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년도

2006. 6. 4 / 진리의 왕 / 요한복음 18:28-40

람보 2 2015. 3. 31. 20:10

진리의 왕


요한복음 18:28-40 / 2006. 6. 4



  이제 유대인 지도자들의 심문은 끝났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배반하고 어디론가 떠나갔고, 예수께 그의 제자들과 그의 가르침에 대해 물었던 대제사장들은 제대로 된 혐의도 밝혀내지 못한 채 예수를 이방인 총독에게 넘겨 재판을 받게 하고야 말았습니다.


 대제사장은 두 가지를 예수께 물었습니다. 하나는 제자들에 관한 것이었으니 아마도 제자들이 누구누구이며,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물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제자들도 붙잡아다가 같이 없애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 관해 묵비권을 행사하심으로써 제자들의 정보를 하나도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의 가르침에 관한 것이니 그것은 아마도 가르침의 내용이 무엇이었으며, 제자들에게 가르쳐서 무슨 일을 저지르려 했는지를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몰래 가르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드러내놓고 가르쳤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셨습니다.


 결국 예수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가 죽을  죄를 지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네들 내부의 문제를 로마인들의 정치적인 문제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분 존재 자체와 더불어 그분의 가르침과 명성을 함께 묻어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로마 총독에게 보낸 것은 일차적으로 그를 공동체에서 완벽하게 쫒아내는 행위였습니다. 즉 동족을 배반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야바의 집에서 총독 관저로 예수를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을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관저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28절)


 여러분!

 이 구절은 요한복음에만 나타나는 기록으로 공관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유월절을 준비하는 때라는 사실이 강조되었고, 자신들은 부정 타지 않기 위해서 이방인인 총독 관저로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그곳에 예수님을 밀어 넣는 것은 얼마나 철저한 버림인가를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또한 부정을 타는 것이 어떤 행위인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 주는 구절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유월절 규례를 지키고, 그 음식을 먹기 위하여 이방인의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으면서도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는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를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시고 이방인인 총독의 관저로 들어가셨습니다. 일찍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음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 (요한복음 1장 29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옛날 출애굽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자기 집 대문의 문설주와 좌우 안방에 발랐고, 모든 사람들의 맏아들과 짐승들의 맏새끼를 죽이기 위해 나타난 천사들이 그 피를 보고 그 안에 있는 맏아들과 맏새끼들을 살려놓은 것처럼 예수께서는 당신이 직접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심으로써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자, 이제 다시 본문을 살펴보십시다.

 그들이 총독의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빌라도가 할 수 없이 고발하는 유대인들과 고발당하는 예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재판을 진행시킵니다.


 본디오 빌라도, 사도신경에 그 이름이 나오는 바람에 로마인들 중에 가장 유명해진 인물입니다. 1961년에 가이사랴에 있는 원형극장에서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헌정된 로마 시대의 비석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거기에 기가 막히게도 ‘유대의 장관, 본디오 빌라도’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가이사랴는 바로 로마의 유대 총독이 머물던 도시였고, 그래서 본디오 빌라도가 실재 인물이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그는 기원후 26-36년에 유대 총독으로 재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지은 ‘유대 고사’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황제의 형상을 끌어들이고 설치한 첫 번째 총독이었습니다.


 “유대의 총독인 빌라도는 가이사랴에서 그의 군대를 끌어와 예루살렘에 있는 겨울 병영으로 이동시켰을 때, 군기에 달려 있는 황제의 흉상들을 그 도시로 들여옴으로써 유대의 관습을 파괴하는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율법은 형상을 만드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총독들이 이 도시에 들어올 때에 그러한 장식들이 들어있지 않은 군기들을 사용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빌라도는 예루살렘에 형상들을 끌어들이고 설치한 첫 번째 사람이었는데, 그것은 그가 밤에 들어와서 백성들과 마주치지 않은 채 그 일을 했기 때문이다.” (유대고사 18장 56절)


 또한 빌라도는 사마리아 예언자로 불리우던 어떤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리심 산으로 데리고 가서 모세가 거기에 묻어 놓은 신성한 그릇들을 보여주겠다고 나섰을 때 기병대와 중무장한 보병들을 동원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나머지는 포로로 붙잡아가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일로 총독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빌라도는 그야말로 평범한 로마 총독이었습니다. 다른 총독들보다 특별히 더 선한 것도 아니고, 유대인들에게 특별히 자비를 더 베푼 것도 아닌 평범한 총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유대 총독으로 온 것으로 보아 그는 뛰어난 총독이라기보다는 2급 총독 쯤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황제에게 잘 보여서 자리를 유지하기 원했고, 권력의 힘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위협 세력을 과감히 죽여버리는 총독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그런 총독 빌라도가 보기에도 예수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관저 안으로 붙잡혀 온 예수를 심문하고, 또 관저 밖으로 나아가서 예수를 고발한 유대 지도자들에게 물어보아도 도대체 예수를 왜 죽여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요한복음 기자는 바로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도무지 사형에 처할 수 없는 사람을 사형에 처하게 만들려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기록하면서 뜻밖에도 놀라운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가 진리의 왕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본문을 다시 한 번 살펴보십시다. 유대인들은 막무가내로 예수를 죽이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예수를 죽일 아무런 명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로마를 대표하는 총독 입장에서는 예수가 로마에 저항해서 독립 운동을 하였다던가, 자칭  왕이라 부르면서 백성들을 유혹했던가 하는 것이 아니라면 예수를 죽일 명분이 없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물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물론 빌라도가 생각하는 왕이란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왕이지요. 백성들과 땅을 지배하고, 군대를 거느려 전쟁을 일으키고, 세금을 거두고 하는 세속적인 왕만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소한 것이 아니요.”


 그러자 빌라도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왕이오?“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셨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오?”


 물론 빌라도가 예수의 말씀을 알아들었을 리가 없습니다. 또 예수의 대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예수께 ‘진리가 무엇이오?’라고 물어 놓고는 그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가서 유대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보아 예수가 누구이신지, 진리가 무엇인지 하는 것들은 빌라도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예수가 바로 진리이시며, 진리의 왕이시라는 놀라운 선언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커다란 힘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세속적인, 정치적인 왕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5병 2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도 그랬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의 왕 직을 항상 거절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왕국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일찍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장 16절)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비인격적인 법률  들과 규정들의 집합체, 곧 율법이나 준수해야 하는 일련의 계명들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아니라 사람이신 예수께서 곧 하나님께 이르는 길입니다.


 또한 교회의 진리는 계명도 아니고, 어떤 개념도 아닙니다. 진리는 곧 예수 자신이십니다. 진리는 하나님이신데 예수가 하나님이시기에 예수가 곧 진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생명’ 그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생명’으로 이끄는 ‘진리’를 계시하고, 그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현하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예수는 자기를 믿는 자 모두를 아버지께 인도하는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로마의 황제는, 그를 대신하는 총독은 그리고 세상의 왕들로 권력을 쥐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죽이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황제의 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세상은 어두워지고,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당하고, 비인간화되고, 절망 속에 죽어갑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진리의 왕국은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신적인 생명을 전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사랑의 생명을 인간에게 전하고 계시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고, 그런 방법으로 메시아 왕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구원의 현존을 전하고 드러내는 그곳에서 왕이십니다. 하지만 그 왕권은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지, 힘이나 폭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진리의 왕국에 속하게 되는 사람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는 진리의 왕이십니다. 진리의 왕국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오신 진리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누구나 진리의 왕국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진리의 왕이신 예수를 모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