엘리 문하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 ‘점차적으로’ 그 부르심의 신비한 뜻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사무엘이 성전에서 봉사하며 성장했듯이 우리도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섬기면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을 점차로 깨달아 바른 응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뽑았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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