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년도

2006. 1. 15 / 믿음의 눈 / 요한복음 12:37-50

람보 2 2015. 3. 31. 18:07

믿음의 눈


요한복음 12:37-50 / 2006년 1월 15일



  자, 이제 우리는 요한복음의 전반부가 끝나는 부분에 와 있습니다.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요한복음은 도입부인 1장과 결론부인 21장을 빼고 나면 2장부터 20장까지가 본론에 해당됩니다.

  열아홉 장에 이르는 본론은 다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2장부터 오늘의 본문인

12장까지는 소위 ‘표징의 책’이라는 제목이 붙을 정도로 유명한 표징 일곱 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3장부터 20장까지는 ‘영광의 책’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는데 13장부터 17장까지에 이르는 기다란 고별사가 기록되어 있고, 18장부터 20장까지에는 죽음과 부활을 거쳐 마침내 제자들이 신앙에 이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우리의 본문은 일곱 가지 표징과 그 해설이 나오는 표징의 책의 결론에 해당됩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지금까지 예수를 세상의 빛이요 생명으로 제시해 왔고, 주님이 행하신  위대한 기적들 일곱 가지를 기록하면서 그 각각의 기적이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받아 오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또 하나님 아버지와 똑같으시고 아버지와 하나이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신의 정체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께서 당신의 권능과 선하심을 드러내는 표징들을 완전하게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비천한 사람들에게만 받아들여졌을 뿐 그 나라 지도자들 대다수에게는 배척당하였다는 사실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서 몸을 숨기셨다. 예수께서 그렇게 많은 표징을 그들 앞에 행하셨으나,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다.”


  자,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왜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던 것일까요? 그렇게도 많은 표징을 행하였는데, 심지어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엄청난 표징까지 행하였는데 그들은 도대체 왜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던 것일까요? 예수께서 행하신 표징들은 결국 그들을 신앙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행해진 것들인데 그들은 왜 믿지 아니하였던 것일까요?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녔고, 예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요한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가 얻은 대답, 그것이 바로 예언자 이사야서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으며,

  주님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여러분!

  이 구절은 이사야서 53장 1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53장 1절이 어떤 이야기인가요? 바로 그 유명한, 이사야서 52:13-53:12에 나오는 ‘고난받는 종의 노래’의 한 부분입니다.


  “이제 나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높이높이 솟아오르리라.

  우리가 그를 보고 기막혀 했었지.

  그의 몰골은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인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 만방은 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제왕들조차 그 앞에서 입을 가리우리라.

  이런 일은 일찍이 눈으로 본 사람도 없고,

  귀로 들어본 사람도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 소식을 누가 곧이들으랴?

  야훼께서 팔을 휘둘러 이루신 일을 누가 깨달으랴?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이라고나 할까?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피해 갈 만큼

  멸시를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나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 멋대로들 놀아났지만,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 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공동번역 이사야서 52:13-53:7)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특히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보기에 예수는 너무나 볼 품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선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다고 해서 사생아라고 소문이 났고, 따라서 출신성분도 의심스럽고, 태어난 곳도 어딘가 시원찮고, 제대로 학위를 받은 것도 아니고, 따라다니는 제자들도 별 볼 일 없고, 허구헌 날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바람에 ‘먹기를 즐기고 마시기를 탐하는 자’라는 비난이나 사기 일쑤이고. 그러니 그런 예수가 아무리 대단한 표징을 행한다 해도 그것을 표징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던 이유가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40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무디게 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깨달아서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나에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


  여러분!

  이 구절은 이사야서 6장에서 인용된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6장은 예언자 이사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을 때의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 아주 유명한 본문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야훼께서 드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의 옷자락은 성소를 덮고 있었다. 날개가 여섯 개씩 달린 스랍들이 그를 모시고 있었는데, 날개 둘로는 얼굴을 가리우고 둘로는 발을 가리우고 나머지 둘로는 훨훨 날아 다녔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

  그 외침으로 문설주들이 흔들렸고, 성전은 연기가 자욱하였다. 내가 부르짖었다.

  “큰일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 틈에 끼어 살면서

  만군의 야훼, 나의 왕을 눈으로 뵙다니 . . . . . “

  그러자 스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뜨거운 돌을 불집게로 집어 가지고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보아라, 이제 너의 입술에 이것이 닿았으니

  너의 악은 가시고 너의 죄는 사라졌다. “

  그때 주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께서 이르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일러라.

  ‘듣기는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말아라.

  보기는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말아라. ‘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를 어둡게 하며 눈을 뜨지 못하게 하여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서 성해지면 어찌 하겠느냐? “   (공동번역, 이사야서 6:1-10)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예언자 이사야를 택하여 보내셨지만 그들이 워낙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고, 죄악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배척과 불신 곧 눈먼 상태 외에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던 당시 유대인들이 이사야를 통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내 배척하고 불신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아무리 표징을 행하시고 말씀을 선포해도 유대 지도자들이 끝내 예수님을 배척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의 눈이 없었습니다. 배척과 불신의 눈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끝내 예수를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42절에 의하면 유대의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실을 숨겼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을 바리새파 사람들이 알게 되면 회당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라고 성서는 증거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인간을 더 두려워했고, 하나님의 주시는 영광보다도 인간들이 주는 영광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용기있게 신앙을 드러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 이제 예수께서는 공생애에 있어서의 마지막 공적 담화를 발표하시면서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선포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왔다. 그것은, 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44-46절)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예수를 믿으면 곧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빛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심판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심판하지 않는다 해서 심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배척하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맨 처음에 ‘말씀’으로 시작한 요한복음 기자는 이제 전반부를 ‘말씀’으로 끝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1:1)

  “나는 그의 명령 곧 하나님의 말씀이 영생인 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여 주신 대로 말할 뿐이다.” (12:50)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이십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아버지의 사랑과 생명의 살아있는 표현이십니다.(3:16-17)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믿음의 눈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