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 2008. 4. 27.
본문) 마태복음 12:1-8
"그 무렵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먹기 시작하였다. 바리새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를,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지 않았느냐? 그것은 오직 제사장들 밖에는, 자기도 그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또 안식일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범해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 책에서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 (표준새번역 개정판)
건국대학교 히브리학과 교수로 있는 최명덕 박사가 예루살렘 대학에 유학 가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누군가가 그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열어보니, 옆집에 사는 유대인 아주머니였습니다. 최 박사님 아내를 찾더니 자기 집의 전깃불을 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스위치만 올리면 들어오는 불을 왜 자기는 못 켜고 남보고 켜 달라고 하나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날이 바로 샤밧, 즉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가 찾아온 때가 금요일 저녁 막 해가 진 후였던 것입니다.
금요일 저녁 해가 지면서 안식일이 시작되면 불을 켜는 행위도 창조 행위라는 이유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웃집 여인은 이방인인 한국 사람에게 전기 스위치를 올려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래서 안식일이 되기 전에 미리 불을 켜 놓습니다. 그런데 옆집 부인이 깜박 잊고 불을 켜 놓지 않은 상태에서 해가 져 버렸고 이미 안식일, 샤밧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캄캄하게 온 밤을 지낼 수는 없는 형편이었고, 그래서 부탁을 한 것이었고 스위치를 켜니 곧 불이 들어왔습니다. 물론 유대인 부인은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날입니다. 유대인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에 들어있고, 신명기 5장에 나오는 십계명을 읽어보면 다른 계명들과 비교했을 때 유난히 ‘너에게 지키라고 명한다’는 강조구절이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안식일 계명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다.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출애굽기 20:8-11)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샤밧’(sabbath)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멈추다’, ‘쉬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시간으로 치면 금요일 해질녘부터 토요일 해질녘까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또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마을에서는 회당장이 나팔을 세 번 불어 안식일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러면 모든 이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금요일 저녁 식사 때 먹을 음식은 미리 만들었고, 손님들을 초대하여 함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특별한 두 덩어리의 빵을 구워먹고, 축제의 표시로서 포도주를 나누어 마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안식일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또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요? 즉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인가요? 유대의 랍비들은 안식일 계명 중에서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을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곧 일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해서는 안 되는 ‘어떤 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랍비들은 다시 모세5경을 뒤졌고, 마침내 거기에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금지조항들을 찾아냈으니 그것이 모두 39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곡식과 관계되는 것이 11가지였으니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쟁기질, 씨 뿌리기, 추수, 추수한 곡식 단 묶기, 타작, 도리깨질, 곡식 씻기, 체질, 방아질, 반죽, 빵 굽기
그렇습니다.
유대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안식일 금지조항 39가지를 포함해서 모두 613가지의 계명을 찾아내어 그것들은 단 한 가지라도 어기지 않으려 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지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다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나게 무거운 멍에요 짐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배경으로 해서 오늘의 본문을 보아야 합니다.
자, 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어딘가 가실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우선 안식일에 어딘가로 가신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어디론가 떠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6장에 그 근거가 있습니다.
“ ‘내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으니, 엿샛날에는 내가 너희에게 양식 이틀 치를 준다. 그러니 이렛날에는 아무도 집을 떠나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백성이 이렛날에는 안식하였다.” (출애굽기 16:29-30)
여러분!
사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욕심 부리기 위하여 안식일에 또 밖으로 나가서 만나를 구하러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의 랍비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안식일에는 집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여기 ‘집’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마콤’을 그냥 ‘집’이라고 번역하면 안식일에 집 밖에 일체 나올 수 없게 되니까 그렇다면 회당에도 갈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느 랍비들은 ‘동네’ 또는 ‘마을’로 해석함으로써 회당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 이어서 나오는 9절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의 본문은 아마도 예수께서 집에서 나와 회당으로 가고 계셨던 때 일어난 일로 보여 집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회당으로 가고 계셨는데 마침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밀이 잘 자라서 열매를 맺고, 밀이 익은 고소한 냄새가 퍼졌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보면 이때가 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마태복음 기자는 기가 막힌 표현을 해 놓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먹기 시작하였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그만큼 가난하고 궁핍했던 사람들입니다. 웬만큼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라면 안식일이 그 어느 날보다 더 풍족하게 먹고, 맛있는 음식을 미리 준비해서 먹는 날이며, 아울러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날입니다. 아마도 예수님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더라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도 적어도 안식일에 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도 가난했고, 그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가난했기에 그들은 음식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고, 또한 이웃으로부터 얻어먹지도 못했고 그래서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배가 고픈 채 회당으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배가 고파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며 밀밭 사이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밀이 잘 익은 냄새가 풍겨왔고, 그래서 그만 자기들도 모르게 밀 이삭을 잘라서 그것을 먹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짤막한 구절이지만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형편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그리고 더욱 기가 막히게도 그러한 제자들의 행위가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라고 고발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2절에 나옵니다.
“바리새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
오늘의 본문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나는 먹지 못해 배가 고파서 안식일 법을 어기는 것인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허둥지둥 밀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서 입에 털어놓는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는 배부르게 먹고 든든한 배 가지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저 가난하고 무지한 놈들이 안식일 법을 어기나 아니나 보자’ 하고 눈 크게 뜨고 살펴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면 그 순간 손가락질하며, 너희는 죄인이라고 윽박지르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그들은 적어도 세 가지 계명을 어겼습니다. 손으로 밀 이삭을 잘랐으니 추수를 한 것이요, 그것을 손바닥으로 비벼서 낟알을 거두었으니 타작을 한 것이며, 그것을 먹기 위해 손으로 털면서 후후 불었을 터이니 도리깨질을 한 셈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손바닥에 있는 밀알들은 안식일 법을 세 가지나 어기고 생산된 것이니 불결한 음식들이요, 그것을 제자들이 먹었으니 그들의 몸은 부정을 탄 것입니다. 그래서 냉큼 예수께 일러바쳤고, 예수도 그런 부정한 자들의 스승이니 똑같은 사람 아니냐고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예수께서 구약에 나오는 사건들을 에로 들어 대답을 하기는 하셨습니다마는 결국 대답의 핵심은 7절 말씀입니다.
“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예수께서는 밀 이삭 잘라먹은 제자들은 죄가 없다고, 오히려 율법을 다 지켰으니 스스로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너희들이야말로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안식일 법을 세 가지나 어긴 제자들은 죄가 없다고 하고, 그 안식일 법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철저하게 지킨 그들은 죄인이라고 말씀하셨는가? 그 대답이 바로 예수께서 인용하여 말씀하신 그 말씀에 들어 있습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여러분,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호세아를 통해 선포하신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 6:6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여러분!
예언자 호세아는 기원전 750-725년 사이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아모스의 예언이 끝나던 무렵에 등장해서 기원전 721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할 직전까지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시대로 보아 알 수 있듯이 이때는 당시의 제국 앗시리아가 끊임없이 서방으로 진출해서 가나안 땅 일대를 점령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키던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북왕국 이스라엘을 비롯해서 그 주위에 있던 나라들, 시리아나 에돔 등이 언제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할지 모르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북왕국의 수도인 사마리아성은 부유한 성읍으로 소문이 났고, 소수의 사람들 손에 상업과 농업으로 인한 부가 집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잘 살게 된 것이 다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하면서 산꼭대기에도 제단을 만들어서 제사를 드리고, 상수리나무 아래에도 제단을 만들어서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러니까 온전하게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참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에브라임이 죄를 용서받으려고
제단을 만들면 만들수록,
늘어난 제단에서 더욱더 죄가 늘어난다.
수만 가지 율법을 써 주었으나,
자기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여겼다.
희생제물을 좋아하여
짐승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지만,
그들이 참으로 좋아하는 것은
먹는 고기일 따름이다.
그러니 나 주가
어찌 그들과 더불어 기뻐하겠느냐?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고,
그들의 허물을 벌하여서,
그들을 이집트로 다시 돌려보내겠다.“ (호세아서 8:11-13)
물론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이제 주님께로 돌아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이틀 뒤에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니,
우리가 주님 앞에서 살 것이다.“ (호세아서 6:1-2)
그리고 바로 그 말씀 끝에 하신 말씀이 바로 호세아서 6:6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의 뜻은 바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많이 바치고, 예배를 여러 번 드렸다든지, 율법 조항 613가지를 한 가지도 빼놓지 않고 다 지켰다고 큰소리치지 말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으로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먹지 못해 배가 고파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는커녕 안식일 조항을 어겼으니 너희는 죄인이라고 윽박지르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그 율법을 무거운 멍에와 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율법이라는 멍에와 짐을 벗겨버리시고 오직 사랑의 짐만을 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리새인들은 아무리 율법을 다 지키고, 제물을 많이 바치고, 예배에 한 번도 안 빠졌지만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보시기에 죄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고 제물을 바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나타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지라고 하시는 주님의 멍에요, 주님의 짐인 것입니다.
끝으로 8절에서 주님은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선포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앞에 나왔던 출애굽기 20장의 말씀은 물론이요, 창세기 2장의 기록에서도 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창세기 2:3)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이 선언은 바로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선언한 것이요, 이것을 기록해 놓은 마태복음 기자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합시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 사랑을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 나타내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 기억하며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태복음강해(06.9.17-10.4.18) > 2008 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 5. 11 / 그 이름에 희망을 / 마태복음 12:15-21 (0) | 2015.04.03 |
---|---|
2008. 5. 4 / 생명을 살리는 일 / 마태복음 12:9-14 (0) | 2015.04.03 |
2008. 4. 20 / 나에게 오너라 / 마태복음 11:28-30 (0) | 2015.04.03 |
2008. 4. 13 / 누가 하나님을 보는가? / 마태복음 11:25-27 (0) | 2015.04.03 |
2008. 4. 6 / 불행한 도시들이여! / 마태복음 11:20-24 (0) | 2015.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