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는가?(2010.10.31)
본문) 마태복음 25:31-40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그는 모든 민족을 그의 앞에 불러 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오늘은 2010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95개조 선언문을 발표한 지 정확히 493년이 되는 날입니다. 해마다 한국교회는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주일로 지켜왔는데 올해는 바로 제 날짜에 지키게 되었습니다. 여러 주 전부터 종교개혁주일에 무엇을 설교할 것인지 고민해 왔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은데 도무지 설교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너무 많아서 도대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여기서 제가 한국교회 개혁을 외치면 대뜸 이런 반응이 나오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네 교회 크기가 얼마만한데?
몇 명이나 모이는데?
일 년 예산은 얼마나 되고 한 달에 월급을 얼마나 받아?
그것 밖에 안 되니까 공연히 트집 잡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제가 아무리 교회개혁을 이야기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역시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설교를 보내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교회를 새롭게 하자고 아무리 외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 같은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게다가 사는 것 자체가 힘들고, 허구헌날 쪼달려서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치고 있는데 이런 주제에 무슨 교회개혁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종교개혁에 대한 설교를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러다 소위 ‘봉은사 땅 밟기’라는 사건을 접하게 되었고,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써 올리는 글들을 읽으면서 거기에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들어있음을 발견하고 오늘 그것들을 소개하면서 오늘날 소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우선 봉은사 사건을 소개해야겠습니다.
‘찬양인도자학교’라는 것이 있나 봅니다. 아마도 요즘 한국교회에서 찬양집회가 많이 열리고 거기서 찬양을 인도할 사람들이 필요하니까 그들을 양성하는 학교인가 봅니다. 그 학교 교육가정 중에 노방전도를 하는 것이 있는데 이번에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중 ‘주님의 향기 6조’에 속한 학생들이 노방전도를 하러 갔다가 봉은사까지 간 것 같습니다. 20대로 보이는 6명의 남녀가 봉은사 대웅전을 비롯하여 사찰 곳곳에서 기도를 하고,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은 것이지요. 그리곤 그것을 용감하게도 인터넷에 올렸고,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동영상에서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울 시내에 이렇게 큰 절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땅 밟기로 봉은사 땅도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선포했다.”
“봉은사는 정말로 파괴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 땅을 회복하실 것이다.”
“우리가 밟고 지나간 이 자리에 하나님께서 주님의 나라를 이루시려고 우리를 보내신 것으로 믿고 선포했다.”
“우리가 지나간 이 땅에 주님께서 크게 역사할 것을 믿고, 이런 우상 숭배가 이 땅에서 떠나갈 것을 선포했다.”
동영상이 일단 퍼지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 기독교를 욕하였습니다. 개독교라고 부르며 개신교의 독선과 배타성을 질타했습니다. 같은 기독교인이면서 이에 대해 대신 사과한다는 사람들까지 나타날 정도였습니다. 어쨌든 찬양인도자학교의 책임자 목사님과 동영상을 찍은 사람들이 봉은사에 가서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 일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몇 분의 목사님들이 적절한 글을 올려주셨기에 그분들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제 의견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김민수 목사님이 올린 글에 의하면 이런 동영상이 이번 것이 처음이 아니고 이미 다른 것이 있답니다. 대구 동화사 땅 밟기 동영상도 있고, 미얀마까지 가서 찍은 땅 밟기 동영상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이것이 대구 동화사 땅 밟기 동영상을 캡쳐한 사진인데 큰 글씨로 “별의 신 곧 계명성 사탄이다. 지장보살상”이라고 써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장보살을 계명성 사탄이라고 부른 것이지요. 솔직히 이것을 불교신자들이 본다면 열 받게 생겼습니다. 김 목사님은 이렇게 써놓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과연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의 개혁을 요구했으며, 회개를 촉구했다. 그 본질적인 내용은 ‘맘몬(물질) 지향’이었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한국교회는 물질적인 축복을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휘둘렀고, 교인들 개개인의 삶의 고단함은 ‘믿음의 약함’이라고 가르쳐 왔다.
대형교회는 기득권자들의 영적인 갈급함을 적당히 채워주고 그들이 죄책감을 적당히 덜어낼 수 있는 스킬(Skill)적인 설교로 부자들의 귀를 만족시켜 줬다. ‘삶’이 없는 예배만으로 신앙인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혹은 성경의 단어들을 비성서적으로 해석하면서 ‘치유나 기적의 역사’ 운운하며 사기행각에 몰두했다. 이렇게 자신들의 세를 확장한 교회들이 기독교를 ‘사이비 종교화’ 했던 것이다. 그 근저에는 자본주의 법칙이 철저하게 작용했고, 한국교회는 ‘맘몬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국교회는 타 종교를 무너뜨리는 일에 열중하기보다 먼저 자기 안에 있는 우상인 ‘맘몬’을 무너뜨리고자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여리고성처럼 안으로부터 먼저 붕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절이 무너지라고 하기 전에 먼저 한국교회에 들어와 있는 우상, 다시 말해서 맘몬 숭배, 물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는, 하나님을 그러한 도구로 만들어버리는 신앙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맘몬 신앙을 깨뜨려버리지 않으면 여리고성이 안으로부터 붕괴된 것처럼 한국교회가 안에서부터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겨났는가? 김민수 목사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맘몬’과 야합한 목사들에게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보다는 교인들의 마음에 맞는 설교, 혹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설교, 교인들을 현혹하여 물질을 뜯어내려는 설교, 그리고 자신들의 행태를 합리화시켜 주기 위한 설교와 성경공부, 오로지 출석하는 교회에만 봉사하게 하고, 다른 교회 교인들을 빼앗아 오는 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목회 마인드, 자기가 섬기는 교회보다 작은 교회를 우습게 알고, 자기 교회가 손가락 안에 들어가면 목에 젓가락이라도 걸린 듯 거만해지는 목사들, 교인들의 헌금으로 교계의 지도자 자리를 꿰차고는 폼 잡는 목사들, 힘 있는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성서의 정신이 아닌 강자의 정신으로 부장한 목사들, 그들 모두가 ‘맘몬’과 야합한 목회자들이다.
그들에게서 나오는 말씀은 생명이 있는 말씀일 수가 없다. 웅변술에 혹해서 눈물 찔끔찔끔 뺄 수는 있겠지만, 은혜를 받는 만큼 비신앙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현상은 이제 일상화됐다. 모든 목회자들이, 신도들이 다 그렇다면 절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짝퉁들이 판치는 가운데서도 진품 신앙인이 있고, 진품 목회자도, 진품 교회도 있어 개인적으로 희망을 버릴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
일부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자기네 교회를 키우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한 교회가 몇 만 명이 모이는 건물을 지으면 그 일대 수많은 작은 교회들이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런 아픔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네 교회만 키우려고 하는 목사님들, 그리고 그렇게 모은 헌금 가지고 벼슬 차지하려고 애쓰는 목사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맘몬이라는 것입니다. 그 우상을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권오재 목사님은 “ ‘땅 밟기’를 꼭 해야겠다면”이라는 글을 통해 진짜 땅 밟기를 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좀 긴 글인데 일부만 읽겠습니다.
“나는 좀 다른 각도에서 현재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땅 밟기'라는 것의 낮은 수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소위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땅 밟기를 꼭 해야겠다면, 종교의 한계에 갇혀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버리고 세상 속의 수많은 분야들이 하나님의 정의와 말씀에 벗어난 것을 애통해 하고 바로 그 세상의 현장에서 세상의 모습으로 땅 밟기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하나님은 종교에 포섭되는 분이 아니다. 종교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교회의 주인, 기독교라는 종교의 주인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온 세상의 주인이시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종교에 가두어 놓고, 다른 종교의 신들과 경쟁하는 신으로 스스로 폄하를 하고 다른 종교의 사찰에 몰려가 불상을 파괴하고 대웅전에 무릎을 꿇고 찬송가를 부르는 식의 행동을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온 세상의 창조자이자 주인으로 대우하지 않고, 일개 종교의 우두머리로 끌어내리는 것이며 그 하나님을 믿는 자신도 일개 종교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고백의 다름 아니다.
나는 이런 열심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땅 밟기를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들이 세상의 불의함과 부조리에 대해 놀라 자빠질 만큼의 무관심을 보이는 것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세상의 불의함에 저항하고 바로잡아 보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세상 버전 땅 밟기'에 대해 오히려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는 아연실색하겠다. 이들에게 동의하고 반대하고를 떠나, 무언가를 변화시키겠다는 같은 동기가 있음을 안다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과 행동에 대해서는 적어도 이해하는 것이 땅 밟기를 하는 사람들의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 아니겠는가?
이 땅에 지금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불의에 대해 민감한 태도를 가지고 바로잡으려는 진정한 땅 밟기를 해야 한다. 각자의 분야에서, 직업의 현장에서 종교의 언어가 아니라 그 현장의 언어로 땅 밟기를 하고 그곳이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찬송가 좀 그만 부르고 주기도문 좀 그만 외우고, 선생이라면 학생들을 진정 사랑으로 보살피고 최고의 수업을 하는 것으로, 사업가라면 비정규직과 파견직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관청에 뇌물 좀 쓰지 않는 것으로, 정치인이라면 강자에게 관대하고 약자에게 강한 정부의 정책과 법률을 바꾸려는 노력으로 진정 이땅이 하나님의 말씀과 공의와 사랑이 실현되도록 땅 밟기를 해야 한다.
이런 실력도 의지도 없으면서 종교의 영역에 갇혀, 땅 밟기를 하는 기독교인들이 나는 안쓰럽고 화가 난다. 적어도 자신이 그러지 못하겠다면, 다른 방식으로 이 땅을 땅 밟기하면서 변화를 소원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의 마음이라도 가져야 할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런 세상의 불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그들이 사찰이 하나님의 땅이 아니라면서 눈물을 흘리니 이런 모순도 없다.
다른 종교의 현장에 가서 땅 밟기를 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비정규직과 같이 변형되어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거대한 기업이 고위 관료와 검사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것이냐고. 아이들을 자살로 몰아넣는 이 나라의 교육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냐고. 10%의 사람들이 90%의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누군가는 집이 없어 지하철 역에서 잠을 자고, 세상의 어떤 나라에서는 몇 초에 한 명씩 굶어서 죽는 세상이 하나님이 원하는 세상이냐고.
이런 일에 아무런 관심도, 느낌도, 문제의식도 없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절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는 당신은 가짜라고 말해 주고 싶다.
기독교인들이여, 진정한 땅 밟기를 하자. 나는 이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여러분, 이제 오늘의 본문을 살펴보십시다.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모든 민족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모든 민족을 불러 모으셔서 양쪽으로 나누어 서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이 깜짝 놀라서 주님께 말했습니다.
“아니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우리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때 임금이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너무 길어서 다 본문으로 택하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이어서 나오는 41절에 의하면 주님께서는 다른 쪽에 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졸개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예수께서 참으로 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졸개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즉 지옥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지옥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그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어 있을 때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지 않았다.”
이 사람들도 역시 놀랐습니다. 기가 막혀서 말했습니다.
“아니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그러신 것을 보았다면 우리가 도와드리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주님이 언제 그런 일을 당하셨다는 말입니까?”
그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는지는 분명합니다. 지극히 작은 사람 하나하나에게, 배고프고 병들고 헐벗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돕는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길인 것입니다. 종교개혁이란 바로 이러한 신앙인들로 거듭나는, 그런 교회들로 거듭나는 역사라고 믿습니다. 이런 점에서 새로워지는 한국교회와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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