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년도

2006. 5. 28 / 나는 아니오! / 요한복음 18:15-18, 25-27

람보 2 2015. 3. 31. 20:06

나는 아니오!


요한복음 18장 15-18절, 25-27절 / 2006.5.28


  유월절 전날 밤, 그러니까 예수께서 붙잡혀서 심문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을 때, 베드로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시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베드로가 다시 예수께 말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여러분!

  인간적으로 보면 베드로의 말이 맞습니다. 제자인 베드로가 스승이신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리는 것이 맞지, 어떻게 스승이신 예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 맞습니까? 그러니까 베드로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뜻밖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그러자 베드로는 화들짝 놀라서 외쳤습니다.

  “주님, 내 발뿐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주십시오.”

  이 때 예수께서 친절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께서 자기를 팔아넘길 사람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라고 복음서 기자는 덧붙이고 있습니다.

  어쨌든 예수께서는 가룟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신 후에 빵 조각을 적셔서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그가 빵 조각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고, 유다는 그 빵조각을 받고 나서, 곧 나갔는데 때는 밤이었다고 성서는 증거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직후에, 예수께서는 남아있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떠나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다시 나서서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다시 물었습니다.

  “주님, 왜 지금은 내가 따라갈 수 없습니까? 나는 주님을 위하여서는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당연합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라면 마땅히 그렇게 대답해야 하고, 또 그렇게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참으로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38절)


  자, 이제 베드로는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라고, 나는 절대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야 옳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같은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덧붙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힘주어서 말했다. ‘내가 선생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모두도 그렇게 말하였다.” (마가복음 14장 31절)


  그러나 여러분!

  이상하게도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바로 이 두 구절이 나오지 않습니다. 즉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결코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라는 대답을 하고는 바로 이어서 그 유명한 고별사로 넘어 가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요한복음 14장 1절)


  이제 몇 시간이 지났습니다. 예수께서는 식사 후에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동산에 가셨다가 거기에서 가룟 유다가 데리고 온 로마 군대 병정들과,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에게 체포되어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때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스승이신 예수께서 붙잡히셨다면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기서도 역시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만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마태복음 26장 56절, 마가복음 14장 50절)

  그러나 이상하게도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위와 같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베드로의 예수 부인 사건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자, 이제 오늘의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잡혀가시고 난 후, 다른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자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라서,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겁이 나서 선뜻 들어가지 못했겠지요. 그러자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고,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빽을 쓴 셈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베드로가 그 다른 제자를 따라 대문으로 들어서려 하자 문지기 하녀가 베드로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는 “아니오.”라고 대답하고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안으로 들어섰겠지요.


  날이 추워서 종들과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워 놓고 서서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도 그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가 다시 부인했습니다.

  “나는 아니오!”


  잠시 후에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으로서, 대제사장의 종 가운데 한 사람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러시오?”

  베드로가 다시 부인하였고,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고 복음서 기자는 증거합니다.


  자, 여러분. 이제 잘 보십시오. 같은 사건을 전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가 표현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베드로를 향한 첫 번째 질문을 보십시오.


 “당신도 저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마태복음 26장 69절)

 “당신도 저 나사렛 사람 예수와 함게 있었지요.” (마가복음 14장 66절)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지요.” (누가복음 22장 56절)


  그러나 요한복음은 다릅니다.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들 중 하나가 아닙니까?” (요한복음 18장 17절)


  두 번째 질문도 비교해 보십시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마태복음 26장 71절)

  “이 사람은 그들과 한 패입니다.” (마가복음 14장 69절)

  “당신도 그들과 한 패 구려.” (누가복음 22장 58절)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렇습니다.


  “당신도 그의 제자들 중 하나가 아니오?” (요한복음 18장 25절)


  세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말 당신도 그들과 한 패구려. 당신의 말씨가 당신을 분명히 드러내 주니까요.”

                                                         (마태복음 26장 73절)

  “정말 그들과 한 패구려. 당신도 갈릴리 사람이니까요.” (마가복음 14장 70절)

  “이 사람도 정말 그와 함께 있었소. 갈릴리 사람이니까요.” (누가복음 22장 59절)


  그러나 요한복음은 조금 다릅니다.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요한복음 18장 26절)


  그렇습니다.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사람들은 베드로가 갈릴리 사람이라든지 또는 말투가 같다든지 하는 것을 보고 예수와 한 패라고 몰아 부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의하면 단순히 고향이 같다든지, 말투가 같다든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이 문제가 됩니다.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들 중 하나가 아닙니까?”

  “당신도 그의 제자들 중 하나가 아니오?”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그리고 이러한 물음에 대해 베드로는 “아니오”, “나는 아니오” 라고 하면서 세 번씩이나 부인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와 이 밤에 스승이 잡혀 있는 현장에 있으면서 한 행위는 자신이 스승과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관계를 부인한 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공관복음서와 달리 요한복음에 의하면 베드로는 단순히 예수를 모른다고 한 것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 사이라고 하는, 구세주와 인간이라고 하는 깊은 관계를 부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기자는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을 생략해 버린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서 울었다.” (마가복음 14장 72절)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바깥으로 나가서 몹시 울었다.” (마태복음 26장 75절)

  “베드로가 아직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곧 닭이 울었다.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똑바로 보셨다. 베드로는 주께서 자기에게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바깥으로 나가서 몹시 울었다.” (누가복음 22장 60-62절)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대답 ‘나는 아니오’ 는 단순히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오’ 라고 하는 완전한 관계의 부정입니다. 그렇기에 요한복음 기자는 베드로가 직후에 후회했다는 기록을 차마 넣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요한복음 기사의 기막힌 배치를 보십시오.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마가와 마태는 체포--->제사장의 심문--->베드로의 부인--->빌라도 재판 순으로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체포--->베드로의 부인--->제사장의 심문--->빌라도 재판 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의하면 체포--->베드로의 1차 부인--->제사장의 심문--->2차 부인--->빌라도의 재판 순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기자가 예수께서 재판 받으시는 것과 베드로의 부인을 극적으로 대비시키기 위한 배치입니다. 안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시는데 밖에서는 가장 가까운 제자마저도 스승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이 기막힌 현실,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제자 베드로는 ‘나는 아니오’ 라는 이 단순한 대답을 통해 주님과의 관계 부정이라고 하는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단순히 눈물 흘리고 통곡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21장에 나오는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시간 복음서 기자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라고 요구합니다. 주님은 지금 대심문관 앞에 끌려가 심문당하시고 고난받으시는데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당신이 예수의 제자냐고 누군가가 물으면 ‘나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오’ 라고 대답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주님과의 관계는 끊지 말라고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언제 어디서나 주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