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힘들지라도
막 1:14-15, 4:1-9 / 1983. 10. 9
광활한 러시아의 대평원에서 시작하여 독일을 지나 프랑스까지 펼쳐져 있는 유럽 대평원의 한복판. 역사적인 오데르 강 동쪽의 땅 독일과 러시아라고 하는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끊임없이 고통당하던 나라. 노벨상을 두 개나 탄 퀴리 부인으로 유명한 나라. 폴란드. 2차 대전으로 인해 동쪽의 넓은 땅을 러시아에 빼앗긴 채 공산주의의 지배하에 들어간 나라. 폴란드. 그러나 세계적인 지도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국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나라 폴란드. 바로 그 폴란드에 작년 가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으니 그것은 이제 불과 갓 마흔 살의 레흐 바웬사에게 노벨 평화상이 주어졌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레흐 바웬사. 그는 폴란드 북부 지방의 항구도시, 그다니스크, 2차 대전 전에는 단찌히라고 더 알려졌던 곳에 있는 레닌 조선소의 전기 기술자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1980년 8월 정부의 쇠고기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데모가 일어나고 전국이 파업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갈 때, 정확히 말하면 8월 13일 그는 파업을 하던 레닌 조선소의 담 위로 기어 올라가 노동자들의 주장을 모으고 노동자들의 운동을 조직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불과 1년 사이에 100여회나 체포되었고 그는 점차 폴란드전체 노동자들의 지도자로 등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파업 시작 보름만인 8월 31일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공산국가에서의 자유노동 조합을 탄생시킨 그다니스크 협정을 체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자유노조는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폴란드의 1천 2백만 노동자 중 1천만 명을 포용하기에 이르렀고 보다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 공산주의 체제와의 끈질긴 투쟁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이 후 세계는 바웬사와 자유노조에 관심을 갖고 격려를 보냈으며 미국의 타임지는 바웬사를 1980년의 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경제인 공산국가에서 과연 자유노조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이 다른 공산국가로도 퍼져가서 자유의 물결이 철의 장막을 깨뜨릴 수 있을까가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폴란드 군사 정부는 불과 15개월 후 계엄령을 내려 자유노조를 불법화시키고 바웬사를 아무런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11개월간 연금을 시켜버렸습니다. 82년 11월 14일 연금에서 풀려난 바웬사는 레닌 조선소의 전기 기술자로 복귀해 지금은 단순히 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 폴란드의 자유화는 그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이고 있으며 역시 철의 장막은 거대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지난해 노벨상 위원회는 그를 노벨상 수상자로 뽑았으며 세계는 다시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매년 세계 평화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사람을 뽑아 상을 주던 노벨상 위원회는 그 동안 많은 위대한 인물들을 선정하여 왔습니다. 1964년에는 미국의 흑인 목사이자 민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75년에는 소련의 반체제 핵물리학자인 안드레이 사하로프, 77년에는 세계의 정치범, 사상범, 양심범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는 국제 사면 위원회, 엠네스티. 그리고 79년에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이웃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어 온 테레사 수녀 등이 노벨 평화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때는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올바르게 수상자가 결정되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잘못 결정되었다고 비난 받는 해도 있었습니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73년도에 미국의 헨리 키신저와 월맹의 레둑토가 받은 경우나 78년도에 이집트의 사다트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이 중동 평화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받은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74년도에 당시 일본 수상 사토 에이사쿠에게 노벨 평화상이 돌아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엉뚱한 결정이라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노벨상 위원회가 있는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반 노벨평화상을 만들어 참다운 평화상을 받아야 할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때 뽑힌 사람은 바로 브라질의 카톨릭 지도자였던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였습니다. 1909년생인 돔 헬더 까마라. 그는 1931년에 카톨릭 신부로 임명되었고 64년에 브라질의 북동부 지방인 올린다 레시페 지방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맡은 브라질의 북동부 9개주의 현황을 그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습니다.
면적 - 1백 50만 평방킬로미터
인구 - 2천 3백만
연간 개인 소득 - 1백 달러
전체인구의 70%가 문맹
유아 사망률 - 50%
서반구 열대 지방 최대의 저개발 지역. 북쪽과 동쪽으로 뻗은 2개의 습기 차고 비옥한 띠 모양의 지역에 대도시들과 판자촌, 사탕수수밭, 자본주의가 함께 있고, 거대한 건조지대의 중심부인 대륙의 세르땅에는 목화밭이 있고, 늘 건조하며 떠돌이 노동자들이 많다.
9명의 일가족이 남의 땅을 빌어 1년 동안 죽어라 하고 농사지은 끝에 손에 받아 쥐게 되는 돈이 57달러(5만원)인 곳. 바로 그곳에 부임하게 된 까마라 대주교는 1968년 정의·평화 운동을 제창하여 가난과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브라질은 지구상의 국가 중 외국에 가장 많은 빚을 진 나라이며 빈부의 차가 극심한 나라입니다. 까마라 대주교는 나이 칠십이 넘은 오늘도 브라질 각지의 대학과 교회, 노동조합과 청년 단체들을 찾아다니면서 진리와 정의에 바탕을 둔 세계를 건설하고자 외치고 있습니다.
폴란드 조국에 자유의 바람을 일으키고 빵과 행복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어선 레흐 바웬사.
조국 브라질의 동족들에게 가난과 억압,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쳤던 돔 헬더 까마라.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두 사람 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라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은 교황으로부터 직접 격려를 받은 평신도이며 한사람은 대주교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그처럼 힘있게 자유와 정의를 외칠 수 있었던 힘, 그것은 바로 신앙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노력이 성공할 것인가요? 공산국가 폴란드와 군사독재국가 브라질에 과연 그들이 꿈꾸었던 자유와 정의의 나라가 세워질 수 있을까요? 바웬사와 까마라에 의해서 시작은 되었지만 과연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요?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에 끼인 조그마한 땅 가나안. 교통의 요충지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 등장하는 세력 간의 충돌지점 가나안. 그곳에 스스로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벌써 몇 백년 동안 이민족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922년 솔로몬왕이 죽고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된 이 후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고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587년에 남유다가 바빌론에게 멸망당한 후 그들은 페르샤, 알렉산더 대왕, 이집트, 시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마카비 전쟁으로 독립을 얻는 것도 잠시, 곧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지배층은 로마와 야합하여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은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그들은 인두세와 간접세, 성전세와 십일조세로 과중한 부담을 지고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무리한 율법요구로 인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독립의 희망은 사라졌고, 자기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던 예언의 소리도 끊어진지 오래였습니다. 그 당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바로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선민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홀연히 광야에 한 예언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낙타털옷을 입었으며 광야에 살면서 메뚜기와 들꿀을 먹었습니다. 그는 동족들을 향하여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경고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에게 나아왔고 세리와 군인들도 나왔으며 많은 백성들이 나아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3:15에 의하면 백성들이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세례요한이 바로 구세주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까지 하였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많은 사람의 기대를 모았고 인기를 끌었던 세례 요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룰 것 같던 세례 요한.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어처구니없는 참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술좌석에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를 죽였던 것입니다. 이제 한 가닥 기대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들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예수가 등장합니다. 세례 요한이 한 차례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갔을 때 예수는 등장합니다. 그는 외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성서에 의하면 예수는 화려하게 무대에 등장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고, 말 한마디로 장님이 눈뜨게 하고, 중풍병자를 걷게 합니다. 나병 환자를 깨끗케 하고 간질 병자를 고치며 벙어리가 말하게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줄줄이 따라다녔습니다. 이제야말로 진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것과는 정반대의 상황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6:5-6에 의하면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고, 동네에서 배척받았다고 되어있습니다. 3:6에 의하면 예수께서 한 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자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모여 예수를 없애버릴 방도를 모의하기 시작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6:66에 의하면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물러갔으며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급격히 자기의 곁을 떠나가는 바람에 예수께서는 몇 남지 않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도 가려느냐고 묻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무엇을 보여 줍니까? 결국 예수의 노력은 헛되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것이 아닌가요? 도대체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있는가요? 예수의 사명은 무엇이며 그의 희망은 이제 좌절된 것이 아닌가? 바로 이런 물음이 예수에게 끊임없이 던져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너의 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있는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 그것이 오늘의 본문인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러 밭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앙주 서투르게 파종을 합니다. 그가 아무렇게나 막 씨앗을 뿌렸기에 씨앗은 길가에 떨어지기도 하고 돌짝밭에 떨어지기도 하고, 가시떨기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옥토에 떨어지는 것은 불과 얼마되지 않습니다. 밭 가운데 난 길, 그것은 추수가 끝난 후 또는 밭을 쉬게 할 때 사람들이 밟고 다녀 생겨납니다. 거기에 씨가 떨어지면 새들이 와서 쪼아먹습니다. 돌밭은 흙이 적은 곳입니다. 그래서 금방 말라버립니다. 그 밖에도 씨앗이 자라기 어려운 이유는 많습니다. 가시떨기나 잡초, 가뭄, 지중해 연안에서 불어오는 열풍, 한 번 오면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메뚜기 떼, 그 밖에 해충 따위의 많은 적들. 그래서 사람들은 묻습니다. 농부의 파종은 헛것이 되었다. 그러니 무슨 결실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데도 없는 것이다. 너의 노력은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예수는 대답합니다.
농부를 보라. 농부의 파종은 힘들었다. 새가 집어 먹기도 하고 말라죽기도 했다. 시작은 힘들었다. 처음은 힘들었다. 그러나 보라. 이제 때가 차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그것도 보잘 것 없고 아무 희망도 없어 보이는 시작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은 목수와 열두명의 겁 많고 단순한 갈릴리 노동자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어느 세력도 막을 수 없습니다. 적은 씨앗이 백배의 결실을 맺듯이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세상의 모든 민족들을 포용할 그의 권세의 왕국을 이룩하십니다.
폴란드의 한 공항에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을 시작한 레흐 바웬사.
브라질의 가난한 농촌에서 해방 운동을 전개한 돔 헬더 까마라.
저는 바로 그들의 모습에서 하나의 작은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이제 비록 그들의 시작이 몹시 힘들더라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그 희망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이 몹시 어렵고 힘들지라도 바로 나에게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도록 애쓰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제 마지막으로 돔 헬더 까마라의 기도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목은 “침묵의 세계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
온 인류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아드님이시오.
우리의 형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시대, 모든 곳의
모든 사람을 위해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하오나 주여,
내가 나의 동료, 곧
침묵의 세계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드림을 용서하소서.
가난한 나라뿐 아니라
부유한 나라들의 빈민굴에는
자유로이 발언할 권리도 없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항의를 할 수도 없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록 변명하고 싶은 일이
정당하더라도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합니다.
집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는 사람들.
영양실조에
최소한의 교육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일자리와
장래와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숙명론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의기소침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소리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과
갖가지 종교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부유한 형제들을 도와서
그들의 눈을 열게 하고
그들의 양심을 일깨워 주었더라면
부정, 불의가
이렇게도 만연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
나라와 나라사이
심지어 대륙들 사이에도
빈부의 격차가
그렇게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실행하지 못했고
또 실행할 수도 없는 일을
친히 하여 주소서.
구호 사업과 기부와 적은 원조의
인색한 한계를 넘어서
정의를 만회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특권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곧잘 화를 내고,
자기들이 그릇된 비판을 받는다고
스스로 느끼며
순전히 민주주의적이고
순전히 인간적이고
순전히 그리스도교적인 행위까지도
혁명
또는 공산주의로 간구합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우리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유혹을 물리치고
성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했더라면!
다른 이들을 회개시키고자 하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보다 깊은 내적 회개의
모범을 보여 주었더라면!
우리가
우정과 사랑을 통해서
진리를 말 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해야한다는 理想을
우리의 담화나 비판,
또는 항의에 있어서
항상 추구했더라면
사태는 좀 더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요구하려는 것은
꽤 까다롭습니다.
명백히
우리가
아무도 업신여기지 않고
또 아무도 우리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지 못한다면,
시비를 면할 수 없습니다.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흥분시킬 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언제나 변함없이
아버지의 아드님과
하나가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눈으로 보시고,
우리의 귀로 들으시고,
우리의 입술로 말씀하게 하소서!
주여!
당신 영을 보내주소서.
성령만이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만이
이기주의를
깨뜨려 버릴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 상태에 묶어두는
불공평한 구조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도우시어
참으로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막 1:14-15, 4:1-9 / 1983. 10. 9
광활한 러시아의 대평원에서 시작하여 독일을 지나 프랑스까지 펼쳐져 있는 유럽 대평원의 한복판. 역사적인 오데르 강 동쪽의 땅 독일과 러시아라고 하는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끊임없이 고통당하던 나라. 노벨상을 두 개나 탄 퀴리 부인으로 유명한 나라. 폴란드. 2차 대전으로 인해 동쪽의 넓은 땅을 러시아에 빼앗긴 채 공산주의의 지배하에 들어간 나라. 폴란드. 그러나 세계적인 지도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국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나라 폴란드. 바로 그 폴란드에 작년 가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으니 그것은 이제 불과 갓 마흔 살의 레흐 바웬사에게 노벨 평화상이 주어졌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레흐 바웬사. 그는 폴란드 북부 지방의 항구도시, 그다니스크, 2차 대전 전에는 단찌히라고 더 알려졌던 곳에 있는 레닌 조선소의 전기 기술자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1980년 8월 정부의 쇠고기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데모가 일어나고 전국이 파업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갈 때, 정확히 말하면 8월 13일 그는 파업을 하던 레닌 조선소의 담 위로 기어 올라가 노동자들의 주장을 모으고 노동자들의 운동을 조직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불과 1년 사이에 100여회나 체포되었고 그는 점차 폴란드전체 노동자들의 지도자로 등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파업 시작 보름만인 8월 31일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공산국가에서의 자유노동 조합을 탄생시킨 그다니스크 협정을 체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자유노조는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폴란드의 1천 2백만 노동자 중 1천만 명을 포용하기에 이르렀고 보다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 공산주의 체제와의 끈질긴 투쟁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이 후 세계는 바웬사와 자유노조에 관심을 갖고 격려를 보냈으며 미국의 타임지는 바웬사를 1980년의 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경제인 공산국가에서 과연 자유노조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이 다른 공산국가로도 퍼져가서 자유의 물결이 철의 장막을 깨뜨릴 수 있을까가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폴란드 군사 정부는 불과 15개월 후 계엄령을 내려 자유노조를 불법화시키고 바웬사를 아무런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11개월간 연금을 시켜버렸습니다. 82년 11월 14일 연금에서 풀려난 바웬사는 레닌 조선소의 전기 기술자로 복귀해 지금은 단순히 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 폴란드의 자유화는 그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이고 있으며 역시 철의 장막은 거대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지난해 노벨상 위원회는 그를 노벨상 수상자로 뽑았으며 세계는 다시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매년 세계 평화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사람을 뽑아 상을 주던 노벨상 위원회는 그 동안 많은 위대한 인물들을 선정하여 왔습니다. 1964년에는 미국의 흑인 목사이자 민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75년에는 소련의 반체제 핵물리학자인 안드레이 사하로프, 77년에는 세계의 정치범, 사상범, 양심범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는 국제 사면 위원회, 엠네스티. 그리고 79년에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이웃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어 온 테레사 수녀 등이 노벨 평화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때는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올바르게 수상자가 결정되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잘못 결정되었다고 비난 받는 해도 있었습니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73년도에 미국의 헨리 키신저와 월맹의 레둑토가 받은 경우나 78년도에 이집트의 사다트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이 중동 평화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받은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74년도에 당시 일본 수상 사토 에이사쿠에게 노벨 평화상이 돌아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엉뚱한 결정이라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노벨상 위원회가 있는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반 노벨평화상을 만들어 참다운 평화상을 받아야 할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때 뽑힌 사람은 바로 브라질의 카톨릭 지도자였던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였습니다. 1909년생인 돔 헬더 까마라. 그는 1931년에 카톨릭 신부로 임명되었고 64년에 브라질의 북동부 지방인 올린다 레시페 지방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맡은 브라질의 북동부 9개주의 현황을 그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습니다.
면적 - 1백 50만 평방킬로미터
인구 - 2천 3백만
연간 개인 소득 - 1백 달러
전체인구의 70%가 문맹
유아 사망률 - 50%
서반구 열대 지방 최대의 저개발 지역. 북쪽과 동쪽으로 뻗은 2개의 습기 차고 비옥한 띠 모양의 지역에 대도시들과 판자촌, 사탕수수밭, 자본주의가 함께 있고, 거대한 건조지대의 중심부인 대륙의 세르땅에는 목화밭이 있고, 늘 건조하며 떠돌이 노동자들이 많다.
9명의 일가족이 남의 땅을 빌어 1년 동안 죽어라 하고 농사지은 끝에 손에 받아 쥐게 되는 돈이 57달러(5만원)인 곳. 바로 그곳에 부임하게 된 까마라 대주교는 1968년 정의·평화 운동을 제창하여 가난과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브라질은 지구상의 국가 중 외국에 가장 많은 빚을 진 나라이며 빈부의 차가 극심한 나라입니다. 까마라 대주교는 나이 칠십이 넘은 오늘도 브라질 각지의 대학과 교회, 노동조합과 청년 단체들을 찾아다니면서 진리와 정의에 바탕을 둔 세계를 건설하고자 외치고 있습니다.
폴란드 조국에 자유의 바람을 일으키고 빵과 행복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어선 레흐 바웬사.
조국 브라질의 동족들에게 가난과 억압,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쳤던 돔 헬더 까마라.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두 사람 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라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은 교황으로부터 직접 격려를 받은 평신도이며 한사람은 대주교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그처럼 힘있게 자유와 정의를 외칠 수 있었던 힘, 그것은 바로 신앙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노력이 성공할 것인가요? 공산국가 폴란드와 군사독재국가 브라질에 과연 그들이 꿈꾸었던 자유와 정의의 나라가 세워질 수 있을까요? 바웬사와 까마라에 의해서 시작은 되었지만 과연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요?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에 끼인 조그마한 땅 가나안. 교통의 요충지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 등장하는 세력 간의 충돌지점 가나안. 그곳에 스스로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벌써 몇 백년 동안 이민족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922년 솔로몬왕이 죽고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된 이 후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고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587년에 남유다가 바빌론에게 멸망당한 후 그들은 페르샤, 알렉산더 대왕, 이집트, 시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마카비 전쟁으로 독립을 얻는 것도 잠시, 곧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지배층은 로마와 야합하여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은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그들은 인두세와 간접세, 성전세와 십일조세로 과중한 부담을 지고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무리한 율법요구로 인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독립의 희망은 사라졌고, 자기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던 예언의 소리도 끊어진지 오래였습니다. 그 당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바로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선민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홀연히 광야에 한 예언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낙타털옷을 입었으며 광야에 살면서 메뚜기와 들꿀을 먹었습니다. 그는 동족들을 향하여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경고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에게 나아왔고 세리와 군인들도 나왔으며 많은 백성들이 나아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3:15에 의하면 백성들이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세례요한이 바로 구세주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까지 하였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많은 사람의 기대를 모았고 인기를 끌었던 세례 요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룰 것 같던 세례 요한.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어처구니없는 참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술좌석에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를 죽였던 것입니다. 이제 한 가닥 기대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들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예수가 등장합니다. 세례 요한이 한 차례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갔을 때 예수는 등장합니다. 그는 외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성서에 의하면 예수는 화려하게 무대에 등장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고, 말 한마디로 장님이 눈뜨게 하고, 중풍병자를 걷게 합니다. 나병 환자를 깨끗케 하고 간질 병자를 고치며 벙어리가 말하게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줄줄이 따라다녔습니다. 이제야말로 진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것과는 정반대의 상황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6:5-6에 의하면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고, 동네에서 배척받았다고 되어있습니다. 3:6에 의하면 예수께서 한 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자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모여 예수를 없애버릴 방도를 모의하기 시작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6:66에 의하면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물러갔으며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급격히 자기의 곁을 떠나가는 바람에 예수께서는 몇 남지 않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도 가려느냐고 묻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무엇을 보여 줍니까? 결국 예수의 노력은 헛되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것이 아닌가요? 도대체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있는가요? 예수의 사명은 무엇이며 그의 희망은 이제 좌절된 것이 아닌가? 바로 이런 물음이 예수에게 끊임없이 던져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너의 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있는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 그것이 오늘의 본문인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러 밭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앙주 서투르게 파종을 합니다. 그가 아무렇게나 막 씨앗을 뿌렸기에 씨앗은 길가에 떨어지기도 하고 돌짝밭에 떨어지기도 하고, 가시떨기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옥토에 떨어지는 것은 불과 얼마되지 않습니다. 밭 가운데 난 길, 그것은 추수가 끝난 후 또는 밭을 쉬게 할 때 사람들이 밟고 다녀 생겨납니다. 거기에 씨가 떨어지면 새들이 와서 쪼아먹습니다. 돌밭은 흙이 적은 곳입니다. 그래서 금방 말라버립니다. 그 밖에도 씨앗이 자라기 어려운 이유는 많습니다. 가시떨기나 잡초, 가뭄, 지중해 연안에서 불어오는 열풍, 한 번 오면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메뚜기 떼, 그 밖에 해충 따위의 많은 적들. 그래서 사람들은 묻습니다. 농부의 파종은 헛것이 되었다. 그러니 무슨 결실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데도 없는 것이다. 너의 노력은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예수는 대답합니다.
농부를 보라. 농부의 파종은 힘들었다. 새가 집어 먹기도 하고 말라죽기도 했다. 시작은 힘들었다. 처음은 힘들었다. 그러나 보라. 이제 때가 차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그것도 보잘 것 없고 아무 희망도 없어 보이는 시작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은 목수와 열두명의 겁 많고 단순한 갈릴리 노동자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어느 세력도 막을 수 없습니다. 적은 씨앗이 백배의 결실을 맺듯이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세상의 모든 민족들을 포용할 그의 권세의 왕국을 이룩하십니다.
폴란드의 한 공항에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을 시작한 레흐 바웬사.
브라질의 가난한 농촌에서 해방 운동을 전개한 돔 헬더 까마라.
저는 바로 그들의 모습에서 하나의 작은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이제 비록 그들의 시작이 몹시 힘들더라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그 희망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이 몹시 어렵고 힘들지라도 바로 나에게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도록 애쓰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제 마지막으로 돔 헬더 까마라의 기도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목은 “침묵의 세계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
온 인류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아드님이시오.
우리의 형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시대, 모든 곳의
모든 사람을 위해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하오나 주여,
내가 나의 동료, 곧
침묵의 세계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드림을 용서하소서.
가난한 나라뿐 아니라
부유한 나라들의 빈민굴에는
자유로이 발언할 권리도 없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항의를 할 수도 없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록 변명하고 싶은 일이
정당하더라도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합니다.
집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는 사람들.
영양실조에
최소한의 교육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일자리와
장래와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숙명론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의기소침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소리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과
갖가지 종교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부유한 형제들을 도와서
그들의 눈을 열게 하고
그들의 양심을 일깨워 주었더라면
부정, 불의가
이렇게도 만연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
나라와 나라사이
심지어 대륙들 사이에도
빈부의 격차가
그렇게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실행하지 못했고
또 실행할 수도 없는 일을
친히 하여 주소서.
구호 사업과 기부와 적은 원조의
인색한 한계를 넘어서
정의를 만회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특권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곧잘 화를 내고,
자기들이 그릇된 비판을 받는다고
스스로 느끼며
순전히 민주주의적이고
순전히 인간적이고
순전히 그리스도교적인 행위까지도
혁명
또는 공산주의로 간구합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우리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유혹을 물리치고
성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했더라면!
다른 이들을 회개시키고자 하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보다 깊은 내적 회개의
모범을 보여 주었더라면!
우리가
우정과 사랑을 통해서
진리를 말 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해야한다는 理想을
우리의 담화나 비판,
또는 항의에 있어서
항상 추구했더라면
사태는 좀 더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요구하려는 것은
꽤 까다롭습니다.
명백히
우리가
아무도 업신여기지 않고
또 아무도 우리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지 못한다면,
시비를 면할 수 없습니다.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흥분시킬 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언제나 변함없이
아버지의 아드님과
하나가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눈으로 보시고,
우리의 귀로 들으시고,
우리의 입술로 말씀하게 하소서!
주여!
당신 영을 보내주소서.
성령만이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만이
이기주의를
깨뜨려 버릴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 상태에 묶어두는
불공평한 구조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도우시어
참으로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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