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 년도

1982. 12 / 선택 / 창세기 13:1-13

람보 2 2015. 3. 4. 16:58

선택 ( 1982. 12 )

선택

창 13:1-13 / 1982.12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과학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나 여러 별들을 향하여 우주선을 쏘면 아주 정확히 목표한 지점에 도착하게 되는데 가령 우주선을 달의 보이지 않는 뒷부분의 어느 지점에 정확히 보내는 것은 사람이 여기서 콩알을 던져서 부산의 어느 한 점을 정확히 맞추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날 하늘에는 수많은 우주선들이 지구 위를 돌면서 지구를 감시하고 있는데 저 높은 하늘에 떠 있는 우주선에서 사진을 찍으면 사람의 걸어다니는 모습까지 구분할 수 있고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까지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자동차를 만들거나 여러 가지 복잡한 전자제품을 만드는데 그 일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기계들이 하고 있습니다. 소위 로봇들이 있어서 사람이 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빠르게 많은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량품도 훨씬 줄어들고 아무리 힘든 일도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로봇들이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하고 있고 그래서 로봇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생각하는 로봇까지 만들어낸다고 야단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훌륭하고 성능이 좋은 로봇이 만들어지고 특히 컴퓨터가 발달한다 해도 그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로봇이 아무리 사람보다 일을 잘하고 또 사람과 비슷해진다 하더라도 역시 로봇은 로봇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발달된 로봇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 계획하고 집어넣은 프로그램에 의해서만 움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그때 그때 행동할 것을 짜서 기계 속에 집어넣으면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지 결코 로봇이 스스로 선택해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로봇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프로그램을 짜서 꼭 정해진 대로만 하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게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고 그것이 바로 로봇과 구별되는 점이고 아무리 로봇이 비싸더라도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점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선택입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아주 큰일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선택은 자유이지만 그 선택의 결과로 남는 책임은 내가 일생동안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선택에도 중요한 것이 있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일찍이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이브, 그들은 그야말로 부러울 것 없는 낙원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브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는 선택을 하는 순간, 그리고 아담이 이브의 말을 듣고 이브가 따준 선악과를 먹는 순간 그들이 한 선택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의 죄 그것은 바로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인가 따먹지 말 것인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을 생각한데서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성서는 창세기 3:6에서
“여자가 그 나무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는 이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이브 자신은 물론이고 인간이 사는 이 세계가 얼마나 불행해졌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 한 나무 과실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 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보여 줍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 당장 내 눈앞에 나타난 이익만을 보면서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 당장은 내게 손해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나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롯의 선택 이야기입니다. 자기의 삼촌 아브라함과 함께 고향을 떠나온 롯, 그는 많은 가족들이 떠나가는 아브라함을 비난하고 욕할 때 용감하게 아브라함을 따라나섰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본토와 많은 친척들과 사랑하는 부모 형제 곁을 떠나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날 때 오직 롯만이 삼촌 아브라함을 따라 나섰습니다.

창 12:6에 보면,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했으니 이때가 롯의 인생에 있어서는 첫번째 선택의 시기였습니다. 그는 이 때 고향에 그냥 남아 있었더라면 훨씬 편했을 것입니다. 아는 친척들 많고 부모 형제가 있는 고향에 남아 있었으면 아무 걱정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아브라함을 따랐고, 그래서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브라함과 롯은 제각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 다 육축과 금과 은이 많았습니다. 아브라함도 많은 양과 소를 가졌고 롯도 많은 양과 소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만 아브라함의 양과 소를 치는 목자들과 롯의 양과 소를 치는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서로 먼저 자기 가축에게 풀과 물을 먹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롯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아브라함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여러분! 바로 이때가 롯에게 있어서 인생의 두 번째 선택의 시기였습니다. 첫 번째 선택에서 하나님을 택한 롯, 그러나 이제 재산이 많아지고 사는 것이 넉넉해지자 그는 그만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이 때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첫번째 선택을 올바르게 했던 롯. 선택의 순간 하나님을 기억했던 롯. 그러나 이제 두 번째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에 롯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육의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했습니다. 가축이 있으려면 물과 풀이 많아야 한다는 사실만 생각하고 넉넉한 물과 풍부한 자원을 보고 그곳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을 하는 때에 롯이 하나님께 기도했다거나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했다는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인간적인 생각과 자기의 욕심에 따라 선택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현재의 소유와 물질만을 보았습니다. 삼촌이 자기에게 먼저 선택하라고 해서 양보하는 말 한번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가축 잘 먹이고, 늘리는 것만을 생각하여 냉큼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엄청나게 늘어날 재산만을 생각했지 그곳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성의 죄악을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그 롯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단 들이 좋아보여서 그 들판에 있던 소돔 성에 들어가 살았던 롯, 그는 한 때 엄청난 재산을 가졌습니다. 많은 가축과 종들을 거느렸습니다. 그러나 죄악 많은 소돔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유황불로 타 없어질 때 그는 그 많던 재물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소 한 마리, 양 한 마리 심지어 양 새끼 한 마리 건지지 못했고 사랑하는 아내까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천사의 손에 이끌려 간신히 자기 자신과 두 딸만 살아남았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그래도 롯을 사랑하셔서, 아니 사실은 아브라함을 보시고 롯을 불쌍히 여기셔서 억지로 끌다시피 하여 간신히 목숨만은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롯의 선택, 그것은 분명히 스스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기에 그의 삶은 엄청난 위기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특별히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앞으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아니 사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의 문제는 인생 전체에 있어서의 그 어느 선택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준을 오직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롯과 같이 눈앞에 보이는 것, 내 손에 당장 쥘 수 있는 것으로 합니다. 앞으로 인기가 있을 학과, 돈 많이 벌 학과가 어느 것인가가 선택의 기준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은 결국은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는 롯의 선택과 같은 것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기에 오히려 그것이 멸망의 길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얼마든지 편한 길, 좋은 길을 걸어가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고, 내 뜻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겟세마네 기도)
그런데 십자가의 길은 눈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실패의 길이었고, 멸망의 길이었고, 죽음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길이었기에 성공의 길, 승리의 길, 영생에 이르는 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우리는, 바로 나는 무엇을 선택했으며,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믿음의 길을 선택하며 걸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혹, 롯과 같이, 아담과 이브와 같이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하며 살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선택에 따른 책임은 나 자신이 져야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다시 한번 각자의 신앙을 되돌아 보십시다. 그리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십시다. 눈에 보이는 편한 길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가신 길,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십시다. 주님께서는 바로 지금도 당신을 선택한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