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계절
출 17: 1-7 / 1982. 7. 11
오늘도 역시 몹시나 무더운 날입니다. 중앙기상대의 발표에 따르면 올들어 전국적으로계속되고 있는 극심한 가뭄 현상은 1907년 중앙기상대가 설치된 이래 가장 오래 지속되는 가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특히 남부지방에서는 저수지까지 말라붙어 모내기도 못하고 있으며 아파트에는 식수가 떨어지고 공장에는 공업용수가 없어 중단해야 하는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안동 인가에서는 시장과 산하 공무원들이 비가 오게 해달라고 돼지 머리를 갖다 놓고는 기우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불과 몇달동안 비가 오지 않았는데 이 정도입니다.
일찍이 요셉과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한 후 고센땅에 정착하여 400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너무나 힘든 노예생활로 지친 이스라엘 사람들은 드디어 모세의 인도하에 애굽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갖가지 기적을 체험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길은 결코 즐겁고 신나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햇볕은 쨍쨍 내리쬐고, 서늘한 그늘은 사방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설혹 그늘이 있다고 해도 6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가 쉴 수 있는 곳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너무 더워서 사람들은 누구나 지쳤고, 다리는 휘청거렸습니다. 그 흔한 쥬스, 아이차 하나 파는 곳도 없었습니다. 그 뜨거운 벌판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행렬을 이루어 걸어 갑니다. 목적지가 언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는 비참한, 아니 처절한 행렬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정을 생각해 봅니다.
무거운 보따리를 맨 아버지, 먹을 것을 챙겨 갖고 가는 엄마, 엄마 아빠 뒤를 지쳐서 따라가는 어린아이, 그들 모두의 얼굴은 빨갛게 익었고 땀은 흘러 내립니다. 아이가 다리가 아파서 칭얼대자 아빠가 짐 위에다 다리 아픈 아들을 올려놓고 걸어갑니다. 엄마는 그것을 보고 괜찮겠느냐고 걱정을 합니다. “괜찮아, 하나님이 도와주실꺼야” 아버지는 대답을 합니다.
이 때 그 뒤를 따라오던 다른 집 여자아이가 엄마에게 조릅니다.
“엄마 , 나 물줘. 목말라 죽겠단 말이야.”
“오냐, 물 대신 떡을 먹으렴.”
엄마는 이제 조금만 남은 물을 다 먹어 버리면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대신 떡을 먹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물을 달라고 울어댑니다. 여기저기에서 물 달라는 울음소리가 퍼져 갑니다. 하기야 누군들 목이 안마르겠습니까? 운동장에서 축구 시합 한번만 해도 목이 말라서 사이다, 콜라, 찬물을 찾는데 몇 달, 몇 년을 그 뜨거운 사막 속을 걸어가고 있으니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을 달래며 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앞에서 사람들을 인도하며 걸어가는 모세와 아론을 따라 갔습니다. 그들은 꾹 참으며 먼 사막을 걸어 르비딤에 오기까지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눈에는 물이 넘쳐 흐르는 나일강이 생각나기 시작했고 그 주위의 나무 그늘이 생각났습니다. 옆에서는 양과 염소들도 물을 달라고 울어댔습니다. 결국 그들은 지쳐버렸습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겠다. 이 땡볕, 이 불볕 아래를 끝도 없이 걸어 가다니. 미쳤지, 미쳤어.” 불평은 순식간에 퍼져 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시원한 곳에서, 잘 사는 곳에서 꾀어 냈다고 모세를 원망하고 대들었습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애굽에서 데려 내왔느냐?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우리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
그런데 사실 그들의 주장은 정당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겠노라고 큰소리 치던 모세와 아론은 그 많은 백성들을 끌어 내왔으면 무언가 사전대책이 있었어야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끌어내서는 목말라 죽을 고생을 시키니 불평을 들을 만 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면 원망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몇 달 비 안왔다고 이 야단인데 이 땅이 사막이 되어 버린다면 얼마나 큰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모세가 병신이지 아무 대책도 없이 그 백성들을 끌어냈으니 사실 욕먹어도 싼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데 먹을 것이라고는 그 지겨운 만나와 메추라기뿐이고 이제는 물까지 없으니 그들의 불평과 원망은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기간이 정해져 있으면, 며칠만 더 참으면 된다는 것을 알면 다 참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면 그 어려움은 더욱 참기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명확히 알려주었으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야기에서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요? 물이 없어서, 목이 타서 원망하는 그것이었든가요?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에 깔려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점은 딱 한가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함께 하심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왔으면서도 그들은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 먹었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저자는 그 곳의 지명을 므리바라고 했으니 그 뜻이 바로 “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 계신가?” 하며 시험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40년에 걸친 광야생활,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를 시험했던 “시험의 계절”이었습니다. 또한 그 40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이 참된 신앙이 있나 없나를 시험했던 “시험의 계절”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이 날은 우리 민족이 40년에 걸친 식민지 생할로부터 해방된 날입니다. 이 날 우리 민족에게 화려한 미래가 전개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온 민족이 잘 살아 보자고 기뻐 만세 부르던 희망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꿈은 어느덧 사라지고 민족은 분단된 채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고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속에서 아직도 살고 있습니다. 경제개발을 하겠다고 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고 최근 우리들이 겪고 있는 사태들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너무나 삭막하고 우리들 하나하나가 모래되어 제각기 흩날리는 광야같은 세상임을 느끼게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꿈꾸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는 일찍이 “마이 카 시대, 소비가 미덕인 사회”로 나타났고 또한 “정의복지국가”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성취될 지, 또는 진짜 성취될 수 있는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러한 방황을 계속 할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 그것은 바로 우리민족의 불신앙이 아주 뿌리깊이 박혀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6.25 때의 구원의 경험, 이후 나타난 수많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깨닫지 못한 채 우리 민족은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먹었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40년, 그것은 바로 우리민족이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를 시험했던 “시험의 계절”이었습니다. 또한 그 40년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참된 신앙이 있나, 없나”를 시험했던 “시험의 계절”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과 같은 내용의 사건이 민수기 20장에도 나옵니다. 민수기의 사건은 가데스라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백성들이 물이 없자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늘어놓게 되고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 아룁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바위에게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아론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번 힘차게 두들겼습니다. 그래서 물이 나오기는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나를 믿지 못하여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백성에게 줄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의 핵심도 역시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입니다. 위의 두 사건은 그 결과가 무엇이었든가요? 그것은 결국 한 가지, 모세와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 때문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요? 우리 민족이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없는 것처럼 살아 간다면, 그래서 “시험의 계절”이 계속 된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 약속의 땅 그것은 우리가 결코 밟아볼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계속 방황해야 된다. 너희 자식들 대에 가서야 방황이 끝날 것이다.”라고 하는 말씀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이 없어 목말라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던가요? 아닙니다. 물이라고는 도무지 한 방울도 없을 것 같던 그 거친 들판에서 하나님은 물이 콸콸 터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다름아닌 바위를 깨트려서 바로 그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바위에서 물이 솟아 나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바로 지금 우리들에게 ‘너희의 마음에 박혀있는 돌, 불신앙의 돌, 교만의 돌, 무관심의 돌, 그것을 깨뜨려 버려야 살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요?
학생들에게 예배시간에 앉으라고 친절하게 반 표시까지 만들어 주었는데 거기 앉으면 촌스러운 것처럼 생각하고 저 뒤에 앉으려 하고,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오는 예배시간에 상습적으로 늦으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서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그 마음의 돌을 깨뜨려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교사로서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다짐하고, 임명장을 받고는, 교사한답시고 자기딴에는 훌륭한 교사랍시고, 마치 자기만이 아이들을 위한 것처럼 뭐 줘야 한다, 뭐 줘야 한다 하면서 예배시간에는 아이들보다도 늦게 오는 선생님들이 만일에 계시다고 하면 그 마음의 돌을 깨뜨려 버려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학생여러분, 그리고 선생님 여러분.
우리들의 삶이 힘들고 신앙생활 하기가 피곤하고, 교회에 오면 답답하고 무덥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대로 우리의 삶은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혹시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바로 지금 우리는 우리 마음의 돌을 깨뜨려야 할 때입니다. 하남님께서는 바로 지금 우리 마음의 돌을 깨뜨려서 물이 솟아나게 하고 그 물로 우리들이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물이 무엇이든가요? 그 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 38절서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시험의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다시 말하면 좌절의 계절, 절망의 계절, 허무의 계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좌절의 계절은 새로운 시도의 계절로, 절망의 계절은 희망의 계절로, 허무의 계절은 참되게 의미있는 계절로 바뀝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시험하던 그 “시험의 계절”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구원의 계절”로 바뀐 것처럼 우리 민족이 걸어온 지난 40년간의 “시험의 계절”은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가질 때, “구원의 계절”로 바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이 극심한 가뭄은 바로 “시험의 계절에 붙들려 허덕이는 우리 민족에게 바로 지금이 ”구원의 계절“이라고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인지 모릅니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때요, 은혜받을 만한 때로다.” 하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시험의 계절”을 “구원의 계절”로 바꿀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 다같이 기도 하십시다.
출 17: 1-7 / 1982. 7. 11
오늘도 역시 몹시나 무더운 날입니다. 중앙기상대의 발표에 따르면 올들어 전국적으로계속되고 있는 극심한 가뭄 현상은 1907년 중앙기상대가 설치된 이래 가장 오래 지속되는 가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특히 남부지방에서는 저수지까지 말라붙어 모내기도 못하고 있으며 아파트에는 식수가 떨어지고 공장에는 공업용수가 없어 중단해야 하는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안동 인가에서는 시장과 산하 공무원들이 비가 오게 해달라고 돼지 머리를 갖다 놓고는 기우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불과 몇달동안 비가 오지 않았는데 이 정도입니다.
일찍이 요셉과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한 후 고센땅에 정착하여 400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너무나 힘든 노예생활로 지친 이스라엘 사람들은 드디어 모세의 인도하에 애굽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갖가지 기적을 체험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길은 결코 즐겁고 신나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햇볕은 쨍쨍 내리쬐고, 서늘한 그늘은 사방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설혹 그늘이 있다고 해도 6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가 쉴 수 있는 곳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너무 더워서 사람들은 누구나 지쳤고, 다리는 휘청거렸습니다. 그 흔한 쥬스, 아이차 하나 파는 곳도 없었습니다. 그 뜨거운 벌판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행렬을 이루어 걸어 갑니다. 목적지가 언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는 비참한, 아니 처절한 행렬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정을 생각해 봅니다.
무거운 보따리를 맨 아버지, 먹을 것을 챙겨 갖고 가는 엄마, 엄마 아빠 뒤를 지쳐서 따라가는 어린아이, 그들 모두의 얼굴은 빨갛게 익었고 땀은 흘러 내립니다. 아이가 다리가 아파서 칭얼대자 아빠가 짐 위에다 다리 아픈 아들을 올려놓고 걸어갑니다. 엄마는 그것을 보고 괜찮겠느냐고 걱정을 합니다. “괜찮아, 하나님이 도와주실꺼야” 아버지는 대답을 합니다.
이 때 그 뒤를 따라오던 다른 집 여자아이가 엄마에게 조릅니다.
“엄마 , 나 물줘. 목말라 죽겠단 말이야.”
“오냐, 물 대신 떡을 먹으렴.”
엄마는 이제 조금만 남은 물을 다 먹어 버리면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대신 떡을 먹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물을 달라고 울어댑니다. 여기저기에서 물 달라는 울음소리가 퍼져 갑니다. 하기야 누군들 목이 안마르겠습니까? 운동장에서 축구 시합 한번만 해도 목이 말라서 사이다, 콜라, 찬물을 찾는데 몇 달, 몇 년을 그 뜨거운 사막 속을 걸어가고 있으니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을 달래며 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앞에서 사람들을 인도하며 걸어가는 모세와 아론을 따라 갔습니다. 그들은 꾹 참으며 먼 사막을 걸어 르비딤에 오기까지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눈에는 물이 넘쳐 흐르는 나일강이 생각나기 시작했고 그 주위의 나무 그늘이 생각났습니다. 옆에서는 양과 염소들도 물을 달라고 울어댔습니다. 결국 그들은 지쳐버렸습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겠다. 이 땡볕, 이 불볕 아래를 끝도 없이 걸어 가다니. 미쳤지, 미쳤어.” 불평은 순식간에 퍼져 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시원한 곳에서, 잘 사는 곳에서 꾀어 냈다고 모세를 원망하고 대들었습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애굽에서 데려 내왔느냐?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우리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
그런데 사실 그들의 주장은 정당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겠노라고 큰소리 치던 모세와 아론은 그 많은 백성들을 끌어 내왔으면 무언가 사전대책이 있었어야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끌어내서는 목말라 죽을 고생을 시키니 불평을 들을 만 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면 원망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몇 달 비 안왔다고 이 야단인데 이 땅이 사막이 되어 버린다면 얼마나 큰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모세가 병신이지 아무 대책도 없이 그 백성들을 끌어냈으니 사실 욕먹어도 싼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데 먹을 것이라고는 그 지겨운 만나와 메추라기뿐이고 이제는 물까지 없으니 그들의 불평과 원망은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기간이 정해져 있으면, 며칠만 더 참으면 된다는 것을 알면 다 참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면 그 어려움은 더욱 참기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명확히 알려주었으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야기에서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요? 물이 없어서, 목이 타서 원망하는 그것이었든가요?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에 깔려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점은 딱 한가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함께 하심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왔으면서도 그들은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 먹었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저자는 그 곳의 지명을 므리바라고 했으니 그 뜻이 바로 “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 계신가?” 하며 시험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40년에 걸친 광야생활,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를 시험했던 “시험의 계절”이었습니다. 또한 그 40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이 참된 신앙이 있나 없나를 시험했던 “시험의 계절”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이 날은 우리 민족이 40년에 걸친 식민지 생할로부터 해방된 날입니다. 이 날 우리 민족에게 화려한 미래가 전개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온 민족이 잘 살아 보자고 기뻐 만세 부르던 희망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꿈은 어느덧 사라지고 민족은 분단된 채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고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속에서 아직도 살고 있습니다. 경제개발을 하겠다고 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고 최근 우리들이 겪고 있는 사태들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너무나 삭막하고 우리들 하나하나가 모래되어 제각기 흩날리는 광야같은 세상임을 느끼게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꿈꾸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는 일찍이 “마이 카 시대, 소비가 미덕인 사회”로 나타났고 또한 “정의복지국가”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성취될 지, 또는 진짜 성취될 수 있는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러한 방황을 계속 할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 그것은 바로 우리민족의 불신앙이 아주 뿌리깊이 박혀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6.25 때의 구원의 경험, 이후 나타난 수많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깨닫지 못한 채 우리 민족은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먹었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40년, 그것은 바로 우리민족이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를 시험했던 “시험의 계절”이었습니다. 또한 그 40년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참된 신앙이 있나, 없나”를 시험했던 “시험의 계절”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과 같은 내용의 사건이 민수기 20장에도 나옵니다. 민수기의 사건은 가데스라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백성들이 물이 없자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늘어놓게 되고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 아룁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바위에게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아론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번 힘차게 두들겼습니다. 그래서 물이 나오기는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나를 믿지 못하여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백성에게 줄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의 핵심도 역시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입니다. 위의 두 사건은 그 결과가 무엇이었든가요? 그것은 결국 한 가지, 모세와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 때문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요? 우리 민족이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없는 것처럼 살아 간다면, 그래서 “시험의 계절”이 계속 된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 약속의 땅 그것은 우리가 결코 밟아볼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계속 방황해야 된다. 너희 자식들 대에 가서야 방황이 끝날 것이다.”라고 하는 말씀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이 없어 목말라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던가요? 아닙니다. 물이라고는 도무지 한 방울도 없을 것 같던 그 거친 들판에서 하나님은 물이 콸콸 터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다름아닌 바위를 깨트려서 바로 그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바위에서 물이 솟아 나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바로 지금 우리들에게 ‘너희의 마음에 박혀있는 돌, 불신앙의 돌, 교만의 돌, 무관심의 돌, 그것을 깨뜨려 버려야 살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요?
학생들에게 예배시간에 앉으라고 친절하게 반 표시까지 만들어 주었는데 거기 앉으면 촌스러운 것처럼 생각하고 저 뒤에 앉으려 하고,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오는 예배시간에 상습적으로 늦으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서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그 마음의 돌을 깨뜨려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교사로서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다짐하고, 임명장을 받고는, 교사한답시고 자기딴에는 훌륭한 교사랍시고, 마치 자기만이 아이들을 위한 것처럼 뭐 줘야 한다, 뭐 줘야 한다 하면서 예배시간에는 아이들보다도 늦게 오는 선생님들이 만일에 계시다고 하면 그 마음의 돌을 깨뜨려 버려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학생여러분, 그리고 선생님 여러분.
우리들의 삶이 힘들고 신앙생활 하기가 피곤하고, 교회에 오면 답답하고 무덥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대로 우리의 삶은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혹시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바로 지금 우리는 우리 마음의 돌을 깨뜨려야 할 때입니다. 하남님께서는 바로 지금 우리 마음의 돌을 깨뜨려서 물이 솟아나게 하고 그 물로 우리들이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물이 무엇이든가요? 그 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 38절서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시험의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다시 말하면 좌절의 계절, 절망의 계절, 허무의 계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좌절의 계절은 새로운 시도의 계절로, 절망의 계절은 희망의 계절로, 허무의 계절은 참되게 의미있는 계절로 바뀝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시험하던 그 “시험의 계절”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구원의 계절”로 바뀐 것처럼 우리 민족이 걸어온 지난 40년간의 “시험의 계절”은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가질 때, “구원의 계절”로 바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이 극심한 가뭄은 바로 “시험의 계절에 붙들려 허덕이는 우리 민족에게 바로 지금이 ”구원의 계절“이라고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인지 모릅니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때요, 은혜받을 만한 때로다.” 하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시험의 계절”을 “구원의 계절”로 바꿀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 다같이 기도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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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5. 9 / 꿈나무 / 출2:1-10, 눅 2:51-52, 엡6:1 (0) | 2015.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