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성
하박국 3:17-19 / 1982. 11. 28
오늘은 11월 넷째주일. 교회력으로 강림절(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오늘부터 네 주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기간이며 오늘이 그 첫번째 날입니다.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성탄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다리는 마음’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제 마음 한 구석에는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음을 먼저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것을 풀지 않으면 강림절에 관한 말씀을 드릴 수 없다는 생각이 큽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절에 관한 말씀을 아직 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냈습니다. 과일도 가져오고, 국밥도 나눠 먹고 총동원 주일 예배도 드렸습니다. 지극한 정성이 담긴 과일이 이 강단 앞에 가득히 쌓였고 성가대는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주일 하루가 바쁘게 지나가고 오후예배도 다 끝난 다음 피곤함이 온 몸을 감쌌습니다. 바로 그 때 제 마음 속에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가?”
이때부터 저는 다음 주일 (바로 오늘)설교에서 무엇을 이야기할까 하는 생각에 사로 잡혔습니다. 보는 책, 만나는 사람들과 하는 이야기, 들리는 사건 모두 다 설교의 소재가 될 수 있는가에 촛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러면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들은 많은 이야기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것, 두가지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기독교 방송에서 밤 10시에 실시하는 어느 목사님의 상담프로그램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우선 하나는 스물두 살 먹은 어떤 처녀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선천적인 심장병으로 인해 아주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여러 군데 병원을 다녔지만 고치지 못하고 괴로워 하다가 “이제는 교회에나 나가자” 하고는 넉 달 전부터 어느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사람들이 그녀에게 “어느 기도원에 가면 아주 능력이 많은 분이 있는데 그 분의 안수를 받으면 낫는다” 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녀는 곧 그분을 찾아갔습니다. 능력이 많다는 그 분은 그 처녀의 온 몸을 만지면서 안수해 주고는 그녀의 병은 부모님의 죄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빨리 회개해야 하고 또 그 처녀는 기도원에 남아서 헌신봉사하면 3년 후에 병이 다 낫고 앞으로 장로부인이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부흥사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부흥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거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 부흥사께서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것은 믿음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분 중에 집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길을 가다가 좋은 집을 골라라. 그리고 그 집이 내 집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그러면 꼭 그렇게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제 마음을 몹시 우울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적어도 그렇지 않다.”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서 성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러한 우울한 이야기는 우리 시대, 우리 주위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발견했습니다. 이 때 제가 발견한 인물, 그는 바로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제가 지난 달 설교에서도 다루었던 인물, 바로 야곱입니다.
저는 지난 달 설교에서 부모와 형을 떠나 광야에서 헤메던 야곱, 그러나 광야, 그곳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그 뒤를 이어서 창 28:20-22을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만일 제가 이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여 주시고 저를 지켜주셔서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고,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만 하여 주신다면, 저는 야훼님을 제 하나님으로 모시고, 제가 세운 이 석상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무엇을 주시든지 그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습니다. '"
인간 야곱을 사로잡고 있는 생각,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 무엇을 축복해 주시면”이라는 생각입니다. “무엇 무엇때문에 감사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를 사로잡고 있는 생각임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조건을 내거는 야곱, 그는 바로 저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고 아니 한국의 현대 기독교인 모두의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계속 우울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서를 다시 읽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얼굴이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을 발견하고 나서였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하박국,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언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대략 기원전 600년 경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바로 그의 조국 유다가 멸망을 눈앞에 둔 때였습니다. 앗시리아에 시달리던 유다는 결국 기원전 587년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K.O 펀치를 맞고 쓰러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이었기에 예언자 하박국은 하나님을 향해 끊임없이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왜 당신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을 내버려 두는가? 하나님도 섬기지 않는 바빌론이 왜 잘 살고 강성해지도록 내버려 두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박국은 옥상 꼭대기에 올라가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드디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때 하박국은 눈을 돌려 황폐해 진 조국의 땅을 바라다봅니다. 그런데 그 땅은 이미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무화과의 열매는 적군이 다 가져갔고, 포도나무는 뿌리 뽑혔고, 올리브 나무는 짓밟혔고, 밭은 전부 불살라졌고 양떼와 소떼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감사할 조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박국은 노래 부릅니다.
“비록 무화과는 아니 열리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 곡식은 나지 않아도
비록 우리에 있던 양떼는 간데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
나는 야훼 안에서 환성을 올리렵니다.“
하박국은 환성을 지릅니다. 환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기쁨의 노랫소리입니다. 어떻게 기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환성을 지를 수 있습니까? 하박국은 이어서 노래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 뛰렵니다.
야훼 나의 주께서 힘이 되어 주시고
사슴처럼 날랜 다리를 주시어
나로 하여금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십니다.“
여기에서 저는 야곱과는 아주 다른 신앙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 무엇 때문에”감사하는 신앙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참된 신앙은 바로 아무 조건없이, 아니 어떠한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하나님 안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환성을 지를 수 있는 단계입니다.
우리들의 추수감사절은 어떠했습니까? 여러분들의 귀에 하박국의 환성이 들립니까? 여러분들의 눈에 하박국의 환호하는 모습이 보입니까?
하박국의 시대로부터 600년 후, 유대는 완전히 식민지였습니다.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희망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이스라엘 민족을 잊어버리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누울 곳이 없어서 말구유에 누워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 아기의 일생이 얼마나 기구할까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방은 고요했고, 사람들은 모두 잠들었습니다. 그 아기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남들이 다 편안하게 잠자고 있을 때 들판에서 밤을 새워가며, 추위에 떨며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비치면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목자들은 모두 놀라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동네에 나셨다. 그 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 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그리고 갑자기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그것이 바로 환성입니다. 환성의 극치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바로 환성의 계절입니다. 그렇기에 추수감사절은 곧 강림절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강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이제 네주만 지나면 성탄절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성탄절을 지내왔습니다. 올해도 또 다시 그럭저럭 성탄절을 보내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박국의 환성을 듣게 된다면, 하박국의 환호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천사들의 환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기뻐 노래 부르는 천사들의 그 환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강림절을 맞이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만드십시다.
나의 신앙은 어느 단계인가?
“하나님께서 무엇 무엇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합니다.”의 단계인가요?
아니면 “포도열매는 열리지 않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의 단계인가요?
다시 말해서 조건의 단계인가요? 환성의 단계인가요?
저는 이제 오늘의 이야기 첫머리에 했던 질문을 다시 합니다.
“나는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가?
그리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 우리와 함께 하심을”
입학시험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고3, 중3 여러분,
이제 마음의 준비가 다 되셨습니까?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습니다. 그러니 결과는 오직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라는 기도가 여러분의 입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이번 겨울이 우리 모두에게 “환성의 계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박국 3:17-19 / 1982. 11. 28
오늘은 11월 넷째주일. 교회력으로 강림절(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오늘부터 네 주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기간이며 오늘이 그 첫번째 날입니다.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성탄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다리는 마음’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제 마음 한 구석에는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음을 먼저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것을 풀지 않으면 강림절에 관한 말씀을 드릴 수 없다는 생각이 큽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절에 관한 말씀을 아직 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냈습니다. 과일도 가져오고, 국밥도 나눠 먹고 총동원 주일 예배도 드렸습니다. 지극한 정성이 담긴 과일이 이 강단 앞에 가득히 쌓였고 성가대는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주일 하루가 바쁘게 지나가고 오후예배도 다 끝난 다음 피곤함이 온 몸을 감쌌습니다. 바로 그 때 제 마음 속에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가?”
이때부터 저는 다음 주일 (바로 오늘)설교에서 무엇을 이야기할까 하는 생각에 사로 잡혔습니다. 보는 책, 만나는 사람들과 하는 이야기, 들리는 사건 모두 다 설교의 소재가 될 수 있는가에 촛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러면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들은 많은 이야기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것, 두가지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기독교 방송에서 밤 10시에 실시하는 어느 목사님의 상담프로그램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우선 하나는 스물두 살 먹은 어떤 처녀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선천적인 심장병으로 인해 아주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여러 군데 병원을 다녔지만 고치지 못하고 괴로워 하다가 “이제는 교회에나 나가자” 하고는 넉 달 전부터 어느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사람들이 그녀에게 “어느 기도원에 가면 아주 능력이 많은 분이 있는데 그 분의 안수를 받으면 낫는다” 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녀는 곧 그분을 찾아갔습니다. 능력이 많다는 그 분은 그 처녀의 온 몸을 만지면서 안수해 주고는 그녀의 병은 부모님의 죄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빨리 회개해야 하고 또 그 처녀는 기도원에 남아서 헌신봉사하면 3년 후에 병이 다 낫고 앞으로 장로부인이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부흥사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부흥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거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 부흥사께서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것은 믿음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분 중에 집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길을 가다가 좋은 집을 골라라. 그리고 그 집이 내 집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그러면 꼭 그렇게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제 마음을 몹시 우울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적어도 그렇지 않다.”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서 성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러한 우울한 이야기는 우리 시대, 우리 주위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발견했습니다. 이 때 제가 발견한 인물, 그는 바로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제가 지난 달 설교에서도 다루었던 인물, 바로 야곱입니다.
저는 지난 달 설교에서 부모와 형을 떠나 광야에서 헤메던 야곱, 그러나 광야, 그곳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그 뒤를 이어서 창 28:20-22을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만일 제가 이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여 주시고 저를 지켜주셔서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고,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만 하여 주신다면, 저는 야훼님을 제 하나님으로 모시고, 제가 세운 이 석상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무엇을 주시든지 그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습니다. '"
인간 야곱을 사로잡고 있는 생각,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 무엇을 축복해 주시면”이라는 생각입니다. “무엇 무엇때문에 감사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를 사로잡고 있는 생각임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조건을 내거는 야곱, 그는 바로 저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고 아니 한국의 현대 기독교인 모두의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계속 우울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서를 다시 읽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얼굴이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을 발견하고 나서였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하박국,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언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대략 기원전 600년 경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바로 그의 조국 유다가 멸망을 눈앞에 둔 때였습니다. 앗시리아에 시달리던 유다는 결국 기원전 587년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K.O 펀치를 맞고 쓰러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이었기에 예언자 하박국은 하나님을 향해 끊임없이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왜 당신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을 내버려 두는가? 하나님도 섬기지 않는 바빌론이 왜 잘 살고 강성해지도록 내버려 두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박국은 옥상 꼭대기에 올라가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드디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때 하박국은 눈을 돌려 황폐해 진 조국의 땅을 바라다봅니다. 그런데 그 땅은 이미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무화과의 열매는 적군이 다 가져갔고, 포도나무는 뿌리 뽑혔고, 올리브 나무는 짓밟혔고, 밭은 전부 불살라졌고 양떼와 소떼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감사할 조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박국은 노래 부릅니다.
“비록 무화과는 아니 열리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 곡식은 나지 않아도
비록 우리에 있던 양떼는 간데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
나는 야훼 안에서 환성을 올리렵니다.“
하박국은 환성을 지릅니다. 환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기쁨의 노랫소리입니다. 어떻게 기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환성을 지를 수 있습니까? 하박국은 이어서 노래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 뛰렵니다.
야훼 나의 주께서 힘이 되어 주시고
사슴처럼 날랜 다리를 주시어
나로 하여금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십니다.“
여기에서 저는 야곱과는 아주 다른 신앙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 무엇 때문에”감사하는 신앙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참된 신앙은 바로 아무 조건없이, 아니 어떠한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하나님 안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환성을 지를 수 있는 단계입니다.
우리들의 추수감사절은 어떠했습니까? 여러분들의 귀에 하박국의 환성이 들립니까? 여러분들의 눈에 하박국의 환호하는 모습이 보입니까?
하박국의 시대로부터 600년 후, 유대는 완전히 식민지였습니다.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희망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이스라엘 민족을 잊어버리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누울 곳이 없어서 말구유에 누워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 아기의 일생이 얼마나 기구할까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방은 고요했고, 사람들은 모두 잠들었습니다. 그 아기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남들이 다 편안하게 잠자고 있을 때 들판에서 밤을 새워가며, 추위에 떨며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비치면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목자들은 모두 놀라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동네에 나셨다. 그 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 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그리고 갑자기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그것이 바로 환성입니다. 환성의 극치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바로 환성의 계절입니다. 그렇기에 추수감사절은 곧 강림절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강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이제 네주만 지나면 성탄절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성탄절을 지내왔습니다. 올해도 또 다시 그럭저럭 성탄절을 보내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박국의 환성을 듣게 된다면, 하박국의 환호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천사들의 환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기뻐 노래 부르는 천사들의 그 환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강림절을 맞이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만드십시다.
나의 신앙은 어느 단계인가?
“하나님께서 무엇 무엇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합니다.”의 단계인가요?
아니면 “포도열매는 열리지 않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의 단계인가요?
다시 말해서 조건의 단계인가요? 환성의 단계인가요?
저는 이제 오늘의 이야기 첫머리에 했던 질문을 다시 합니다.
“나는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가?
그리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 우리와 함께 하심을”
입학시험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고3, 중3 여러분,
이제 마음의 준비가 다 되셨습니까?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습니다. 그러니 결과는 오직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라는 기도가 여러분의 입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이번 겨울이 우리 모두에게 “환성의 계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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