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떠나야 하는 것/2008.11.16
본문) 마태복음 16장 1-12절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느라고,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자기들에게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녁때에는 ‘하늘이 붉은 것을 보니 내일은 날씨가 맑겠구나’ 하고,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 한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이 세대는, 요나의 표징 밖에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남겨두고 떠나가셨다.
제자들이 건너편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빵을 가져 오는 것을 잊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경계하여라.” 그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우리가 빵을 가져오지 않았구나!” 예수께서 이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어찌하여 너희는 빵이 없다는 것을 두고 서로 수군거리느냐?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오천 명이 먹은 그 빵 다섯 개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또한 사천 명이 먹은 그 빵 일곱 개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부스러기를 몇 광주리나 거두었더냐? 내가 빵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님을, 너희는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느냐?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경계하여라.” 그제서야 그들은, 빵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가르침을 경계하라고 하시는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마태복음에는 빵과 물고기로 기적을 베푸신 사건이 두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이요, 다른 하나는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4,000명을 먹이신 사건입니다. 이 두 개의 사건은 사실상 그 성격이 너무나 비슷해서 하나의 사건을 두 번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 두 개의 사건은 내용도 비슷할 뿐만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논쟁이 벌어졌다는 점에서도 그 결과가 아주 비슷합니다.
5병2어 사건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논쟁은 마태복음 15장 1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에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는 것입니까? 그들은 빵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5:1-2)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특히 지난번에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면서 혼자 했던 물음이 있습니다. “도대체 제자들이 언제 빵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았는가?”
아무리 그들이 가난하고 늘 배고픈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자기들 집에 가서 빵을 먹을 때라면 그들이 손을 씻는지 아닌지 바리새파 사람들이 알 리가 없습니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또 그것을 가족들이 문제 삼을 리도 없습니다. 그것이 소문이 날 리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떼고 먹은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5병2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였습니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 외에, 어른 남자만도 5,000명이나 되는 엄청난 무리가 모인 때였으니 그때 거기서 손을 씻을 수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거기는 빈들이었습니다. 몇 개의 성경구절만 읽어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그러니 무리를 헤쳐 보내서, 제각기 먹을 것을 사 먹게,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14:15)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리를 풀밭에 앉게 하시고 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복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이를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마태복음 14:19)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이, 그리고 무리들이 심지어는 예수님까지 손을 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손을 씻지 않은 채 그냥 덥석 빵을 집어서 떼어냈을 것이고, 제자들도 그냥 신이 나서 빵을 받아들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것입니다. 거기서 언제 손을 씻고 할 겨를이 있었겠습니까? 그 빵을 받아든 사람들 역시 배가 너무나 고프니까 허겁지겁 받아먹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소식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그래서 그들이 내려와서 예수께 시비를 걸었던 것입니다.
자, 이제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난 후 다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바리새파 사람들만 온 것이 아니라 사두개파 사람들도 함께 온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결코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겨난 배경이나 믿음의 내용 등이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사두개파는 주로 제사장들로서 친로마적인데 비해 바리새파는 주로 평신도들로서 로마에 비협조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실은 서로 적대적인 사람들이었고, 무언가 힘을 합해서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함께 나타났다는 기록이 여기에 처음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같이 나타났는가?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 예수를 배척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시험하느라고 한 가지 요청을 하였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주시오.”
무언가 징표가 될 만한 것, 하나님이 예수 당신과 함께 한다는 것을 나타낼만한 증거물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아니, 이미 수많은 징표를 보여주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표징을 보여 달라고요? 예수는 왜 그들이 그런 요구를 하는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저녁때에는 ‘하늘이 붉은 것을 보니 내일은 날씨가 맑겠구나’ 하고,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 한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하늘로부터 내리는 징표를 아주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수많은 환자들을 고쳐주심, 가난하고 작은이들에게 대한 뜨거운 사랑의 표현, 이방인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보낸 회개의 겸손한 부름 등등. 그 모든 것들이 하늘로부터 내리는 징표였습니다. 결국 주님의 말씀은 이런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너희들을 심판하실 때가 되었다.
너희들이 진정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유대인인 너희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다.
이미 수많은 징표들이 나타났다.
너희가 바리새인이라고 해서, 사두개인이라고 해서 구원받을 줄 아느냐?
아니다. 하나님은 저 수많은 환자들, 가난하고 불쌍한 저들, 너희들이 손가락질하는 이방인들, 그들 모두를 사랑하신다. 오히려 그들이 구원에서 더 가까운 것이다.
이제 율법을 다 지켰다고 큰소리치고, 신앙생활 열심히 한다고 큰소리치는 너희에게 심판이 임할 것이다. 징표는 나타났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말씀과 기적들, 예수의 삶 자체가 하늘로부터 내리는 징표였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것이 보이지만 그들은 믿음의 눈이 없었기에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징표를 보여 달라고 요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도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보여줄 표징이 남아 있는가? 한 가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나의 표징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이 세대는, 요나의 표징 밖에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요나의 표징이란 무엇입니까? 그 답은 이미 마태복음 12:39-40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표징 밖에는, 이 세대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땅 속에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그 악한 세대에게 보여줄 표징,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은 악한 세대들에게 주는 마지막 징표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큰소리치는 종교가들은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새로운 기적을 찾아 헤맬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예수께로부터 버림받을 것입니다. 4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남겨두고 떠나 가셨다.”
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건너가고 나서야 남은 빵 일곱 광주리를 가져오지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제자들이 놀라서 어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는데 바로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경계하여라.”
제자들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누룩은 빵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예수께서 누룩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왜 빵을 가져오지 않았는지 야단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큰일났다고 수군거렸습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빵을 가져왔는지, 놓고 왔는지에 관심을 가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빵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님을, 너희는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느냐?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경계하여라.”
누룩을 경계하라고요? 여기서 말하는 누룩이 무엇입니까? 당연히 빵을 만들 때 집어넣는 누룩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누룩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똑같은 말씀을 전해주고 있는 마가복음 8장에는 누룩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그들이 탄 배 안에는 빵이 한 개밖에 없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제자들은 서로 수군거리기를 ‘우리에게 빵이 없어서 그러시는가 보다’ 하였다.”
누가복음 기자는 두 번째 빵의 기적 이야기를 기록해 놓지 않았는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이 무엇인지를 밝혀 놓았습니다.
“그 동안에 수천 명이나 되는 무리가 모여들어서, 서로 밟힐 지경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먼저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 곧 위선을 경계하여라. 가려놓은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 놓은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것들을 사람들이 밝은 데서 들을 것이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그것을 사람들이 지붕 위에서 선포할 것이다.’ ” (누가복음 12:1-3)
누가에 의하면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은 곧 위선입니다. 겉으로는 의로운 척, 깨끗한 척 하면서 실제로는 온갖 죄를 다 짓는 위선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런 위선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태복음 기자는 그들의 가르침이라고 표현합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빵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가르침을 경계하라고 하시는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결국 예수께서 경계하신 것은 말로는 그럴듯하게 가르치면서 실제로는 거짓된 삶을 사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의 그 삶의 모습입니다. 입으로는 율법을 다 지킨다고 큰소리치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무리들과 심지어는 예수님에게까지 왜 율법을 지키지 않느냐고, 왜 빵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느냐고 시비를 걸던 그 사람들이 그 마음속에는 온갖 거짓과 탐욕과 욕심이 차 있는 것을 예수께서 보시고 분개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아셨기에 그들을 남겨두고 떠나가셨고, 제자들에게 그들로부터 떠나갈 것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떠나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현대판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들의 누룩, 그들의 가르침과 삶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왜 그렇게 기독교인들을 욕하고 비방합니까? 이유는 오직 하나, 기독교인들이 “말은 잘 한다”는 것입니다. 말은 잘 하면서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욕심많고, 더 자기 이익만 챙기고 하는 것들을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판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은 예수께로부터 버림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가, 아니면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의 제자인가? 무엇을 먹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내가 어떤 가르침을 따르고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참된 제자들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께서는 우리를 남겨두고 떠나가실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남겨두고 떠나가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께로부터 버림받지 않는, 진정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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