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특권(2010.3.7)
본문) 마태복음 27:55-56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찍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께 시중을 들면서 갈릴리에서 따라온 사람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있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오늘은 사순절 셋째주일, 앞으로 사순절을 보내고 종려주일을 거쳐 오는 4월 4일이 올해의 부활주일입니다. 그러니까 종려주일을 포함해서 적어도 네 번은 사순절에 관한 설교를 하고 그 다음 주에 부활절 설교를 해야 교회력에 들어맞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강해설교를 해 오다 보니까 27장까지 다 하고 28장을 할 차례인데 거기에 부활절 사건이 나오게 되니까 들어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마태복음을 잠시 쉬고 구약의 예언서에 나오는 말씀들을 사순절과 관련지어서 전할까 생각했었는데 그 말씀들이 너무 강하고 듣는 분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예수의 고난 사건에 관한 말씀들 가운데 그동안 다루지 못하고 넘어온 것들을 다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오늘은 주어진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여인들의 특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구약 전체를 통틀어서, 그리고 예수님 당시의 사회에서도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부장 중심의 사회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가정의 중심은 아버지이고, 아버지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가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고, 남편인 아버지는 제 마음대로 여러 여자를 얻으면서도 아내에게는 이혼장 하나 써주면 쉽게 버릴 수 있는 사회입니다. 여자인 딸은 아무런 권리도 이어받지 못한 채 오로지 아들, 그중에서도 맏아들에게 모든 권한이 세습되는 사회가 바로 구약과 신약이 등장한 시대의 배경이었습니다. 하기야 문명화되었다고 하는 현대사회에서도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을 생각한다면 예수님 당시 사회 모습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닙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는 철저한 가부장 사회였습니다. 여자들은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했고, 사람의 숫자를 계산하는 데 포함되지 않았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대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당연히 여겼기 때문에 여자들이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정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바리새인들은 결코 여자를 제자로 받아들이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도 여자들이 없다는 점에서 예수도 바리새파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는 분명히 여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당시 다른 종교지도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 보면 여자들이 비록 열두 제자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예수를 따랐던 여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예수께서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가 예수와 동행하였다. 그리고 악령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몇몇 여자들도 동행하였는데,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 막달라라고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 밖에 여러 다른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 (누가복음 8:1-3)
이 본문을 자세히 보면 여자들을 제자라고 부르는 표현은 나와 있지 않지만 “열두 제자가 예수와 동행하였다”라고 표현하고 이어서 “몇몇 여자들도 동행하였는데”라고 하는 똑같은 표현을 씀으로써 그 여자들도 남자 제자들 못지않게 가깝게 예수로부터 말씀도 배우고 제자로서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나와 있는 이 여인들의 이름이 다시 오늘의 본문에 등장합니다.
자, 이제 저의 관심은 여자들이 단순히 돈으로 예수를 섬기는 일만을 했는가, 아니면 여자들이 그야말로 고귀한,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특권을 누렸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당시 사회에서 그렇게 멸시당하고 천대받던 여자들이 예수에게 와서는 너무나 큰 특권을 누렸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아기 예수가 태어나실 때 그 놀라운 소식을 맨 처음에 들은 것은 마리아요, 마리아가 그 소식을 전한 첫 번째 사람은 남편이 될 요셉이 아니라 친척인 엘리사벳이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찾아와서 전한 이야기는 잘 알려진 것이니 굳이 읽지 않는다 해도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전한 소식은 읽어야겠습니다.
“그 무렵에, 마리아가 일어나, 서둘러 유대 산골에 있는 한 동네로 가서,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에, 아이가 그의 뱃속에서 뛰놀았다.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큰소리로 외쳐 말하였다.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았고, 그대의 태중의 아이도 복을 받았습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그대의 인사말이 내 귀에 들어 왔을 때에, 내 태중의 아이가 기뻐서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여자는 행복합니다.’ ” (누가복음 1:39-45)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 탄생의 복음을 듣는 특권을 누린 사람들은 남자들이 아닌 여인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었습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것을 멀리서나마 지켜본 사람들은 여자들이었습니다. 남자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살했고, 베드로를 비롯한 열한 명의 제자들은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습니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단코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며 약속했던 남자 제자들은 무슨 이유로든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들도 죽을까봐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과 절망과 공포의 순간에 예수를 저버리지 않고 지켜본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여자들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세 사람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막달라 출신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이들이 누구인가요? 우선 다른 복음서와 비교하면서 이들이 누구인지 찾아보기로 합시다. 이상하게도 누가복음에는 “예수를 아는 사람들과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라다닌 여자들은, 다 멀찍이 서서 이 일을 지켜보았다”(누가복음 23:49)라고 기록함으로써 여자들의 이름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누가복음이 갖고 있는 대표적인 미스테리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다음과 같이 여자들의 이름이 밝혀져 있습니다.
“여자들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도 있고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고 살로메도 있었다. 이들은 예수가 갈릴리에 계실 때에, 예수를 따라다니며 섬기던 여자들이었다. 그밖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마가복음 15:40-41)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서 있었다.” (요한복음 19:25)
이렇게 세 복음서를 비교해 보면 십자가 곁에 있었던 여인들이 셋 또는 넷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비록 그 이름들이 조금씩 달라서 정확하게 이름과 정체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몇 사람의 여인들이 예수의 죽음을 지키는 역할을 감당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여인들이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는 특권을 누렸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8장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주님의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에 다가와서, 그 돌을 굴려 내고, 그 돌 위에 앉았다. 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그의 옷은 눈과 같이 희었다. 지키던 사람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서 떨었고,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찾는 줄 안다.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는 살아나셨다. 와서 그가 누워 계시던 곳을 보아라. 그리고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전하기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들은 거기서 그를 뵙게 될 것이라고 하여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다.’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이 엇갈려서, 급히 무덤을 떠나, 이 소식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달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께서 여자들과 마주쳐서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은 다가가서, 그의 발을 붙잡고, 그에게 절을 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 여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가서, 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 ”
(마태복음 28:1-10)
그렇습니다.
끝까지 예수의 죽음을 지켰던 바로 그 여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습니다. 또한 복음서 중 맨 처음 기록된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을 지켰던 바로 그 세 여인이 안식일 후 첫날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가서 예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래서 이레의 첫날 새벽, 해가 막 돋은 때에,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그 돌을 무덤 어귀에서 굴려내 주겠는가?’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런데 눈을 들어서 보니, 그 돌덩이는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 돌은 엄청나게 컸다. 그 여자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웬 젊은 남자가 흰 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그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시오.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그는 살아나셨소.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소. 보시오, 그를 안장했던 곳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그는 그대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시오.’ 그들은 뛰쳐나와서, 무덤에서 도망하였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던 것이다. 그들은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마가복음 16:1-8)
참으로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마가복음의 많은 사본들 중에 권위를 인정받는 대다수의 마가복음 사본들은 16장 8절에서 끝난다는 사실입니다. 9절부터 20절까지의 본문이 우리의 성경에 더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아주 후대에 기록된 사본들에만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마가복음의 초기 사본들에 의하면 남자 제자들은 그 누구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거나 천사로부터 소식도 듣지 못했고, 오로지 여자들만 부활의 소식을 듣는 특권을 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로 여인들이 부활의 놀라운 소식을 알리는 첫 번째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알린 특권도 여자들이 누렸고,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만나거나 그 놀라운 소식을 전한 특권도 여자들이 누렸습니다. 물론 예수 이후 2,000년의 기독교 역사는 또다시 여자들을 억압하고 무시함으로써 가부장 시대로 되돌아갔고, 오늘날 한국교회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예수께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모두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여성관을 혁신시켰으며, 여인들의 존엄성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남자와 여자 사이를 가로막았던 담장을 헐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지극히 연약했던 여인들을 들어서 당신의 증인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예수께서 오늘날도 연약한 여인들, 그리고 이 땅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택해서 당신의 증인으로 쓰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을 들어서, 여러분과 저를, 이 땅의 작은 교회들을 들어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 이 여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 우리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줄 믿고 힘을 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10 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 5. 2 / 누가 우리를 끊을 수 있으랴? / 로마서 8:31-39 (0) | 2015.04.04 |
---|---|
2010. 4. 25 / 모든 피조물들의 하나님 / 시편 104:1-35 (0) | 2015.04.04 |
2010. 3. 28 / 당나귀를 타신 왕 / 마태복음 21:1-11 (0) | 2015.04.04 |
2010. 3. 21 / 사람사는 세상 / 이사야서 11:5-8, 마가복음 1:12-13 (0) | 2015.04.04 |
2010. 3. 14 / 최초의 기독교인 / 마가복음 14:3-9 (0) | 2015.04.04 |