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년도

2010. 5. 9 / 아버지의 눈물 / 누가복음 15:25-32

람보 2 2015. 4. 4. 23:34

아버지의 눈물(2010. 5. 9)

 

본문) 누가복음 15:25-32

“그런데 큰아들이 밭에 있다가 돌아오는데,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음악 소리아 춤추면서 노는 소리를 듣고, 종 하나를 불러서, 무슨 일인지를 물어 보았다. 종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거을 반겨서, 주인 어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하였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 (표준새번역 개정판)

 

 

본문을 정하기는 했지만 오늘은 본문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설교라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이야기 내지는 제 신앙 간증으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1969년 음력 2월 28일, 제가 고3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부르셨습니다. 교무실로 갔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빨리 가거라.” 그때 제 아버지께서는 폐결핵으로 인해 청량리에 있는 성 바오로 병원에 입원해 계셨습니다. 무언가 급한 일이 생겼구나 하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장남인 저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그 이후로 좀처럼 불러볼 수 없었던 이름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하면 저에게 떠오르는 좋은 추억들은 몇 가지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진으로 남아 있는 장면 하나. 아버지와 누님과 나와 남동생 그렇게 넷이서 어느 공원에 놀러가 찍은 사진입니다. 지금 제 수첩에 끼워져 있는데 장충단공원일 것 같고, 아마도 초등학교 1~2학년 쯤 되었을 때 같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쯤 되었을 때로 기억되는데, 하나 밖에 없는 큰아버지가 강원도 인제에 사셨습니다. 아주 깊은 산골짜기로 기억되는데 그해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셋째누님과 저만 데리고 강원도에 갔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소양강 상류 쯤 되는 것 같은데 집을 나서서 조금만 올라가면 울창한 숲이 나오고 그 안에 아주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동네 아이들과 거기에 가서 돌멩이를 들추면 가재가 나와서 그것을 잡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우리만 남겨두고 서울로 가버리시는 바람에 울던 제 모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솔직히 이 두 번의 기억들 이외에 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은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사실 기억나는 것들은 대개 술을 많이 잡수시던 아버지, 그래서 술심부름을 해야 했던 날들, 밖에서 술을 잡수시면 술에 취하시고, 그러면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들어오셨기에 동네 창피해서 숨던 날들, 그리고 술에 취하면 갑자기 무섭게 변하시던 모습들.....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고3 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의 6년 동안은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고생하시던 모습만 생각납니다.

 

인천인가에 있던 결핵환자들 요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누님들과 찾아갔던 날들,

경기도 마석 쪽에 있는 시골집을 하나 빌려 혼자 요양하면서 땅꾼들이 잡아오는 뱀을 고아 잡수셨다는 이야기들,

집 마당에서 어머니가 풍로 위에 후라이판을 얹고 계란 노른자위를 태워 그 기름을 만들던 모습. 그 기름이 폐결핵 환자에게 좋다고 해서 어머니는 허구헌 날 쪼그리고 앉아 계란 노른자를 태우셨고, 집안에는 늘 그 냄새가 배어 있었습니다. 남은 흰 자위는 우리들의 반찬이었으니 그때 먹은 계란후라이에는 언제나 노른자위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고생시켜 놓고도 결국 마지막까지 술을 끊지 못하시고, 또 어머니의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남겨놓고 떠난 아버지,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후 40년 가까이 아버지를 잊고 살아온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8년, 그러니까 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실 때의 나이를 내가 먹게 된 바로 그 해 어느 날, 저는 문득 제가 아버지만큼 살았음을 깨달았고, 아버지가 나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새삼스럽게 왜 아버지는 왜 그렇게도 열심히 술을 잡수셨을까 묻게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당신 몸도 병들었고, 가족들도 고통스러웠는데, 그것을 뻔히 아셨을 텐데 왜 고집스럽게도 술을 많이 잡수셨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나의 삶과 특히 나와 더불어 살아가면서 술을 마시는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내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어렸으니까 아버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사셨는지 당신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 오셨는지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젊은 시절을 몽땅 일본의 식민지 시절에 보내셨고, 여러 차례의 전쟁을 겪으셨으며,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처럼 참으로 거친 세상을 살아오셨다는 것만을 짐작할 뿐입니다. 그리고 무언가 풀어버리지 못했던 아픔, 달랠 길 없었던 고통, 아내나 자식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 아픔을 풀어버리는 유일한 길이 술 마시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 저는 얼마 전 두 편의 시를 읽게 되었는데 그 두 편은 바로 아버지에 대한 시였습니다. 하나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유명한 시인이요, 고등학교 때 친구의 아버지이신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이요, 다른 하나는 손택수 시인의 ‘아버지의 등을 밀며’입니다. 이제 그 두 편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마음(김현승 지음)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시인 손택수는 그의 시에서 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아버지의 등을 밀며(손택수 지음)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모르고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아버지가 먹은 나이인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 아버지도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신 적이 없지만 그러나 그가 마신 술에는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었을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제 아버지도 제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인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제 아버지도 당신이 평생 지고 갔던 지게자국 같던 인생의 고통과 아픔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채 한 많은 삶을 사셨던 것을 이제야 눈치채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그분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어버이날, 오늘은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어버이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작년 6월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맞는 어버이날인데 가게들마다 전시된 카네이션 꽃들을 보면서 더 이상 그 꽃을 살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의 그 쓸쓸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제 저는 여기서 아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을 한 아버지를 기억합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입니다. 탕자의 비유라고 알려진 그 유명한 이야기.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이 본문을 가지고 여러 번 설교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 자기 몫이라고 재산을 챙겨서 먼 나라로 떠나버린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 저도 지금까지는 그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었습니다. 그저 아버지니까 기다렸으려니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오늘의 32절을 읽으면서 그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습니다.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는 아들이 세상을 먼저 떠난 것과 같은 아픔, 다 큰 아들을 잃어버린 고통을 한없이 겪은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그가 아들을 기다리면서 어찌 마음 편히 있었을 것입니까? 아무리 아들이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아들이 재산의 반을 갖고 나가서 그것으로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어찌 그 아들을 잊고 편히 지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아내 모르게, 그리고 집에 남아 있던 큰아들 모르게 눈물 흘리며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32절에 나오는 바로 그 말씀,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에서 저는 그 아들을 기다리며 흘렸을 그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집을 나갔던 탕자가 끝내 돌아온 것은 바로 그 아버지의 눈물의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을 저는 오늘 발견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아버지로서의 눈물을 흘리신 분, 예수를 기억합니다.

 

이 시간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이 땅의 모든 아들딸들이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눈물을 헤아리면서 그 눈물을 닦아드리는 날이 오기를 빕니다.

끝내 아들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등짝의 지게자국을 쓰다듬으며 이 땅의 아들딸들이아버지를 부둥켜 안아드리기를 빕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떠나가신, 이제는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고통이 있는 자식들이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하고, 그리고 자녀들 앞에서 웃을 수 있는 행복한 날들이 하루 속히 오기를 빕니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