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년도

2006. 1. 22 / 삶의 대원칙 / 요한복음 13:1-20

람보 2 2015. 3. 31. 18:10

삶의 대원칙


요한복음 13:1-20/2006. 1. 22



  지난 2003년 8월 4일 새벽, 당시 대재벌이었던 현대그룹의 총수였던 정몽헌 회장이 현대그룹 본사 12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소식이 온 국민을 엄청난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당시 정몽헌 회장은 현대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서 검찰 수사를 받고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던 중 그만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발표했습니다. 당시 경찰과 검찰의 발표에 의하면 유사도 발견되었고, 또 타살근거와 타살정황이 없기 때문에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지금, 정몽헌 회장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즉 누군가가 정몽헌 회장을 죽이고 나서 자살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누군가 제 3자가 정몽헌 전 회장의 죽음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 잡지의 보도에 따르면 정몽헌 전 회장이 사망하기 전날인 2003년 8월 3일 오후 2시쯤 하이야트 호텔 커피숍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검찰 관계자를 만났고, 그때 5장의 유서를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고가 난 다음에 경찰이 발표한 유서는 4장이었고, 나머지 한 장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거기에 무언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또 현대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이 유서를 직접 쓴 게 아니라 누군가가 작성한 것을 정 전 회장이 베낀 것으로 보이고, 또 정 전 회장이 자살을 할 만큼 절박한 상황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망 직전의 행적이 너무나 평범했고, 시신이 12층에서 떨어졌다는 것과는 달리 외부에 상처가 없었고, 12층 창틀에 매달려 있다가 손을 놓아 떨어졌다고 경찰은 발표했는데 정작 창틀에서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다섯 장의 유서 중에서 사라진 유서 한 장이 누구에게 가 있는지, 그 내용은 과연 무엇인지, 없어졌다면 왜 없어졌는지 등을 밝혀내는 것이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왜 이렇게 정몽헌 회장 사건을 이야기하는가? 사람은 죽을 때 대부분 죽을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깨닫고, 죽음을 준비하며 그래서 유서를 작성하게 되고 따라서 그 유서는 한 사람의 이생을 마무리하는 너무나 중요한 문서이고,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문서라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부터 우리가 보게 되는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가 바로 예수님의 고별사 다시 말해서 일종의 유언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이제 제자들 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실 것을 거듭거듭 밝히셨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13:1)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13:3)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13:36)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14:2)

  “그러나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16:5)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16:16)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세상에 왔다. 나는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간다.”(16:28)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으나, 그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17:11)


  그렇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당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가 된 것을 아시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들을 행동으로도 보여주시고, 또 말씀으로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가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던 사건이었습니다.


  유월절 전, 그러니까 주님께서 공생애를 보내시던 중에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지내시게 되는 유월절이 다가왔을 때, 예수께서는 이제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던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을 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시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베드로가 다시 예수께 말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다시 말했습니다.

  “주님, 내 발분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후에 자리에 앉으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참으로 귀한 교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자,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을 바탕으로 해서 많은 목사님들이 교회에서나 수련회 때, 또는 송구영신예배 때 소위 세족식이라는 것을 합니다. 교인이 많은 교회에서는 세족식 대신 세수식이라는 것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설교가 이어집니다. 결국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마지막 교훈은 겸허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라고요.


  과연 그렇습니까?

  과연 그것뿐입니까?   


  물론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요, 교인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오늘의 본문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정리해 보면 예수께서 하신 행동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겉옷을 벗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다음,

     다시 겉옷을 입으셨다.


  여러분!

  유다 사상에서 옷이란 바로 그것의 소유자를 나타냅니다. 즉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옷이란 단순히 몸을 가리우고, 추위를 피하고 하는 정도의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옷은 곧 그 소유자이며, 옷은 곧 소유자의 인격을 나타냅니다.


  그 옛날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자기 장막 안에서 아무 것도 덮지 않고,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었을 때, 둘째아들 함이 그만 자기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바깥으로 나가서 셈과 야벳에게 그것을 알린 사건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만 함이 저주를 받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곧 벌거벗은 아버지의 모습을 가려주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고, 이것이 아버지의 인격을 모독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자, 이제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기 위해 겉옷을 벗으셨다는 것은 곧 아들되신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떠나오신 것을 나타냅니다. 즉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성자의 영광을 벗어던지신 것을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써 가장 낮은 지점인 당신의 죽음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바로 그 장면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6-8)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예수께서는 다시 옷을 입으심으로써 아들이 아버지께로 되돌아가시는 것과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지니셨던 영광으로 되돌아가시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1:14)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 주셨다.” (1:1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버지,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누리던 그 영광으로, 나를 아버지 앞에서 영광되게 하여 주십시오.” (17:4-5)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사건은 단순히 겸허하게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교훈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의 정체성, 곧 예수가 누구이신지를 보여주는 아주 대표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사건은 예수께서 자기 생명을 다하는 사랑의 선물로서 죽음을 예고하는 예언적인 행동일 뿐만 아니라 그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놀라운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예표인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주님께서 식탁에 다시 앉으신 다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13:13-15)


  여러분!

  함께 음식을 들기 전에 손님의 발을 씻기는 것은 손님을 환영한다는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행위입니다(창 18:4-5, 24:32-33, 눅 7:36-44 참조). 그리고 누군가에게 발 씻을 물을 주고, 또 발을 씻겨 준다는 것은 비천한 행위이며, 스스로를 낮추는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이야기에서 이 행동은 식사 중에 예수님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보통 식사 전에 이루어지던 일이 식사 중에 이루어졌고, 더군다나 스승이며 주님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준다는 것은 무언가 비상식적인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놀란 베드로가 “아닙니다. 내 발을 정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께서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베드로에게 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7절)

  그런데 이와 비슷한 맥락의 사건이 13장 36-37절에도 나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


  그렇습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때가 되면 베드로는 그의 발을 씻겨 주신 스승의 참된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때가 되면 베드로는 스승이 가신 길을 따라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바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가 그분을 만났을 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베드로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하지요.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 (요한복음 21:17-18)


  그렇습니다.

  베드로 역시 그의 생애 마지막에, 주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양들을 위한 사랑으로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최고의 행위를 완성하도록 불리울 때 자기의 발을 씻겨주신 주님의 뜻을, 그리고 지금은 따라오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따라올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의 뜻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겨 주라는 것은 단순히 봉사의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희생의 삶을 살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예수를 믿지 않고도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것이 단순히 봉사하는 차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깊은 원칙,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철저한 자기희생의 삶을 살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삶의 대원칙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고난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영광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길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시고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주님을 따라갈 때, 우리에게도 영광에 이르는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믿은 가지고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