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눈은, 복이 있다(2011.2.27)
본문) 누가복음 10:23-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돌아서서 따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왕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
(표준새번역 개정판)
자, 오늘은 복음서에 나오는 복 시리즈 네 번째 시간입니다. 제가 복음서에 나와 있는 복 또는 축복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설교를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오늘이 네 번째입니다. 우리는 그중 지난주에 마태복음 13:16-17절을 살펴보았는데 거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지금 보고 있으니 복이 있으며, 너희의 귀는 지금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싶어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 싶어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오늘의 본문이 지난주일의 이 말씀과 아주 흡사합니다.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비교해서 읽어보면 두 본문은 사실상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만 “너희의 귀는 지금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는 구절만이 빠져있을 뿐입니다. 굳이 더 찾자면 ‘의인’이 ‘왕’으로 바뀐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두 군데 본문은 사실상 같은 내용이고 따라서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을 따로 떼어 설교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사실 누가복음 10장 21절 앞에 병행구의 장절이 표시되어 있는데 거기에 분명히 ‘마태복음 13:16-17’이라고 적혀있기까지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같은 뜻이니까 또 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저는 지난 주일에 마태복음 13:10-17절을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그루터기의 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요? 오늘의 본문에서 말하는 바,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라는 구절에서 “보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요? 무엇을 보기에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신 것인가요?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두 군데 본문이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그 본문이 성경 어느 책에 들어 있느냐 특히 그 본문의 앞뒤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고, 그래서 전체 문맥 속에서 그날 택한 본문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 매우 강조하는 원칙이기도 합니다. 똑같은 내용 같아 보이지만 마태와 누가에 있는 두 본문의 전후문맥이 아주 다르고 따라서 그것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바로 앞부분인 21-22절을 살펴보십시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쁨에 차서 이렇게 아뢰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는 드러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우신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아들 밖에는, 그리고 아버지를 계시하여 주려고 아들이 택한 사람 밖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쁨에 차서 이렇게 아뢰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 밝혀지지 않은 이 일을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는 드러내 주셨으니,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우신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바 “이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감추시는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은 누구를 나타내는 것이며, 반대로 그것을 드러내 주시는 “철부지 어린 아이들”은 누구를 나타내는 것인가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또다시 10장 앞부분 즉 1-20절까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성서저자들은 결단코 아무 생각없이, 아무렇게나 본문을 쓴 것이 아닙니다. 전후문맥 상관없이 생각나는대로 아무 말씀이나 갖다 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기들이 말하고 싶은 바, 즉 성령께서 자기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나타내는 위해 본문을 배치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터넷에 올려놓은 저의 사복음서 설교나 성경공부 교재를 보시면 아실 수 있지만 성경의 전후문맥은 마치 물결이 흘러가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본문도 역시 10장 1절부터의 흐름에 들어있는 것이고, 본문 다음 이야기들도 이런 흐름 속에서 해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0장 1절부터는 무슨 이야기가나와 있는가요?
10장 1-20절까지에는 예수께서 칠십 명의 제자 또는 칠십이 명의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이스라엘 모든 고을로 보내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게 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가거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전대도 자루도 신도 가지고 가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아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거기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내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너희는 한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거기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 말아라. 어느 고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에게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리고 거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그러나 어느 고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고을 거리로 나가서 말하기를, ‘우리 발에 묻은 너희 고을의 먼지를 너희에게 떨어버린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라’ 하여라.” (마태복음 10:2-11)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아가서 병자들을 고쳐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했을 때 어떤 고을은 받아들이고, 어떤 고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은 고을들을 향해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12절)
여러분!
소돔이 어떤 곳입니까? 창세기 18-19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고모라 성과 함께 죄악이 너무나 가득차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로 멸망한 것으로 유명한 성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소돔 성이 제자들의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은 고을들보다 더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기 쉬울 것이라는 말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것은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스라엘의 고을들이 얼마나 큰 심판을 받을 것인지를 나타내는 표현인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이어서 예수께서는 다섯 개의 도시를 비교해서 말씀하셨으니 13-16절의 말씀입니다.
“고라신아, 너에게 화가 있다. 벳세다야, 너에게 화가 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기적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심판 날에는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치솟을 것이냐? 지옥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누가복음 10:13-15)
보십시오.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지방에 있는 유대인의 마을입니다. 그러나 두로와 시돈은 이방인들의 도시입니다. 당연히 고라신과 벳세다, 그리고 가버나움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유대인들이 살면서 율법을 지키고, 거룩한 종교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두로와 시돈에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율법도 지키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을 때 유대인의 마을들은 오히려 배척했고, 이방인의 도시들은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고라신과 벳세다 그리고 가버나움과 같이 유대인들이 사는 고을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기적을 행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회개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스스로 선택받은 백성이고, 율법도 다 지키며,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들이 스스로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큰소리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자들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회개하지도 않았기에 결국은 지옥에까지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두로와 시돈 같은 도시의 이방인들은 스스로 선택받지 못하고, 부족한 것을 알기에 겸손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고, 어린아이들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바 제자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많은 예언자들과 왕이 보고자 하고, 듣고자 하였던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들은 이방인들이, 철부지 어린아이들이 받아들이고, 구원받는 역사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과 도무지 거기에 참여gf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받아들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누구나 구원받으리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이방인들이나 어린아이같은 사람들은 구원받는 역사를 보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끝내 구원받지 못한 자칭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고, 구원에 이른 철부지 어린아이들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유대인이면 무조건 구원받지 못하고, 이방인이면 무조건 구원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누가 구원받고, 누가 구원받지 못하는지를 알려주는 그 구체적인 예가 오늘의 본문 바로 뒤인 25-37절에 나와 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오늘의 본문 바로 이어서 나오는 본문에는 율법교사가 등장합니다. 그가 예수께 묻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이때 여기서 그 율법교사가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하지요. 그래서 예수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에 강도 만난 유대인과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우리 모두 압니다. 그중 유대인과 원수지간인 사마리아 사람만이 강도 만난 사람을 치료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물었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여러분!
여기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스스로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은 율법교사, 제사장, 레위인 등입니다. 그들은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았고, 그냥 가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사람은 자기도 죽을지 모르면서도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복 있는 사람은 철부지 어린아이 같아 보이지만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자비를 베푼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장 큰 자비를 베푼 분이심을 보고, 그것을 본받는 삶을 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올 한 해 볼 것을 보고, 들을 것을 듣고, 행할 것을 행하며 사는 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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