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날이 올 때까지(2010.5.16)
본문) 이사야서 61:1-3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1970년대 중반 광주의 명문 수피아 여고를 다니던 한 문학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참으로 꿈이 많은 문학소녀였습니다. 글재주도 있었고, 그 재주를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광주일고에서 공모한 ‘무등문학상’에 당당히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광주의 문예운동가들과 어울려 기독청년 운동과 학생운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가는 대신 양림교회의 기독청년들과 신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1978년 유신헌법 반대 유인물 배포와 이른바 ‘부활절 벽화 사건’으로 처음 붙잡혀 가서 고초를 겪었고, 1979년에는 간첩조작사건으로 다시 끌려가서 온갖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3개월 동안 미음으로 연명할 정도로 심신은 피폐해졌습니다. 아버지는 빨갱이 딸을 두었다는 이유로 동네에서 전셋집을 얻기도 힘들 정도로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임영희입니다.
운명의 사건이 일어나던 1980년 5월 18일, 임영희는 윤한봉이 소장이었던 현대문화연구소의 간사이자 극단 광대 단원으로, 작가 황석영의 작품 <한씨연대기>의 공연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19일 금남로 안쪽 골목에 있던 YWCA 연습실에 있던 그녀는 공수부대원들이 맞은편 무등고시학원까지 쳐들어가서 공부하고 있던 학원생들을 진압봉으로 구타하는 장면을 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린 학원생들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한 모습에 뭐든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뛰쳐나간 그녀는 광주민중항쟁 초기 시위대에 합류했습니다. 그녀는 항쟁기지였던 녹두서점에서 만들어 온 화염병을 던지거나 ‘투사회보’ 유인물을 나누어 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시민군이 도청을 접수하자 5월 22일 이후부터는 투사회보 편집팀, (문선대로서 활동하던 극단) 광대, (여성 중심의) 송백회 등과 함께 항쟁본부가 옮겨간 YWCA에서 궐기대회 준비물과 검은 ‘근조리본’을 제작하며 조직적인 투쟁에 참여했습니다. 투쟁지휘부가 꾸려지자 그녀는 기금 모금조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도청에서 마지막 날을 맞았는데 그때의 상황을 그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27일 그 새벽을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이 없었고, 그 적막감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유언이 될지도 모를 그 순간, 방 안에 둘러앉아 최후의 막걸리 잔을 돌려 마신 뒤 몇 푼 안 되는 돈을, 만약 살아서 이 자리를 벗어날지도 모를 사람들의 차비로 나눠주었습니다. 용준이도. . . (윤)상원이도. . . 그것이 마지막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군부가 광주를 점령하던 27일 새벽, 그녀는 누군가 살아남아서 광주의 비극을 전해야 한다고 강권하는 동지들에 떠밀려서 처절한 총소리를 들으면서 광주를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습니다. 그녀는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과 ‘투사의 노래’ 테이프, ‘항쟁일지’ 제작 등으로 분주했습니다. 그녀는 오로지 ‘어떻게든 무엇이든 광주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동지들은 다 죽고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술을 먹지 않고는 잠들 수 없었고,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했습니다. 그녀는 그래도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안은 채, 광주 시민들이 폭도가 아니며 공산주의자들이 아님을 알리는 진실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81년 겨울 광주 운암동에 있던 황석영과 홍희윤의 집 2층 서재에 몇 사람이 모였습니다. 노래 한 곡을 녹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노래는 한 평생을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이루기 위해 처절한 삶을 살아왔던 백기완 선생님이 광주항쟁을 기억하며 80년 12월에 지은 ‘묏 비나리’라는 시의 일부분을 노래에 맞게 황석영이 개사하고 작곡가 김종률이 곡을 붙인 노래였으니 제목이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습니다. 한 번 들으시면서 아시는 분들은 함께 부르시면 좋겠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여러분!
오정묵과 함께 이 노래를 녹음하면서 임영희는 울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광주에서 죽어간 많은 동지들을 기억하면서 울었고, 산 자로서의 아픔과 고통을 생각하며 울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물론 이 노래가 광주 민주화 운동 때 도청에서 전사한 윤상원 열사와 1979년 겨울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서 두 사람을 추모하며 그 두 사람이 부르는 노래로 발표되었기에 일부 목사님들은 마귀 노래라고 비난한다지만 이 노래의 원 저자인 백기완 선생님은 남북을 분단시키고, 민중을 압제하는 군부독재 세력이 무너져 내릴 것을 기원하며 이 시를 지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 시의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벗이여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
꽝쇠는 갈라쳐 판을 열고
장고는 몰아쳐 떼를 부르고
징은 후려쳐 길을 내고
북은 쌔려쳐 저 분단의 벽
제국의 불야성, 왕창 쓸어안고 무너져라.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여러분!
임영희는 광주민주항쟁 30주년을 맞는 지금까지도 잠 못 드는 밤이면 혼자 이 노래를 부른다고 눈물을 머금으며 고백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도대체 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녀는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하고, 눈물 흘리며 이 노래를 불러야 합니까? 도대체 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며 목이 메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3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그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들은 그 누구도 자기들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누가 공수부대원들에게 광주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했는지, 최고 명령권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광주와 전라도 일대에서 정확히 몇 명이 죽고, 다쳤고, 행방불명되었는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광주민주항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그 아픔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저는 광주를 생각할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30년이 지나도록 그때 저지른 죄악을 고백하고 참회하는 사람이 왜 한 사람도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고백하고 참회하기는커녕 아직도 그 사건을 한 지역의 문제로 몰아붙이고, 공산주의자들의 조종으로 일으킨 사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혹 이 방송을 보시는 분들 중에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진실을 보는 눈을 갖게 되기를 빕니다.
그렇다면 이제 광주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은 오늘날,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세월이 흘렀으니 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까? 다 지난 일인데 이제 와서 들쳐내면 뭐하겠느냐 하면서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그때 피해입은 사람들 보상금 받았으니 된 것입니까? 돈 몇 푼 준 것으로 사람들 죽은 값을 치를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피해자들이 흘린 피와 그 피의 호소에 “끝까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바로 그들의 피를 호소하면서 가해자들의 죄를 용서하지 말라고 호소해야 합니다. 일찍이 예언자 이사야가 했던 것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천박해졌고 세상이 비굴해졌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용서하지 마십시오.”(이사야서 2:9)
여러분!
가해자들이 진실된 참회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죄를 지었다고, 내가 그 피의 값을 받아야 한다고, 내가 당신들 앞에 무릎 꿇겠노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누가 감히 화해와 용서를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한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몇 백 명이 죽었는지, 몇 백 명이 행방불명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그들의 가족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안고 30년을 살아왔을지 우리가 모르는데 누가 그들을 향해서 함부로 화해와 용서를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 놓고, 고통 속에 살아가도록 만들어놓고도 잘못을 빌기는커녕 오히려 떵떵거리고 사는 자들에게 우리는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응답을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일찍이 아모스가 선포했던 것처럼.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한가운데,
다림줄을 드리워 놓겠다.
내가 이스라엘을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
이삭의 산당들은 황폐해지고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파괴될 것이다.
내가 칼을 들고 일어나서
여로보암의 나라를 치겠다.“ (아모스서 7:8-9)
여러분!
하나님은 무조건 용서하시는 분이십니까? 아무리 죄를 지어도 그 죄의 댓가도 묻지 않으시고 무조건 용서하시는 분이십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 간 것입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아모스를 통해서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우리는 이런 구절은 잊어버린 것입니까? 우리는 끝까지 그 엄청나게 많은 우리의 동족들을 죽인 자들을 향해 그들의 죄를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너희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외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 땅의 백성들에게, 광주에 살았던 백성들에게, 그리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는 백성들에게, 억압과 압제 속에서 고문당하고, 고통을 겪고, 슬픔과 한을 가슴에 안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여러분!
이 구절은 신약 누가복음 5장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는데 누가복음에 빠진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복하시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광주에서 그렇게 무참한 일을 저지른 자들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보복의 날을 선언하셨습니다.
이사야는 계속해서 선포합니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슬픔과 괴로움을 당한 사람들을 결단코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가득 차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나오는 시온을 광주로 바꾸면 그대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광주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그렇습니다.
광주는 의의 나무이며,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주의 그 아픔과 고통과 희생은 결단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지만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정의가 승리하는 새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30년을 참고 견뎠는데, 우리 곁을 떠나간 동지들이 많이 있는데, 살아남은 우리들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우리가 꿈꾸는 새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1970년대와 같은 엄혹한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어둠의 세력, 악의 세력, 죽음의 세력, 사탄의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언제 새 날이 올지 알 수 없어 참으로 답답합니다. 그러나 곧 어둠은 끝날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나서 외치면 반드시 승리의 새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남은 자로서 먼저 간 동지들을 기억하며 깨어나서 뜨거운 함성을 외치면 반드시 새로운 역사를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게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 시간 광주에서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이루기 위해 죽어간 영령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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