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 년도

1982. 9. / 새로운 공동체 / 사도행전 2:43-47

람보 2 2015. 3. 4. 16:30

새로운 공동체 (1982.9 )

새로운 공동체

사도행전 2:43-47 / 1982.9
늘 감사하며 나는 살라라.

저는 지난 몇 번에 걸친 설교를 통해서 이스라엘 역사를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는 아무래도 구약을 알아야 하는데 사실 구약은 신약보다 어렵기 때문에 여러분이 조금 어려워하실 줄 압니다. 그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특히 중학생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설교란 결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혹 초등학교 때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설교는 재미로 듣는 것이라든가 또는 듣기 좋은 이야기만 듣는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될 줄 압니다.

저는 오늘도 이야기를 구약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5월 꿈나무 출애굽, 모세의 꿈, 예수의 꿈
6월 하나님께 돌아오라 예언자
7월 시험의 계절 희망의 계절
8월 평화에의 길 참 평화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던 히브리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자기들을 구원해 주시는 해방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 때 그들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약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번번이 깨어졌고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참담한 비극을 맛보게 합니다. 나라는 멸망했고, 선민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손에 짓밟히고, 포로가 되어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영원히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영원히 떠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브라함, 모세와 맺은 계약은 깨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에스겔입니다. 그는 기원전 597년 바빌론으로 잡혀갑니다. 그는 처음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자기들이 지은 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는 남의 나라 땅에서 자기의 꿈의 고향 예루살렘이 함락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돌연 메시지의 내용을 심판으로부터 “위로와 소망”으로 바꿉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은총으로 단련과 수난을 겪은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서 새로운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때 또 한 사람이 나타나 희망을 선포합니다. 그가 누구인지 우리는 모르나 그의 메시지는 이사야서 뒷부분에 담겨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여태까지 당한 고난은 결코 무의미하거나 단순히 죄지은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의 징표만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수난을 통해 온 인류에 대한 그의 사랑의 주권을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은 “수난의 종”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수난은 대속적인 것이고, 다른 민족들을 위해 대신 짊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이 선택받은 것은 결코 자기들이 복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모든 민족에게 축복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은 수난을 통해서입니다. 곧 십자가를 통해서입니다.

그러나 (이제 두번째 “그러나”입니다.) 다시 한 번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또 다시 자기들의 사명을 잊어버렸습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그 대신 자기들의 영광과 축복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주어진 율법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지키니까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자기들을 구원해 주시리라 믿었고 그러기 위해서 이제 곧 메시야를 보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제 메시야가 오면 자기들을 옛날 다윗 시대와 같은 영광스럽고 위대한 나라에서 살게 할 것이고 모든 이방인은 지옥의 땔감으로 쓰여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바로 이런 시대에 예수가 태어났습니다.

예수는 세상에 계시면서 많은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는 자기를 찾아오는 그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5병 2어의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두려워 떠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풍랑을 진압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는 자기의 말을 들으러 오는 그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는 제자들을 뽑아 갖가지 권능을 주어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마태 10:1-8에는 열두 제자를 파견한 이야기가 있고 누가 10:1-12에는 일흔두 제자를 뽑아 파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중 마태 10장을 보면 “예수께서 이 열두 사람을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분부하셨다.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라. 다만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 앓은 사람은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주어라. 나병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주어라.’ ”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는 물론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병 고치는 능력, 마귀 쫓아내는 능력, 더 나아가 죽은 사람 살리는 능력까지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가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 제자들은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한 사람은 자기의 스승을 팔아먹고는 비참하게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간신히 재판정에까지는 따라갔지만 옆 사람들이 묻는 물음이 무서워서 세 번씩이나 나는 저 사람을 모른다고 말하고는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열두 제자 중 나머지 열 제자들은 자기들의 스승이 고난당할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록조차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를 믿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기자는 16:12-13에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시골로 가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 두 사람도 돌아와서 다른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으나 그들은 그 말도 믿지 않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요한복음 기자는 21장에서 “시몬 베드로와 도마와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그 밖의 두 제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 때 시몬 베드로도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 때 시몬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섰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그들 모두가 모든 희망을 포기한 채 옛 생활로 되돌아 간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제 세번째 ‘그러나’입니다)오늘의 본문은 아주 놀라운 변화를 보여줍니다.

“사도들이 계속해서 놀라운 일과 기적을 많이 나타내 보이자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

두려워 말도 못하던 제자들, 무서워 도망쳐 버렸던 제자들, 그들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에게 나타난 변화가 무엇입니까?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첫째로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심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소유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내가 갖고 있는 재산은 결국 내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셋째로 한마음이 되었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서로 누가 높으냐고 싸우던 그들이 이제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넷째로 그들은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다섯째로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라고 했습니다. 순수한 마음과 기쁨이 그들에게 함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체험하고, 고백하는 사람들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새로운 공동체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대인이냐 헬라인이냐의 차이,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문제들, 옥에 갇힌 형제들, 주인과 노예와의 관계, 잦은 전쟁, 남자와 여자, 반로마 항쟁, 더러운 자와 깨끗한 자, 학살 등으로 생긴 과부와 고아들의 문제 등 수많은 지체들의 많은 아픔이 그들 가운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이제 마지막 “그러나”입니다.) 그들에게는 절망을 극복하고 이 모든 문제를 넘어서게 해주는, 해결해 주는 위대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또한 그것은 바로 성령의 함께 하심입니다. 성령을 체험한다는 말은 십자가와 부활이 곧 나를 위해서 있었던 것임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성령이 함께 하실 때 바로 “새로운 공동체”는 태어납니다.

이제 일흔 세 번째 생일을 맞이하시는 수표교 교회 성도 여러분,
지난날의 신앙생활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생활이었습니까?
뭐 그냥 되는대로 살면 되지 하면서 해 온 신앙생활이지는 아니었습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 아니 내 존재까지도 하나님의 것임을 느끼고 살아오셨습니까?
그렇기에 전적인 헌신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살아오셨습니까?
한마음이 되어서 신앙생활 하셨습니까?
내 마음에 조금 맞지 않는다고 맡았던 직책을 내팽겨 치거나 누가 조금 싫은 소리 한다고 삐쭉거리고 갈라지지는 않았습니까?
교회에 모이기에 힘쓰면서 신앙생활을 하셨습니까?
멀쩡한 교회 놔두고 예배 끝나기 무섭게 다방으로 우르르 몰려가서는 교회 나오지 않는 친구들을 다방으로 불러내는 일은 과연 옳은 일입니까?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 기쁨을 나누어 신앙생활 했습니까?
남의 마음을 이상한 눈초리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까?
신앙생활 하시면서 진정 기쁨을 느끼십니까?
교사 하시면서 기쁨을 느끼십니까?
중고등부 임원을 하면서 기쁨을 느끼십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신앙생활 하셨습니까?

어제 중고등부에서는 특별히 전도 집회를 가진 줄로 압니다. 많은 친구들을 데려와서 2층이 꽉 찬 걸 보고 아주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거의 다 가고 난 후에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안에 달걀껍질이 깨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보니까 달걀로 무슨 게임을 했다더군요. 그 달걀을 그 안에 버려야 합니까? 그런 지극히 적은 일 하나 생각지 못 한 사람이 무슨 전도를 합니까? 중고등부 여러분, 여러분들의 교실을 제대로 청소 한번 해본 적이 있습니까? 과연 이 교회를 하나님의 몸 된 성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공동체로 변화하는 역사가 있어야 할 줄 압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살아 계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일흔 세 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여든 번째 생일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수표교 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와 있는 이곳은 어떤 곳인 줄 아십니까? 저는 이제 히브리서 12장 22-24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잔치가 벌어져 있고, 또 하늘에 등록 된 장자들의 교회가 있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완전히 올바른 사람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가 계시고 아벨의 피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가 있습니다.”

생일을 맞아 기쁜 마음으로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고 있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많은 답답함이 있더라도 많은 안타까움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세우셨고, 지금도 함께 하심을 믿으신다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물려준 이 교회를, 우리 수표교교회를 자랑스러운 우리 교회로, 새로운 공동체로 만드는 일에 우리 모두 최선을 다 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