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13-35/1995. 4. 30)
우선 출애굽기 2:11-15의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 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네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
때는 기원전 1,500년 경, 그러니까 야곱과 그의 자녀들 70명이 기근을 피해 애굽 땅으로 피난을 간 때로부터 약 400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야곱의 후손들은 애굽 사람들의 노예가 되어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네들을 구원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때 애굽의 왕궁에서 한 히브리인이 애굽의 왕자로 자라났습니다. 그는 비록 애굽의 왕자 신분이기는 했지만 그의 친모이자 유모인 여인으로부터 ‘너는 히브리인이다’라는 말을 계속 들으며 자랐고, 그래서 장성하면서는 히브리인들을 구원해 내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히브리인을 때리는 애굽인을 보자 분을 참지 못해 그 애굽인을 쳐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바람에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래서 잡히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도망갈 수밖에 없었으니 그의 이름은 모세였습니다.
모세, 히브리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애굽의 왕자로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호사스럽게 살며 고생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살던 모세. 그는 죽음의 위협 앞에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도망친 곳은 바로 미디안 광야였습니다.
여러분!
제가 읽은 출애굽기 2장 15절에는 이때의 모습을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
라고 불과 한 구절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러나 졸지에 왕자의 신분에서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한 모세가 미디안 광야를 헤맬 때 얼마나 험한 고생을 했을 것인가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주머니에 돈 한 푼, 빵 한 조각 없이, 그렇다고 뚜렷하게 찾아갈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끊임없이 쫓겨야 했던 모세. 언제 바로의 자객이 들이닥칠지 모르고 나이 40 넘어 가정도 이루지 못한 채 방황을 해야 했던 모세. 일찍이 어머니를 통해 들었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역사하실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도망자가 되어야 했던 모세.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 것인가요? 비록 그가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목자로서의 생을 살기는 하였지만 그 40년 동안 그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을 것인가요? 애굽의 왕자로서의 생애 40년이 인생의 오르막길이었다면 미디안 광야에서의 방랑자와 목자로서의 40년은 인생의 내리막길이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시대로부터 약 6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다윗, 솔로몬의 통일왕국 시대가 지나고 남북이 갈라져 싸우던 시대. 북왕국 이스라엘에 아합이라고 하는, 북왕국의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악독한 왕으로 알려진 바로 그 아합 시대 때 선지자 한 사람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아합 왕은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이하면서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받아들여 철저하게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열왕기상 16:30-34에 의하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바로 그 아합 왕 시대 때 유명한 선지자가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엘리야였습니다. 그는 아합의 죄가 너무 커서 3년 동안 기근이 있으리라는 예언을 하기도 했고,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갈멜 산 위에서 바알과 아세라 신의 선지자 850명과 맞붙어 누가 진짜 하나님인지 시합을 벌여 멋지게 이기는 일까지 치러낸 사람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의 선지자들이 제단을 쌓아놓고는 아무리 자기들의 신을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자 엘리야는 너희 신이 졸든지 외출을 나갔든지 웅답이 없으니까 더 크게 부르라고 조롱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셔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까지 핥았다고 열왕기상 1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엘리야가 왕비 이세벨이 보낸 자객들의 손에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자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도망을 쳤습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엘리야가 아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거기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에 들어가 하룻길 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열왕기상 19:3-4의 말씀입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 그가 우상신의 선지자 850명과 당당하게 겨루었던 때까지가 그의 인생의 오르막길이었다면 그 후 그는 갑자기 죽음의 위협 앞에서 내리막길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그리고 그 몸이 아리마대 요셉의 예비된 무덤 안에 눕혀진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말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제 스승을 잡아 죽인 로마 정부 측과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다음으로 할 일은 그의 제자들을 잡아 죽이는 일로 보였습니다. 못된 싹은 아예 처음부터 완전히 없애버려야 하니까 제자들도 곧 체포되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깥출입도 하지 못하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의 장면은 요한복음 20장 19절에 극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제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유대인들이 붙잡으러 올까봐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래서 문이란 문은 다 꽉 걸어잠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마침내 어부 출신 베드로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나섰고 다른 제자들도 따라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예수님의 제자들 중 두 사람, 글로바라는 이름의 제자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제자 한 사람 그렇게 두 사람이 자기들의 고향인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엠마오,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 그곳 출신의 두 제자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고, 제자들이 다 흩어질 때에도 그들과 같은 행동을 취했을 것입니다. 그 두 제자는 주님의 시신이 금요일 저녁에 무덤에 넣어졌고, 안식일이 지나기까지 무덤 안에 있
어서 경비병들이 지미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안과 의심 속엣 그 안식일을 보냈습니다.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고 세 번 씩이나 약속하신 주님께서 거짓말을 하셨을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을 믿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밝아오면서 예수께서 살아나셔서 여인들에게 나타나셨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전체가 흥분되어 있는데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 엠마오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발길을 옮겼습니다.
돌아보면 참으로 신나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말씀 한 마디로 고칠 때는 그야말로 우쭐했습니다. 예수께서 종려주일에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는 이제 곧 예수께서 왕이 되실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며칠 만에 상황은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주님은 죽으셨고, 무덤에 들어가셨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쓸쓸하게, 어깨는 축 쳐지고 기운은 다 빠진 채 그들의 마을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까지만 해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삶은 오르막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주 급격한 경사의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쓸쓸하게 걸어가고 있을 때, 바로 그때 어떤 사람이 등장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기자는 아예 처음부터 그가 예수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러나 두 제자는 눈이 가리워져서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낯선 사람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너희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들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길래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그 일을 모르느냐고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참으로 장황한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고는 성경을 자세하게 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엠마오에 도착하여 함께 식사하게 되자 예수께서 축사하시니 그때서야 비로소 그들은 눈이 밝아졌고, 그 낯선 사람이 바로 주님이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께서는 보이지 않게 사라지게 되었지만 그들은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분이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바로 이 말 한 마디로 그들의 인생은 바뀌었습니다. 쓸쓸하게 엠마오로 내려가던 그들의 인생여정이 뒤바뀌었습니다. 그것을 누가복음 기자는 이렇게 짤막하게 적어놓았습니다.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빠져나갔던 도시 예루살렘을 향해 그 즉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곧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가던 길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애굽에서 도망하여 40년간 미디안 광야를 헤매야 했던 모세, 그는 나이 80에 뜻밖에도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출애굽기 3장 4절에 그 기가 막힌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바로 이 시간이 있은 후 모세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양치던 목동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후 히브리인을 구하기 위해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을 피해 도망쳤던 엘리야. 그는 호렙 산으로 도망하여 동굴에 들어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엘리야가 미세한 소리를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잔뜩 겁을 먹은 엘리야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또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너는 네 길을 돌이켜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붓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
그렇습니다.
모세는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인생이 바뀌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도 역시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인생이 바뀌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 역시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인생이 바뀌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길에서 일어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일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들 모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마음에 뜨거움을 느꼈습니다.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 애굽, 다메섹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부활절 후 두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활의 메시지는 곳곳에서 선포되고 있는데 여러분이 걸어가고 있는 인생의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혹 모세와 같이 쓸쓸한 광야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혹 엘리야와 같이 잔뜩 겁을 먹고 브엘세바로 가는 황량한 길을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글로바와 또 한 제자와 같이 희망을 잃고 쓸쓸하게 엠마오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은 여러분이 걸어가고 있는 인생의 길을 누구와 함께 걷고 있습니까?
동족들로부터 버림받고 홀로 걷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모세같이,
백성 전체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기에 자기 홀로 남았다고 불안에 떠는 엘리야같이,
다른 제자들 모두 다 제 갈 길로 가고 이제 단 둘이서 고향길을 가고 있다고 하여 슬픈 빛을 띠고 걷고 있는 두 제자와 같이,
여러분 홀로 쓸쓸하게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예수께서 여러분과 바로 지금 동행하고 있는 것은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한 채 슬픈 빛을 띠고 힘든 인생길을 걷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모세의 광야길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엘리야의 도망길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두 제자의 낙향길에 주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순간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바로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을 뜨고 바라보기만 하면,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마음의 귀를 기울여 듣기만 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십니다. 인생의 새로운 길을 보여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주님을 만나 마음이 뜨거워지기를 간구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삶이 변하여 예루살렘으로 달려 올라가 부활의 증인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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