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년도

2011. 2. 20 / 그루터기의 복 / 이사야서 6:8-10, 마태복음 13:10-17

람보 2 2015. 4. 5. 22:37

그루터기의 복(2011.2.20 설교)

 

본문) 이사야서 6:8-10, 마태복음 13:10-17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하고 일러라.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이사야서 6:8-10)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했다. ”어찌하여 그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해 주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다. 가진 사람은 더 받아서 차고 남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귀가 먹고 눈이 감기어 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 하고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내가 그들을 고쳐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지금 보고 있으니 복이 있으며, 너희의 귀는 지금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싶어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 싶어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마태복음 13:10-17, 표준새번역 개정판)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복음서에 나오는 복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중에서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부분인데 그 내용이 이사야서 6장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까지 본문으로 선택했습니다.

 

먼저 읽어드린 구약 이사야서 6장은 예언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내용이 기록된 아주 유명한 장면입니다. 1절부터 아주 놀라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뵈었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 안에 가득 차 있었고, 스랍들이 날개 여섯을 가지고 있는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찼습니다. 그것을 본 이사야가 부르짖었습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사야의 죄를 용서하셨고, 그래서 그가 깨끗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그리고 이때 이사야는 참으로 놀라운 대답을 하였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왜 부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셔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그래서 그들이 화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구원받으라고 선포하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사야도 제가 여기에 있다고, 저를 보내 달라고 말씀드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가 오늘의 본문으로 택한 그곳에서 참으로 기가 막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하고 일러라.“

 

뭔가 이상합니다. 듣기는 듣는데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는데 알지 못한다고요? 10절은 더 나아갑니다.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여러분!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이사야가 백성들에게 가서 전할 말이 어찌 이런 것입니까? 심지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라고까지 말씀하셨으니 이게 어찌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까?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한 마디로 그들이 지은 죄가 너무나 크기에 그들이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죄악에 물들어 너무나 마음이 둔하여졌고, 귀가 먹었고, 눈이 멀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이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같은 위대한 예언자가 가서 말씀을 전한다 해도 그들이 워낙 죄를 많이 짓고, 마음이 둔하여지고, 눈이 멀었기 때문에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멸망에 이르고야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인 것입니다. 그것을 역설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도대체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진 것입니까? 도대체 무슨 죄가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말입니까? 예언서 전체에 그들이 지은 죄가 나와 있습니다마는 바로 앞부분인 이사야서 5장에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그 죄 때문에 그들이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이 닥친다”는 말씀을 무려 여섯 번이나 거듭 선포하고 계십니다.

 

우선 5장 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님의 포도원이고,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저지른 살육의 죄, 그들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어떤 것들인가? 그것이 8절부터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첫 번째 죄가 8절입니다.

“너희가,

더 차지할 곳이 없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나가,

땅 한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였으니,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셨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땅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이 끊임없이 땅을 차지하려고 애써서 땅부자가 되고, 나머지는 거지나 노에가 되는 상황입니다. 결국 빈부의 차이가 극심해지고, 일부만이 부자가 되는 죄가 너희에게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려지는 심판이 9-10절에 나와 있습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나의 귀에다 말씀하셨다.

‘많은 집들이 반드시 황폐해지고,

아무리 크고 좋은 집들이라도 텅 빈 흉가가 되어서,

사람 하나 거기에 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열흘 갈이 포도원이 포도주 한 바트 밖에 내지 못하며,

한 호멜의 씨가 겨우 한 에바 밖에 내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재앙은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독한 술을 찾는 사람과,

밤이 늦도록 포도주에 얼이 빠져 있는 사람에게,

재앙이 닥친다!“

 

돈이 많으니까 그것 가지고 온갖 비싼 술 먹느라고 취해 있는 사람들에게 재앙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여기는 단순히 술에 빠져 있다고 나와 있지만 사실은 주색잡기에 빠진 모습이라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게다가 12절에 의하면 그들은

“연회에는 수금과 거문고와 소구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주님께서 손수 이루시는 일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관심은 오로지 주색잡기요,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벌이 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백성은 지식이 없어서 포로가 될 것이요,

귀족은 굶주리고 평민은 갈증으로 목이 탈 것이다.

그러므로 스올(무덤 또는 죽음)이 입맛을 크게 다시면서,

그 입을 한없이 벌리니,

그들의 영화와 법석거림과

떠드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가,

다 그 곳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이사야서 5:13-14)

 

또 어떤 재앙이 있습니까? 18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으로 끈을 만들어 악을 잡아당기며,

수레의 줄을 당기듯이 죄를 끌어당기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19절에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한껏 조롱하고,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두고 보자고 큰소리치고, 하나님을 비웃는 자들입니다. 이어서 재앙이 닥칠 자들이 나와 있습니다.

 

“악한 것을 선하다고 하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하는 자들,

어둠을 빛이라고 하고

빛을 어둠이라고 하며,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슬기롭다하는 그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포도주쯤은 말로 마시고,

온갖 독한 술을 섞어 마시고도 끄떡도 하지 않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이사야서 5:20-22)

 

무슨 말입니까? 4대강을 죽이면서도 그것을 살린다고 거짓말하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구제역이 생겨나자 그 책임을 져야할 자들은 핑계만 대고 농민들한테 떠넘기는 자들에게, 그 침출수를 퇴비로 쓰면 된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고 하며, 의인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티끌처럼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심판의 손을 내리지 않으실 만큼 그들의 죄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인가? 그들이 죄가 너무나 많기에 멸망당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이사야는 너무나 답답해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언제까지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이사야서 6:11 상)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성읍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어질 때까지,

사람이 없어서 집마다 빈집이 될 때까지,

밭마다 모두 황무지가 될 때까지,

나 주가 사람들을 먼 나라로 흩어서

이 곳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그렇게 하겠다.

주민의 십분의 일이 아직 그곳에 남는다 해도,

그들도 다 불에 타 죽을 것이다.“ (이사야서 6:11하-13상)

 

철저한 심판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듯이 그것은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덧붙이셨습니다.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이사야서 6:13)

 

그렇습니다.

이사야서 6:9-10절의 말씀은 철저한 심판의 경고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과 희망의 근거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말씀을 예수께서 끌어오신 것입니다.

 

자, 이제 마태복음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어찌하여 비유로 말씀하셨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귀가 먹고 눈이 감기어 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 하고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내가 그들을 고쳐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죄에 빠져 있고, 그래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로마의 공격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의 멸망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지금 보고 있으니 복이 있으며, 너희의 귀는 지금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

 

자, 여기서 말씀하시는 복은 무엇입니까? 바로 이사야서 6장 13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이사야서 6:13)

 

여러분!

거룩한 씨,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씨는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그루터기가 될 것이고, 그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있고, 듣고 있으니 그보다 더 복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시는 복은 바로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참된 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참여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 밖의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주시면 좋고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나라만으로 만족하고 살면 그것이 곧 우리가 누릴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본문은 예수가 오셨다는 것, 그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하셨음을 보고 듣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 만으로 만족하고, 그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축복임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