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년도

2006. 1. 29 / 때는 밤이었다 / 요한복음 13:21-30

람보 2 2015. 3. 31. 18:13

때는 밤이었다.


요한복음 13:21-30 / 2006. 1. 29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는 것으로 오늘의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주 본문에 의하면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 예수께서 열 두 제자 전부의 발을 씻겨 주셨을까요, 아니면 가룟 유다를 빼고 나머지 열 한 제자의 발만 씻겨 주셨을까요?

  물론입니다. 열 두 제자 모두의 발을 씻겨 주셨음이 분명합니다. 만일 가룟 유다만 빠트렸더라면 틀림없이 성경에 나왔을 것이고, 그 결과 가룟 유다가 삐졌거나 화가 나서 스승을 팔아먹었다고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가룟 유다의 발을 씻겨 주실 때, 가룟 유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분명히 예수께서는 가룟 유다가 당신을 배반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팔아넘길 사람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3:10-11)


  그렇다면 이미 예수를, 스승을 배반하기로 마음먹은 가룟 유다는 예수께서 자기 발을 씻겨 주실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기가 배반할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자기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발을 씻겨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 어쨌든 제자들의 발을 다 씻겨 주신 예수께서는 마음이 괴로우셔서, 환히 드러내어 말씀하셨다고 성서는 증거합니다. ‘환히 드러내어 말씀하셨다’는 것은 비장하게, 비통하게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물론 제자들은 다시 한 번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 하고 서로 바라보았습니다. 마침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바로 예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시몬 베드로가 그를 향해 고갯짓을 하였습니다. 그게 누구인지 물어보라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그 제자가 조용히, 나지막하게 물었습니다.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 빵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빵조각을 적셔서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27절에 이상한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그가 빵조각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사탄이 들어갔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제 설교에 오늘 대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예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그런데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아무도 예수께서 그에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자루를 맡고 있으므로, 예수께서 그에게 명절에 그 일행이 쓸 물건을 사라고 하셨다거나. 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성서는 증거합니다. 그리고 유다는 그 빵조각을 받고 나서, 곧 나갔는데 때는 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 가룟 유다가 왜 스승인 예수님을 배반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한 너 댓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하나는, 가룟 유다가 돈에 대한 애착이 많은 도적이기 때문에 스승을 배반했다 라는 주장입니다. 요한복음 12:6에 의하면, 가룟 유다는 도둑질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훔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12:6)


  물론 가룟 유다가 돈 욕심이 많아서 공금을 빼 쓴 것이 확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돈 때문 만이라면 가룟 유다가 불과 은 30냥에 스승을 넘겼을 리가 없습니다. 은 30냥이란 노예 한 사람의 값인데 유다가 마음만 먹었다면 제사장들과의 흥정을 통해 30냥 아니라 300냥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주장은 시기심이 예수를 팔아먹은 이유라는 설입니다. 사실 가룟 유다는 열 두 제자 중 유일한 유대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머지 열 한 제자가 갈릴리 지방 출신인 데 비해서 가룟 유다만 가룟 즉 케리옷이라는 유다 마을 출신이라는 설입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늘 외로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특별히 세 제자만 사랑하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 주장대로라면 예수께서 유다에게 돈을 맡겼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회계를 맡긴다는 것은 그만큼 그를 믿고 신뢰하셨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세 번째 주장은 공포설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는 신이 났는데 이제 그만 재난이 임박해 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일단 일이 터지면, 그래서 스승이 잡혀가서 죽게 되면 제자인 자기들도 모두 붙잡혀 가서 죽게 될 것이 두려웠다는 것이지요. 그 잔혹한 로마 군인들이 자기네들을 살려 둘 리가 없다는 사실을 유다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만이라도 살기 위해서 정보를 제공해 주었고, 그 결과 생명을 보장받으리라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퀸시(De Quincey)라는 학자는 유다가 ‘예수의 수완을 강요하기 위해서’ 반역자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즉 예수를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로 생각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할 날만 기다렸는데, 로마와 싸워서 이길 날만을 기다렸는데 예수께서 그만 그럴 기회를 하나씩 놓쳐 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로 하여금 어떤 결정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 일부러 예수를 팔아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가룟 유다를 향한 주님의 준엄한 심판의 말씀은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인자는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다.“ (마가복음 14:21)


  유명한 신약학자 스튜어트(J. S. Stewart)는 인간의 쓰라린 복수심이 그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즉 가룟 유다가 가졌던 세상적인 소망, 다시 말해서 로마와의 전쟁과 유다의 독립이라고 하는 소망을 이룰 수 없게 된 데 대한 실망이 원한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원한이 증오심으로 심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자기가 지금까지 사기꾼에게 속아 잘못 끌려 다녔고, 생애의 여러 해를 허비했으며, 예수가 자기를 위해 했던 모든 일은 결국 자기를 절망적인 불행 속에 몰아넣었다고 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복수뿐이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는 가룟 유다 자신의 생각과 비밀을 다 알고 있다는 느낌이 유다의 복수심을 더욱 강렬하게 했을 것이라고 스튜어트는 주장합니다.


  물론 이 중에 어느 것이 정답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나름대로 다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요한복음 기자는 13장에서 두 번씩이나 악마 또는 사탄을 등장시킵니다.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어넘길 생각을 불어 넣었다.”  (13:2)

  “그가 빵조각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13:27)


  그렇다면 여기 나오는 악마 또는 사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 여기서 우리는 요한복음의 맨 처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처음부터 예수를 빛이라고 고백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1:1-5)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 (8:12)


  그런데 사람들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했습니다.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보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3:19-21)


  그렇다면 그들은 왜 예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할까요? 그것은 그들이 악마의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으며, 또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또 그는 진리 편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8:44)


  그렇습니다.

  빛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이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둠의 자식들이요, 거짓이 자식들이요, 악마 곧 사탄의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입니다.

  “내가 날마다 성전에서 너희와 함께 있었으나, 너희는 내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의 때요,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다.” (누가복음 22:53)


  그렇습니다.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햇빛이 있으므로 걸려서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으므로, 걸려서 넘어 진다”(11:9-10)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곧 온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9:4-5)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자, 이제 예수께서 지상에서의 활동을 마치시고 십자가에서의 고난을 당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사탄은 그 힘을 최고조로 발휘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탄은 그 마지막 도구로서 가룟 유다를 선택했습니다.

  사탄의 도구가 되어 버린 유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된 어둠의 영역(11:10)이요, 예수에게는 지상 활동을 마치게 되는 시간(9:4)이 다가왔습니다. 그것을 요한복음 기자는 짧은 한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때는 밤이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한국 교회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과연 빛이신 예수께서 함께 하시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명색만 교회일 뿐 사탄에 사로잡혀 ‘때는 밤이었다’는 말을 듣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즘 문제의 두 사람이 대형교회들을 돌아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한다고 합니다. 조 **와 전 **이라고 하는데 수구꼴통으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사학법은 나라를 망치는 법이라고, 한국교회의 선교를 막기 위해 빨갱이들이 만든 법이라고 떠들고 다닌답니다. 그러면 교인들은 아멘하고 응답한다지요. 요즘은 그들이 바로 사탄의 세력인 줄도 모르고 그런 자들을 불러다가 부흥회를 하고, 거액의 사례비를 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한국교회는 겉으로는 건물도 크고 교인도 많지만 사실은 사탄에 사로잡혀 밤을 보내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빛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