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7 년도

2007. 2. 11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 마태복음 5:6

람보 2 2015. 4. 2. 16:50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마태복음 5장 6절 / 2007년 2월 11일



  1980년 대 이 땅을 가득 채웠던 표어가 있었지요. 소위 ‘정의 사회 구현’입니다. 그러나 그때만큼 불의가 가득 찼던 때가 따로 없었지요.

  오늘날 한국 교회의 많은 목사님들이나 교인들이 성경에 대해 오해 내지는 착각을 하는 것 중에서 꼭 지적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을 지극히 개인적인 책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성경을 하나님께서 우리 각 개인에게 주신 책이라고만 보고, 그런 측면으로만 해석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당연히 성경은 물론 당연히 성경은 각 개인이 읽고, 각자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책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공동체를 통해 역사하신 것의 기록이라고 하는 점입니다. 즉 구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기록된 책이고, 신약은 하나님과 새 이스라엘 백성, 교회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신앙은 내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한 것임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각 권이 어느 시대,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공동체에게 주어진 것인지를 잘 분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독교의 신앙이 개인주의화하면서 소위 죄의 문제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죄도 그렇고 구원도 그렇고 전부 다 개인적인 문제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신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흐름을 소위 '복음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목사님들 중에 자기가 복음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 역시 제가 목사님들 중에서 가장 복음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극단에 소위 '순복음' 이라는 정체불명의 신앙이 자리 잡고 주류 중의 주류를 자처하고 있지요. 그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주류처럼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스스로 ‘순복음적’이라고 말하는 교회일수록 보수적인데 그렇게 보수적인 교회일수록 모든 신앙의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접근해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죄의 문제를 그들은 술을 피운다든가, 담배를 피운다든가 하는 것으로 접근합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일에 목숨을 걸다시피 합니다. 또 예배 참석의 횟수로 신앙의 종교 나쁨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이루어지는 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으면 신앙이 좋다고 이야기하고, 예배에 한 번이라도 빠지면 신앙이 나쁘다고 야단합니다.

  동시에 그들은 사회적, 정치적 발언을 하면 비성서적이라고, 비복음적이라고 비판하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런 사람들만큼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들일수록 사회적인 차원, 구조적인 차원에서의 죄의 문제는 놓치기 쉽고, 어쩌면 일부러 그러한 문제에 눈을 감고 있는 듯한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신앙의 가장 큰 문제는 구원도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국한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소위 '예수천당' 이라는 말을 통해 '나 혼자 예수 잘 믿고 천당 간다'는 것이 신앙의 목표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 혼자 예수 잘 믿어서 잘 먹고 잘 살고 그러다 천당 가면 그것이 곧 신앙생활의 목표를 이룬 것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나라, 하늘나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이루어야 할 세상임을 그들은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어디를 보아도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결코 공동체와는 관계없이 개인이 신앙생활을 잘 해서 천당 간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도대체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던가요? 물론 성경을 읽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것은 바로 '정의'입니다.


  오늘날 구약에 책으로 그 이름이 남아 있는 열일곱 명의 예언자 가운데 역사상 맨 처음 등장하는 인물로 알려진 아모스를 통해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의 핵심은 바로 '정의'입니다. 아모스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 주가 이스라엘 가문에 선고한다.

  너희는 나를 찾아라. 그러면 산다.

  너희는 베델을 찾지 말고,

  길갈로 들어가지 말고,

  브엘세바로 넘어가지 말아라.

  길갈 주민들은 반드시 사로잡혀 가고,

  베델은 폐허가 될 것이다.'


  너희는 주를 찾아라. 그러면 산다.

  그렇지 않으면,

  주께서 요셉의 집에 불같이 달려드시어

  베델을 살라버리실 것이니,

  그 때에는

  아무도 그 불을 끄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공의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들며,

  정의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자들이다."    (아모스서 5장 4-7절)


  그렇습니다.

  아모스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길은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찾는다는 것은 곧 정의를 이루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의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들며 정의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의를 소태처럼 만들고, 정의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것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요?

  "사람들은 법정에서

  시비를 올바로 가리는 사람을 미워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너희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하니,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도

  거기에서 살지는 못한다.

  너희가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어도

  그 포도주를 마시지는 못한다.

  너희들이 저지른 엄청난 죄악을

  나는 다 알고 있다.


  너희는 의로운 사람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법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신중한 사람들이

  이런 때에 입을 다문다.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아모스서 5장 10-13절)


  그렇습니다.

  법정에서, 관공서에서, 세무서에서 의로운 사람을 학대하고,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억울하게 하고, 바른 말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수한 범죄와 엄청난 죄악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일반 세상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거룩한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도 하나님 보시기에 매한가지였다고 아모스는 선포합니다.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아모스서 5장 21-23절)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벌이는 절기 행사나 성회 모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역겹다는 것입니다. 번제물이나 곡식제물,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하나님께서 거들떠보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찬송으로 부르는 노랫소리나 거문고 소리도 하나님 앞에서 집어치우라는 것입니다.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도 예배드리고 제물을 바치는 그런 행위를 배척하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아모스서 5장 24절)


  여러분, 이 말씀이 바로 아모스서의 핵심입니다.

  "공의가 물처럼,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여러분!

  예언자 아모스만 그렇게 선포한 것이 아닙니다. 예언자 중에 가장 대표적인, 그래서 열일곱 권의 예언서 중 맨 처음에 자리 잡은 이사야도 처음부터 아모스와 같은 내용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아라.

  다 쓸모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은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이사야서 1장 11-15절 상)


  이사야가 말씀을 선포하면서 맨 처음에 선포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나도 충격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치는 온갖 제물들이 헛된 것이고, 초하루와 안식일, 정한 절기들이 하나님께 짐이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하나님께서 너무 지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무리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이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요? 지금 읽어드린 말씀 바로 뒤를 이어서 이사야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이사야서 1장 15절 하-17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그것은 한마디로 '정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는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언서 내용의 핵심이자 전부입니다. 남, 북 모두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셨고, 그래서 결국 멸망당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정의가 바탕이 되는,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이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요?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올 것인가요? 이사야는 바로 그런 세상이 올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날이 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고통 받던 백성에게서 어두움이 걷힐 날이 온다. 옛적에는 주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받게 버려두셨으나, 그 뒤로는 주께서 서쪽 지중해로부터 요단 강 동쪽 지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방 사람이 살고 있는 갈릴리 지역까지, 이 모든 지역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백성들에게 빛이 비쳤다.


  ‘하나님,

  주께서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군인들이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이,


  그들이 주님 앞에서 즐거워합니다.

  주께서 미디안을 치시던 날처럼,

  그들을 내리 누르던 멍에를 부수시고,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던 통나무와

  압제자의 몽둥이를 꺾으셨기 때문입니다.


  침략자의 군화와 피 묻은 군복이

  모두 땔감이 되어서,

  불에 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의 열심히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이사야서 9장 1-7절)


  그렇습니다.

  한 아기가 태어날 것인데,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 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바로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기초는 바로 '공평과 정의'입니다. ‘공평과 정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나라,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이루실 나라는 바로 '공평과 정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공평과 정의’가 바탕이 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하늘나라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 같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 버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드러날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녹아 버릴 터인데,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에 하늘은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약속을 따라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의가 깃들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13절)


  "우리는 그의 약속을 따라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의가 깃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예언자 아모스도, 예언자 이사야도 정의를 그렇게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다스릴 나라도 '공평과 정의' 로 세워지는 나라이며, 사도 베드로가 바라보았던 새 하늘과 새 땅에도 '정의'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꿰뚫는 것, 그것은 바로 '정의'입니다.


  바로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여러분!

  여기 나오는 의는 "디카이오쉬네"인데 이는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곧 '정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곳곳에서 이 '정의', '하나님의 뜻'을 강조하셨습니다.


  "너희의 의로운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 행실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5장 20절)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장 33절)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오히려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옳은 길을 보여 주었으나,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았으며, 그를 믿지 않았다." (마태복음 21장 31-32절)


  그러므로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곧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복이 있으니 '그들이 배부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배부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저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산다는 뜻입니까? 남들보다 더 많이 먹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이사야 25장의 성취를 뜻합니다.


  "만군의 주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 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또 주께서 이 산에서

  모든 백성이 걸친 수의를 찢어서 벗기시고,

  모든 민족이 입은

  수의를 벗겨서 없애실 것이다.

  주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바로 이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바로 이분이 주님이시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한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이사야서 25장 6-9절)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배부르다’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그 날이 오면, 이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였으니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고 고백하며 즐거워하는 잔치에 우리가 참여할 것이고, 그 나라는 바로 ‘정의’를 바탕으로 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정의’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표지는 바로 ‘정의’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정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부족함 없이 완전한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열성적으로 일하고 그것을 갈망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 하늘나라를 이루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