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2010. 3. 21)
본문) 이사야서 11:5-8, 마가복음 1:12-13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여매고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는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게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게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이사야서 11:5-8)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마가복음 1:12-13)
얼마 전 온 국민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준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던 대표선수들이었습니다. 전에는 기껏해야 주로 쇼트 트랙에서만 메달을 땄었는데 이번에는 종목 별로 고루고루 메달을 땀으로써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에서도 강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회가 끝나고 선수들이 귀국해서 기자회견을 할 때였습니다. 지금까지 으레 그래왔듯이 금메달을 딴 선수들이 가운데 맨 앞줄 가운데 앉고 나머지 선수들은 둘러서는 형태로 기자회견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아직 어린 여자 선수 하나가 회견이 진행되는 한 시간 내내 다른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것 지켜보다가 결국 힘들어서 주저앉고 마는 모습이 카메라에 비춰졌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곽민정. 피겨스케이팅에서 13위를 한 선수였습니다. 그의 성적이 그랬기에 그는 앉지 못하고 꼬박 서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요즘 한참 유행하고 있는 말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 바로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기분을 착잡하게 하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말입니다. 어느 시험이든, 어느 경기든 1등은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다 한 번 이상 진 사람들인데, 그리고 우리도 1등을 해 본 경험은 별로 없고 대부분 등수에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채 일생을 살아가는데 우리 사회는 유난히 1등만 기억하기에 우리의 삶은 참으로 피곤하고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 되다보니까 사람들마다 세계 최초, 세계 최고, 세계 최대만을 찾게 되고, 그 결과 내가 1등이 되기 위해서는 남들을 짓밟고 일어서야 하고,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삼아야 하고, 언제나 치열한 경쟁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누구도 행복을 찾지 못한 채 피곤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1등을 차지한 사람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란 다른 말로 “힘이 곧 정의인 세상”입니다. 정의가 힘이 아니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얻으면,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내 이익을 채우면 그것이 곧 정의라는 맖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이 통용되는 세상만큼 불행한 세상도 없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소위 방문진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모 월간 잡지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MBC 사장을 큰 집에 불러다가 쪼인트도 까고....”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구둣발로 정강이를 걷어차서 말을 듣게 했다는 것입니다. 강패 집단도 아니고, 또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떠들어대는지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그들이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고, 또 떠벌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의 삶의 뿌리에 있는 생각이 바로 “힘이 곧 정의”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떠해야 하는가?
기원전 8세기,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이 갈라져 있을 때 당시 근동지방을 지배하던 나라는 앗시리아 제국이었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에 비해 앗시리아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고 강성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끊임없이 정복전쟁을 일으켰기에 유다와 이스라엘도 언제 침략을 당할지 몰라 전전긍긍할 때였습니다. 앗시리아는 끊임없이 조공을 요구했고, 그러다 마침내 기원전 721년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전쟁의 시대, 강대국이 약소국가들을 끊임없이 침략하고, 지배층들은 백성들을 줄기차게 약탈하던 혼돈과 어둠의 시대에 한 사람의 예언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이사야였습니다. 우리는 그를 제2, 제3 이사야와 구분하여 제1 이사야라고 부릅니다.
그는 폭력과 약탈, 전쟁과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상에 살았지만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반드시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을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올 새로운 세상을 미리 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보았던 새로운 세상을 아름다운 시로 남겨 놓았으니 그 중의 한 부분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여러분!
이게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까? 이리, 표범, 새끼 사자, 곰, 사자, 독사. 살무사 이것들은 다 다른 짐승들을 잡아먹는 동물들입니다. 포악하고, 교활하고, 잔인한 짐승들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어린 양, 새끼 염소, 송아지, 어린아이, 암소, 소, 젖먹는 아이, 젖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 강자는 군림하지 않고 약자는 주눅들지 않고 누구나 사람답게 대접받으며 사는 세상, 그것이 이사야가 꿈꾸었던 세상이었습니다.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한 이사야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증거합니다. 바로 마가복음 1:12-13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광야로 나가셔서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는데 거기에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다.“
들짐승이라고요? 이는 결코 어린 양이나 염소나 송아지, 암소 등이 아닙니다. 이리, 표범, 사자, 독사, 살무사 같은 짐승들입니다. 그것들이 예수와 함께 지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예수께서 앞으로 하실 사역이 바로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 사람답게 대접받으며 사는 세상 즉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 것임을 보여주는 기록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그 일을 위해 일생을 사셨고 목숨을 비쳤던 분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그분의 삶을 본받아 사는 것이요, 그분이 살았던 삶을 나도 살아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예수를 뒤따라 살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힘들고 어렵지만 그러나 이것이 참된 신앙의 길이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길이기에 가야 하는 길입니다. 여기 참석한 분들과 이 방송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우리와 함께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루어가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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