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 년도

1982. 11. / 마리아의 찬양 / 누가복음 1:46-57

람보 2 2015. 3. 4. 16:51

마리아의 찬양 (1982. 11)

마리아의 찬양

눅 1:46-57 / 1982.11

제가 교역자가 되고나서 제일 섭섭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성가대에 앉을 기회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가대를 할 때 대원들과 함께 열심히 연습하고 마음을 모아 노래할 때 아름다운 화음이 이루어지면 마음이 뭉클해지던 경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성가대석에 앉아 있는 대원 여러분, 여러분이 앉아 있는 그 자리는 결코 아무나, 함부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님을 우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흔히 성가대 헌신예배라고 하면 성가대가 연습한 노래를 몇 곡 더 부르고, 설교자는 의례히 성가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예배에서의 위치를 말하면서 성가대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우리교회의 82년도 연중행사 및 사업계획을 보니까 성가대 헌신예배가 1년에 두 번, 성가대 속 주관예배가 한 번, 합해서 세 번입니다. 그러니까 매년 두세번 헌신예배를 드려온 셈이고, 그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들어오셨을테니까 거기에 제가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 지 걱정입니다.

그런 가운데 이제 저는 찬양에 대한 성경말씀들을 잠깐 살펴보고, 그 다음에 오늘의 본문을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서를 살펴보면 음악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창세기 4:21에 나옵니다. 카인의 6대손인 유발은 “거문고를 뜯고 퉁소를 부는 악사의 조상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유발과 그의 일족이 누구를 찬양한 것인지, 또는 단지 자기들의 만족과 기쁨을 표현하기위해 거문고를 뜯고, 퉁소를 불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 다음 창세기 31:27에 “소구를 치고, 수금을 타며 노래 부른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쳤던 야곱이 이번에는 장인을 속이고 몰래 도망치던 때 일어난 일입니다. 야곱이 도망친 것을 알고 뒤쫓아 간 라반이 야곱을 만나자 “어쩌자고 나를 감쪽같이 속이고 도망하느냐? 나에게 알렸더라면 소구를 치고 수금을 타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떠나 보냈을 것이 아니냐?” 하고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도 역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눈을 돌려 좀 더 앞으로 나아가 봅시다. 천천히 나아가다 보면 우리의 눈을 바로 신명기 10:21에서 멈추게 됩니다. “네가 찬양할 이는 그 분뿐, 그가 너희 하나님이시다.”라고 성서는 증거합니다. 이 말은 결국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찬양의 대상이라는 고백이며 또한 찬양 받으실 유일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이 신명기 10:12-22사이에 놓여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12절부터 보면
“ 이제 너 이스라엘아! 야훼의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너희 하나님 야훼를 경외하고 그가 보여주신 길만 따라가며 그를 사랑하는 것이요,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쏟아 그를 섬기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기억하시고 애굽에서 구출해 낸 것을 상기시키면서 “너희 하나님 야훼를 경외하며 그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그를 섬겨라 네가 찬양할 이는 그 분뿐, 그가 너희 하나님이시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요구합니다. 이 말은 결국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찬양은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역사적 경험을 통한 신앙고백임을 보여줍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를 드릴 때나 승리를 얻었을 때, 그리고 역사적 위기 속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을 때 하나님께 찬양을 돌렸습니다. 성서는 우리들에게 그들이 부른 많은 노래를 전해 줍니다. 대표적인 것들만 골라봐도 출애굽기 15장의 모세의 노래와 미리암의 노래, 민수기 21장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른 노래와 시인들의 노래, 사사기 5장의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등 많은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찬양을 통하여 그의 신격(神格)과 행사 속에 있는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유일하신 분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제 다윗시대로 와 봅시다. 사무엘하 19:35에 의하면 다윗은 예루살렘에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들의 악단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학자들의 꾸준한 연구 결과 성전에는 항상 전문적인 성가대원들이 있었고 성전의 관현악단과 합창단이 구성되는 데에는 신중한 규정들이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시대에 불리워진 많은 시련들을 우리는 오늘 날 시편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중 많은 것이 찬양시이며 그 시편들은 “할레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라”로 시작됩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시편 113편을 살펴보면 찬양의 대상은 주 야훼이며, 찬양을 바쳐야 하는 자들은 야훼의 종들 즉 나, 주의 성도, 제사장들, 예배자들 그리고 모든 세계입니다. 그리고 찬양을 드려야 할 때는 지금부터 영원토록 즉 아침이든, 밤이든, 봄이든, 여름이든, 승리했을 때든, 고통당할 때든, 언제나이며 어디에서나입니다

이러한 시편의 명칭은 그 뜻이 노래, 찬양 이외에 기도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니 시편은 그들에게 찬송시인 동시에 기도시인 것이며 결국 찬송은 곧 기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찬양을 신앙고백으로 생각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부르고 있습니까?

자, 이제 찬양은 신앙고백이고 또 기도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의 눈을 오늘의 본문으로 돌려봅시다. 오늘의 주인공은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졌다는 천사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 때 그녀의 친척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향하여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신 분”이라고 축하하게 되고 거기에 대해 마리아는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으니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이다.“
하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립니다.

사실 부모에게 가장 기쁜 일이 바로 자식이 잘 되는 것이라고 하면 자기 아들이 온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소식보다 더 기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아들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어린 예수에 얽힌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의 사건이 마리아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과연 전부인가요?

얼마 후 아기 예수를 안고 성전을 찾아 간 마리아는 시므온이라는 경건한 사람을 만납니다. 시므온은 예수를 보자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아주 무서운 말을 마리아에게 던집니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을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누가복음 2:34-35)
세상에 이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한 생명의 숭고한 탄생 앞에서 누가 그런 끔찍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예수의 생애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3년동안 사랑을 전하시다가 끝내는 배반당하시고 붙잡히십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리지르고 비난과 욕설과 저주를 퍼붓고 드디어는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렸습니다. 자식이 조금만 아파도 대신 아프려고 할 정도로 자식들을 사랑하는 분이 어머니들인데 아들의 고통과 비참한 죽음을 지켜본 마리아, 그의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그의 일생이 어찌 복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노래합니다.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들 그 위(位)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卑賤)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누가복음 1:49-53)

이 노래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러 나선 예수께서 자기의 고향 나사렛의 회당에서 읽으신 이사야서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주의 성령이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누가복음 4:18-19)

마리아가 노래한 것은, 그리고 이사야가 일찍이 예언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가까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가대 여러분 , 그리고 성도 여러분,
우리 성가대와 우리들이 무었을 노래 불렀으며, 앞으로 무었을 노래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이 힘들고 영혼이 피곤하여 지쳤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노래한 적이 있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가 이웃과 한없는 단절을 느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노래한 적이 있습니까?
불의와 악이 가득차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노래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 앞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이루어질 날이 온다고 다함께 노래하십시다.
우리, 앞으로 이 땅에 자유와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 찰 날이 온다고 다함께 노래하십시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우리 모두 자랑스럽게 노래하십시다.
마리아의 노래가 우리들의 입과 마음을 통해서 교회와 온 땅에 가득차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